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습작초고1st
序
한밤중 불빛이 띄엄띄엄한 시골도시가 펼쳐져있었다. 가로등에 길가의 낡은 술집이 보였다.
평범하지만 넓은 술집으로 여러 테이블에 손님들이 삼삼오오 떠들썩한 가운데 무대에서 20대의 여가수가 키타를 치며 노래하고 있는데...특별한 구석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풍경이었다.
*평택시 변두리
[ 지나간 세월일랑 잊어버리고--] 에도 무덤덤한 장내..
따로 떨어진 테이블에 20대 청년이 혼자 간단한 안주와 소주를 마시는 중이었다. 무대를 주시하며 음악을 듣는 것도 아니고 흘려보내는 중인데 역시 평범 이상은 아니라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뜨내기로 보였다.
[ 사랑밖에 난 몰라--] 노래가 끝나고 가수가 퇴장했다.
청년이 소주병을 들어 잔에 따르려다가 멈추고 일어서려다 멈췄다.
세 명이 마시던 테이블에 있던 한사람이 이쪽으로 터덜거리며 다가오는 중이었다. 60대 연배로 낡은 카우보이모자를 쓴데다 싸구려 워커신발을 신고 있는 장년은 허름한 옷에 딸기코에 수염이 성글성글했다. 농사군 같기도 하고 노가다판 노동자 같기도 한 분위기의 남자였다.
게다가 한 손엔 소주병까지 들고 있었는데.
장년이 청년을 주시하자, 서로의 동작이 멈췄다.
"어...라?...좋은걸...좋아! 좋아부럿다"
"저 술값 미리 줬고 이제 갈 참.."
"좋앗어. 모자라는 눈치인디 마셔부러라"
그러며 장년인은 청년의 빈 술잔에 소주를 따랐다.
"아니 저 그만 마시고 간다는.."
"글쎄 아무 조건 없으니 마시랑게...마셔. 마셔부러"
잠시 난감해하던 청년이 주저하면서 쓰디쓴 표정으로 잔을 비웠다.
"그려. 아주 잘먹음시롱. 여그 안주.."
오징어다리를 건네주자, 엉겁결에 받아 든 청년이 주저하며 탁자위에 내려놨다.
"저 안주는 안 먹어도...혹시 저를 아세요? 아니면 술버릇인가요?"
"아니 너 몰라. 술버릇도 아니고..아니 넌 알아! 잘 알지. 알아도 너무 잘 알고말고. 나가 눈 하난 칼이걸랑"
"저, 절 안다고요?!"
"알아"
"도, 도대체 어떻게 안다는?"
"일단 눈이 마음에 드는구나.."
"제 눈이 어떻기에요?"
"...욕망... 야망... 갈망... 허망... 절망...."
"......망자돌림을 주로 좋아하네요..?"
"심으로 바꿔 불러도 아무 문제읎것지..이제 니 하고 잡은 약 모두 혀보거라"
"저 부자 아니걸랑요?"
"그려. 한눈에 척 봐도 개털인 줄은 벌써 눈치채부럿어 크크큭"
".....헌데 왜 제게..?"
"옷차림.. 표정..태도...시선이 마음에 들어서.."
"...아무래도 뭔가 잘못 짚은..저 이상한 취향과는 거리가 멀어서..."
"이상한 취향이 뭔디? ...설마허니 호모를 말허는겨?"
"저 진짜진짜 아무 영양가 없는 놈이걸랑요..돈도 없고요..단 한구석도 신통한 구석이.."
"좋아. 스스로를 잘 알고 있다니 더욱 좋구나. 좋았다. 한잔 더주까?"
"저 술 좋아하는 놈도 아니고요. 눈이 안 좋은 것 같은데 제가 먹던 술도 반병은 남겼다고요"
장년이 비로소 탁자위의 술병을 보더니 깜짝 놀랐다.
"옴매나! 이런 피같은 술을 왜 남기고 그냥 가려는겨?"
"술과 안 맞아서 본래 반병이상은 안먹어요. 더구나 오늘은 너무 힘들어서.."
"....오늘 뭔 일이 있었어?"
".....지금 무슨 착각인지 몰라도....일자리서..잘렸거든요"
"저런, 그려서 고런 눈빛이었구먼..좋아, 좋았다"
"거기에다 고향 후배도..한잔 하자고 청했는데..바람맞고..."
"해서 스스로가 한심하고 초라해진단 말이지? 좋아 좋았어"
"....아직도 흥미가 있단 말인가요?"
"아주! 아주 많이..솔깃해지는 중이란다"
"물론 아저씨보다 못났으니까 기분 좋긴 하겠지만..말했다시피 오늘 너무 안 좋은 상태라서"
잠바를 잡아들고 밖으로 나가려는데
"실업자되었담서!"
주머니를 뒤지더니 명함을 하나 꺼내 뿌리다시피 건네는 장년이었다.
"낼 할일 없음 울가게로 놀러와봐라"
"가게라니..헐..사장님씩이나 되셨다고요?"
"호수동 쪽인데 오든 안 오든 니 맘대로. 이건 나가 대신 먹어주마..."
하더니 청년의 술병을 잡아들고 돌아서서 일행 쪽으로 돌아가는 후줄근한 장년의 사내였다.
청년의 어리둥절한 표정
밖에 나온 청년이 한숨을 쉬었다.
"별별 이상한 사람이 있는 세상이라지만 참말로.."
하늘의 별을 올려다보며
"이리 초라한 신세가 되었는데도...여전히 별은...빛나지도 않고...흐리멍덩하네..."
"...그런데 당장 내일부턴 어쩐다?...아참"
주머니에서 명함을 꺼내 살펴보다 어이없는 표정이 되었다.
"중간재? 무슨 건축 재료상인가..?"
앞뒤로 자세히 뜯어보며
"도대체 뭔 명함에 전화번호나 이름 하나도 안 적힌 거야?"
1. 만남
한낮 교외의 초라한 작은 산 중턱이었다.
여기 저기 허름한 창고들과 가건물들. 중간 중간 공터엔 잡초가 무성했다.
담장 나무판자 벽에 4절지 같은 종이에 화살표와 '중간재'란 글씨가 써있었다. 그걸 바라보는 간밤의 그 청년이었는데 머리도 헝클어진 추레한 옷차림으로 심드렁한 기색. 화살표대로 돌아드니 넓은 번다한 곳이 드러나고 여러 물건이 널려진 작업장인데 한눈에 척 봐도 고물상이었다.
과연 6.70대 노인 셋이 고물을 구분하고 옮기는 중이었다.
"아아 여기여. 여그랑게"
돌아보니 무슨 큰 철물을 해체하고 있는 간밤의 그 장년 털보사내였다.
밀짚모자를 쓰고 수건을 목에 두르고 목장갑 낀 손으로 큰 스패너를 다루고 있다
"고물상이네요?"
"아니 이 세상엔 고물이란 읎어. 중간재만 있을 뿐. 가만있느니 이것 좀 잡아줘 봐. 요게 자꾸 헛돈당게."
얼결에 철물을 잡는 청년이 주변을 앞뒤로 훑었다.
"이게 뭔가요?"
"트랙터였을겨.."
"쓸 만한 부품을 선별해서 팔아먹는 건가요?"
"꼭 그런 것은 아녀..영영 임자가 나타나지 않을 때도 많응게"
"...혹시 저를 여기서 일을 시키려고?"
"사람이야 늘 필요하지만 별로, 힘도 못 쓸 허우대잖아"
"...잘 아시네요"
"정 하고 싶다면 누가 말려. 거가 내키는대로. 좀더 꽉잡어! 그려. 바로 그거여"
큰 나사를 하나 빼내는 장년이 나사를 돌려보면서
"눈치는 긁었지만 역시 녹이 너무 슬었었어...휴우.."
나사를 한편에 내려놓고 수건으로 땀을 씻더니..
"이거 보이지? 노느니 이 나사 여섯 개만 빼줘..."
"저 여기서 일한다고 안했거든요?"
"일 시킨다고도 안했거든?"
"지, 지금 저 일 시켜놓고 아저씬 놀겠다는?"
"아니 집에 가서 새참을 날라올거거든?"
"....어젯밤 일..모두 기억하세요?"
"당근. 술은 환장하지만 이때껏 술에 정신 놓은 적은 한번도 없응게"
그러더니 언덕 아래쪽으로 휘적휘적 걸어가는 장년이었다.
헌데 얼핏얼핏 들리는 소리.
"사내자슥이..쇠주한병도 못먹음서..웅얼...."
듣다가 열받아 고개를 젖고 큰 스패너를 보는 청년.
"낫살이나 먹은 양반이 뒷담화를 하다니.."
"술 한모금도 못 먹는 사람 많다는 것도 모르나...반병이면 기본 이상이지"
나사에 맞춰 돌리며 집중하는데 미끄러지고 힘도 들어
"..이게 보기보다 간단한 일이 아니네.."
겨우 한 개를 풀어내는데 어느새 땀이 흐른다.
한참 지난 후, 나사 여러개를 빼냈지만 땀과 먼지로 흠뻑 젖었다.
"그래도 눈썰미는 있는 걸. 어디 가서 밥 굶어죽진 않것다"
돌아보니 인부들 쪽에서 걸어오는 털보장년이었다.
큰 냄비와 김치와 작은 그릇 등을 펼쳐놓는데 라면 같았다.
청년이 장갑을 벗으며 말했다.
"사실 집을 떠나온 이래 늘 먹고사는 문제에서 벗어날 길이 없었어요..한심하게 들리겠지만"
"고게 왜 한심혀? 저 논네들도 오죽하면 이런데서 일하것어. 산다는 거이 본래 쉽지가 않은겨"
털보장년이 냄비에서 음식을 펐다.
"......명함에 왜 성함이나 전화번호가?"
"전화 올 일두 읎지만 티끌 같은 인생인디 이름이 무신 소용..해장도 못헌 비실한 얼굴인디 자 한그럭 먹어봐"
건네주는 그릇을 얼결에 받아드는 청년
"하긴 이름이 무슨 영양가...후릅"
먹더니 놀라는 표정이 된다.
"아침을 못 먹긴 했지만 맛이 아주 좋네요?"
"기려? 뭐 먹을만은 할겨. 우리 직원들도 울집 음식은 모두 인정허니께"
돌아보니 노인 셋도 라면을 먹는 모양이었다.
"아줌씨들도 몇 있지만 매일 나오지 않고 일이 있어야 나와"
잠시 서로 라면을 먹었다.
“난 이가여. 사장 혹은 어르신으로두 불리고"
"저는...심가네요.."
"심? 허얼. 심봉사랑은 몇촌간이여?"
"학교 때 그런 농담도 듣긴 했네요. 심학규 비슷한 이름이라서..."
"학교씩이나 댕겼다고?"
"고등학교..그것도 중퇴.."
"딱!좋아"
"도대체..뭐가 좋다는?"
"그보다 못 배우면 불우한 거고, 더 배우면 머리에 먹물이 많아져서 피곤하걸랑"
"분명히 잘라 말하는데 저 여기서 일하는 일은 없네요"
"시키지도 않아"
"아까 시켰잖아요!"
"하기 싫다고 않고 잘했잖아"
"저, 저는 직업을 말하는..."
"그참 말 많네. 잠시 땀 흘리니 이런 라면도 공짜로 먹고 좋잖아, 더 뭘 바래?"
"...."
"좋아, 이제 한시간은 쉬는 참이니 허고픈 말 모두 어떤 것이든 혀보라고. 쌓인 게 엄청 많은 세숫대얀디..간밤에도 그려서 나가 술을 줬던겨.."
청년의 눈이 허탈해졌다.
"...성도 뭐 같지만 이름도 호규랍니다. 심청이 아비 심학규 동생... 호구같은 호규..크크크큭"
장년은 소주병을 기울여 술을 정성스레 따랐다.
"호구가 뭐 어때서...어벙이 보다는 훨 낫지"
"어벙...?"
"여병이나 어벙이나 도낀개낀이지"
"평범한 시골농사꾼의 외아들...부자도 아니고..공부..못하지는 않았지만 아주 잘하지도 못했고..."
술을 천천히 마시는 장년. "좋아좋아"
"공부는 아니다싶어 때려치웠지요..엉뚱하게 가수가 되고 싶었거든요.."
“와탕카!”
"해서 무작정 상경..쑤셔봤는데..나보다 노래 잘하는 지망생이 한둘이 아니지 뭔가요.."
"좋아, 좋아부럿어!"
"돈도 많고 인물도 잘나고..전 그렇지 못하니...생활이 먼저라서 여러가지 일을 전전했지요."
"식당그릇 설거지..택배..책외판..야채가게 점원..사교적이지도 못하고 말주변도 없어놓으니 신통할 리가 없어서...얼마 전엔 누가 소개한 차 부품배달 기사로 들어가..첨부터 개갈 안 났지만..도무지 이젠 어떡해야 될지 막막한 상태랍니다.."
소주병마개를 신중히 닫은 장년이 말했다.
"좋아, 호구 하고픈 말 다혔어? 작은 보충질문 충청도 같은디 고향이 워디여?"
"가까워요..저 건너 둔포"
"아산이란 말여? 딱이네"
"온양도 아니고 시골인걸요"
"..그려. 가수 지망한다고 혔지? 노래 하나 불러보라고..아무 노래나 부르고 싶은 것 한곡만.."
어이없는 호규는 잠시 허탈해하더니
"라면 먹은 값은 해야겠지요..."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는 읊조리듯
"아직도 내겐 슬픔이..."
"조코!"
"우두커니 남아있어요"
"얼쑤"
"그날을 생각하자니 어느새 흐려진 안개..."
"지화자!"
부르고 듣는 두 사람 모습을 멀리 보며 인부들이 웃고
"누가 나와 같이 함께 울어줄 사람 있나요"
"얼씨고"
뚝 그친 호규가 무표정한 얼굴로 물을 따라서 마셨다.
"왜 더 안 불러? 진짜로 눈물 나올까봐서?"
"......"
"..하긴 최성수가 노래 하난 참 맛있게 잘 부르지. 완전 타고 났당게"
심호규가 일어나며 불끈했다.
"가야겠어요"
"잠깐! 인저부터 나 하고픈 약을 할 거니까 들어보더라고.."
....계속......
첫댓글 다음 이야기 기다리겠슴다.
난 또 첨지 설환가 했네요 ㅋ
지난 연말부터 쓰기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술술 써지더군요.
지금 23회정도 썼는데...처음 도전하는 소설이지만 끝을 내겠다는 의욕과 자신감이..
매일 한편씩 올리겠지만 분량은..매일 쓴 것이라서 다소 긴 것도 있고 짧은 것도 있겠지만..
비평비판 얼마든지 환영합니다. 후일 출판된다면 반드시 한턱내지요^^
오호~~
와탕카!!!
다음회가 기다려집니다 .
내공이 보이시는 군요.
이곳에서 마음껏 펼쳐보여주시길...
가요는 물론 민요에 대한 경험도 아는 바도 없어 놓으니 개갈 안 나기 쉽지만..ㅜ
차차 펼쳐지겠지만...대강은..7,80년대의 지방 사람들이 대거 도시로 밀려 들어와...
민주한국과 선진한국을 일궈냈지요. 공돌이 공순이로 비하당하면서...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오늘 날은 과연 어떤가요? 시골은 소멸하는 중이고...ㅠ
ㅎㅎ 하고픈 약
이 사람한텐 요긴한 야그 같아요
좋은 인연이시길~~
이 소설에서 서울이 배경으로 나오는 경우는 일체 없습니다.
지방 시골 흙수저의 출구없는 몸부림이랄지....
주류아닌 마이너 무명 연예인들의 애환이랄지...ㅜ
첫사랑님
즐거운 설명절
보내시고
감기도 조심하셔요~^^
@은보라 감사드립니다 은보라님
그렇게 할게요
건강하세요 복 많이 받으세요~!!
다음 편이 땡기네요 ㅎ
연속극도 요럴때 끝 ㅎ
교정은 물론 첨삭할 것도 많지만...모자란대로 일단 저지르는 것입니다.
실패에서 얻어질 것도 분명 있을 테니까...
기대하면 반드시 실망할 테니 기대하지 마시길^^
꾸맘님!!
주인공이 그만 자리서 일어설려고 몇번시도하던거처름 햇다가 또 읽고 또 읽엇습니다
저도 후속편 지둘리겟습니다여 설명절 잘 지내시구여 감솨
음정...여러 음악은 많이 누리지만.. 시도 많지만..에세이나 자전수필?도 있지만..
창작 소설..이야기가 없다는 것이 늘 아쉬웠었습니다. 다른 카페나 밴드도 대개 그렇더군요.
책광고 선전은 더러 있는 것 같은데...작가들이 너무 고상하게 고차원으로만 비싸게 노는 것이 아닌가..
저야 워낙 3,4류의 무식한이기에 저지르겠지만...최소 타산지석은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