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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사설을 읽는 재미! |
번호 41834 글쓴이 논가외딴우물 (msmwjp) 조회 2407 누리 578 (578/0) 등록일 2009-5-15 11:26 | 대문추천 21 참고자료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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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다수 언론이 '사실상 사퇴를 촉구했다.'는 식으로 회의 결과를 전하는 제목을 취했는데 반해, 마치 다른 회의를 전하고 있다고 느낄 정도로 결과를 전혀 다르게 전하는 제목이 몇 개 눈에 뜨인다. 이즈음엔 글이 이만큼 나가면 그게 어느 신문인지 대다수 국민도 알 만큼 신뢰도가 떨어진 '조중동 삼형제'다. 기사 본문이야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제목만을 보면 그렇다. 세 신문은 뉴스 도매상인 연합뉴스의 '판사회의 "申, 대법관직 수행 부적절"', '판사회의서 사실상 사퇴 촉구.. 申 행보는'과, 서울신문의 '법관신분 보장 싸고 치열한 논쟁' 등, 일부 스포츠 신문까지 최소한 대법관 수행의 부적절, 또는 치열한 논쟁이 있었다는 식으로 제목을 달았음에도, 조선은 '신영철 대법관 사퇴 요구 않기로', 동아 '신 대법관 사퇴 촉구 않기로', '사법제도 개선 힘쓸때, 신중론 우세', 중앙 '판사회의, 신 대법관 사퇴 촉구하지 않기로'라는 식으로 제목을 달고 있다. 제목만 보면, 판사회의에서 사퇴를 촉구하지 않기로 했다고 전하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연판장 서명 등, 보다 과격한 집단행동 결의 등이 나오지 않았음을 들어 이 사태가 일단락되리라 전망하고 있는지, 아니면 일단락해야 한다는 여론을 만들려고 하는지는 모르겠으나, 그중 백미라 할 1등 신문 조선일보의 '판사들의 집단행동, 선(線) 넘어선 안 된다'라는 사설이 눈에 뜨여 읽어 보았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9/05/14/2009051401981.html
사설은 본론에 들어가기 전, 중앙지법 단독판사 80여 명과 남부지법 단독판사 31명이 이용훈 대법원장의 엄중경고와 신 대법관의 공식 사과가 있었음에도 회의를 개최했으며, '신 대법관의 행위는 명백한 재판권 침해이며, 대법관 업무수행이 적절치 않다'는 의견이 다수였다고 전하고 있다. 대법원장의 경고와 대법관의 공식사과가 있었음에도 회의가 강행되었고, 대법관에 대하여 업무수행이 적절치 않다는 의견들이 대다수였다는 것의 의미는 사실상의 사퇴 촉구 이외에 다른 결론으로 유추할 방법은 없다. 대법관에 대하여 대법관 업무를 수행하지 말라는 것인데, 대법원 내에서 대법관이 수행할 수 있는 다른 보직이 있는 것도 아니므로 결론은 사퇴하라는 얘기다. 사설은 이어서 2006년 2월 9일 이용훈 대법원장이 각급 법원 부장판사들을 대법원장 공관에 모아놓고 "기업인 비리 재판에서 국민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다"라고 경고 발언한 예를 들면서, 이것이 이번 신 대법관의 '재판 신속진행 촉구' 이메일과 비교할 수 없을 만한 강도의 재판 관여였다고 볼 수 있었음에도 당시에 이 대법원장의 발언을 놓고 불평불만을 표시했던 판사는 없었다면서 이번 판사회의에 대하여 우회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2006년 2월 8일 회사 돈 286억 원을 횡령한 대기업 사주들을 집행유예로 풀어준 데 대하여 대법원장이 부장판사들과의 회동에서 발언한 것을 두고 재판 관여라고 규정한 것이다. 대법원장이 공석이라 할 수 있는 자리에 부장판사들을 소집해 기본적인 훈시를 한 것과 특정 판사에게 특정 사안에 얽힌 재판을 몰아주기 배당하고, 위헌심판 중임에도 신속하게 재판하라고 특정 판사에 이메일로 촉구한 것과 대법원장의 발언을 단순 비교해도 될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반인이 286억 원이 아니라 286만 원만 횡령해도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모르지 않을 터, 이에 대하여 후배 판사들에게 훈시도 공식적으로 못하는 대법원장이 무슨 필요가 있을까? 참으로 비교한 사안이 옹색하기 그지없다. 사설은 이에 그치지 않고, 언제나 조선일보가 그랬듯이 색깔 논쟁으로 비화시키고 있다. 이 논란은 작년 7월 광우병국민대책회의 조직팀장에 대한 공판을 맡았던 판사가 지난 2월 사표를 내면서 행한 고백에서 비롯되었으며, 그의 사표 직후 판사들이 신 대법관의 이메일을 언론에 유출해 벌어졌다는 것이다. 또한, 특정 이념 성향을 갖는 '우리법 연구회' 판사들이 많이 참여하고 있다면서 이념과 성향에서 확실한 색깔을 가진 판사 그룹이 존재한다는 것을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나아가 사설은, 대법원 윤리위원회가 신 대법관의 행동에 대하여 '사법행정권의 일환이었지만 외관상 재판 관여로 오해될 수 있는 부적절한 행위'로 규정, 재판권 침해는 아니었다고 인정받았으므로 신 대법관의 행동거지가 비록 신중하지는 못했다 하더라도 이를 두고 소장 판사들이 집단적으로 항의하는 것은 지나치다면서 이를 '대학 연구실에서 지도교수를 제쳐놓고 석·박사 과정 학생들이 투표로 연구방법과 연구이론의 방향을 결정짓겠다고 하는 것이나 한가지다'라는 식으로 비화시키고 있다. 이런 연구실이 있을 리도 없을 테지만, 사람 사는 세상의 최소한의 규칙이라 할 사법의 장과 자연과학의 진리를 탐구하는 장이 이렇게도 만날 수 있는가 하는 생각에 잠시 머리가 아파질 정도다. 언제나 이 사회를 계몽해야 하는 지도자적 발언으로 마무리해야 직성이 풀리는 똑똑한 조선일보 사설이 이 정도로 멈출 리는 없을 터, 계속 읽어보면 '소장 판사들이 자기들 손으로 법원의 권위를 허물면 언젠가는 자기들 어깨를 집어넣어 무너지는 법원을 지탱해야 할 날이 올지 모른다.'로 사설은 마침표를 찍는다. 한마디로 판사들에게 가라사대, 기왕지사 권력이 되었으니 앞날을 생각해 스스로 피곤할 일은 만들지 말라는 협박 아닌 유혹으로 마무리했다고나 할까? 어려운 상황에서 이런 논조를 만들려고 누군가 꽤 고생했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예 인터넷 매체인 뉴데일리처럼 '좌경판사들의 신영철 사퇴압력은 사법부 흔들기'라는 제목으로 사설을 쓰라고 하면 더욱 잘 쓸 수 있었을 조선일보의 어느 글쟁이에게 위로의 말을 전하고 싶을 정도다! 이래서 조선일보 기자는 대한민국 기자 중 최고 수준의 월급을 타 먹을 자격이 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니 어쩌겠나. 객관적으로 인정되는 권위와 시민 주권, 그리고 인위적으로 꾸며댄 권위와 기득 권력이 충돌하는 시점이 언제일지는 모르겠지만, 언제까지 그야말로 행간을 읽는 글읽기를 해야 하는지, 조선일보 기사를 보는 재미는 실로 공포스럽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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