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수필
정성헌
오래된 인연이 멀어지는 일은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친구는 많은데, 진정한 친구가 없다."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나도 예외는 아니다. 내가 회사에 다닐 때, 친구들의 자녀들이 미혼일 때 부모님이 생존해 계실 때는 모임으로 엮인 친구들이 많았다. 그러나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자녀들이 결혼해버리고 수입원인 직장을 퇴직한 60대 초반부터 친구들은 하나둘씩 철새처럼 내 곁을 떠나간다. 영원할 줄 알았던 친구들이 나이가 들면서 허망하게 멀어지는 것은 당황스럽기도 하다. 보이지도 만져볼 수도 확인할 수도 없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가려서 친구를 맺을 수 없기 때문이다.
노후에는 재산도 필요하지만, 좋은 친구 한 사람만 내 곁에 있다면 행복한 생을 영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늘 했었다. 그래서 나는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것보다는 내 곁에 있는 보통 친구를 좋은 친구로, 좋은 친구를 더 좋은 친구로 만들어가기로 했다. 퇴직 후 경제활동을 하지 않으면서 마음에 맞는 친구와 이 친구 저 친구를 만나러 다니며 친구들과 관계를 끊지 않기 위해 친구들을 만나러 다녔다. 그러던 중 작년 5월 말에 마음에 드는 친구를 발견하고 건축을 하려면 설계도가 필요하듯, 좋은 친구를 만드는 설계도를 만들었다. 계산적인 친구를 사귀어서는 안 된다. 마음과 마음의 길이 트여 있어야 한다. 친구가 힘들어할 때 무엇이든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한다. 내 나름대로 그렇게 친구의 기준을 세운 것이기에 여태껏 새 친구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평생 좋은 친구를 갖는 것만큼 기쁘고 도움이 되는 일이 없다는 것을 내가 정신적으로 힘들 때 내 곁에는 누나와 동생들이 있어 큰 도움이 되었고 나와 함께 밥을 먹어주며 날마다 나의 기분을 점검하며 마음을 써주고 곁을 지켜주었던 친구로부터 친구의 중요성을 느꼈기 때문이고 이에 좋은 친구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은 험난한 인생길에서 힘이고 빛이라는 생각을 가졌다.
이서에 사는 친구에게 놀러 갔다 인근 양봉 농가에서 꿀을 사서 귀가하던 옆집에 사는 또래의 여자를 보는 순간 첫인상은 어릴 적 할머니를 연상하고 아카시아 꿀을 감정해주겠다며 불러 세워 말을 시키고 꿀을 맛보자고 했더니 우리가 마시던 물컵에 큰 숟갈로 두 개씩 퍼주며 사이비 감별사의 감별에 응하는 모습을 보며 순수함과 남에게 퍼주는 선심을 보며 어머니를 상상했다. 이후 친구들에게 그 여자에게 관심을 표하였더니 친구가 나서며 그녀에 대해 주변 평판을 알아봐 주겠다는 제안에 1주일을 기다려 괜찮은 사람이라는 결과를 통보받고 전화 연락을 취해 다짜고짜 "우리 친구 할래요?"라고 했더니, 반색은 아니지만, 수화기로 흔쾌한 대답이 건너왔다.
20여 일 동안 드문드문 전화통화를 하던 중 만남이 이루어져 식사하고 난 다음 날 나를 회피하는 듯한 문자를 받고 인연이 아닌 것으로 판다 연락을 끊었는데 다시 친구네 마을을 방문하게 된 어느 날 우연히 마주친 그녀는 예전보다 얼굴이 상한 모습이었다.
그녀를 본 나의 첫 마디는 건강을 염려해주는 말이 아닌 내가 괜찮은 놈이라는 자만심이 가득한 이기적인 질문으로 “왜 그랬어?”였다.
이 질문에는 그녀에 대한 나의 원망과 함께 그녀에게 마음이 아직 열려 있고 나를 거부한 이유가 궁금하여 추궁하는 의미도 담겨 있었다. 내 질문에 가볍게 웃어주는 그녀에게 나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은 읽히지 않아 다시 시작할 여지가 있다는 걸 느끼고 용기 있는 한마디를 던졌다. “전화할게.”라고 했더니 부정을 하지 않고 아무 대답이 없으므로,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었다.
옛말에 '겉볼안' 이란 말이 있다. 솔직히 나도 친구를 사귈 때 인물이 곱거나 외모가 멋있는 사람들과 친구를 사귀려고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녀는 빼어난 미모는 아니지만 선한 인상에 호리호리한 체격과 사치하지 않는 수수함과 상대를 배려하고 극존칭을 써서 상대를 존중하는 대화 모습은 인상에서나 말씨에서 행동에서 선함이 묻어났다. 사람의 외모는 느끼는 사람, 평가하는 사람의 기준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도 이성에게 관심을 받겠다는 도취에 의복과 외모에 신경을 쓰는 편이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외모보다는 내면을 가꾸려고 노력하고 있다.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도 경제적 수준과 외모보다 마음이 편하고 대화가 잘되는 사람, 성공하고 똑똑한 사람보다 마음 터놓을 수 있는 사람, 비 온 뒤 맑게 갠 하늘처럼 청명함이 느껴지는 사람이다. 이런 나의 친구관에 부합한 조건에 근접한 친구는 이제 나의 곁을 지켜주며 무심한 나에게 전화도 자주 하면서 나를 위해 잔소리(충고)를 하며 나를 조금씩 변화시키고 있다. 연애에 서툰 나에게 “사랑한다.”라는 소릴 듣고 싶어 하지만 지금 당장 내 입에서 내뱉는 “사랑한다.”는 말이 진정으로 내 영혼과 그녀의 마음이 합일될 수 없으면 허울 뿐의 선심이 될 수 있으므로 내 마음에서 진심으로 우러나 나 스스로 그녀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할 때까지 “사랑한다.”는 말은 아낄 것이지만 사랑하는 마음은 더 크게 키워갈 것이다.
약 40억 년의 역사를 지닌 지구에 사는 우리는 부싯돌을 부딪치면, 번쩍하고 사라지는 석화광음(石火光陰) 같은 찰나의 생을 살고 있다. 그런 짧은 생을 즐겁게 살지 못하고 헐뜯고 흉보고, 시기하고 서로 미워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상대를 속이거나 자신의 마음에 악의 씨앗을 숨기면서 사랑하는 척하는 사람은 그 싹이 자라서 자신과 사회를 병들게 한다. 그러나 깊은 이해와 깊은 배려와 존중에서 비롯되는 것이 사랑이기에 자신을 더 행복하게 하고 세상을 더 따뜻하게 만들 것이다.
오늘도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면, 그녀의 순수함에 세속에 물들어 있는 나를 발견한다. 그래서 나는 친구의 맑은 심성에서 혼탁해진 내 마음을 헹구려고 친구로 맺어진 것 같다.
사랑이 없으면 세상이 삭막할 것이다.
가뭄으로 대지가 메마르면 땅에 심어진 작물이 메말라 죽어가듯, 우리 사회가 배려와 존중 그리고 신뢰가 메마르면 사랑이 메말라 간다. 친구를 위하여 목숨까지 버리지는 못할지언정 기쁠 때 함께 기뻐해 주고 슬플 때 함께 해줄 친구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오늘은 눈을 감고 세월에 스쳐 간 친구들을 하나하나 그려보았다. 미소를 머금게 하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가물거리는 친구가 있다. 그러나 그런 친구의 기억을 더듬으며 그리워하는 것을 보니, 나도 이제는 추억을 먹고 살아가는 나이가 되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