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8, 16💜
■ 이중섭/흰소(1953~54년경, 합판에 유채, 30×41.7cm, 홍익대박물관 소장)
■ 슈베르트/보리수
https://youtu.be/zC7gEVSgf9k
■미술사를 움직인 100인/김영은(청아출판사)ㅡ30
15 이중섭(1916~1956)/한국 근대 서양화의 거목(1)
높고 뚜렷하고
참된 숨결
나려 나려 이제 여기에
고웁게 나려
두북두북 쌓이고 철철 넘치소서
삶은 외롭고
서글프고 그리운 것
아름답도다 여기에
맑게 두 눈 열고 가슴 환히 헤치다.
-이중섭, [소의 말]
소와 아이들을 즐겨 그린 화가, 화구를 살 돈 조차 없을 만큼 궁핍하여 담배를 싼 종이에 그림을 그렸다는 화가 이중섭.
박수근과 함께 한국 근대 서양화의 양대 거목으로 꼽히는 그는 그림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이중섭 혹은 '소' 그림이라고 하면 알 만큼 가장 대중적인 화가 중 한 사람이다.
이중섭은 1916년 4월 10일 평남 평원군 조운면 송천리에서 태어났다.
호는 대향(大鄕)이다.
할아버지 때부터 부농 집안이었으며, 그의 형도 사업가로 크게 성공했다.
이 때문에 이중섭이 청년 시절 순수하게 화가로서 생활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8세 때까지 마을의 한문 사숙에서 동문선습, 맹자, 논어 등을 배우다가 평양의 외가로 가서 평양 종로 공립 보통학교에 들어갔다.
이중섭은 삼남매 중 막내로 형, 누나와는 10여 살 이상 차이가 나서 어울리기 쉽지 않았을 뿐더러 내성적인 성격이라 어렸을 때부터 혼자 그림을 그리며 많은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일찍부터 그림에 뛰어난 자질을 보였던 그는 학교에 들어간 이후에도 공부보다 그림에 열중했고, 방학 때 집으로 돌아가서도 그림만 그렸다.
그런 그를 형이 나무라면 광에 숨어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덕분에 학업 성적은 좋지 않아 보통학교 졸업 후 평양 고등 보통학교 입시에 실패했다.
보통학교에서 이중섭은 당시 유화 화가였던 김찬영의 아들로 훗날 서양 화가가 되는 김병기와 같은 반이 되면서 서구 미술 세계에 눈을 떴다.
김병기의 집에 들락거리면서 유화 도구와 물감, 각종 서구 화집들을 접한 것이다.
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오산학교에 들어간 이중섭은 이곳에서 화가 임용련에게 그림을 배우며 본격적으로 서양화를 그리기 시작했다..임용현은 후기 인상파 경향의 화가로, 예일대에서 공부하고 파리에서 활동한 인물이었다 .
당시 화가나 미술 교사들아 대부분 일본에서 공부했던 것과는 매우 다른 이력이다.
색채와 조형의 기초, 구상 등을 중시하는 임용련 아래에서 중섭은 소묘와 에스키스(esquisse, 작품 구상이 담긴 초벌 그림) 등을 그리면서 기본기를 익혔으며, 후기 인상파 화풍도 접했다.
무엇보다 오산학교는 민족 의식이 강한 학교였는데, 이런 분위기 속에서 임옥련은 일본의 조선어 말살 정책에 대비해 수업 시간에 한글 자모를 이용한 구상화를 그리게 했다.
1936년, 이중섭은 오산학교를 졸업하고, 임용련의 권유로 도쿄 제국 미술학교로 유학을 갔다.
그러나 스케이트를 타다 다치는 바람에 입학 1년만에 학교를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때 그림을 반대하는 형 때문에 집에 붙잡혀 있었다고도 한다.
1년후 분카가쿠엔((文化學院)에 입학한이중섭은 이곳에서 친구인 김병기를 다시 만났고, 훗날 한국 모더니즘과 추상화의 선구자로 일컬어질 유영국, 북한의 천재 화가로 이름을 날릴 문학수 등과 교유했다.
절친한 친구인 시인 구상도 이때 만났다.
이중섭은 문화학원의 자유롭고 진취적인 분위기 속에서 당시를 풍미했던 전위 미술에 강하게 끌렸다.
강인하고 굵은 선이 특징인 이중섭의 화풍은 이 시기부터 형성되었으며, 그는 학내에서 곧 동방의 조르주 루오(프랑스 야수파의 대표적 작가 중 하나로 강인한 선 표현이 특징이다) 라고 불리며 주목을 받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츠다 세이슈의 관심을 받았는데, 그는 일본 최초로 추상미술을 표방하는 자유 미술가 협회를 결성한 인물이었다.
츠다는 이중섭의 가능성을 높이 평가하며 동양이라는 지역적 특성과 한국인으로서 한국을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은 이중섭 뿐이라고 격려했다.
이중섭은 그의 아래에서 문학수, 유영국, 안기풍 등과 함께 자유전에 그림을 출품하고 본격적으로 활동을 펼쳤다.
키가 크고 잘생겼으며, 운동 노래 미술 등에 다재다능했던 이중섭은 학교 내 여학생들의 선망을 한 몸에 받았는데, 그 중에는 후일 부인이 되는 야마모토 마사코도 있었다.
첫댓글 지독한?폭염의
2016년 여름을 하루도 빠짐없이
좋은 글, 그림, 음악을 소개해 주시는
아우라지님 고맙습니다~^^
건강하십시오~~~
이중섭의 소를 좋아합니다.
일곱살 때 엄마 따라 마장동 갔다가
소의 눈물이 뚝! 떨어지는 걸 본 후 소고기를 안먹었고, 소 그림을 좋아했어요.
최근에 읽은 책중에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를 보고 또다시 소의 슬픔을 느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