대전평생교육진흥원 평생교육 2015. 1-2월호 게재
배움으로 찾는 참 행복
글 : 채동선 명예기자
인간은 누구나 행복을 추구한다. 그것이 삶의 목적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금 “행복하냐?”고 묻는다면 대답을 망설이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행복이란 게 눈에 보이지 않는 지극히 추상적인 개념인데다 어느 정도의 만족으로 기쁨을 느껴야만 행복한지를 가늠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얼마나 행복한가를 스스로 측정하는 공식이 있다. 2000년대 초 영국의 심리학자가 고안한 것인데, 개개인이 가진 인생관이나 성격 등의 개인적인 요소와 건강, 돈 그리고 인간관계를 가리키는 생존조건과 또 야망, 기대심리를 포괄하는 미래지향적인 요소에 가중치를 부여하여 만든 평가방법으로 통칭 이것을 행복지수라 부른다.
매년 발표되는 국가별 행복지수를 보면 우리나라는 의외로 그 수치가 아주 낮다. 국민 모두가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며 살고 있다는 뜻이다. 우리나라 성인의 행복지수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만년 꼴찌라는 조사 결과는 이미 여러 차례 발표가 되었기에 새삼 놀랄 일은 아니나 아시아의 최빈국이라 일컬어지는 방글라데시나 라오스의 행복지수가 늘 세계 최 상위권에 있음을 보면 고개를 갸웃거리지 않을 수 없다. 아마도 행복을 유발시키는 수많은 요소들 중에서 이 나라의 국민들이 꼽은 우선순위가 우리와는 확연히 다르다는 게 그 이유가 아닐까 한다.
행복의 전재조건으로는 물질적인 풍요, 정신적인 안정, 그리고 미래에 대한 기대심리가 있다. 우리나라의 행복지수가 낮은 이유는 지나치게 물질적인 풍요에 집착하는 우리 국민정서에 기인한다고 본다. 헐벗고 굶주림을 경험했던 보릿고개의 주역들이 아직도 생존해있는 상황에서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얻어진 물질적인 풍요를 최상의 가치로 여김은 당연하다. 그러나 물질적인 삶에만 모두들 매 달리다 보면 다른 가치에는 등한시하게 되어 행복이란 사막의 신기루처럼 찾아 왔다 사라질 수도 있다.
행복이란 먼 미래에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에 있어야 한다. 생각을 달리하면 행복이 보인다. 물질에 대한 시각을 적당한 선에서 타협을 하고 다른 쪽으로 투자를 한다면 말이다.
나 역시 젊은 시절에는 물질적인 풍요를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았었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 퇴직을 하고 또 자식들도 뿔뿔이 내 곁을 떠나고 보니 문제는 다른 곳에서 찾아왔다. 늘 허전하고 외롭다는 생각이 지워지질 않았고 삶의 의욕은 물론 존재이유조차 상실할 정도였다.
뭔가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새로운 것에 대한 배움을 생각했고 때맞추어 문을 연 대전시민대학을 찾았다. 수많은 강좌 중에서 내가 평소에 해 보고 싶었던 분야,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 분야, 삶에 도움이 될 만한 분야를 고르고 골라 때늦은 공부를 하고 있다. 벌써 일 년이 넘었는데 배움이 더해질수록 재미가 늘고 의욕이 충만해 세상이 달라져 보이고 이것이 참 행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교정에서 맞닥트리는 내 또래들도 화구통이나 무거운 악기가방을 메고 활보하는 것을 보면 이들도 틀림없이 행복에 들뜬 배움의 생활을 누리고 있을 것이란 확신을 갖는다.
나는 일흔을 코앞에 둔 늙은이다. 살만큼 살았다 생각 할 수도 있겠지만 아직도 생에 대한 여한이 많이 남아 행복한 미래를 꿈꾼다. 배움이 없었다면 자식들에게 잔소리나 해 대는 뒷방 늙은이로 남았을 내 자신을 생각하면 끔찍하기만 하다.
위대한 성인, 공자는 논어에서 이렇게 설파했다.
“學而時習之 不亦說乎(학이시습지 불역열호)” -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어찌 아니 좋겠는가.
공자가 제시한 인생삼락(人生三樂)의 제 일락(一樂)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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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물질에 대한 시각을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고 다른 쪽에 투자를 해야 행복이 보인다는 말씀,
공감합니다.행복은 누가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만들어가는 것이지요.
여물 선생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미래에 대해 기대를 해도 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참으로 불행한 시대에 살고 있는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