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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일자 : 2024-05.19.
1. 예배의 부름 [목회기도]
사랑의 하나님! 복된 주일, 모이게 하심 감사드립니다. 영과 진리로 예배합니다.
우리의 허물과 죄는 용서하시고 보혈의 피로 씻어 주옵소서.
그리하여 손이 깨끗하고 마음이 청결하여 뜻을 허탄한 데 두지 않고 살게 하옵소서.
연약한 우리는 낙심할 때가 많습니다. 세상에서 들리는 소리에 위축 될 때도 있습니다. 이겨낼 힘을 주옵소서.
곳곳에 분쟁 중인 나라들이 있습니다. 정치이념과 사상이 달라 긴장감으로 사는 이들도 많습니다.
이 세대를 … 이 세계를 긍휼히 여겨 주옵소서.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가 결국 승리하게 될 것을 모두 깨닫게 하여 주옵소서.
군대, 객지, 외국, 병상에 있는 이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평안케 하여 주옵소서.
천국 잔치의 기쁨을 누리는 날 되게 하옵소서. 말씀 전하고 듣습니다.
전하는 종에게는 하늘의 지혜와 성령의 권능을 주시고 듣는 성도들은 하나님 기뻐하실 결단이 서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2. 송영 찬송가 5장
3. 교독문 제27문 시51편
4. 신앙고백합니다.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 합니다.
5. 6. 찬송가 540장 주의 음성을 내가 들으니 부른 다음에 정은선 전도사님 예배를 위해 기도합니다.
7. 특송은 우리 다같이 합니다. 285장 주의 말씀 받은 그 날
8. 성경봉독은 고린도후서 3:1~3입니다. 김종훈 목사님이하십니다.
9. 말씀선포는 방금 봉독하신 본문으로 그리스도의 편지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선포하겠습니다.
그리스도의 편지
고후3:1~3
할렐루야!
대부분의 사람들은 겸손한 척, 아닌 척 말하지만 자기 자신에 대해서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틀림없이 봤어. 내가 들었거든 ~’ 하며 자기가 본 것, 자기가 들은 것은 틀림없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자기는 기억력이 대단히 좋은 것처럼 착각하고 사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숫자 15개를 무작위로 섞어 차례차례 보여준 뒤에 순서대로 다시 적는 실험을 했습니다.
그 실험에 참여한 참가자들은 대부분 10개 이상 맞출 수 있다고 자신만만하게 말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10개 이상 맞추는 사람은 참여자의 1%에 불과했습니다.
과학적인 수사와 CCTV의 보급으로 밝혀진 바에 따르면 목격자의 증언이 사실과 다를 확률이 50%가 넘는다고 합니다.
미국 사람들은 매달 실제 쓰는 신용카드의 금액보다 자신이 30%나 적게 썼다고 기억하며
알콜중독자들은 자신이 생각한 것보다 실제로는 2배 더 많은 술을 마신다고 합니다.
< 2021년 5월 9일, 김장환의 큐티365일 “숫자로 나타내라” 참조. (나침반 출판사 홈페이지에서 인용) >
이처럼 사람의 기억력은 매우 부정확한데
대부분의 사람들이‘나는 제대로 기억하고 있다’고 ‘나는 봤어. 나는 들었어’라고 큰소리칩니다.
우리의 삶은 이렇게 부정확합니다.
명확하지 않은 나의 판단과 경험으로 함부로 결정하고 함부로 판단하고 살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연약하고 부족한 우리들이 해야 하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께 우리의 삶을 맡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하나님의 뜻을 전하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내 뜻, 내 판단, 내 경험으로 살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저는, 교회 목사이기 때문에… 대학에서 학장,총장을 지냈기 때문에 … 하게 되는 일들이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추천서>를 쓰는 일입니다.
새로운 학교에 입학하려고 지원하는 분들, 외국의 기독교 계통 학교로 유학 가는 학생들,
교회와 관련된 직장에 취업을 원하는 분들에게 추천서를 쓸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2000여년 전, 신약 시대에도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 일을 시작할 때
누군가가 써준 소개서 내지는 추천서를 활용했습니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자격증이라는 것이 없었고, 해당 분야의 지식과 적성을 평가하는 시험도 없었습니다.
그렇기때문에 자신이 믿을만한 사람이라고 증명해 낼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일에 합당한 사람임을 나타내는 방법은 믿을만한 사람이라 인정받는 이로부터
추천서를 받는 것이 유일했습니다.
< E. Best, 『현대성서주석, ‘고린도후서’』 (서울 : 한국장로교출판사, 2009) p. 60. 참조. >
바울도 종종 ‘교회와 복음 전파를 위해 필요한 일꾼’을 동역자들이나, 다른 교회에 소개했습니다.
로마서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롬 16:1에“내가 겐그레아 교회의 일꾼으로 있는 우리 자매 뵈뵈를 너희에게 추천하노니”(롬 16:1)
그리고 고린도 교회에는 디도와 그의 형제를 소개했습니다.
(고후 8:23~24) “디도로 말하면 나의 동료요 너희를 위한 나의 동역자요, … 그리스도의 영광이니라
그러므로 너희는 여러 교회 앞에서 너희의 사랑과 너희에 대한 우리 자랑의 증거를 그들에게 보이라”
교회에 필요한 일꾼을 소개하거나 추천하는 일은 바울에게 중요한 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과 고린도 교회와의 사이가 추천서가 없으면 믿지 못하는 사이 …
신뢰할 수 없는 관계가 되기를 바라지는 않았습니다. 우리 사이에 무슨 추천서가 필요하냐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늘 본문 고후 3:1 “우리가 어찌 어떤 사람처럼 추천서를 너희에게 부치거나 혹은 너희에게 받거나 할 필요가 있느냐”
고린도 교회와 바울 사이에는 추천서가 필요하지 않다고 여겼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고후 3:3)
이 말을 다른 번역으로 보면 <여러분은 그리스도께서 보낸 편지입니다>
또 다른 번역으로 보면 <여러분은 그리스도께서 쓰신 편지입니다> 라는 뜻입니다.
적어도 우리가 예수 믿는 사람이라면 ‘내가 예수님이 보내신 편지다’
나를 보면 예수님을 / 예수님의 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라는 확실함이 / 자신감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사실, 고린도 교회는 /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완벽하다’할 만큼 좋은 교회 / 좋은 성도라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고린도서를 읽어보면 … 고린도 교회의 문제들이 많이 나옵니다. 그렇게 칭찬하고 자랑할 만하지도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족한 부분이 있더라도 … ‘예수님 이름으로 모인 교회를’ 하나님은 귀히 여기셨고 사용하셨습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장 2절에 보면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 …”(고전 1:2)
이라고 고린도 교회와 성도들을 극찬했습니다.
그리고 고린도전서 11장 22절에 보면 ‘하나님의 교회를 업신여기면 안된다’는 뜻의 표현도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교회를 업신여기면 안됩니다.
여러분이 본 것, 들은 것, 느낀 것, 판단한 것으로 하나님의 교회를 업신여기면 안됩니다.
사실 교회는 에베소서 2장 20~22절에 보면 ‘공사 中’, 지어져 가느니라 했습니다.
공사 중인 곳이 어떤가요? 여기저기 쌓여 있는 철근, 목재 등 자재와 쓰레기가 있고,
망치질하고 기계 돌아가는 소리 등 정신이 없습니다.
지어져 가는 공사 중인 곳은 그렇습니다.
그런데 교회는 공사 중이고, 지어져 가는 중이랍니다.
그렇다고 우리의 부족함을 / 허물 많음을 / 부끄러움을 합리화 시키면 안됩니다.
예수님을 믿는 신앙고백 위에 세워진 교회를 귀히 여기고,
예수 이름으로 신앙공동체에 들어 있는 성도를 귀히 여기는 것은 맞습니다.
그런데 적어도 예수 믿는 사람이라면 ‘추천서’가 필요 없을 만큼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여러분 추천서가 필요 없을 만큼 예수 믿는 사람으로서 부끄럽지 않게 사십니까?
우리가 그래야 합니다.
누가 추천서를 써주고, 소개하지 않아도, 보증하지 않아도 …
<주사랑교회 목사>, <주사랑교회 성도>라면 ‘아, 그래요. 그렇다면 그분은 확실한 분이겠군요’
‘믿을만한 분이겠네요’라는 소리를 듣게 살아야 합니다.
이런 소리를 들을 만큼 하나님과 사람 앞에 부끄러움 없이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리고 부탁합니다.
우리가 교회 안에서 그래야 함은 물론이고 세상에 나가서도 믿음직한 사람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톰 레이너(Thom S. Rainer)라는 교회연구가는 그의 책 <살아있는 교회를 해부하라>에서
“유독한 교인은 제거하라”고 했습니다.
아프지만 연합을 방해하는 독소는 / 독소가 되는 교인은 제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연합이 되고, 선한 연합(모임)이 된다는 것입니다.
오죽하면 이런 글을 쓴 교회 연구가가 있겠습니까?
예수 믿는다고 하는 사람 중에 있으니까! 그런 독소 같은 사람이 있으니까!
우리가 그러려면 최소한 목회자가 성도를, 성도가 목회자를 신뢰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함께 신앙생활 하는 부모가 자녀를 신뢰하고 자녀는 부모를 신뢰해야 합니다.
복음을 가르치는 교사는 어린이와 학생들을 신뢰해야 하고 그들에게 성경을 배운 제자들은 교사를 신뢰해야 합니다.
바울과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그러했듯이 서로가 서로를 신앙의 열매로 여길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함께 신앙생활 하는 이들에게 상처 주지 말아야 합니다. 상처를 입어서도 안 됩니다.
화평을 깨는 마귀의 심부름꾼이 되면 안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만날 때마다 서로 좋은 점을 보고 칭찬해야 합니다. 감사해야 합니다.
기쁘고 즐거운 만남이 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리고 만남이 유익해야 합니다.
저분을 위해 기도해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야 하고 응답받은 기도에 감사하며 기쁨을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편지’인 우리는 위로하고 격려하는 편지여야 합니다.
서로 감사할 만한 반가운 소식을 전해주어야 합니다.
‘호감 보답성’ 혹은 ‘호의 보답성’이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상대가 나를 좋아하면 나도 상대를 좋아하게 되고 누가 친절하게 대해주면
나도 친절로 보답하고 싶어진다는 뜻입니다.
좋게 여겨지는 사람이 되기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남을 먼저 좋게 여겨야 합니다.
누가 여러분을 웃는 얼굴로 환영해 주기를 원하십니까?
먼저 웃는 얼굴로 환영을 표해야 합니다.
초대 교회에는 구브로 출신의 레위족 중 ‘요셉’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사도행전 4장 36절에는 그에 대한 특별한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 사도들이 일컬어 바나바라 (번역하면 위로의 아들이라) 하니”(행 4:36)
구브로 출신 레위족 요셉에게는 ‘바나바’라는 이름도 있었는데 ‘바나바’는 ‘위로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누구든지 그를 만나면 위로와 격려를 받아 새 힘을 얻었기 때문에 얻은 이름이었을 것입니다.
< 조관호, 『보배롭고 존귀한』, (부산 : 지혜로운, 2013). p.78. 참조. >
생각해 보세요.
바나바라고 불린 사람에게 위로를 받았던 사람들이 바나바에게 함부로 대했을까요?
바나바를 만나면 얼굴을 찡그리며 피했을까요?
웃음 지으며 만났을 것이고 따르는 사람도 많았을 겁니다.
그 바나바는 모이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소개했을 겁니다.
그래서 사도행전에 보면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여지더라”(행 11:24) 했습니다.
바나바 때문에 교회에 큰 무리가 더해졌다고 했습니다.
착한 사람,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 / 바나바 같은 사람이 있으면
믿는 사람이 교회에 많아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바나바처럼 서로를 위로하고
착한 사람으로 인정받으면 … 성령과 믿음이 충만해지면 교회가 부흥하는 역사가 있게 됩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세상의 편지로 써서 보내셨다면 분명히 중요한 것을 알리기 위해서일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통해 알리려는 중요한 정보가 무엇일까요?
‘죄 사함’과 ‘구원’의 소식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우리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사흘 만에 부활하셨고 (롬 1:16~17) 하늘에 오르셨고, 다시 오실 것이라고 하는 말씀을 전하고
또 그 예수님을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고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고
천국 백성이 된다고 하는 예수님의 편지를 전하며 살아야 됩니다.
아무리 신경 써서 예쁜 편지지에 편지를 썼다 할지라도
그 편지가 전달되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우리는 우리 의지와는 상관없이 정보의 홍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넘치는 정보를 제때 접하지 않으면 불안해합니다.
- 인터넷을 통해 지금 일어나는 일들을 바로 알지 못하면 불편을 느낍니다.
- 방금 전에 이메일을 확인했고 문자를 확인했는데도 금방 또 새 메일, 새 문자가 도착하지 않았을까
궁금해 휴대폰을 보게 됩니다.
- 언젠가는 사용하지 않을까 생각하며 꼭 필요하지 않은 정보도 어딘가에 저장합니다.
이러한 현상을 ‘정보중독증(infomania)’이라고 합니다.
건강한 삶을 해치는 정보 중독에서 탈출하기 위해서는 불필요한 정보를 멀리해야 합니다.
그리고 중요한 정보에 집중해야 합니다. 이른바 ‘정보 다이어트’가 필요합니다.
- 많이 알면 모든 게 해결된다는 헛된 기대를 버려야 합니다.
- 한 번에 여러 일을 처리하는‘멀티태스킹’을 하지 않겠다는 결단도 필요합니다.
< J. Naish, 『이너프 : 불만족의 심리학』 (서울: 위즈덤하우스, 2009) pp. 54-58. 참조>
우리가 정말 기억하며 살아야 되는 것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4장 14절입니다.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요 4:14)
우리를 만족시키는 것은 지식이나 정보가 아닙니다.
영원한 생명에 대한 소망이 우리를 만족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만히 있으면 안됩니다.
그리스도의 편지로써 나가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겨야 합니다.
발신인인 예수님이 편지를 전하라고 쓰셨습니다.
여러분이나 제가 그리스도의 편지라면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고 소개해야 합니다.
문구점에 가면 수많은 종류의 편지지가 있습니다. 봉투도 제각각입니다.
여러분도 모두 다 다릅니다. 성격도, 취향도 제각각입니다.
그렇지만 생김새도 다르고, 담은 내용이 조금씩 다를지라도 예수 믿는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편지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기고 사는 참으로 좋은 사람, 참으로 성령 충만하고,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는 아름다운 칭찬을 받는 복된 삶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부족하고 연약한 것 많지만 예수 믿는 우리를 귀게 여겨 주시고 예수 이름으로 모인 주사랑 교회를
귀히 여기시고 사용하여 주시오니 감사합니다.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기는 바나바와 같은 좋은 사람으로 성령과 믿음의 사람으로 이 한 세상을 살아갈 때에
아버지여 영광받으시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으로 살아가기에 부족함 없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10. 259장 예수십자가에흘린 피로서 찬양하면서 준비한 험금 합니다.
11. 봉헌기도 김종훈 목사님께서 하십니다.
12. 하나님께 축복을 받는 기도 축도를 하겠습니다.
지금은 우리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 부활하신 주님과 늘 함께 하실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신 우리 아버지 놀랍고 크신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하심과 성령하나님의 감화감동 충만하심이 온전한 그리스도의 편지로 살아가기로 작정하고 결심하여 고개숙여 기도하는 성도들 위에와 이 마지막 시대를 사명을 죽기까지 충성을 감당하고자 힘쓰는 주사랑교회위에 지금부터 영원까지 함께 계실지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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