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싱크대 배수관이 막혔습니다.
아파트가 오래되니 이리 손 봐주고 저리 고쳐가며 살게 됩니다.
배수관 뚫는 기구(뭔지 이름을 모르겠네요)를 사서 밀어 넣고 뚫어보니 안 됩니다.
역시 전문가의 손이 필요합니다.
배수관 공사 사장님께 연락했고 다음날 오셨습니다.
가격이 웬만큼 나왔지만 일하시는 것을 보니 오히려 적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일이 다 끝나고 사장님이 말씀합니다.
“책이 많네요”
거실을 서재 겸 쓰니까 책장이 눈에 띄었나 봅니다.
“근데...”
사장님이 사이를 띄우고 말씀합니다.
“목사님이 되었는데도 더 공부하시는 거예요?”
제가 뭐라고 말하긴 했는데 별 영양가 없는 말이었다고만 말하겠습니다.
사장님의 말이 옳다 그르다가 여기서 나올 것은 아닙니다.
아마도 세상의 인식이 그대로 표현된 것 같습니다.
그냥 든 생각은 ‘내가 부족하구나’였습니다.
목사가 되었다는 것은 ‘더 공부할 것이 없다’로 여겨졌다는 말이 아닙니까?
스승으로부터 배운 가르침 중의 하나가, 스스로의 성숙을 가로막는 ‘자기 완결’에 대한 관념을 깨뜨릴 것에 대한 것입니다.
잠깐 소개해 보겠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인격적 성숙보다는 더 많은 세상이 요구하는 스펙이 필요하고 정신적 유대감과 같은 영적 세계에 대해서는 우리 자신들을 너무 일찍 닫아버린다. 왜냐하면 무엇이 세상적 성공인지 이미 다 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자신의 성숙을 조기 완결시켰다고 말한다. 무한한 의미의 세계를 향한 자신의 미래에 문을 닫아버리는 것, 이렇게 미리 해버리는 ‘자기 완결’은 오히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성장을 포기하는 것이다(황현숙, 신비의 책, 성서, kmc, p. 143).”
바울 사도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빌 3:12-14).”
자신감에 넘쳐 느부갓네살처럼 ‘내가 만들어 내었다’는 이들이 있습니다(단 4장).
무지하기 짝이 없는 소리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인생이 이루어낸 업적은 초라한 마구간만도 못합니다.
사람이 보기에 하늘을 향해 치솟은 바벨탑이지만 정작 하나님께서는 보려고 내려오셔야만 하지 않았습니까(창 11장)?
또는 내 인생이 왜 이러냐고 아파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너무 서둘러 단정하지 마십시오.
끝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더 기대할 것을 남겨 두셨습니다.
더 좋은 포도주가 있다는 말입니다(요 2장).
그럼 어떡하냐고요?
허락하셨으니 내게 주어진 길을 한걸음 씩 나아갈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