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가장 오래된 세계지도 세계가 인정
현존 最古세계지도 '강리도'를 아십니까
조지형 이화여대 사학과 교수, 지구사연구소장
몇 해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국회에서 나라를 발칵 뒤집어 놓은 세계지도가 전시됐다.
이 지도는 1488년 바르톨로메우 디아스가 아프리카 최남단의 희망봉을 발견하기 80여 년 전에 이미 중국이 그 지역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세계지도였다.
남아공을 비롯한 아프리카의 세계사적 정체성이 유럽의 식민지로 출발한 치욕의 역사가 아니라 다른 나라들과 떳떳이 교역한 평등의 역사였음을 보여주는 지도였다.
이 지도는 일본 류코쿠대에 있는 세계지도의 사본으로, 전 일본 총리 고 오부치 게이조가 남아공 국회의장에게 선사한 것이다. 일본 학자에게 자문하여, 남아공은 이 지도의 제작자가 명나라 지도제작자 취안진과 리후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명의 황제가 이 지도를 중국에 온 조선 사신에게 하사했으며 임진왜란 때에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빼앗아 일본으로 가지고 가 오늘에 전해진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그런데 이 세계지도는 다름 아닌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混一疆理歷代國都地圖·강리도)였다. 강리도는 태종 2년인 1402년에 명나라 사람이 아닌 조선의 권근(權近)이 발문을 쓰고 이회(李회)가 지도를 제작한 우리의 문화유산이다. 중국어로 발음하면 권근과 이회는 취안진과 리후이가 된다. 당연히 명나라 황제가 조선 사신에게 하사했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허구이며 거짓이다.
임진왜란때 넘어간 우리 문화유산
남아공의 담당자에게 항의 e메일을 보냈으나, 답변은 냉담했다. 자문에 응한 일본 학자에게 문의하라면서 그의 e메일 주소를 알려왔다. 강리도를 전시할 때, 한국 외교관도 참석했지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오래전 전시가 끝났으며 앞으로 전시 계획이 없으니 큰 문제는 없다. 다만, 전시를 다시 하게 되면 수정하겠노라고 알려왔다.
전 세계적으로, 강리도는 아프리카 최남단까지 보여주는 현존 최고(最古)의 세계지도다. 외국의 세계사 교과서에서는 금속활자의 직지심경에 대해서는 두 줄 남짓 언급하면서도 강리도에 대해서는 두 페이지를 할애하여 총천연색으로 게재하기도 한다. 세계사적으로 이토록 중요한 지도인데,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이는 무엇보다도 세계사의 맥락을 잃어버린 우리 역사문화의 고립주의적 태도 때문이다.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과천과학관조차 강리도를 ‘조선 최초의 세계지도’ 혹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세계지도’로 폄하한다. 이 명칭은 강리도의 세계사적 의미를 완전히 도외시하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지도로 스스로 격하시킨다. 국사편찬위원회와 국정도서편찬위원회가 만든 고등학교 국정 국사 교과서는 세계사적 의미가 더욱 깃들어 있는 인도 서쪽부터 유럽과 아프리카까지의 지역을 삭제한 채 현존하는 세계지도 중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지도로 잘못 소개하고 있다. 올해 나온 한국사 교과서들도 국정 국사 교과서를 그대로 따라 하며 오류를 반복하고 있다. 심지어 어떤 고등학교 세계사 교과서는 강리도를 제시하면서 중국인의 세계 인식을 설명하라는 과제를 내고 있어, 강리도의 정체성까지 왜곡하고 있다.
강리도에 있는 조선부분도는 우리나라 지도로서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지도다. 그런데도 국사편찬위원회는 1557년과 1558년 사이에 제작된 조선방역지도(朝鮮邦域之圖)를 현존하는 우리나라 최고(最古) 지도라고 하면서 홍보물까지 만들어 배포한다. 직지(直指)는 고인쇄박물관을 세우며 2015년까지 18억 원을 투입해 고려시대 금속활자 직지 복원사업까지 추진하면서도, 강리도는 제대로 된 국가적 사업은커녕 이렇다 할 연구 사업조차 없이 무한 방치되고 있다. 우리가 이렇게 홀대하는데 남들이야 말할 것 없다.
글로벌 시대에 선진국이 되려면, 무엇보다도 문화강국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만든 세계지도를 일본 총리가 자기 나라의 문화자원으로 활용한 이 비참한 사례를 깊이 반성해야 한다. 강리도를 남아공에 전달해 줌으로써 획득한 아프리카에 대한 일본의 외교적 성과와 잠재적인 경제적 이득을 상상해 보라. 그리고 우리의 문화유산을 앞에 두고도 우리의 것인지도 모르는 어처구니없는 우리의 지적 태만과 천박함을 비교해 보라. 세계 경략(經略)의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 한국사를 제대로 가르치고 한국의 세계사적 맥락과 글로벌 차원의 역사를 함께 다루는 세계사 전문가를 적극 육성해야 한다.
외국선 인정받는데 한국선 폄하
외국으로 나가면 국사는 세계사가 된다. 세계사는 세계인들이 문화자산의 획득을 위해 서로 협력하고 경쟁하며 때로 총성 없는 전쟁을 벌이는 만남의 장이다. 글로벌 교육이 멀리 있는 게 아니다. 존경과 신망 그리고 자긍심의 무형 자산을 가지고 무한경쟁의 세계무대에 진입할 수 있다면, 그것이 글로벌 전략이자 글로벌 교육이다. 편협한 일국사는 글로벌 가치와 매력을 상실한 상품처럼 문화의 세계 시장에서 헐값에 팔릴 수밖에 없다. 뿌리 없는 벼락부자의 나라가 아니라 오래전부터 세계에 기여한 문화강국으로서의 국가 브랜드를 일으켜야 한다. 이제, 한국사는 한국인만을 위한 역사가 아니라 세계인을 위한 역사가 되어야 한다.
출처/ 동아일보. 칼럼. 조지형 이화여대 사학과 교수, 지구사연구소장
15세기 조선에 남은 "명품 중 명품"으로 불리는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混一疆理歷代國都之圖)
권근 외, 1402(태종2), 채색필사본(모사본), 158.0 * 168.0cm, 서울대학교 규장각 소장, 원본 : 일본 경도 용곡대학교 소장
1402년(태종2)에 대사성 권근, 좌정승 김사형, 우정승 이무, 검상 이회가 만든 세께지도를 15세기 후반에서 16세기 초반 사이에 모사한 지도로 현존하는 한국의 가장 오래된 지도이다. 중국을 중앙에 배치하고 동쪽은 조선과 일본, 서쪽으로는 아라비아, 유럽, 아프리카에 이르는 구대륙 전역을 포괄한 세계지도이다. 15세기 초의 세계지도로는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지도 중의 하나로 꼽힌다. 조선 초기의 지도제작수준과 더불어 지도에 대한 국가의 관심, 그리고 당시 사람들의 세계인식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천하지도(天下地圖)
채색필사본. 18세기 중엽. 36.5 * 30.0cm. 영남대학교 박물관 소장.
중국 중심의 전통적인 동아시아 세계지도이다. 원형 천하도, 일본, 유구, 그리고 우리나라의 전도와 도별도로 구성된 지도첩에 수록되어 있다. 조선 후기에 민간에 유행했던 일반적인 지도책에는 원형의 세계지도를 <천하도>라는 이름으로 지도책의 첫부분에 수록하고 이어서 <중국도>를 그리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 이 지도는 원형의 세계지도를 <태극도(太極圖)>로 칭하고 별도의 사실적인 세계지도를 그려 <천하지도>라 칭한 것이 독특하다. 역사적인 사실들과 관련이 있는 지명등이 있어 역사부도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
천하도(天下圖<地圖>)
목판본. 18세기 중엽. 28.8 * 35.5cm. 영남대학교 박물관 소장.
조선 후기에 활발하게 제작되었던 목판본 지도책에 실려 있는 원형의 천하도이다. 표현 양식과 수록 내용은 다른 지도책의 천하도와 비슷하나 해양과 하천을 청색으로 채색한 점이 다르다. 당시 사람들의 세계에 대한 인식을 반영하고 있는 지도로서, 원시 수목신앙, 도교, 불교, 유교적 세계관이 혼합되어 있다.
천하도(天下圖)
채색필사본. 18세기 후반. 51.2 * 53.4cm. 영남대학교 박물관 소장
17세기 이후 민간의 사대부 계층을 중심으로 유행했던 원형의 천하도로서 비교적 정교하게 그린 지도이다. 원형 천하도는 동아시아 중에서도 유독 우리나라에서 발견되는 세계지도로서 당시인들의 세계관을 보여주나 그 기원이 아직 명확하게 밝혀져 있지는 않다.
천하산천맥락도(天下山川脈絡圖<古地圖帖>)
채색필사본. 18세기 후반. 30.5 * 54.8cm. 영남대학교 박물관 소장
1첩 8절로 구성된 채색필사본 지도첩에 실려 있는 중국 중심의 세계지도로서 다른 중국도에 비해 우리나라의 모습이 매우 자세하며, 조선의 윤곽은 조선 초기의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류의 지도에서 볼 수 있는 것과 비슷하다. 산천의 맥락을 위주로 그렸기 때문에 산계를 다룬 지도와 달리 녹색의 연맥으로 그렸다. 이 같은 산계와 수계의 어울림은 중국보다는 우리나라 지도제작의 전통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중국 지역의 산천맥락을 북조대간(北條大幹), 중조대간(中條大幹), 중조소간(中條小幹), 남조대간(南條大幹), 남조소간(南條小幹) 등으로 구분하였다. 곤륜산에서 출발하여 백두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는 북조대간으로 표현되고 있다. 대간(大幹)이란 용어가 쓰이고 있어 백두대간과의 연관성도 검토해 볼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이는 지도이다.
여지전도(輿地全圖)
18세기 말, 목판본, 85.5 * 59.0cm, 개인 소장
18세기 말 ~ 19세기 초에 제작된 세계지도로 남북로 남북 아메리카를 제외한 구대륙의 지도이다. 지도의 우측 상단에 한성(漢城)과 팔도관찰사영(八道觀察使營)의 북극고도, 즉 위도와 동서경도를 서울을 기준으로 하여 표시하였다. 이 지도의 중국 부분은 건륭연간(1736~1795)의 중국지도를 바탕으로 하였으며, 동남아시아, 오스트레일리아, 아프리카, 유럽 등은 최한기가 1834년에 제작한 <지구전후도(地球前後圖)>의 내용과 흡사하다. <지구전후도>는 평사도법을 이용한 반구도(半球圖)이나 이 지도는 중국, 한국, 일본을 상대적으로 크게 하고 경선과 위선이 직각으로 교차되는 원주도법으로 그린 지도에 가깝다. 서구식 세계지도를 조선에서 변형하여 그린 대표적인 지도이다.
천하도지도(天下都地圖) <여지도(輿地圖)>라고도 함.
18세기 말, 채색필사본, 60.5 * 103.1cm, 서울대학교 규장각 소장
18세기 말 정조 대에 편찬된 서구식 한역세계지도이다. 중국에 왔던 알레니가 쓴 『직방외기(職方外紀)』(1632년)에 수록된 <만국전도(萬國全圖)>를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직방외기』에 실린 지도와는 세부적인 차이는 있으나 지도의 윤곽, 도법, 지명 등에서 대부분이 일치한다. 마테오리치의 <곤여만국전도(坤輿萬國全圖)>와 같이 지도의 중앙경선을 태평양 중앙에 둠으로써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동아시아를 중앙 부분에 배치하였다. 남방 대륙은 미지의 땅으로 표현되어 있으며, 조선 후기에 국가적 차원에서도 서양 지도 및 서양 세계에 관심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지도이다.
지구전후도(地球前後圖)
최한기, 1834년, 목판본, 37.0 * 37.5cm, 서울대학교 규장각 소장
1834년에 최한기가 중국 장정부(莊廷敷)의 <지구도>를 목판으로 중간한 동서양반구도. <지구후도(地球後圖)>의 좌측 하단에 간기(刊記)와 제작자가가 표시되어 있는데 태연재(泰然齋)는 최한기의 당호(堂號)로 추정하고 있다. 이 지도는 양반구도로 되어 있는 남회인(南懷仁, Verbiest, 1623 ~ 1688)의 <곤여전도(昆輿全圖)>와 다소의 차이가 있는데, 주변으로 가면서 경선 간격이 넓어지는 <곤여전도>와 달리 등간격의 경선으로 그려져 있다. 현재의 반구도에서는 볼 수 없는 24절기가 표시되어 있고, 적도와 황도, 남북회귀선을 특별히 강조하고 있다. <곤여전도>와 달리 오세아니아 대륙이 남극대륙과 분리되어 있어 이 지역이 탐험된 이후의 지도임을 알 수 있다.
현전하는 한국의 옛 세계지도는 내용과 성격에 따라 세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첫째는 동양에서 제작된 전통적인 방식의 세계지도이다. 이 유형의 세계지도는 중국을 중앙에 둔 중국과 동양 중심의 세계관을 보여주는 지도로서, 당시인들에게 알려진 세계를 비교적 사실적으로 묘사한 지도이다.
둘째는 한국에서 독특하게 발달한 상상적 세계지도인 원형(圓形) 천하도(天下圖)로서, 현실세계와는 동떨어진 세계에 대한 인식을 보여 주는 지도이다. 셋째는 서구에서 도입된 서구식 세계지도를 바탕으로 한 서양식 세계지도로서, 투영법과 경위선을 바탕으로 하여 만든 근대적 세계지도이다.
현존하는 지도를 보면, 조선 전기에는 전통적 동양식 세계지도만이 있었으며, 조선 후기에는 세 가지 양식의 세계지도가 병존하였다. 1402년에 제작된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는 당시까지 알려진 구대륙을 모두 포괄하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한국의 세계지도로서, 조선 초기의 뛰어난 지도제작 능력을 보여준다.
그 후 유교적 원리가 반영된 김수홍의 지도가 1666년에 간행되기도 했으며, 유교뿐만 아니라 도교 및 민간신앙 등이 반영된 원형의 천하도가 널리 유포되었다. 중국을 통해 유입된 서양식 세계지도는 실학자들을 중심으로 한 지식인들의 세계관에 충격을 주기도 했다. <여지전도(輿地全圖)>나 최한기의 <지구전후도> 등은 서구지도의 영향을 받아 제작된 대표적인 지도들이다.
효형출판사/우리 옛지도와 그 아름다움 중...
세계 지도를 통해서 무엇을 알 수 있나?
사람들은 왜 지도를 그렸을까? 우리 모두는 주변 환경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며, 그 환경의 특징을 묘사하려고 한다. 초기의 지도는 그런 주변 환경을 사실적인 그림으로 표현한 것에 불과하였다. 그러다 사람들의 지리적 시야가 넓어짐에 따라 더 넓은 지역을 그리기 시작하였고, 마침내는 지구 전체를 지도로 그리게 되었다. 하지만 세계에 대한 지식이 지금처럼 완벽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늘과 땅에 대한 자신들의 생각(세계관)에 따라 세계를 그렸다. 또한 자신들이 잘 알고 있는 지역뿐만 아니라 잘 모르는 지역도 지도 속에 표현하였다. 따라서, 우리는 옛 사람들이 그린 세계 지도를 통하여 지도가 그려진 시대의 세계관과 외국에 대한 시야의 범위를 추정할 수 있다. 조선 시대에 그려진 천하도에도 당시의 세계관과 지리적 시야가 반영되어 있다.
천하도는 어떻게 생겼나?
고대인들은 세계를 어떤 모양으로 상상했을까? 사각형 모양, 계란 모양 등 지역에 따라 다양하게 상상했지만, 가장 오랫동안 일반적으로 생각되어진 모양은 원형(공이 아니라 쟁반)이었다. 가장 오래된 세계 지도인 바빌로니아의 세계 지도에서도 세계는 큰 바다로 둘러싸인 원반 모양으로 표현되었으며, 초기 그리스인, 중세의 기독교인들도 비슷하게 표현하였다. 그렇다면 이러한 고대 세계 지도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들은 자신들이 사는 곳이 세계의 중심이며, 자신들이 가장 우월하다고 생각하였다. 바빌로니아의 바빌론, 그리스의 올림포스 산, 중세 기독교 세계의 예루살렘은 곧 세계의 중심이었다.
천하도에서도 세계가 원형으로 표현되었으며, 중국이 그 중심에 위치하고 있다. 전체적인 모습을 보면, 중앙에 위치한 중심 대륙이 내해(內海)에 둘러싸여 있다. 이 내해는 다시 환대륙에 의해 둘러싸이고, 환대륙의 외곽, 즉 세계의 가장자리는 다시 바다(外海)로 둘러싸여 있다.
천하도는 왜 원형일까?
아직까지 천하도의 유래에 대해 일치된 정설은 없다. 다만 천하도가 중국과 일본에는 없는 우리 나라에서만 발견되는 고유의 세계 지도라는 점과 대부분의 천하도가 16∼17세기 이후에 만들어졌다는 사실에는 의견을 같이 한다.
천하도에서 세계를 원형으로 표현한 것에 대해 중국 전국 시대의 세계관을 표현했다는 주장과 17세기 이후 전래된 서양 세계 지도의 영향을 받았다는 주장이 있다. 먼저 첫 번째 주장을 살펴보자. 중국 전국 시대 때의 사람인 추연(雛衍)은 '중국이 사방에 있는 바다를 비해(裨海)라 부르고, 그 밖을 대륙이 둘러싸고 있고, 그 대륙 밖을 영해(瀛海)가 둘러싸고 있는데 이것이 땅 끝이다'라고 세계를 기술하였다. 이 내용은 천하도의 형태에 부합하지만 추연의 세계관이 왜 중국이 아닌 우리 나라에서만 지도로 만들어졌는지, 또 왜 16∼17세기에 와서야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한편 두 번째 주장은 서양 지리 지식에 배타적인, 한국의 전통 문화를 지키려는 학자들이 서양의 원형 세계 지도(마테오 리치의 서양계 단원 세계 지도)에 대응하여 만든 학국적인 원형 세계 지도가 천하도라는 것이다. 당시 천하도를 만든 사람들은 지도의 내용을 구성하는 데 있어 발음도 안되고 뜻도 통하지 않은 서양의 나라 이름들 대신에 중국 고전에 나오는, 잘 알고 있고 또 익숙한 땅 이름들을 지도에 배치하였다. 즉 지도의 형태는 서양의 것을 따르고, 지도의 내용은 동양 고전에서 취했다는 주장이다.
중국 중심의 세계관(중화사상 - 中華思想)이란?
중국을 세계의 중심에 놓은 천하도는 중화적 세계관을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우리가 '중화주의' 또는 '중화 사상'이라고 부르는 세계관은 중국을 정점으로 한 차별적인 지리관이다. 이런 차별적인 세계관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이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고대 중국인들이 생각했던 하늘과 땅의 모양(천체관)을 이해해야 한다. 중국인들의 천체관은 '천원지방(天圓地方,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지다)'이란 말로 요약할 수 있다. 네모진 땅의 가운데에 중국이 자리잡고 있으며, 중국의 왕(天子, 하늘의 아들)은 하늘의 명을 받아 천하를 다스린다고 보았다.
'중화'라는 용어는 혈연적으로는 한족(韓族)의 국가, 지리적으로는 세계의 중심을 뜻한다. 중국의 주변국들은 중국과의 상대적인 거리에 따라 그 지위가 매김되었다. 중국과 비교적 가깝고 중국 문화의 영향의 받는 한국과 일본 등은 그런 대로 대접을 받았지만, 멀리 떨어져 있는 지역은 사람 취급도 못 받았다. 따라서 산해경에는 변두리 지역의 사람들이 '눈이 하나 뿐인 사람' 혹은 '팔이 매우 긴 사람' 등으로 묘사되고 있다.
이러한 차별적 세계관인 중화주의는 중국의 주변 국가들에게도 전파되었다. 우리 나라에도 이런 세계관이 전파되었는데, 이것은 이 세계관이 옳다기보다 그만큼 그 당시에 중국이 강대국이었고 선진 문화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천하도는 단순히 중국인들의 세계관을 표현한 지도가 아니다. 중국에서 전파된 중화 사상을 우리 나라의 관점으로 재해석해서 만든 지도인 것이다. 이는 중국이 비록 지도 가운데에 있지만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에서만큼 그렇게 크게 표현되지 않았다는 점을 통해 알 수 있다. 또한, 천하도의 지명을 산해경의 특정 부분에서만 따왔다는 점을 통해서도 지도를 제작한 사람의 관점이 개입되었음을 알 수 있다.
[지리교사 모임 '지평', "지리로 보는 세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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