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박찬욱 감독이었다. 주지하다시피, ‘복수 3부작’을 통해 자신만의 고유 영역을 구축해 온 그가 창작열에 불타오르는 젊은 영화학도들에게 하나의 상(像)으로 존재하는 건 작품성과 흥행성의 균형을 깨뜨리지 않는 데서 비롯된다. 설문 결과에서 눈여겨 볼 대목은 류승완 감독에 대한 평가다. 물론 ‘닮고 싶은 감독’을 ‘호평’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건 무리겠지만, 많은 영화학도들이 그가 걸었던 길을 밟고 싶어한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액션에 대한 리얼리즘적 접근으로 장르영화의 외연을 넓힌 공로가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된 듯하다. 10위 안에 있는 감독들을 굳이 범주화하면 작가주의와 상업주의로 나눌 수 있다. 이 중 박찬욱 감독과 봉준호 감독은 두 개의 원이 교차하는 지점으로 거취를 옮겨 대중과 평단으로부터 모두 갈채를 받아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는 장진 감독에게도 해당되는 부분이다. 장진 봉준호 두 감독 모두 자신의 색깔을 작품에 투영하며 고유의 브랜드를 형성해 왔고, 작가주의 노선에서 일탈하지 않으며 흥행성까지 겸비했다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 <천년학>으로 자신의 100번째 작품을 제작하고 있는 임권택 감독은 5위를 차지해 거장의 명성을 증명했다. 이는 45년 동안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한국 영화계의 살아 있는 역사에 대한 젊은 영화학도들의 존경의 표시이기도 하다. 조금 의아스러운 점은 이준익 감독(14위)이 10위권 밖으로 밀려나 있다는 것. <왕의 남자>의 한국 영화 사상 세 번째 1,000만 관객 돌파라는 업적은 차치하더라도 <라디오 스타>를 통해 보여준 탄탄한 연출력과 화면 장악력이 과소평가된 탓일까? 근소한 차이지만 <지구를 지켜라!> 단 한 편으로 이준익 감독 앞에 위치한 장준환 감독(홍상수 감독과 공동 12위)의 경우에 비추어볼 때, 영화학도들이 상업주의보다는 작가주의에 더 무게를 두고 있다는 사실을 조심스럽게 점쳐 볼 수 있다. 이는 강우석 감독과 강제규 감독이 10위 안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사실에서 더 분명해진다. <실미도> <태극기 휘날리며>로 나란히 1,000만 관객 신화를 일궈낸 두 감독은, 기획영화 시대를 견인해 온 주인공답게 냉철한 승부사라는 이미지가 지배적이다. 영화학도들이 ‘닮고 싶은’ 감독 대열에 그들의 이름을 추가하지 않은 건 상업성에 기운 두 감독의 성향 때문이 아닐까? 영화에서 삶의 터전을 일구려는 이들에게 ‘닮고 싶은’ 감독을 물었을 때, 홍상수 감독이나 이창동 감독이 많이 거론되지 않은 건, 이미 영화를 산업의 범위 안에서 이해하려는 시도로 읽힌다. 그런 의미에서 강우석 강제규 감독을 배제하며 이창동 홍상수 감독을 멀리하는 그들의 이중심리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고민의 흔적이라 볼 수 있다. |
가장 닮고 싶은 한국영화 감독 1위 박찬욱 |
박찬욱 감독에 대한 평가는 다음 두 가지 결과로 요약될 수 있다. 전국 영화학도들이 꼽은 ‘가장 닮고 싶은 감독’ 1위, ‘자신의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작품’ 1위. 그는 인간의 증오와 복수심을 다룬 복수 3부작 <복수는 나의 것>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를 통해 명실공히 한국 최고의 감독으로 자리 잡았다. 설문 결과와 상관없이 그는 단호한 어조로 조언을 던졌다. 영화에서 삶의 터전을 일구려는 이들은 “영화판은 척박한 돌밭이다. 그래도 이곳에서 꼭 삶을 일궈야겠다면, 혹은 달리 갈 곳이 없다면 튼튼한 연장과 품종 좋은 씨앗을 준비하라”는 그의 말을 기억할 것. 그만큼 영화판은 녹록지 않다는 게 아닐까? 그렇다면 박찬욱 감독이 가장 존경하는 감독은 누굴까? B무비 혹은 장르영화에 대한 박찬욱 감독의 기술적 재능과 미학적 연출력은 앨프레드 히치콕의 영화들과 살짝 겹친다. 그렇다고 히치콕의 그늘에서 그를 발견하면 안 된다. 그에게는 <공동경비구역 JSA>처럼 민감한 한국적 현실을 휴먼 드라마로 풀어내는 특유의 감수성과 최근 준비 중에 있는 <싸이보그지만 괜찮아>처럼 두 남녀의 유쾌한 로맨스를 코미디로 담아내는 소박함이 공존하기 때문이다. 박찬욱 감독은 인터뷰 말미에 “담배는 끊고 책을 많이 읽으라”는 충고를 덧붙였다. 영화를 통해 삶을 추구하는 이들에게 영화 공부를 게을리 하지 말라는 당부의 말처럼 들린다. 02 류승완 류승완 감독의 작품은 인위적이지 않다. 미학적으로 포장해 부담스럽게 하거나 비현실적인 이야기로 거부감을 주지 않는다. 대신 강도는 세다. 자신의 고유 영역인 ‘액션’에서 누구보다 영화를 재밌게 만드는 능력은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부터 <짝패>까지 고스란히 반영됐다. EVERYONE SAYS 영화를 재미있게 만들 줄 안다 |
03 봉준호 ‘괴수’영화로 한국영화 최다 관객을 동원한 봉준호 감독은 할 말이 많은 사람 같다. <살인의 추억> <괴물> 등에서 한국 사회를 냉소적으로 포착한 정확한 연출력과 특유의 시니컬함은 영화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100퍼센트 발휘됐다. EVERYONE SAYS 아무도 걷지 않은 길을 걸었던 도전적인 감각 04 장진 장진 작품의 코드는 정겨운 대사들의 충돌로 빚어지는 웃음에 있다. <아는 여자>에서 이연(이나영)이 치성(정재영)을 커다란 종이 박스에 넣고 안는 모습이나 비행기가 추락해 교도소 담벼락을 무너뜨리는 <거룩한 계보>의 한 장면처럼 그에게는 현실과 비현실을 횡단하는 기발한 상상력이 무궁무진해 보인다. EVERYONE SAYS 연극과 영화를 넘나드는 무한한 창조성 |
05 임권택 <두만강아 잘 있거라>부터 <천년학>까지 45년간 100편의 작품을 만든 거장. 현장에서 카메라를 들고 진두지휘하는 그의 열정은 세월도 꺾지 못한다. 인생을 영화로만 채운 그는 우리 시대의 진정한 장인이다. EVERYONE SAYS 그는 작품에 숨결을 불어 넣는다 06 이명세 <인정사정 볼 것 없다>와 <형사 Duelist>는 영화의 비주얼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일깨워 준다. 이미지로 화면을 장악하는 그의 화법은 훨씬 전달력이 빠르다. EVERYONE SAYS 한국 최고의 비주얼리스트 07 허진호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8월의 크리스마스>는 현재 제작되고 있는 거의 모든 멜로영화의 교본이라 불릴 만하다. 세련 되고 절제된 연출력으로 평가받는 이 작품에는 멜로 영화의 모든 요소들이 녹아 있다. EVERYONE SAYS 감수성과 서정성을 탁월하게 뽑아내는 연출력 |
08 김기덕 저예산으로 제작하는 그의 작품들은 대중성과는 거리가 멀다. 대중과 평행선을 그으며 작품 활동을 하는 그에게 대중성은 그래서 어울리지 않는다. 그는 대중성에 눈이 멀어 길을 잃는 오류를 범하지는 않는다. EVERYONE SAYS 도구적 폭력을 사용하는 기발한 상상력의 소유자 08 최동훈 그의 영화는 정신을 집중해서 보지 않으면 흐름을 놓치게 된다. 그만큼 빠른 템포로 전개되기 때문에 퍼즐을 맞추는 듯한 착각까지 들게 한다. 관객들을 적극적으로 동참하게 만드는 솜씨란! EVERYONE SAYS 장르영화를 개척하고 일군 공로 09 김지운 그의 작품에는 묵직함이 있다. <달콤한 인생>의 선우(이병헌)가 “정말 날 죽이려고 했어요?”를 말하며 극에 긴장감을 불어넣는 대목은 압권이다. EVERYONE SAYS 인물 간 대화 장면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 |
순위 밖 이야기-캐스팅하고 싶은 류승완 감독 |
류승완 감독은 ‘가장 캐스팅하고 싶은 남자배우’에서 무려(?) 3표를 얻어, 권상우(3표), 유오성(3표), 김태우(3표) 등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감독이 자신이 연출한 작품에 출연하면 캐릭터를 객관적으로 관찰할 수 있다”는 배창호 감독의 말이 사실이라면, 류승완 감독 정도면 전업배우 못지않게 작품을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인생에 영향을 끼친 작품’ 항목에선 그의 이름을 찾을 수 없다. |
지용진 기자 2006.11.14 |
첫댓글 박찬욱 감독의 작품세계는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에 공감 일백프로 아로 새깁니다. 기사 재밌네요, 특히 EVERYONE SAYS ㅎㅎ
군고구마의 계절이유~
김기덕 아찌 모자 벗은건 또 첨 보네요. ㅎㅎ
제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기사예요 ㅋㅋ 올해 말에 씨네21에 올라올 올해의 영화 best 5 도 기대되는걸요
교차면적이 넓은 분... 내 동지와 참 많이 닮은 저 표정과 미소^^;;
어차피, 이런 순위 매기기는 일종의 '농담'이잖아요. 어떤 이슈가 있기 전에 영화가 개봉하기전에 관심 높이기 위해... 박찬욱 감독이 1위라는데 불만은 전혀 없어요, 근데 5년후에도 박찬욱이 늘 1위라면 그건 좀 아니지 않을까요?
5년후에도 1위, 그건 뭐... 그때봐야 알겠죠 ㅎㅎ 영화공부하시는 미래영화인들 아무쪼록 화이티잉~!
퍼가요~
5년후에는 이 구도를 뒤업을 무서운 신인이 꼭 나왓으면 하는 바램, 그만큼 많은 한국영화가 나오고 관객들이 한국 영화를 사랑해주었으면 합니다. 스크린쿼터 fxxk the he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