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 (1571~1610)
Michelangelo Merisi da Caravaggio
글/ 구자선
17세기, 바로크 미술의 시작을 알리는 카라바조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본명은 미켈란젤로 메리시인데, 우리가 알고 있는 <천지창조>를 그린 화가 미켈란젤로는 아니다. 1571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태어났다. 그의 나이 13살이 되던 해에 밀라노에는 페스트가 유행하였고, 그의 아버지가 페스트로 사망하였다. 때문에 그는 13세에 가장이 되어 생계를 위한 그림을 그려 팔기도 하였다. 이는 그 나이에도 그림 실력이 상당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17세에 로마로 들어갔다. 어려운 형편에 변변한 집 한 채도 없이 빈민가를 떠돌았고, 이는 후에 그의 작품 속에 부랑자나 매춘부가 그림의 소재가 되기도 하였다.
1593년, 그의 나이 22살에 그린 <도마뱀에게 물린 소년>의 그림을 본다. 무언가에 화들짝 놀란 표정이 마치 순간의 스냅 사진처럼 잘 표현되어 있다. 테이블에는 윤기 흐르는 체리가 널려 있고, 반짝이는 꽃병에는 장미 한 송이가 놓여있고, 그의 귀에도 시든 장미 한 송이가 꽂혀 있다. 소년은 테이블의 과일 사이에서 튀어나온 도마뱀에게 가운데 손가락을 물리고 화들짝 놀란 표정이다. 이마의 주름에서, 팔짝 올라간 어깨에서 잘 표현되어 있다.
그 당시 그림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 있다. 싱싱한 과일은 쾌락을 의미하고 시든 꽃은 쾌락의 덧없음을 상징한다. 도마뱀은 성경에 나오는 뱀과 같은 것으로 탐욕이나 욕망, 쾌락을 의미한다. 그래서 이 그림은 욕망이나 쾌락의 덧없음을 표현한 그림이라 하겠다. 어깨 뒤로 밝은 빛이 창을 통해 들어오고, 꽃병 안에는 빛이 들어오는 창문이 반사되어 있다. 작은 모퉁이 하나에도 섬세한 빛과 어둠이 극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이는 바로크 미술의 시작이라 하겠다.
1597년, 그의 나이 27살에 성 마태오를 주제로 산루이지데이프란체시 교회에 그린 그림은 당시 대단한 찬사를 받았다. 그 후, 델 몬테 추기경의 초상화를 그리게 되었다. 이것을 시작으로 델 몬테 추기경의 후원을 받아 당대 최고의 화가로 자리 잡았다. 그의 명성은 날로 퍼져 나갔다 하지만 그는 17번이나 경찰서에 잡혀갔고 7번의 감옥살이도 하였다. 폭력, 도둑질, 싸움이 빈번하였고, 테니스 경기에서 졌다는 이유로 상대를 죽이기까지 하였다. 이때부터 카라바조는 도망을 다녀야 했다. 그에게는 현상금이 붙었고, 언제라도 사형을 집행해도 된다는 딱지가 붙었다. 도망을 다니는 중에도 그의 그림 실력은 뛰어나서 그림 주문을 계속 받았다. 하지만 39살의 나이로 객사하고 말았다.
한 때 병마에 시달리고 있을 때 <병든 바쿠스>라는 작품을 그렸다. 이는 그의 자화상으로 병든 자신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온 몸에 푸른빛이 감돌고 푹 들어간 눈과 핏기 없는 입술, 애처로운 눈빛이 한 눈에 병든 모습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의 손에는 싱싱한 포도가 들려 있고, 언젠가는 나도 이 싱싱한 포도처럼 포도가 익어 와인이 되듯 언젠가는 나도, 라는 쾌락을 꿈꾸기도 하였다. 그 후 삼 년 만에 싱싱한 통통하게 살찐 하얀 피부의 바쿠스가 풍성한 과일을 앞에 두고 와인 잔을 높이 들고 있는 그림을 그렸다. 이는 델 몬테 추기경의 후원으로 그의 삶이 넉넉해졌음을 표현하는 자화상이라 할 수 있겠다.
말년에 그린 작품 중에 <다윗과 골리앗>이 있다. 어린 다윗이 목 잘린 골리앗의 머리를 치켜들고 있다. 다윗은 자신의 순수했던 어린 시절의 모습을 담고 있다. 피를 뚝뚝 흘리며 고통스러워하는 늙은 골리앗은 살인을 저지른 잘못된 자신의 모습이 아니었을까 추측해 본다. 후에 용서의 의미로 교황에게 이 그림을 보내지만 전달되지 않았다는 후문이 있다.
그의 작품으로는 <메두사의 머리>, <매장>, <성모의 죽음>, <엠마오의 식사>, <병든 바쿠스>, <젊은 바쿠스>, <과일 깎는 소년>, <과일 바구니>, <도마뱀에게 물린 소년> <십자가에 못 박힌 성 베드로> 등 많은 작품이 있다. 주로 빛과 어둠이 잘 표현되어 있고, 순간의 표정이 스냅사진처럼 순간 포착되어 섬세하고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서른아홉이라는 길기 않은 그의 삶을 보면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 고민해 본다. 살다보면 모든 게 부족하고 어려운 시절도 있고, 때로 풍요로운 삶을 평화롭게 누릴 때도 있다. 보다 안정적이고 평화롭기 위해서 내가 지켜야 할 것과 버려야할 것은 무엇일까 고민해 본다. 영국 내셔널 갤러리 명화 전을 돌아보면서 또 한 사람의 삶을 들여다본다.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치는 유디트 (로마 국립 고전회화관)
출처:The National Gallery 엠마오에서의 만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