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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주큰스님 5월 초하루 특별법문 ◆
天上天下 無如佛 천상천하 무여불
十方世界 亦無比 시방세계 역무비로다
나무아미타불
모두 따라하십시오.
천상천하의
부처님 같은 분 없으니
시방세계에 견줄 데 없도다.
창건 20주년 특별법문 태자로서의 부귀영화, 그리고 번민 부처님 일대기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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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받으신 유인물을 보시면 [창건 20주년 특별법문]이라 되어 있고 [부처님 일대기]
두 번째 유인물입니다.
부처님 일대기 공부를 계속 해가겠습니다.
위대한 성자를 자세히 알려면 그 분의 전기를 보면 알 수 있을텐데 바로 부처님도 부처님의
일대기를 통하면 부처님의 여러 가지 많은 공덕과 행적에 대해서 어느 정도 감을 잡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 일대기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오늘 나누어 드린 유인물을 보시기 바랍니다.
초하루 법문이라 해서 이렇게 자상하게 유인물을 나눠 주는 절은 없어요.
그래서 한국불교대학 대관음사가 잘났다 하고 우학스님이 자상하다 그럽니다.^^
이 유인물은 돈으로는 바꿀 수 없는 많은 자료들이 들어가 있습니다.
그러면 서서히 공부를 해보겠습니다.
유인물 제목이 [태자로서의 부귀영화, 그리고 번민]이라 되어 있는데 이때의 태자이름은 뭐지요?
“싯다르타”
읽어보겠습니다.
싯다르타
싯다르타, 또는 싯달타라고 불리는 석가모니부처님의 젊은 시절 이름 싯다르타태자입니다.
태자는 BC 몇 년에 태어났지요?
“BC 624년”
불기2556년 거기다가 80을 더하면 부처님께서 나신 BC 624년이 돼요.
여기에 대해서는 이따가 더 말씀을 드리고 2번을 보세요.
나뭇가지를 잡고 있는 한 여인이 있어요.
이 분이 마야왕비, 마야부인, 마야데비라고도 해요.
마야왕비가 모셔져 있는 룸비니동산의 그 집을 마야부인당이라고도 하고 마야데비전이라고 합니다,
마야데비가 원음인데 줄여서 마야부인이다 이렇게 보면 돼요.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마야데비
마야데비
마야데비전 또는 마야부인당에 모셔져 있는 조각상인데 나뭇가지를 잡고 애기가 났어요.
그 아래 천상천하 유아독존 탄생게를 외치고 있고 천지인을 짓고 있네요.
그 옆에 보면 수염이 길게 난 할아버지 한 분이 보이고 있어요.
이 사람은 누구겠습니까?
아시타라고 하는 관상쟁이입니다. 아시타선인입니다.
여기 마야데비젼, 마야부인당은 현재는 없어요.
옛날 마야부인당입니다.
갈 때 마다 부처님의 성지의 이런 유품들이 바꿔져 있어요.
마야부인당, 마야데비전 집자체가 다시 지어졌고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이 없다고 하더니 이런
성지에 박물관 같은 유적지도 변하더라는 거지요.
여러 차례 인도를 가보지 않은 사람은 완전히 알 수 있다, 완전히 안다고는 말할 수 없어요.
저는 여러 차례 인도를 갔다 오면서 이 귀한 자료들을 가지고 있는 겁니다.
우리 한국불교대학 대관음사도 여러 도량이 다 그렇고 특히 대구 큰절은 1년이나 2년 정도
안 오면 길을 찾지 못해서 못옵니다. 많이 변해서...^^
제가 쓴 ‘인도성지순례’라고 하는 책이 있습니다.
아주 두툼한 책인데 그 책에 이 그림이 실려져 있는데 작년에 인도에 갔을 때는 이 조각상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옛날자료를 올려놓은 것입니다.
여기에 보면 앞에 할아버지가 손을 벌리고 있는데 이 분이 아시타선인이라.
天上天下唯我獨尊천상천하유아독존 三界皆苦我當安之삼계개고아당안지를 외치고 있는
싯다르타태자와 아시타선인의 만남은 태어나서 약 5~7일 만에 만났다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당시 풍습에 따라서 애기가 태어나면 5~7일쯤 애가 안정될 때 쯤 되면 관상 보는 사람한테
얼굴을 보이는 모양입니다,
이때 아시타선인이 싯다르타태자의 용모를 보고 눈물을 흘렸다 그랬어요.
바로 우리 석가모니부처님은32상 80종호라고 하는 거룩한 몸의 모습 또는 얼굴모습을
가지셨다 그랬습니다.
32상 80종호 들어보셨습니까?
한 번 따라 해보겠습니다.
32상
80종호
그래서 32상 80종호를 아시타선인이 보고 눈물을 흘렸다.
왜 그랬는가?
이 사람은 분명히 전륜성왕이 될 것이다.
무력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왕이 아닌 정법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전륜성왕이 되거나 또는
출가한다면 삼계대도사가 되어서 일체중생을 제도하실 대단한 위인의 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아시타선인이 자기는 이미 늙었고 노인이 되어서 성장후의 싯다르타태자의 모습을
보지 못한 안타까움에 눈물을 흘렸더라는 것입니다.
싯다르타태자하고 룸비니동산에서 마야왕비가 애기를 낳고 있는 것하고 아시타선인이 만난
장소는 그냥 극적으로 한꺼번에 모아 놓은 것이지 사실은 아시타선인이 싯다르타태자를 만난
것은 왕궁 안입니다.
이것은 미술작품이기 때문에 동시적으로 일이 이루어진 것처럼 보고 있지요.
특히 부처님일대기에서 아주 중요하게 등장하는 선인이 아시타라고 하는 관상쟁이라는 겁니다.
부처님이 이렇게 해서 많은 사람들의 기대 속에서 탄생을 하셨습니다.
이때 정반왕의 나이가 얼마였느냐?
싯다르타태자의 아버지 숫도다나왕 정반왕의 나이가 45세였어요.
이때 마야왕비의 나이도 40세가 넘었어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싯다르타태자에 대해서 기대를 했겠습니까?
이제 첫 애가 태어났어요.
정반왕의 대를 이을 첫아이가 경치도 아름다운 룸비니동산에서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탄생게를 외치고 태어나셨는데 룸비니동산이 탄생지라면 룸비니동산이 어떻게
부처님의 탄생지일까?
이것이 어떻게 역사적으로 고증이 되었을까?
그리 먼 세월이 아니었어요.
아쇼카라고 하는 대왕이 석주를 세웠다.
이 석주는 지난달 부처님일대기 그림에 다 나와 있습니다.
돌로 된 기둥...
거기에 이곳이 바로 부처님이 태어나신 성지이다.
바로 여기가 룸비니라고 하는 곳인데 나 아쇼카가 218년 부처님 입멸하신 이후 내가
218년 만에 아쇼카라는 대왕으로 즉위를 했는데 룸비니동산에서 들려서 석주를 세우면서
세금을 감면해주노라 하고 석주에 남겼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곳이 분명한 부처님탄생지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지요.
만약에 아쇼카대왕의 석주가 아니었으면 이곳이 룸비니동산 부처님이 탄생하신 땅이라는
것을 잊어버릴 뻔한 그런 일이 되는 것입니다
한사람의 공이 얼마나 큰가를 우리가 생각해보지 않을 수가 없어요.
상세한 그 얘기들은[다음까페 불교인드라망]에 들어가 보시면 자세히 지난 달 법문을 다 볼
수가 있고 오늘 나온 법보시 여기에도 보면 아주 상세하게두 번에 나누어서[거룩한 탄생 아~ 룸비니]
이편에 다 나와 있습니다.
불교인드라망과 월간 법보시를 통해 보시면 부처님 일대기 특히 탄생설화 탄생에 관계된 여러
가지 많은 얘기들을 접할 수가 있을 겁니다.
오늘 이 얘기들은 다음 달 월간 법보시 또 불교인드라망에 정리를 해서 올려놓겠습니다.
돌로 된 기둥, 아쇼카대왕의 석주에 이 곳이 부처님 탄생지이다. 룸비니라는 것이 기록이 되어
있고 그것 때문에 우리는 룸비니동산이 부처님탄생지 성지로 여기고 있는 겁니다.
우리들은 늘 기록을 해둬야 돼요. 기록...
불자들은 머리도 그렇게 좋지 않으면서 적지를 않는데 지금 받아 적으시는 분들은 착한 분들입니다.
제가 하는 얘기들은 아주 방대하기 때문에 기록해 두지 않으면 이런 엄청난 대사건들도 잊혀진다는
거지요.
다시 거꾸로 생각해서 부처님의 어머니가 룸비니동산에 오시기 전에는 어디에 있었습니까?
카필라성, 카필라 바스투, 카필라 왕궁에 있었습니다.
낳은 애기를 데리고 바로 카필라왕궁에 가게 됩니다.
카필라성을 인도말로는 카필라 바스투라고 말해요.
이 카필라왕궁이 있었던 터가 유감스럽게도 두 개가 있어요.
인도정부가 주장하는 카필라왕궁 터가 있고 네팔정부가 주장하는 왕궁터가 따로 있다는 겁니다.
룸비니동산은 인도에 있습니까? 네팔이 있습니까?
인도차이나반도 속에 있어서 똑같다고 하지만 현재의 굳이 나라개념을 말한다면 룸비니동산은
네팔소재입니다.
네팔소재에 룸비니동산이 있고 여기서 머지않은 두 곳에 1번 인도에서 주장하는 카필라왕궁
터가 있고 3번 네팔에서 주장하는 카필라왕궁 터가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쓴 인도성지순례 책에 등장한 카필라왕궁 터는 네팔에서 주장하는 카필라왕궁 터입니다.
역사가 2,500년 거의 3,000년 된 역사적 사실이기 때문에 룸비니동산도 아쇼카석주가 유럽
사람들로 부터 소개되고 비문이 해독되기 전에는 거기가 룸비니동산인데 이곳이 부처님
탄생지였다는 것이 잊혀진 것입니다.
유감스럽게도 1번, 3번 인도에서 주장하는 카필라왕궁 터나 네팔에서 주장하는 카필라왕궁 터는
이곳에 아무런 기록이 없어요.
많이 세웠다는 아쇼카석주도 1번, 3번에 없어요.
인도에서는 인도 나름대로 카필라왕궁 터는 우리 땅에 있다.
네팔에서는 네팔대로 카필라왕궁 터는 우리 땅에 이것이 진짜다. 이렇게 주장하고 있는 거지요.
서로 카필라성 유산이 자기 땅에 있다.
그것이 관광자원으로 훌륭하기 때문에 그런 점도 있겠고 자기들이 부처님을 모시고 싶은
그런 마음에 인도나 네팔은 그런 주장들을 하는 거지요.
인도하고 네팔하고는 국경이 있어요.
네팔과 인도의 옛 국경(인도성지순례에서 사진 발췌)
국경이 어떻게 생겼는가?
거기 4번이 국경입니다.
네팔과 국경의 옛날국경이라 했네요.(인도 성지순례에서 사진 발췌)
이것이 언제 여기 가서 찍은 사진이냐?
20년 전입니다.
20년 전 제가 인도성지순례를 처음 갔을 때 찍은 사진입니다.
그때는 인도성지순례를 가는 사람이 거의 없을 때입니다.
막대기 하나가 국경선이요.
지금은 어떠냐?
여기가 대도시가 되어버렸어요.
큰 도시가 형성이 되어서 온갖 먹을 것이 꽉 찼고 온갖 입을 것이 꽉 찼고 두 국가를 왕래하는
차량이 정체가 될 정도로 엄청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지나가고 있고 또 이곳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만 차가 많은 것이 아닙니다.
대구 큰절 주위에도 주차문제 때문에 늘 말썽이 많은데 주차문제는 시골에 가도 문제가 많습니다.
아직은 후진국가입니다.
이런데도 차 문제 때문에 보통 문제가 아니요.
바야흐로 세상은 선진국 후진국 할 것 없이 동시에 성장하고 있지 않는가?
이런 생각이 들어요.
거기 5번 그림 봐 봐요.
5번 그림이 노천가게에서 사과, 석류...나도 얼굴이 검다고 생각을 했는데 이 사람들하고
있으니까 희네요.^^
모든 것이 상대적인 것 같아요.
이 사람들은 인디언이라 얼굴이 검잖아요.
이러한 가계도 많고 많이 변했습니다.
대단히 번잡스럽고 사람도 엄청 많습니다.
5번이 바로 현재의 네팔과 인도의 국경에서 사과를 팔고 옷감을 파는 것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2번의 룸비니동산에서 4번, 5번의 국경까지 가는데 어느 정도 걸리느냐 하면 한 시간쯤 걸려요.
2번의 룸비니동산에서 네팔 같은 네팔 안에 3번까지 가는데 30키로, 버스로 천천히 가서 한
시간쯤 걸리지요.
만약에 네팔에 있는 카필라왕궁 터가 진짜라면 카필라왕궁에서 30키로 가서 룸비니동산에서
애를 낳았다는 거지요.
애를 낳아서 바로 돌아온 거지요.
인도에서 주장하는 카필라 왕궁 터
네팔에서 주장하는 카필라 왕궁 터(인도성지순례 책에서 발췌)
인도에서 주장하는 1번 왕궁 터를 봐 봐요.
1번하고 2번 룸비니동산하고의 거리는 70~80킬로미터 정도 돼요.
약 두 시간 쯤 돼요.
마야왕비가 애기를 낳으려고 자기 친정 콜리성으로 가다가 룸비니동산에서 애를 낳은 것 아닙니까?
그런 입장에서 봤을 때 30키로, 또는 70~80키로가 큰 문제든 되지 않지요.
그러니까 두 나라가 자기 땅의 카필라성이 진짜라고 말하는 거지요.
룸비니동산에서 1번 인도에서 주장하는 카필라왕궁 터까지는 약70~80키로,네팔의 룸비니에서
인도의 카필라성까지 가려면 국경선을 넘어서야 되잖아요.
바로 국경선까지가 약 한 시간
국경선을 넘어서서 인도주장의 카필라왕궁 터까지가 한 시간 70~80키로라 하지만 약
두 시간쯤 걸리는 인도에서 주장하는 카필라왕궁 터가 있다 이 말이지요.
2,600년 전 사실을 고정한다는 것이 사실은 예사문제가 아니지요.
1번과 3번 두 그림 중 하나는 카필라왕궁 터다 이렇게 보면 돼요.
부처님께서는 1번 또는 3번 이 왕궁 터에서 29세까지 살았습니다.
오늘의 본 주제는 부처님께서 29세까지 어떻게 사셨을까 그거지요.
왕궁 터가 어디가 진짜인지 이렇게 애매한 것처럼 사실은 부처님께서 탄생하신 연도도 아직도 불문명해요.
아까 몇 년도에 태어나셨다 했지요?
BC 624년도에 태어났다 했는데 이것은 구전으로 구전으로 내려와서 특히 남방 미얀마, 인도
이쪽에서 부처님은 BC 624년도에 태어나지 않으셨겠는가?
이렇게 추정을 하는데 요즘은 역사과학이 발달하다 보니까 이것을 다시 많은 자료를 갖다 되고
고정을 시작했어요.
이것이 좀 엉터리가 아니냐? 이렇게 봐요.
북방설에서는 불기가 몇 년이냐?
부처님이 몇 년 전에 태어나셨는가?
BC 1027년 설을 가지고 있어요. 북방설...
옛날 30~40년 전에 절 기둥이나 석주에 보면 불기 3천 몇 년 이렇게 써 놓았어요.
그것이 다 북방설 때문에 그렇습니다.
북방설에서는 훨씬 더 빨리 4, 5백년 전에 부처님을 본거지요. BC 1027년.. 남방설에서는
BC 624년 이랬는데 이것을 1950년도 이때에 전 불교도들이 다 모여가지고 북방설은 말이
맞지 않으니까 남방설을 표준으로 하자.
이렇게 해서 부처님 탄생 년도를 공통으로 쓰기 시작했는데 BC 624년인데 이것 또한 엉터리가
아니냐 이거요.
전문역사학자들은 남방설에 근거한 불기 부처님탄생을 좀 더 늦게 봅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BC 566년으로 봐요.
그러니까 58년이 더 늦은 겁니다.
BC는 연대가 올라갈수록 뒤로 가잖아요.
BC 566년 설이 거의 정확해요.
왜 이렇게 확신하다고 단정할 수밖에 없는가?
부처님의 탄생 연대를 당시에 왕들 부처님하고 직접적으로 관계되었던 빔비사라 왕이 있었지요.
빔비사라 왕이 누굽니까?
최초의 사찰이 뭐지요?
우리 교단사에 있어서 최초의 사찰은 죽림정사지요.
마갈타국의 빔비사라 왕이 시주한 절이 죽림정사입니다.
마갈타국의 빔비사라 왕하고 비교를 해보면 부처님께서 언제 사셨다는 것을 금방 알 수가 있는 거지요.
아까 얘기했던 아쇼카대왕하고 비교를 해 보면 부처님께서 언제 성인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는 겁니다.
당시 왕들의 재위기간과 비교를 해 보면 거의 정확하다 그런 이야기입니다.
요즘 많은 역사학자들이 연구를 해보니까 아까 얘기했던 부처님 탄생이 BC 566년이었다는 겁니다.
구체적으로 말씀을 드리면...
최초의 사찰 죽림정사를 시주했던 왕 불교 고단사의 아주 적극적인 후원자였던 빔비사라왕의
재위기간이 언제냐?
BC 545년에서 BC 494년 그 때가 재위기간입니다.
빔비사라왕의 아사세라는 아들이 있었는데 아사세가 빔비사라 왕을 폐위시키고 아들이 나중에 왕이 돼요.
그 때가 BC 494년입니다.
BC 494년이 아들 아사세가 왕권을 찬탈하고 자기가 왕이 되었는데 빔비사라 왕의 마지막 연도지요.
그때 부처님께서는 연세가 얼마냐 되었느냐?
72세요.
빔비사라왕이 폐위되던 그 때 부처님의 연세가 72세라.
부처님께서는 몇 세까지 사셨지요?
“80세”
8년 전에 이런 일이 벌어진 겁니다.
빔비사라왕의 마지막 연도가 494년이었으니까 여기서 8을 빼면 BC 486년이 입멸년이 돼요.
부처님 입멸년...
이것을 다시 거슬러서 부처님이 80세까지 사셨기 때문에 80을 더하면 탄생한 연도는 BC 566년이다
이 말입니다.
빔비사라왕의 기준을 보더라도 BC 566년에 탄생하셨다는 겁니다.
또 다른 하나의 고찰 근거로는 아까 말씀드렸던 아쇼카대왕입니다.
전륜성왕...정법으로 나라를 다스렸다고 하는 아쇼카대왕 아쇼카대왕의 재위기간은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시고 218년이 된 뒤에 왕이 나타났어요. 열반 드신 바로 그해부터 떠져보면...
그때 재위기간이 얼마냐?
BC 268년에 즉위해서 BC 232년에 돌아가셨어요.
이런 것은 역사적으로 정확합니다.
BC 268년에 즉위...BC 232년 폐위...
아쇼카왕이 즉위한 연대는 아쇼카석주 등 비문의 기록이 정확하게 나와 있기 때문에 이것을
보는 겁니다.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시고 218년 되는 해에 즉위를 했기 때문에 218과 268을 더하면 부처님의
열반연도는 BC 486년이요.
열반에 드신 것이 BC 486년이었기 때문에 탄생은 80을 더하면 BC 566년이 된다 이 말입니다.
아쇼카대왕의 즉위를 표준으로 보더라도 부처님의 탄생연도는 BC 566년이맞다는 겁니다.
세 번째 또 다른 자료가 있는데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시고 제1차 결집이
있게 되었습니다.
제1차 결집은 경전편찬 작업 제1차 모임이지요.
七葉窟칠엽굴에서 이루어졌다 그랬습니다. 칠엽굴...
부처님께서 막 돌아가시고 전격적으로 칠엽굴이라는 굴에서 500명의 부처님제자들이 모여서
바로 경전편찬 작업을 했지요.
물론 그때는 구두로 했다 이거지요.
그때는 우바리존자라고 하는 사람이 율을 외웠어요.
우바리존자가 그 뒤로부터 하안거를 마치고 인도는 하안거만 있습니다.
우기철이기 때문에 하안거만 있어요.
하안거를 마치고 우바리존자가 가지고 있는 율장에 점을 찍기 시작했어요.
일 년에 한 개씩...
이것이 계속 이어져왔다는 거지요.
한 번 따라해 보세요.
상가바드라
상가바드라
‘상가바드라‘라는 스님까지 전해져 왔는데 ’상가바드라‘라는 스님이 서기489년에 중국
광동성에서 975, 975번째의 점을 그때 찍은 거요.
서기489년에 975개의 점을 찍었다 이거요.
975에 서기489니까 그것을 거꾸로 환산해 가면 이것을 ‘중성점기‘라이렇게 말해요.
衆聖點記 중성점기... 무리 중衆, 성인 성聖, 점 점點, 기록할 기記자입니다.
점을 찍어가지고 부처님께서 언제 나셨는지 표시를 했다는 겁니다.
중성점기설, 중성점기라 말하는데 이 중성점기에 위해서 상가바드라가 중국 광동성에
들어왔을 때 975번째의 점을 찍었는데 그 때가 489년입니다.
975개의 점에 489를 빼면 BC 486이 돼요.
열반이 486이 되는 거지요.
열반 해에 점을 처음 찍기 시작했으니까...
중성점기를 보더라도 부처님께서는 BC 486년에 열반에 드셨고 탄생은 80을 더하면
BC 566년이 된다 이거지요.
이 세 가지 자료를 본다면 공통적으로 나오는 연대가 BC 624년이 아니라 BC 566년이라는
것이 확실해요.
지금의 불기하고 약58년의 차이가 있고 58년 늦게 부처님이 태어나셨다 이렇게 보면 돼요.
이쯤 되면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이라는 것이 얼마나 불안전한가?
회의를 느낄 때가 있어요.
우리는 BC 624년이 부처님 탄생연대라고 생각했는데 BC 566년이 더 증설이 된거니까요.
그림1번, 3번의 카필라궁전도 그렇습니다.
3번의 네팔 쪽 궁전 이것은 동문이거든요.
네팔에서 주장하는 카필라왕궁 터에 동문 쪽에서 허리 굽은 노인을 발견하고 봤다 이랬거든요.
네팔 쪽의 왕궁터만 보다가 뜬금없이 1번 여기가 인도에서 주장하는 카필라왕궁 터도 있다는 겁니다.
제가 작년에 여기를 가보게 되었어요.
룸비니메타스쿨 룸비니학교하고 룸비니도량을 건립 차 여기에 가게 되었어요.
인도에서 주장하는 카필라왕궁 터를 가게 되었는데 이것을 보니까 혼돈이일어나는 겁니다.
그럼 뭐가 진짜냐?
카필라왕궁 터가 네팔에서 주장하는 것이 진자인지 인도에서 주장하는 것이 진짜인지
그래서 지식에 대한 회의를 많이 가졌습니다.
지식이라는 것이 내가 직접 보고 듣고 한 것도 불안전하기 짝이 없구나.
부처님 진리의 말씀만이 영원하구나! 이런 것을 많이 느꼈지요.
내 눈으로 보고 내 눈으로 확인했는데도 1번인지 3번인지 믿을 수가 없는 겁니다.
인도 쪽의 카필라왕궁의 터가 진짜라고 주장하는 근거도 있어요.
왜냐하면 여기서 10분쯤 버스를 타고가면 ‘피포라와‘라고 하는 곳이
있는데 거기에서 1898년에 ‘페페’라고 하는 사람이 부처님사리를 여기서 발견했어요.
부처님사리가 나올만한 수투바, 탑이 있다는 것은 바로 부처님하고 관계가 깊다는 것인데
그런 사정을 봤을 때는 여기도 카필라왕궁 터가 아니겠는가?
하고 볼만한 이유가 되는 거지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룸비니동산하고 30키로 되는 좀 더 가까운 네팔에서 주장하는 왕궁 터가
진짜 왕궁 터가 아니겠는가?
이렇게 주장을 하지요.
두 부류의 주장이 일리는 있는데 기록문이 없으니까 대단히 어렵지요.
태자는 카필라국의 태자로서 29세까지 어느 궁전이든지 카필라왕궁에서 자라게 되었지요.
샤카족이라고 하지요. 그래서 샤카모니잖아요.
샤카족의 고타마라는 성을 가진 싯다르타는 룸비니동산에서 태어나서 카필라왕궁으로
옮겨지게 되고 어머니 마야부인이 7일만에 돌아가시게 돼요.
아까 아시타선인이 싯다르타태자의 관상을 본 것이 5일과 7일사이이고
마야왕비는 늦게 애를 낳아서 그랬든지 너무 큰 애기를 낳아서 그런지 7일만에 어머니가 돌아가셨어요.
그 얘기는 알고 있지요.
마야왕비가 7일만에 돌아가셨다.
당시에 풍습에 따라서 이모가 들어와서 애기도 키우고 정반왕하고 같이 살게 됩니다.
당시의 풍습입니다.
부인의 이름이 뭐지요?
“마하파자파티”
‘대애도’라고 하는 이모입니다.
한 번 따라해 보세요.
마하파자파티
마하파자파티
마하파자파티가 새어머니로 들어와 살게 되고 후일에 ‘난타’라고 하는 아들도 두게 돼요. 딸도 있었고...
난타는 법화경에서도 등장하고 아미타경에서도 등장해요.
난타도 나중에 출가를 했지요.
싯다르타태자의 입장에서는 배다른 형제가 있게 된 것이지요.
이모는 이모 겸 육모지요.
자기를 길러준 육모집에서 잘 자랐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어요.
태자가 일곱 살이 되었을 때 아버지 정반왕은 나라 안의 많은 학자와 무술가들을 특별 초빙해서
태자를 가르치기 시작했어요.
정반왕은 경쟁을 붙이기 위해서 샤카족 청년들을 수백명을 불러다가 경쟁을 시키기도 했고
학문적 경쟁, 무술적 경쟁을 시켰지요.
제왕이 될 만한 학문과 재주를 가르치면서 샤카족 청년들을 불러서 경쟁을 유도했다는 거지요.
태자는 어떤 사람들보다도 총명했다 그랬습니다.
의지력도 대단했다 그랬어요.
당시의 모든 학문과 무술을 다 익히는데 5년만에 64종의 문학과 28종의 무술을 섭력하였다 그랬어요.
대단한 사람이지요.
왕은 태자가 너무 똑똑해서 오히려 걱정이 되었어요.
세상의 것을 너무 빨리 통달해서 세상이 오히려 싫증을 느끼고 출가를 해버리지는 않을까? 걱정을 했어요.
아시타선인이 정반왕 숫도다나 왕에게 이야기를 했거든요.
이 사람은 전륜성왕이 되거나 아니면 출가를 해서 대성인이 될 것인데 어느 한쪽으로 될 겁니다.
왕이 되면 대왕의 입장에서는 좋겠지만 출가해서 수행자가 된다면 왕의 입장에서는 보통 문제가 아니지요.
혹시 출가를 해서 수행자가 될까 싶어 걱정이 된 거요.
너무 똑똑한 것도 탈이요. 걱정도 팔자지요.
너무 명석한 것이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자기 집 애들도 조금 더덤해도 다행이라 생각해야 돼요.^^
너무 똑똑해서 세상물정을 빨리 알아서 스님 된다 하면 그때는 또 섭섭해요.^^
자기 아이는 똑똑하기 때문에 출가해도 좋다. 출가를 허용하겠다는 사람은 신심이 아주 두터운
사람입니다.
정반왕은 오히려 그것이 걱정거리가 된 거요.
애가 너무 똑똑하니까 세상물정을 빨리 알아버리고 싫증을 내서 출가를하면 어떡하나 그것이 걱정이
된 거요.
드디어 번민의 숙제가 날아들었어요.
태자가 열두 살이 되었어요.
일곱 살 때부터 본격적인 무술, 본격적인 학문을 공부하기 시작했는데 태자가 열두 살 되었을 때
농경재에 참석을 했어요.
농경재라는 것은 밭갈이를 말합니다.
인도의 밭갈이는 어떻게 하는지 봐 봐요.
뒷면 12번 봐 봐요.
소가 한 마리 끕니까? 두 마리 끕니까?
소가 두 마리를 끌고 있어요.
우리나라는 시골에 농사짓는데 가보면 소가 한 마리를 끌겁니다.
저희들 어릴 때도 밭갈이를 하거나 논갈이를 할 대 소가 두 마리를 끌지는 안 해요.
그런데 인도는 두 마리가 끌잖아요.
두 마리가 밭갈이를 하고 있지요.
제가 얼마나 자상하면 이 사진을 찍어왔을까?^^
옛날에는 농경사회였으니까 왕이 봄이 되면 농경재, 밭갈이, 논갈이 행사에 참석을 했던 모양입니다.
연중행사였던 것 같습니다.
어제도 우리가 유치원 아이들하고 밀하고 보리를 수확하는데 지렁이가 아주많아요.
지네처럼 생긴 냄새나는 것이 있거든요.
그것이 뭔지 아십니까?
노린제비인가 그런 것 있잖아요.
아이들은 그것이 신기해서 떠들고 난리더라고...
거기에 지렁이가 있으니까 개구리도 많아요.
개구리가 또 지렁이를 먹거든요.
그것이 먹이사슬 아니겠습니까.
밭갈이를 하는데 굼벵이 같은 벌레가 꿈틀꿈틀 나오니까 작은 새 한 마리가 그 굼벵이를 물고
날아올랐어요.
그 작은 새를 저 멀리서 매처럼 큰 새가 보고 있더니 잽싸게 작은 새를 물고 날아 올라가버렸어요.
그것을 보고 왜 세상은 사람이나 짐승이나 서로 잡아먹고 잡아먹히지 않으면 안 되는가?
첫 번째는 먹이사슬...왜 약육강식의 먹이사슬이 있을 수밖에 없는가?
거기에서 크게 회의를 느꼈어요.
곧장 나무 밑으로 가서 고민을 하는 겁니다.
세상은 왜 이렇게 돌아갈 수밖에 없는가?
왜 힘이 강한 자가 힘이 약한 자를 먹을 수밖에 없는가?
그것을 염부수 아래의 정관이라 이렇게 말해요.
한 번 따라해 보겠습니다.
염부수
염부수
염부수라고 하는 나무 아래서 靜觀정관, 고요히 관찰했다 이 말입니다.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염부수 아래의 靜觀정관
염부수 아래의 靜觀정관
염부수라는 나무 아래서 명상에 들어갔어요.
사색에 들어간 겁니다.
정반왕이 태자가 안보이니까 찾아다녔어요.
염부수라는 나무 아래서 명상에 들어있는 그 모습을 보고 부왕은 연방 출가자하고 똑같다는
생각을 했던 모양입니다.
내 아들이 염부수 아래서 명상하고 있는 그 모습을 보고는 ‘내 아들이 수행자다. 수행자다.‘
하면서 걱정이 태산입니다.
정말 출가하면 어떻게 하나...
이 나라는 어떻게 하나...
종묘사직은 어떻게 하나...
걱정이 된 거요.
태자의 사색은 그냥 단순한 것이 아니었어요.
이것은 유추할 뿐이지요. 태자가 어떤 생각을 했는지 알 수 없지만...
첫째는 먹이사슬...왜 생명체들은 서로 먹고 먹히지 않으면 안 되는가?
또 유추해본다면..
두 번째는 왜 계급사회가 형성되어 있는가?
왜 이 세상은 지배자가 있고 피지배자가 있고 밭갈이 하는 사람이 있고 밭갈이 해 놓은 농사를
빼앗아 가는 사람이 있고 그런 생각을 했다는 거요.
당시의 계급사회에 대해서 스스로 문제를 던지고 회의를 했다는 겁니다.
15번 그림을 보시면...
그 사람들은 불가촉천민 수드라입니다.
이 사람들은 농사를 짓는 것도 아니고 거지 짓을 해서 살아갑니다.
아주 살기가 비참하지요.
자는 것도 노지에서 대충 텐트 쳐놓고 잡니다.
이런 사람들도 아이도 있어요.
그러면 그 사람들은 영원히 불가촉천민이지요.
이런 최하층 수드라입니다.
14번 그림을 보시면...
이 아이들은 평민아이들입니다.
농사꾼의 아이들인데 지금 먹고 있는 것이 뭐겠습니까?
사탕수수입니다.
우리가 어릴 때 수수깡 먹고 옥수숫대 먹고 했던 것처럼 아이들이 사탕수숫대를 먹고 있는 겁니다.
먹어보면 달작지근해요.
불가촉천민들은 수드라, 이 사람들은 바이샤, 그 위에 크샤트리아, 브라만 이런 사성제계급이
있다 했잖아요.
왜 이런 계급사회가 형성되어 있는가? 회의를 했다는 겁니다.
세 번째는 당시의 국제정세의 불안과 냉혹함에 고민을 했다는 겁니다.
당시의 가장 강성한 나라는 코살라국이고 또 강성한 나라는 마가다국, 마갈타라는 나라였습니다.
조그만 나라들은 평화롭게 공화정을 펼치면서 비록 나라는 적었지만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거대한 나라들이 나타나서 공룡처럼 먹어치우는 겁니다.
거기에서 태자는 많은 갈등을 했다는 겁니다.
태자가 열두 살 때 염부수 아래서 이 세상의 일을 관찰했다.
사색했다 하는 데는 당시의 정치나 국제간의 여러 가지 현실 등을 깊이있게 생각해보지 않았는가?
그렇게 보는 겁니다.
염부수 아래의 정관 이 사건이 있은 이후에 정반왕은 자기 자식 싯다르타태자를 걱정합니다.
‘이 아이가 출가를 하면 큰일이지. 큰일이지...’ 하고 자꾸 걱정을 해요.
좋은 것은 다해줍니다.
마음을 다잡고 사바세계에 남아 있으라고 계속 독려를 하는 거지요.
그래서 삼시전을 지어 줬다 그랬잖아요.
봄, 가을에 지내기 좋은 춘추전이라는 궁전도 집도 지어 주고 여름에 지내기 좋은 하전도 지어 주고
겨울에 지내기 좋은 겨울궁전 동전도 지어주고 했다는 겁니다.
태자의 마음을 돌리려고 애를 썼다는 겁니다.
온갖 수레...양이 끄는 수레, 소가 끄는 수레, 사슴이 끄는 수레 등 진귀한 수레들도 태자를 위해서
만들어 주고 진귀한 물건들로 방을 치장해주고 태자가 세속에 마음을 붙이고 살도록 잡아두려고
애를 썼다는 겁니다.
드디어 15세가 되었습니다.
15세가 되었을 때 태자는 네 문을 다니게 됩니다.
첫째는 동쪽 문을 나가게 되었어요.
동쪽 문을 나갔을 때는 허리굽은 노인을 발견했고 남쪽 문을 나갔을 때는 아주 병이 든
환자를 발견했어요.
서쪽 문을 나갔을 때는 장례의 행렬을 발견했어요.
요즘의 인도사람들은 장례를 어떻게 하는가?
13번 그림을 봐 봐요.
청년들이 둘러메고 가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시신입니다.
시신을 꽃으로 장식을 해서 가네요.
화장장으로 가고 있는 모습입니다.
태자는 장례행렬을 발견하고는 크게 고민을 했어요.
사람은 왜 태어나서 늙어가야 하는가?
왜 우리가 노인이 되어가야 하는가?
왜 우리가 병이 드는가?
왜 결국에는 죽을 수밖에 없는가?
여기에서 동쪽 문 나갔다가 고민을 하고 며칠 후에 남쪽 문 나갔다가 고민을 하고 며칠 후에
서쪽 문 나갔다가 고민을 했어요.
이 사실을 대부분의 책들은 25세 전, 후라 하는데 그것은 말이 안됩니다.
태자가 19세에 결혼을 합니다.
자기의 처갓집이라 해야 될까요.
그 집이 멀리 있었기 때문에 노인과 환자와 장례행렬을 볼만한 많은기회가 있었습니다.
이것은 제 생각이기도 하지만 15세쯤에 四門遊觀사문유관했다 하는 것이정확해요.
15세 되면 지금으로 보면 애가 사춘기거든요.
사춘기 때에 이런 것을 보니 감당이 안된거지요.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었지요.
동, 남, 서쪽 문으로 나갔다가 노, 병, 사를 보고 북쪽 문 쪽으로 나갔다가 몇 달이 되었든지
며칠이 되었든지 북쪽 성문 밖으로 나갔다가 무엇을 봤다 했지요?
수행자를 봤어요.
남루한 옷은 입었지만 얼굴은 평온했다 했잖아요.
수행자하고 얘기를 하다 보니까 수행자의 고민이 자기 고민이었어요.
왜 이렇게 집을 나와서 처자식도 없이 살아갑니까?
왜 사람이 나서 늙고 병들고 죽는가?
이것을 고민하고 있고 또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수행을 할뿐입니다.
들어보니까 자기 얘기예요. 자기 얘기...
그날은 너무너무 기뻤어요.
나도 수행자가 되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구나.
이런 기대감이 일어났지요.
수행자하고 얘기를 나누면서 돌아오는 그날은 너무너무 기뻤습니다.
수행자하고 돌아오는 길거리에 한 여인이 태자를 딱 한 번보고 마음이 변했어요.
한 여인이 길가에 서 있다가 너무나 환한 태자의 모습을 보고 금방 사모하는 마음을 일으켰다 그래요.
태자가 좋은 수레를 타고 그 사람이 태자인지 아닌지 표시가 되어 있는지는 모르지만 금방 변했어요.
사모하는 마음으로 노래를 했습니다.
한 번 따라 해보십시오.(본인이 여인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저런 아들을 둔 아버지와 어머니는 얼마나 즐겁고 기쁠까?
저렇게 멋있게 생긴 남자를 남편으로 맞이하는 여인은 얼마나 행복할까?
이런 글이 부처님 전기에 나오고 있어요.
그 날은 진짜 기뻤던 모양입니다.
길거리에 서 있던 여인도 반할 정도로 기쁨이 몸 밖으로 표출된 거지요.
왕(정반왕)에게 와서 이야기 했습니다.
“대왕이시여! 제가 출가하고 싶습니다.”
“안 된다. 너는 우리 집안의 하나밖에 없는 태자이면서 이 나라를 지켜야 되지 않겠느냐.
종묘사직을 보존해야지 출가는 절대 안 된다.“
아주 단호하게 이야기 했습니다.
“네가 원하는 것은 다 해줄게. 그렇지만 출가는 안 된다.” 이랬어요.
“아버지시여! 저에게 늙지 않고 병들지 않고 죽지 않는 길만 가르쳐 주신다면 아버지
말씀대로 출가를 포기하겠습니다.“ 그랬어요.
사람이 태어나서 결국 병들고 죽지 않는 방법이 어디 있느냐는 거지요.
태자가 워낙 완강하게 이야기를 하니까 정반왕이 조금 후퇴를 했어요.
“왕손을 얻기 전에는 출가를 할 수 없다.”
반은 출가가 허락 된겁니다.
그러니까 왕손을 얻으면 출가를 해도 좋다는 반쯤 승낙입니다.
그런 사건이 있은 이후에 19세 드디어 열아홉 살이 되었습니다.
같은 샤카족의 콜리성이라고 하는 작은 나라의 성주의 공주인 야소다라와 결혼을 하게 됩니다.
야소다라의 아버지는 대단했던 모양입니다.
싯다르타태자 사위를 테스트를 해요.
무술, 특히 활을 가지고 시합을 했습니다.
샤카족 장정 500명 장정 남자를 모아 가지고 활 시합을 붙인 겁니다.
싯다르타태자는 할아버지가 쓰던 활을 사당에서 내어 와서 그걸로 대결을 했습니다.
할아버지가 얼마나 힘이 좋았던지 아버지(정반왕)도 그랬고 그 밑에 다른 사람들은 활이
너무 무거워서 사용을 못하던 활입니다.
그것으로 활 시합에 참여를 했는데 태자가 얼마나 힘이 좋았는지 화살을 한방 날렸는데 과녁,
나무로 된 과녁을 화살이 통과했어요.
그래도 화살이 힘이 떨어지지 않고 땅에 꽂혔는데 물이 펑펑 솟아올랐다
했어요. 우물이 하나 파진 거요.
그 정도로 힘이 좋았어요.
야소다라 공주를 싯다르타 태자에게 줬어요.
요즘말로 하면 시집을 보낸 거지요.
야소다라 아버지도 아주 흡족했다는 겁니다.
야소다라와 싯다르타태자 사이에 애가 하나 낳았는데 그 이름이 뭐지요?
“라훌라”
라훌라를 언제 낳았느냐 하면 29세에 낳았어요.
어떤 책에서는 19세에 결혼을 해서 라훌라를 낳고 19세에 출가를 했다. 는 말도 있는데
그것은 제가 봤을 때 아닌 것 같아요.
19세에 결혼해서 29세까지 그 동안이 길잖아요.
거의 모든 경전에서는 야소다라만 부인으로 둔 것이 아니다 이랬어요.
이것을 잘못 이해하면 싯다르타태자도 여자가 많았네 하고 신심이 떨어질 수가 있어요.
지금 생각으로 하면 안 돼요.
옛날에 태자는 부인이 열도 되고 스물이 돼도 아무 문제가 없었어요.
거의 모든 증설은 싯다르타태자는 야소다라 이외에 비 가 둘이 더 있다고
보면 돼요. 무슨 일인지 다른 비 에게도 애를 안 낳았어요.
야소다라가 드디어 라훌라를 낳았습니다.
라훌라를 낳기 전까지 태자는 늘 출가를 동경했어요.
그렇지만 아버지하고 약속이 있어요.
왕손을 얻기 전에는 출가를 할 수 없다고 했잖아요.
출가는 못했지만 늘 사색하기를 좋아했어요.
숫도다나 왕이 밤중에 나가서 돌아보면 나무 밑에 앉아서 명상을 즐기고 사색에 빠져있거든요.
왕의 입장에서는 늘 고민이 되는 거지요.
안되겠다. 애를 환락의 생활로 밀어 넣어야겠다.
야소다라 이외에 마누라를 두 명이나 더 붙였는데도 마음을 못 잡고 사색이나 하고 있으니까
밤마다 연회를 베풀었다는 그런 기록들이 있어요.
그런데도 태자는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던 것 같아요.
드디어 29세에 라훌라가 태어나니까...
“아, 이제는 내가 출가해도 되겠다.” 이런 생각을 해요.
성질도 무척 급했던 것 같아요. 라훌라 낳고 7일 만에 출가를 해요.
출가의 목적이 있어요.
한 번 따라해 보세요.
내가 출가하는 것은
병듦이 없고
늙음이 없고
죽음이 없고
근심, 걱정, 번뇌가 없고
지저분함이 없는
가장 안온한 행복의 삶
즉 열반을 얻기 위해서이다.
이런 말을 하면서 출가를 하게 되는데 출가하는 날 전날 저녁에도 파티가 있었어요.
궁녀의 아름다운 미녀들이 술을 따르고 놀았던 거지요.
태자가 출가를 해야 되겠다는 마음을 먹었는데 눈을 비비고 일어나 보니 새벽이라.
여자들이 여기저기 엉켜있고 옷은 반쯤 입고 침도 흘리고 머리카락도 엉켜서 흐트러진
모습을 보니 여자들에게 질려버렸어요.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서 시종 찬타카를 깨웠습니다.
시종이름이 ‘찬타카‘라.
시종이름은 찬타카인데 말 이름은 ‘칸타카’라.
말을 빨리 몰아오라고 했어요.
“태자시여! 왜 이러시오.”
“바람 쐬러 가련다. 바람”
새벽에 바람 쐬러 간다 이거지요.
드디어 성 밖으로 나가게 됩니다.
이것을 극적으로 표현해서 성을 넘었다. 유성출가라 했는데 말을 타고 성을 넘을 정도면 성이 아니지요.
그러니까 정문으로 나가겠지요.
태자가 바람 쐬러 나간다는데 문지기가 문을 안 열어주면 어떻게 돼요.
내 생각에는 유유히 정문을 통해서 나갔다고 생각이 돼요.
그 문을 나가면서 태자는 결심을 했습니다.
한 번 따라해 보십시오.
생노병사의
근심걱정을
해결하지 않으면
다시
고향에 돌아오지 않겠다.
이런 결심을 했어요.
이것은 현재 스님들의 출가 결심하고 비슷해요.
저도 처음에 출가를 했어요.
버스를 타고 우리 집을 나오는데 알 수 없는 눈물이 쏟아지면서 내가 목적했던 그런 부분을
달성하지 않으면 다시는 이 길을 오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앞에 소매가 흠뻑 젖도록 울었지요.
그렇게 울어 본적도 없고 그 뒤로도 울어 본적이 없어요.
아마 부처님도 그런 심정이었던 것 같아요.
통도사를 갔더니..
통도사 스님들이...
“집이 어디고“
경주라고 했더니 불국사가 가까이 있는데 뭐 하러 왔냐고 그래.^^
인연이라는 것이 다 그렇지요.
여기 거사님은 합천에서 오셨다고 했지요.
낮에는 보니까 전주에서 오시는 분도 있어요.
아침 7시에 출발해서 공부를 하려고 하는 사람도 있는데 어떻게 공부를 안하느냐는 거지요.
아무튼 우리 부처님 싯다르타태자는 그렇게 해서 찬타카를 데리고 출가를 하게 되었는데 3
50킬로미터를 갔어요.
‘아노마‘ 또는 ’아누마‘ 라는 강이 있는데 그 강까지 갔어요.
이 강이 아주 유명한 강입니다.
저는 인도를 많아 다녔지만 작년에 이 강을 봤어요.
아노마 강이 어떻게 생겼는지 11번을 봐요.
제가 사진 찍어 놓은 것을 보니 정말 자상한 남자 같아.^^
지금 이것은 건기라. 우기 때는 물이 가득 차겠지요.
근기라서 물이 조금 말라서 그렇지 우기 때는 강이 가득 차겠지요.
아노마, 이 아노마 강까지 이르렀어요.
350키로면 여기서 서울까지 안되겠습니까?
카필라왕궁에서 350키로의 거리입니다.
작은 부족국가를 하나 지나고 두 번째 부족국가 말리족이라고 하는 부족국가까지 온겁니다.
그리고는 시종 찬타카에게 말했어요.
시종 찬타카가 그냥 가려고 하겠습니까?
“저는 못갑니다. 이대로 가면 저는 죽습니다.”
“내가 출가했다는 증표다.” 면서 머리카락을 잘라서 찬타카에게 줘요.
부왕에게 전해라.
생노병사의 괴로움을 끊고 나서 일체중생들의 반려자가 될 것이다.
|
이 말씀을 꼭 전해라.
머리카락은 각오이거든요.
마부 찬타카가 그 머리카락을 가지고 고향으로 돌아가게 돼요.
부처님은 강을 건너서 어디까지 가시느냐?
바로 강을 건너면 7번 나옵니다.
그 곳을 현재 ‘케살리아’라고 말합니다.
7번, 8번, 9번까지 같은 곳입니다.
방향에 따라서 찍은 것이고 9번은 더 접근해서 찍은 겁니다.
케살리아라고 하는 이곳이 부처님의 출가 장소입니다. 출가지라...
여기서 스스로 머리를 깎고 출가, 수행의 길에 들어서게 된 처음입니다.
(부처님께서 머리를 깎고 수행의 길로 들어선 출가장소 케살리아)
언제 이 유적지가 발견되었느냐?
이 케살리아도 제가 작년에 만났는데 그 동안은 묻혀 있었던 겁니다.
7번 그림을 보면 나무가 많이 서있지요.
이쪽도 나무로 다 덮어져 있었는데 흙을 파고 나니까 지금 8번 그림처럼 적벽돌이 다 드러납니다.
탑처럼 되어 있는 거지요.
불심이 있었던 우리 불자들이 이곳 케살리아는 부처님의 출가지니까 성지로 하자 해서 탑을
만들었던 모양입니다.
탑을 만들면서 곳곳에 돌아가면서 부처님 상을 새겼는데 이 상을 이슬람 사람들이 쳐들어와서
다 파괴를 했어요.
이슬람 군이 물러나고 난 뒤에 좀 파괴되었지만 성지는 그대로 남아있어야 한다고 모든
불교도들이 이 동산을 모두 흙으로 덮어 놓았어요.
흙으로 덮어 놓은 것이 7, 8년 전에 발견이 되어서 반 정도 모습을 드러낸겁니다.
7번 그림 봐요.
반은 아직 덮어져 있고 반 정도는 아직 그대로 있잖아요.
이 땅 지명 이름이 아주 중요한 것 같습니다.
부처님의 출가지, 아노마강을 건너서 케살리아 동산, 케살리아 숲에서 출가를 했다는 겁니다.
처음에 출가를 맡긴 찬타카는 돌아가고 거기서 최초로 만난 사람이 사냥꾼이었어요.
숲속에 사냥하러 온 사냥꾼이었는데 사냥꾼에게 얘기했습니다.
“당신은 뭐하려고 그렇게 살며시 돌아다니느냐?
“나는 사냥하는 사람이오”
“왜 남의 생명을 빼앗아 가면서 그렇게 삽니까?“
당신은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지만 내가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
나는 사냥하지 않으면 굶어 죽는다. 가족들이 다 있다. 이래요.
내가 당신에게 굶어죽지 않을 만큼 재산을 준다면 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입고 있었던 태자의 옷을 사냥꾼에게 주면서 살생하지 말고 이것을 팔면 몇 평생 살것이다.
하고 옷을 벗어 줘요. 옷이 엄청 비쌌던 모양입니다.
“내가 발가벗고 다닐 수는 없으니까 입고 있는 옷을 주시오.“ 했습니다.
사냥꾼이 그때 노란 옷을 입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이 노란 옷이 최초로 출가해서 바꿔 입은 옷이 노란 옷입니다.
이것이 노란 가사가 되었다 이래요.
자기가 입었던 아주 고급스러운 옷을 사냥꾼에게 주고 사냥꾼이 입었던 노란 옷을
(노란 옷은 평화를 상징한다는 뜻이 있습니다.) 본인이 입고 드디어 스스로 삭발을 하고
망고의 숲에서 출가의 기쁨을 누렸습니다.
왕궁에서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힘들겠습니까?
감시하는 사람도 많을 곳이고 이제는 찬타카도 가고 혼자잖아요.
7일 동안에 망고 숲에서 출가의 기쁨을 누렸더라 그랬습니다.
그 뒤로 어디를 가느냐?
아까 이 앞쪽에서 말씀드렸던 마가다국으로 가게 돼요.
빔비사라왕이 통치하고 있었던 마가다국으로 가요.
마가다국(마갈타)은 옛날에는 모든 수행자들이 집결하는 그런 나라였다 했어요.
그 나라의 수도가 왕사성이지요.
왕사성에서 드디어 이제 많은 일들이 벌어지게 되는 겁니다.
그 얘기는 다음 초하루 날에 말씀드리겠습니다.
다음에는 29세에 출가한 이후 케살리아에서 부터 나중에 보리수 아래서 깨달음을 이루시던
기간까지 29세에서 35세까지 말씀을 드릴테니까 기대하시기 바랍니다.
초하루에 오신 공덕으로 가정이 편안하시고 하시는 일들이 잘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초하루 법문은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관세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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