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경이 각자 주장이 있으니 지금 여기서는 따로 이 화엄경의 종취를 밝힌다. 뜻을 드러냄에 자세히는 네 문이 있다. 一切諸經이 各自有宗하니 今此에 別明此經(華嚴)宗趣하니라 …… 顯義中에 曲有四門이라. [華嚴經疏;大正藏 35, p. 521下] 법화경이든지 화엄경이든지 모든 경전에는 각자 주장하는 종취가 있습니다. 지금 여기서는 화엄경의 종취를 밝히는데 그것에 네 가지가 있습니다. 이 네 문이 서로 융화적으로 성립되어야만 화엄종의 종취를 알 수 있습니다. 첫째는 따로 법계를 여는 것으로써 인과를 이루니 보현법계(普賢法界)를 인(因)이라 하고 사나법계(舍那法界)를 과(果)라 한다. 그러므로 인과가 이실법계(理實法界)를 벗어나지 않는다. [疏:처음 하나는 곧 체(體)에 즉(即)한 용(用)이니 곧 인과연기다.] 第一은 別開法界以成因果니 謂普賢法界爲因이요 舍那法界爲果라 是故로 因果不離理實法界라. [疏:初一은 即體之用이니 即因果緣起라.] 화엄종에서는 체(體)와 용(用)을 나누어서 말할 때 법계(法界)를 체라 하고 인과(因果)를 용이라고 표시합니다. 먼저 법계, 즉 체를 포섭해서 용을 이룬다는 것은 체 이대로가 용이고 법계 이대로가 인과라는 말입니다. 이 뜻은 결국 공즉시색이라는 표현과 같은 말입니다. 인과(因果)라는 것은 무엇인가 하면 보현법계가 인이 되고 사나법계가 과가 되는데, 그렇기 때문에 인과 과가 이실법계(理實法界)를 벗어나지 않습니다. 이실법계라는 것은 앞에서 말한 법계, 즉 체를 지적하는 것입니다. 용의 법계인 보현법계가 인이 되고 사나법계가 과가 되는데, 이것은 법계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사라는 것은 이실법계인 체의 법계를 여의고는 절대로 성립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즉체지용(即體之用)으로, 체 이대로 전체가 모두 용이므로 이것을 용면에서 볼 때 인과연기라는 말입니다.맨 처음의 ‘첫째는 따로’ 하는 말은 현수스님의 ꡔ탐현기ꡕ에 나오는 글입니다. 청량스님이 현수스님의 학설을 인용하면서 그 구분을 표시하지 않고 자기의 견해와 합쳐서 해설한 것입니다. 그리고 끝의 괄호 속에 소(疏)라는 것은 청량스님의 ꡔ화엄경소(華嚴經疏)ꡕ를 뜻합니다. 둘째는 인과를 모아 융화함으로써 법계와 동일함이다. [疏:다음 하나는 즉용의 체(體)이니 이실법계다.] 第二는 會融因果以同法界요. [疏:次一은 即用之體니 理實法界라.] 둘째는 인과를 모아서 융화시킴으로써 법계와 동일하다는 말은 앞의 내용을 거꾸로 말한 것입니다. 앞은 공즉시색인데 여기는 용 이대로가 체[即用之體]로서 곧 색즉시공이라는 뜻입니다. 공(空)은 체(體)이며 이실법계고, 색은 용이며 인과로 표현됩니다. 이 둘째는 즉용지체(即用之體)로서 용 이대로 전체가 체이며 이실법계라고 하는데, 이것은 공을 밑바탕으로 삼고 하는 말입니다. 셋째는 법계와 인과를 분명히 나타내 보냄이다. [疏:셋째는 곧 체와 용이 쌍으로 나타남이니 곧 쌍으로 밝힘이다.] 第三은 法界因果分明顯示요.. [疏:三은 即體用雙顯이니 即雙明이요.] 법계는 체요 인과는 용으로 여기에서 체와 용을 쌍으로 드러낸다는 것은 곧 쌍조와 같은 이야기입니다. 넷째는 법계와 인과가 쌍으로 원융하여 함께 떨어지니, 성(性)과 상(相)이 섞이어 원융해서 무애자재하며 또한 열 가지 뜻이 있느니라. [疏:넷째는 곧 체와 용이 용융하니 곧 부사의라.] 第四는 法界因果가 雙融俱離니 性相이 混融하여 無碍自在하며 亦有十義니라. [疏:四即體用鎔融이니 即不思議라.] ‘법계와 인과가 쌍으로 원융하여 함께 떨어지니’라는 말은 법계라 해도 안 되고 인과라 해도 안 되는 쌍차에서 하는 소리입니다.지금까지 설명한 네 문의 내용을 정리하여 보면, 처음은 즉체지용(即體之用)으로 공즉시색(空即是色)이고 다음은 즉용지체(即用之體)로서 색즉시공(色即是空)이며, 셋째는 법계와 인과의 체용쌍현(體用雙顯)으로서 쌍조를 드러내고, 넷째는 법계와 인과의 체용구리(體用俱離)로서 쌍차를 설합니다. 결국 이것은 천태의 삼제원융도리와 똑같은 것이니 즉 가로부터 공에 들어가고[從仮入空] 공으로부터 가로 들어가는 것[從空入仮]과 표현은 달라도 내용은 같은 것입니다. 종체귀용(從體歸用)하고 종용귀체(從用歸體)해서 함께 나타나고[雙現] 함께 떨어지니[雙離] 이것이 삼제원융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그리고 쌍차쌍조가 되므로 끝에 가서 성, 상(性相)이 혼융하고 무애자재해서 열 가지 뜻이 있다는 것도 위의 네 문을 포함하여 논의하는 것이지 맨 끝의 네번째 문만 가지고 논하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서로 상즉상입하여 하나를 지적하면 전체가 다 따라오고 전체를 지적하면 하나가 포함되듯이 네 문을 분리해서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그러면 열 가지 뜻이 무엇인가. 이 열 가지 뜻도 원래 현수스님의 ꡔ탐현기ꡕ에 있는 것인데 청량스님이 자신의 소(疏)에서 그대로 인용한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