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松金氏(청송김씨)
▣ 由 來
始 祖(시조) : 金正己(김정기)
始祖(시조)金正(김정기己)는 新羅(신라) 敬順王(경순왕)의 14世孫(14세손)으로 朝鮮(조선) 太祖(태조)때 漢城判尹(한성판윤)을 歷任(역임)하고 直諫(직간)을 하다 太祖(태조)의 脾胃(비위)에 거슬려 仲山[중산 : 只今(지금)의 定平(정평)]으로 由配(유배)되었다. 그 後 靑松(청송)에서 仲山府(중산부) 細柳面(세류면) 細陽里(세양리)로 옮겨 살다가 一生(일생)을 마치니, 後孫(후손)들이 金正己(김정기)를 1世祖(1세조)로 하고 本貫(본관)을 靑松(청송)으로 삼아 世系(세계)를 繼承(계승)하였다.
▣ 人物
金正己(김정기)의 아들 金玉衡(김옥형)이 通訓大夫(통훈대부)로 司憲府監察(사헌부감찰)을 歷任(역임)했고, 孫子9손자) 金寶重(김보중)은 通德郞(통덕랑)에 올라 家門(가문)을 中興(중흥)시켰으며, 金輔重(김보중)의 맏아들 金致誠(김치성)은 通政大夫(통정대부)로 僉知中樞府事(첨지중추부사)를 지내고 長谷面(장곡면)으로 移住(이주)하였고, 次男(차남) 金以誠(김이성)은 工曹參議(공조참의)를 歷任(역임)하였다. 한편 金致誠(김치성)의 아들 4兄弟中(4형제중) 맏아들 金繼仁(김계인)은 五衛(오위)의 副司直(부사직)을 지냈으며, 次男(차남) 金繼義(김계의)와 막내 金繼智(김계지)는 通德郞(통덕랑)에 올랐다. 그 외 丙子胡亂(병자호란)때 義兵(의병)을 일으켜 敵(적)과 싸우다가 壯烈(장열)하게 殉節(순절)한 金勝玭(김승빈)이 有名(유명)했고, 金命宗(김명종)은 副護軍(부호군)을 歷任(역임)하여 司僕寺正(사복시정)을지낸 金大春(김대춘)과 함께 家門(가문)을 빛냈다.
▣ 科擧及第者(朝鮮時代)
金宗鐸(김종탁) (1728 戊申生) : 文科正祖1年(1776) 庭試 丙科
金重萬(김중만) (1732 壬子生) : 司馬試 英祖47年(1771) 式年試 三等
金宗(김종익) (1740 庚申生) : 司馬試 正祖13年(1789) 式年試 三等
모두 4名의 科擧 及第者가 있다.
(文科 1名, 司馬試 3名)
▣ 本貫 沿革
本貫所在地 : 黃海道 松禾郡
靑松(청송)은 黃海道(황해도) 松禾郡(송하군)의 옛 地名(지명)으로 本來(본래) 高句麗(고구려)의 麻耕伊(마경이)를 高麗初(고려초)에 靑松縣(청송현)이라 고쳤다가 서기 1018年(高麗 顯宗9) 豊州郡[풍주군 :豊川(풍천)]에 隸屬(예속)시켰으며 睿宗(예종)때 監務(감무)를 두었고, 朝鮮朝(조선조)에 와서 太宗(태종)이 靑松(청송)과 이웃 嘉禾(가화)를 合(합)하여 松禾郡(송화군)으로 改名(개명)하였다.
▣ 人口數
統計廳(통계청)의 人口調査(인구조사0에 依(의)하면 靑松金氏(청송김씨)는
1985年에는 摠 253家口 1,117名,
2000年에는 摠 504家口 1,641名이 있는 것으로 調査(조사)되었다.
[출처] 姓氏의 故鄕
[출처] 靑松金氏(청송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