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에서 거제로
개천절에 이어진 월요일은 대체 공휴일로 주초 하루 여유가 생겼다. 평소는 일요일 점심나절 거제로 향했으나 월요일로 미루어졌다. 새벽녘 잠을 깨어 전날 인성산 야생화 탐방기를 남기고 약차를 끓이면서 날이 새기를 기다렸다. 다섯 시가 되어도 날은 밝아 오질 않아 어둠 속 산책을 나섰다. 아파트단지 밖으로 나가니 외동반림로는 가로등만 훤히 켜진 채 오가는 차량은 없었다.
퇴촌삼거리로 가니 외등이 켜진 자투리 공원은 인근 주택에 사는 할머니들이 새벽부터 나와 담소를 나누며 운동을 했다. 창이대로 횡단보도를 건너 사림동 주택지로 향했다. 사격장으로 오르는 메타스퀘어가 높게 자라는 길을 따라 걸었다. 사격장 잔디밭으로 들어 우레탄이 깔린 바깥 트랙을 서너 바퀴 돌았더니 날이 희뿌옇게 밝아왔다. 하늘에는 짙은 먹구름이 몰려오는 아침이었다.
사격장 천연 잔디밭은 예전 골대가 있던 축구장이었는데 요새는 골대를 치우고 산책 전용으로만 쓰여 사림동 사람들이 즐겨 찾는다. 근래 창원은 축구센터를 비롯해 각 지구별로 인조구장이 여럿 들어섰다. 주말이면 그런 곳에 축구 동호인들이 활기차게 운동에 전념했다. 나는 생활권과 다소 떨어졌지만 소음과 매연이 없는 사격장 잔디밭으로 산책을 나가 유유자적 걷기를 즐긴다.
창원에는 벚나무가 많은 도시다. 교육단지와 창원대로 벚나무 가로수가 꽃을 피우면 꽃 대궐을 이룬다. 공단 배후도로와 양곡동도 그렇고 안민고갯길과 진해 시가지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세계선수권대회가 열렸던 창원 사격장 일대도 고목 벚나무가 많은 편이다. 아름드리 벚나무가 꽃을 피우면 아름다웠다. 벚나무는 봄날 피운 꽃도 아름답지만 초가을 단풍이 물들어도 고왔다.
사격장 운동장 가장자리의 벚나무들은 서리가 내리지 않았는데 다른 활엽수보다 일찍 나목이 되어갔다. 잔디밭을 나와 숲속 나들이 길로 올랐다. 약수터 체육시설엔 몸을 단련하는 중년 사내와 아낙이 보였다. 그들은 서로 안면 터놓고 지내는 사이로 미루어 봐 매일 아침 그곳으로 올라 몸을 푸는 듯했다. 나는 소목고개로 올라 갈림길에서 골프장 능선을 따라 가는 숲으로 들었다.
대숲을 지나 버섯농장으로 내려서니 예전에 없던 양봉업자가 둔 벌통이 보였다. 신라 하대 구산선문의 하나였던 봉림산문의 폐사지 봉림사 가는 들머리를 지나니 계곡은 선홍색 물봉선꽃이 가을을 장식했다. 창원컨트리클럽 입구의 예전 안담마을은 토지주택공사의 아파트가 들어서고 근린공원이 조성되어 있었다. 도랑엔 가을 이맘때 습지에서 자라 꽃을 피우는 고마리가 절정이었다.
봉곡동 주택가를 빠져나와 창원천 천변을 따라 걸어 집으로 왔다. 점심 식후 같은 아파트단지 카풀 지기와 거제로 향했다. 25호 국도를 따라 안민터널과 진해터널을 통과해 신항만에서 가덕도 거가대교를 건넜다. 연사 와실로 들어 며칠 묵혀둔 창을 열고 바닥 닦아냈다. 낮이 짧아져 가는 가을날이지만 해가 저물려면 시간이 제법 남았다. 환기가 되는 사이 잠시 바람을 쐬러 나섰다.
연사삼거리로 나가 고현을 출발해 능포로 가는 11번 시내버스를 탔다. 옥포에서 대우조선이 위치한 아주를 둘러 두모고개 너머 장승포로 갔다. 수변공원에는 지난여름 개설된 포장마차는 야간 영업을 위해 탁자를 펼치고 있었다. 포구엔 지심도로 오가던 여객선은 닻이 내려져 있고 멸치잡이 어선들도 모항에서 안식을 취했다. 포구에서 수협 공판장을 지나 장승포 해안로를 찾았다.
삼 년째 거제 머물면서 여러 차례 찾은 장승포 해안로였다. 포구 바깥 지심도는 악어 등처럼 보였고 작은 어선 한 척이 물살을 가르며 포구로 들어왔다. 대한해협에는 신항만으로 들고 나는 컨테이너 운반선이 서서히 움직였다. 망망대해 탁 트인 바다는 바라만 봐도 마음이 뻥 뚫리는 듯했다. 전망대 쉼터를 지나 양지암 조각공원 들머리에서 옥수동으로 내려가 10번 버스를 탔다. 21.1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