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도심 가까이 자리한 이화여대와 연세대 캠퍼스를 처음에는 다섯 명이 걷다가 나중에는 여섯이 걸었습니다.
6시 50분에 이노센트님과 같이 이대역 3번출구에 나오니 이미 도착해 있다는 괜찮은걸님은 안 보이고 웬 늙다리 여대생이 환한 조명의 상점 앞에서 요즘 시류에 전혀 안 어울리게 신국판 판형의 두터운 페이퍼백을 똑바른 자세로 읽고 있는 게 영 특이하다 했더니만...
ㅡ 에구머니, 깜짝이야!
그 처자가 다른 사람이 아니라 괜걸님일세!
예고한 대로 아주 낯설은 괜걸님을 단풍 잎새들이 미친 듯이 널브러져 있는 십일월의 첫째주 화요일 저녁에 봤네요.
셋이 먼저 3번출구 옆에 자리한 우가빠빠에 자리잡고 먹음직스러운 타코 대신 피자와 음료수를 시켜놓고 기다리는 사이, 야간비행님 와서 최고급 아울로스 알토리코더로 간단히 리코더 공부하고, 7시 25분에 습관처럼 식당을 나와 나그네님과 같이 이대 정문으로 걸어갔습니다.
우리가 걸은 코스는 정확히 이랬을 거라고 추정하면서 경로를 다시 그려봅니다. x자 표시는 사진 찍은 자리.
이대정문을 지나면 프랑스 건축가 도미니크 페로가 설계한 거대한 ECC 구조물이 눈을 사로잡는데... 우리는 '한번 가본 길 안 가기' 원칙을 꿋꿋이 지켜 그 왼편으로 돌아 잔디 오솔길로 걸어갔습니다. ECC가 뭔가 찾아봤더니만 별거 아니더군요. 이화여대 캠퍼스 복합단지라는 뜻인 Ewha Campus Complex의 약어.
ㅡ 헐~ !
ECC 끝자락에서 대구나 진주쯤 되는 사투리를 구사하는 학생에게 야비님이 길을 물어 우리는 헬렌관으로 향했습니다. 한때 학생회관으로 쓰였던 그 건물 1층에는 2009년 사진으로 본 아름뜰 카페가 있을 거라고 상상하면서... 하지만 우리를 맞이한 건 다소 실망스러운 이름의 'Lounge O'였습니다. 아름드리 중국단풍나무가 우거진 이곳 카페에서 커피는 안 마시고 사진만 몇 컷 찍었어요!
사진은 괜걸님(이하 날짜 박힌 사진 모두).
위쪽 계단을 올라 중앙도서관을 왼편으로 끼고 가다 보니 목련꽃 활짝 핀 봄에 걸었던 길이 나와 반가웠어요.
백석과 같이 시를 썼던 이 학교 출신의 시인 중에 노천명이 있는데 그의 글을 찾아보니 마침 '목련'이라는 수필이 있어 아래에 옮겨 봅니다.
아침에 눈을 뜨는 길로 문갑 위의 목력을 바라봤다.
그윽한 향기가 방안에 넘치는 것 같다. 재치 있는 붓끝으로 곱게 그려진 것 같은 미끈하고 탐스러운 잎사귀며, 그 희고 도톰한 화판이며, 불그레한 ?술이며 보면 볼수록 품이 있고 고귀한 꽃이다.
그리고 무척 동양적이다. 내가 여학교 시절 자수 시간에 족자에다 이 목련이란 꽃을 수놓아 본 일은 있으나, 보기는 처음인 것이다.
지난 번 주일날 명륜동 조카집엘 놀러갔더니 돌아올 때 선효(善孝)가 정원에서 꺾어 준 꽃이 이 목련이다. 전차와 버스를 타고 오는 동안 이 꽃을 위해 나는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모른다.
어쩌면 이처럼 점잖은 꽃이 있을까? 몇 번을 감탄하고도 오히려 남음이 있어 좋은 벗이라도 와서 같이 보았으면 싶던 차에 오는 아침 선희(善熙)가 와서 이 꽃을 보고 늘어지게 찬사를 던지고 갔다.
흰 나리꽃이 꽃 중에는 으뜸가는 줄 알았더니, 목련은 한층 격이 높음을 본다. 목련을 조용히 바라보고 있으면 옷깃이 여며진다.
사람도 이처럼 그윽하고 품위 있어지고 싶건만, 향기를 지닌 사람이 된다는 것 역시 쉬운 일이 아니다.
성산로를 가로지르기 위해 금화터널 위로 나 있는 순환로를 따라 걷다가 주택가를 따라 내려와 다시 연대 동문으로 올라가 북문까지 걸으니 어느새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연세우유 건물과 아식설계연구소를 거슬러 올라와 정문쪽으로 내려가다가 언더우드관에서 나따샤님을 만나 그때부터는 여섯이 걸었습니다.
언더우드 생가에서 잠시 옛 시간들을 회고하다가 대운동장을 한바퀴 돌고서 정문으로 나왔습니다. 이날 맛집 탐방은 신촌역 근처의 일본라멘 식당에서 간단히 맥주를 곁들여 했어요.
첫댓글 봄에 목련을 보았던가요. 이제는 다 추억만 같으니.
나는 언제나 남들이 쉽게 걷는 그길을 함께 걸으려나
미인박명이라드니만 발 땜시 걷기인생 박명해서 되것수? 소원님 화이팅~~~
젊은다리 여대생 삘~인 제게 늙다리 여대생이라니요....
이제 다리도 늙는구나. ^________^
그러개 왜 다리를 거기다 붙였는지 모르겠ㄴㅔ 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