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있는 산업디자이너 김영세(金暎世·53)씨의 디자인사무소 ‘이노디자인(INNODESIGN)’을 둘러보니 눈이 즐거워진다.
회의실 한쪽 벽에 슬라이딩 도어식으로 설치된 화이트보드, 메모지를 꽂기 위해 벽면 전체에 깔아놓은 철판, 중앙에 덮개식으로 홈을 파서 콘센트를 설치한 탁자 등 독특하고 편리하게 디자인된 물건들을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각 방을 회의실, 디자인실이라는 명칭 대신 아폴로, 제우스 등 그리스 신의 이름을 따서 부르는 아이디어도 재미있다.
이 사무실의 주인인 김 사장은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이노디자인’ 본사를 18년째 운영하고 있다. 그는 해외에서 ‘상복’이 많은 디자이너다. 그의 작품들은 미국산업디자인협회가 주는 ‘IDEA상’의 금, 은, 동상을 석권했고 미국 경제잡지 ‘비즈니스 위크’가 선정한 ‘올해 최우수 상품’에 오르기도 했다. 97년 서울사무소를 열고 한국과 미국을 오가는 바쁜 생활을 하고 있는 그는 지난해 말 ‘바이 이노(by INNO)’라는 새로운 브랜드를 선보였다.
● 디자인 우선주의
김 사장은 상품 전문 디자이너다. 건축이나 인테리어 디자인은 해 본 적도 없고 관심도 없다. 그가 상품 디자인에 매달리는 이유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선보이고 그들의 손에 쥐어지는 상품의 ‘대중성’에 매력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의 손끝을 거친 제품은 수없이 많다. LG전자의 ‘디오스’ 냉장고, 뒤축이 뭉툭하게 튀어나온 쌈지의 ‘텅 슈즈’, 아이리버의 ‘슬림X2’ MP3CD 플레이어 등 외에 삼성전자의 휴대전화도 올 하반기에 선보일 예정이다.
상품 개발에서 디자인이 차지하는 위치는 어디쯤일까. 그는 기업의 주문에 따라 디자인을 제공하는 시대는 끝났다고 말한다. 급변하는 소비자 기호의 변화를 따라갈 수 없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제조 중심의 패러다임이 자리잡고 있었죠. 디자이너는 제조기업이 의뢰하면 주어진 범위 내에서 디자인해 줬습니다. 이제는 디자이너들이 소비자의 미래 취향을 예측해 디자인을 먼저 개발하면 기업들이 이 디자인을 생산하고 판매하는 방식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바이 이노’ 브랜드는 김 사장의 ‘디자인 우선주의’가 녹아 있는 프로젝트다. 예컨대 이노디자인이 개발한 태극 도자기 디자인을 행남자기가 생산하고 CJ몰이 유통을 책임지는 방식이다.
“옛날에는 비즈니스를 ‘마라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혼자 인내심을 갖고 잘하면 되는 걸로 알았죠. 이제 비즈니스는 ‘혼계영’으로 봅니다. 자유형 배영 접영 평영에서 잘하는 선수들이 한 팀이 되어 릴레이하는 것이죠. 디자인 생산 기술 마케팅에서 최우수 선수들로 팀이 짜여지면 이게 바로 ‘드림팀’이죠.”
먼저 디자인된 제품은 아무리 훌륭해도 ‘머릿속의 제품’일 수밖에 없다. “생산·판매자를 상대로 디자인을 제품화하도록 설득하는 일이 어렵지 않느냐”고 묻자 김 사장은 “디자인은 자신감을 파는 일”이라고 답한다.
“디자인을 결정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디자인이 상품으로 만들어지기 전까지는 무형(無形)이기 때문이죠. 미래의 디자인 방향에 대해 회사들을 설득하려면 우선 디자이너가 자신이 만들어낸 디자인에 대한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이걸 겁니다’가 아니라 ‘이겁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능력이죠.”
● 교수보다는 전문 디자이너
김 사장이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은 “그런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느냐”다. 그는 조심스럽지만 자신있게 답한다. “타고난 재능이죠.”
그는 디자이너에게 두 가지 능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하나는 소비자의 욕구를 빠르게 읽을 줄 아는 능력이고 다른 하나는 이런 생각을 시각화하는 능력이다.
“무감각하게 스쳐 지나가는 순간에도 아이디어를 찾아내고, 상상력을 동원해서 그 아이디어가 실현된 상황을 머릿속에 그려보는 일이 모든 사람이 가진 능력은 아니겠죠. 그런 컨셉트를 처음 지면에 옮기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그린 스케치 초안을 보고 직원들은 종종 ‘그까짓 것’이라며 실망하죠. 그렇지만 저는 그 초라한 그림을 그리는 데 3∼4시간이나 걸립니다.”
그림에 소질이 있던 김 사장은 중학생 시절 ‘인더스트리얼 디자인’이라는 외국 잡지를 보고 산업디자이너가 되기로 작정했다. 디자이너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던 시절인지라 그의 부모님은 공대 건축과에 가라고 설득했다. 그러나 그는 1년 재수까지 해가며 서울대 미대 산업디자인과에 1기로 들어갔다. 졸업 후 미국으로 건너가 일리노이대에서 공부를 마친 김 사장은 일리노이대 교수로 임용됐지만 채 2년도 못 돼 교수직을 박차고 나왔다.
“교수로서는 실패한 인생이죠. 교수는 100% 정열을 학생들에게 쏟아야 하는데 디자이너로서의 욕망을 버릴 수 없었습니다.”
실리콘밸리로 온 그는 85년 ‘이노디자인’을 설립했다. 디자이너로서 창의성이 중요했던 그에게 벤처 문화의 발상지인 실리콘밸리는 더없이 좋은 환경이었다. 그는 듀폰, 샘소나이트, 윌슨 등 미국 대기업들을 고객으로 확보하면서 빠르게 성장했다.
● 중국 이길 수 있는 유일한 길
그는 많은 한국 기업들과 일해 왔다. 그중에는 사업 결정의 키워드가 될 만큼 디자인에 관심을 쏟는 최고경영자(CEO)도 있지만 아직 대다수 경영인들은 ‘디자인은 비용’이라는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그는 최근 수년 사이 한국에서 디자인의 중요성에 대한 국가적 공감대는 형성됐지만 기업들의 체감 의식에는 큰 변화가 없다고 말한다.
“디자인은 ‘순익’입니다. 디자인이 없으면 ‘원가’고요. 중국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디자인입니다. 그런데 기업에 디자인 개선책을 내놓으면 ‘멋있기만 하면 뭐하나’ ‘비싸질 텐데’ ‘디자인이 달라지면 기존 고객들이 몰라볼 텐데’ 등 다양한 불만이 쏟아집니다.”
디자인의 중요성은 인정하면서도 디자이너의 전문성을 무시하는 기업들도 있다.
“한국 기업들의 디자인 품평회에 자주 참석합니다. 디자이너들의 프레젠테이션이 끝나면 CEO와 중역들이 의견을 내놓죠. 전문가인 디자이너의 의견보다 비전문가인 경영인들의 의견이 채택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디자인이라는 개념이 너무 친숙해서 그런지 누구나 전문가처럼 판단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지요.”
그는 한국의 디자인 수준이 결코 낮지 않다고 평가한다. 그에게 보내오는 한국 디자이너 지망생들의 작품을 보면서 그는 독창성에 자주 감탄하곤 한다. 한국이 디자인 강국으로 커나가려면 디자이너의 전문성을 인정하는 사회 분위기가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 그의 믿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