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소리
참으로 오랜만에 남해 금산을 오른다. 호젓한 산길을 걸어서 쌍홍문을 지나고 정상에 올라서니 상주해수욕장이 난쟁이 마을처럼 저만치 내려다보이고 파아란 남해바다가 끝없이 펼쳐져 있어서 가슴이 후련하다.
‘유홍문 상금산…주세붕 경유(由虹門 上錦山…周世鵬 景遊)’ 이라, 옛날에 소수서원을 세웠던 한림학사 주세붕이 쌍홍문을 지나서 금산에 올라와 놀았노라고 바위에 새겨놓은 글귀가 수백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선명하게 남아있다.
정상 부근에 있는 보리암(普堤庵)을 찾았을 때에는 황혼 무렵이라 그런지 인적이 드물고 처마 끝에 매달린 풍경만 바람결에 땡그랑- 땡그랑- 울고 있다.
아- 저 풍경소리! 저것은 옛날에 이 보리암에서 듣던 바로 그 풍경소리가 아닌가. 땡그랑- 땡그랑- 하고 작은 소리로 울리지만 그것은 옛날에 나에게는 범종소리보다도 더 큰 감동을 주었다.
진주에서 중학교를 다니던 나는 3학년 때 남해 금산으로 수학여행을 왔었다. 그때는 우리민족의 비극이었던 6․25전쟁이 겨우 끝난 후여서 버스는 있을 리 없고 군용 트럭을 타고 남해 금산에 있는 이 보리암으로 수학여행을 왔던 것이다.
우리는 이성계가 100일 동안 기도를 드리고 임금이 되었다는 이씨기단과 원효대사가 좌선수도를 했다는 삼사기단 그리고 문장암과 사자암 등 금산 38경을 돌아보면서 구경을 했다.
그 날 밤 보리암에서 잠을 자는데 참새 떼들처럼 재잘대던 동무들도 밤이 깊어가자 모두 잠이 들었다. 하지만 내향성인 나는 잠을 이룰 수가 없어서 혼자 이리저리 뒤척이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땡그랑- 땡그랑- 하고 풍경소리가 들려오는 게 아닌가. 깊은 밤 암자에서 풍경소리를 듣고 있으려니 문득 학교에서 배웠던 성불사의 밤 노래가 생각났다.
성불사 깊은 밤에 그윽한 풍경소리
주승은 잠이 들고 객이 홀로 듣는구나.
저 손아마저 잠들어 혼자 울게 하여라.
깊은 밤 산사에서 잠 못 이루고 성불사의 밤 노래를 더듬어보고 있으려니 어쩌면 노래 말을 그렇게도 잘 지었을까 하고 탄성이 나왔다. 그래서 나도 공부를 열심히 하여 장차 이 시를 지은 이은상 선생처럼 훌륭한 문학가가 되겠노라고 마음속으로 다짐을 했었다.
그래서 학교를 졸업하고 교단에 선 나는 이런 저런 글들을 꺼적거리다가 되지도 않는 수필을 쓴답시고 야단을 했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직장에서 물러나고 보니 나는 이은상 선생의 그림자에도 미치지 못했음을 알았다.
그래도 한 가지 다행한 것은 나의 첫 기행문집을 이은상 선생의 추천을 받아 선생이 써준 서문으로 발간했으니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인가.
“…나의 강산순례는 둘이 아니요 하나다” 하고 자부하기까지 해온 나이므로 기행문을 쓰는 같은 후배 한 분을 얻은 것을 남달리 기뻐하면서, 조국의 강산을 사랑하고 사적을 아끼고 고을마다의 풍물을 즐기는 많은 독자들에게 이 책을 권하다.‘
이렇게 써준 선생의 서문은 나에게 큰 용기를 주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삼천리 강산을 쏘다니면서 선생이 곳곳에 남겨놓은 흔적들을 더듬어보고 있는 것이다.
불가에서는 중생을 제도하는데 불전사물(佛殿四物)을 사용하고 있다. 범종과 법고와 운판과 목어가 바로 그것이다. 이들은 아침저녁 예불 때 중생교화를 상징하는 의식용구로 범종은 인간을, 법고는 축생을, 운판은 날짐승을, 목어는 물고기를 제도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스님들이 흔히 쓰는 목탁은 목어에서 유래된 것으로 둥근 형태를 한 앞부분의 긴 입과 입 옆의 둥근 두 눈은 고기형태를 상징한다. 따라서 목탁소리는 잠을 자지 않는 물고기를 연상하여 항상 깨어있고 경각심을 일으키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풍경은 작은 종에 추를 달고 그 밑에 물고기모양의 금속판을 매달아 바람 부는 대로 흔들리면서 은은한 소리를 내어 세상 사람들과 수행자들의 나태함을 깨우치는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풍경은 예로부터 나그네의 여정을 달래주고 선비들의 시정을 북돋아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성불사의 밤도 이은상 선생이 성불사를 찾아갔다가 혼자 잠 못 이루고 들려오는 풍경소리를 벗삼아 쓴 시가 아니던가.
나는 땡그랑- 땡그랑- 하고 가느다랗게 울리는 풍경소리를 들으면 마치 소녀의 기도소리를 듣는 것 같아서 정감이 간다. 처마 끝에 매달린 작은 풍경이 살랑대는 바람에도 땡그랑- 땡그랑- 작은 소리를 내는 것이 참으로 해맑고 정겹기 때문이다.
그 언제였던가, 나는 매화산 청량사를 찾아갔다가 고색이 창연한 신라 3층 석탑에 층마다 모서리마다 작은 구멍이 뚫려있는 것을 보고 놀란 적이 있다. 그것은 풍경을 매달았던 구멍이었다. 작은 석탑에 풍경이 16개나 매달렸다면 그 소리는 얼마나 정겨웠을까. 그것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수많은 풍경들의 정겨운 소리가 아련히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그런데 오늘 금산에 올라 어릴 때 들었던 보리암의 풍경소리를 다시 듣고 있으려니 너는 인생을 어떻게 살아왔느냐고 묻고 있는 것만 같다. 그래서 지나간 삶을 되돌아보니 까까머리 중학생시절에 이곳으로 수학여행을 왔던 때가 엊그저께 같은데 나는 아무 일도 하지 못하고 벌써 직장에서 물러나고 말았으니 이를 어쩔 것인가.
그 날 나는 작은 풍경 하나를 사다가 우리 집 현관문에 달아 놓았다. 그리하여 집을 드나들 때마다 땡그랑- 땡그랑- 울리는 풍경소리를 들으면서 비록 남에게 아무것도 베풀지 못하고 살아왔지만 최소한 피해만이라도 주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