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체를 살펴보는 현명함
어느 마을에 현명한 선생님에게
한 여인이 찾아와 쌍둥이인 어린 아들들이
너무나도 산만하여 집중하지 못한다는
고민을 털어놓았습니다.
그러자 선생님은 쌍둥이 아이들을 가르칠 테니
자기 집으로 보내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쌍둥이들을 일 년간 가르치던 선생님은
아이들이 많이 침착해졌다고 생각하고
마지막 시험을 치르기로 했습니다.
쌍둥이를 각각 다른 방으로 부른 선생님은
쌍둥이에게 그 방을 청소하라고 시켰습니다.
그 방은 모두 바닥이 축축하게 젖어있었습니다.
방구석에 놓인 물항아리에 작은 금이 있어
계속 물이 새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방바닥의 물을 계속 닦아내던 한 아이는
아무리 닦아도 계속 바닥이 축축한 것을 보고,
원인을 찾기보다는 결국 짜증을 내며
방 밖으로 나가버렸습니다.
똑같이 계속 방바닥을 닦던 또 다른 아이는
물이 새어 나오는 항아리의 물을 다 비운 뒤에
방 안을 깨끗하게 청소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을 본 선생님은 청소를 마친 아이는
어머니 곁으로 돌려보내고 그렇지 못한 아이는
더 가르쳤습니다.
차분하게 전체를 살펴보는 능력.
이것을 보통 '현명함'이라고 말합니다.
무슨 일을 진행할 때 전체를 보지 못하면
뭔가가 잘못되어도 무엇이 잘못인지
문제점을 발견할 수도 없습니다.
문제를 발견하지 못하면 어떤 방법도
해결책이 될 수 없습니다.
# 오늘의 명언
문제를 바르게 파악하면 절반은 해결된 것이다.
- 찰스 F. 케터링 -
* 내 마음의 눈높이
@ 증산상제님 말씀하시기를 "후천선경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니요, 마음닦기가 급하느니라. 후천을 기다리는 마음이 지극하면 마음닦기에 신실하고, 후천을 기다리는 마음이 시들하면 마음닦기에 소홀하느니라." (이중성의 천지개벽경 P221)
@ 하루는 형렬을 불러 가라사대 "저 건너 산에 소나무가 몇 짐이나 되겠느냐." 형렬이 대답치 못하고 묵묵히 있으니 "저렇게 보이는 것도 알 수가 없거늘, 안보이는 나의 법을 네가 어찌 알겠느냐." (동곡비서 p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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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에서 만나는 사람은 시야도 다릅니다. 산의 정상에 높이 오를수록 주변의 경치가 멀리 넓게 보입니다. 산밑에서 주변을 보면, 시야가 제대로 확보되지 않아 눈에 들어오는 것에 한계가 있습니다. 산 정상에 올라보면, 사방으로 탁 트인 풍경에 가슴속까지 시원함을 느낍니다. 증산상제님과 고수부님의 가르침은, 내 마음의 눈높이에 정비례하여 마음속에 전달되어 생활속에 실천됩니다.
마음은 세상이 비춰지는 스크린입니다. 마음의 눈과 귀로 세상을 보고 듣습니다. 내 마음이 천지부모님의 마음에 다가갈수록, 세상을 보고 이해하는 안목이 그만큼 넓어지고 깊어집니다. 내 마음을 한 단계 높이기가 쉽지않지만, 부단히 마음을 점검하고 닦으면, 내 마음의 눈높이가 높아집니다. 천지부모님의 마음이 내 마음이 되도록 해야, 천지부모님의 마음을 세상에 전할 수 있습니다.
첫댓글 리처드 바크의 [갈매기의 꿈]에 '높이 나는 새가 가장 멀리 본다'는 구절이 나옵니다.
천지부모님의 공심을 닮은 태을도인이어야 그 공심으로 천하사를 제대로 해나갈 수 있습니다.
마음에서 마음으로 맥이 이어지는 태을도 태을도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