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효 아키텍트-115] 브랜드를 만드는 건축가 김동진(上)
매일경제 2022.02.04
▲ 이태원 '블로피시' / 사진 제공 = 로(L'EAU) 건축사사무소
[효효 아키텍트-115] 로(L'EAU) 건축사사무소 대표 김동진이 대학을 졸업하던 1980년대 후반 국내 건축업계에서는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 1930~2004년)가 철학적 기초를 제공한 비정형 해체주의 양식이 유행하고 있었다.
해체주의는 이미 1970~1980년대 피터 아이젠먼(Peter Eisenman·1932년~)의 뉴욕 건축도시연구소(IAUS·Institute for Architecture and Urban Studies)를 중심으로 대니얼 리버스킨드(Daniel Libeskind·1946년~ ), 베르나르 추미(Bernard Tschumi·1944년~ ), 렘 콜하스(Rem Koolhaas·1944년~ ) 등이 주도했다.
데리다의 후기구조주의 이론을 앞세운 이들은 새로운 형태와 공간(form and space)은 설계 과정의 해체(deconstruction)를 통해 다시 건축을 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피터 아이젠먼의 카드보드(cardboard) 건축인 하우스6 (House VI)가 대표적 사례다.
김동진은 한때 근대 모더니즘 건축가 미스 반데어로에에 푹 빠졌으나 자신과는 이질적임을 알았다. 동시대 인물 르코르뷔지에를 탐색하다 그의 건축과 정신에 가장 충실하다고 평가받는 건축가이자 교육자인 앙리 시리아니(Henri Ciriani·1936년~)를 사사한다. 그럼에도 김동진은 반데어로에를 그냥 두지는 않는다. 그에 대해 특강을 할 정도이니까 말이다.
프랑스 파리벨빌국립건축대에서 만난 시리아니는 문제의 접근과 해결 방법은 논리적이나 결과물은 감각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20세기 말에 배워 21세기에 활동하는 김동진은 '시리아니가 내 또래였으면 어땠을까'를 항상 생각한다. 유학파 출신들 대개가 스승의 스타일을 배워 와 양식에 구겨 넣는 건축을 하기에 스스로를 경계한다.
지난 세기 건축가들은 물리적 공간을 만드는 데 치중했으나 동시대는 물리적 형식은 중요하지 않다. 김동진은 "가상과 현실의 중간 지대에 머물러 있는 느낌이다. 새로운 장소성에 걸맞은 새로운 건축 형식을 찾고 있다"고 말한다. 장소성 '제니우스 로사이'(Genius Loci, 장소의 혼)는 고전이 되었다. 그는 대학 전임 교수이며 독립된 건축사무소를 경영한다. 대학에서는 인문적인 사고를 도출하는 데 치중하면서 연구와 세미나를 이어간다.
동시대 건축가는 기능이 부여되는 시설을 만드는 게 핵심 역량이 아니다. 새로운 프로그램 개발에 최우선을 두어야 한다고 본다. 대지에 기능적인 평면과 형태를 디자인하고 스타일을 추구하며 멋있게 사는 삶은 그 다음이다. 집을 짓는 목적은 잘살기 위함이기에 김동진은 주택에서의 거실, 업무 공간인 회의실개념도 재정의한다.
중층 주택에서 거실은 기능별로 분화되어야 하며, 사무공간의 회의실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형식 자체가 관계를 정한다고 본다. 원탁은 참석자들이 동일한 권리를 가진다. 타원은 중앙 집중적이다. 좌우 건너 사람 얼굴이 보이지 않는 장방형은 참석자들이 수동적이다.
종교마다 경배의 대상인 신의 개념조차도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2년여 지속된 코로나19 팬데믹은 성직자와 신자 간 대면이 핵심인 종교의 역할을 중지시켰고, 신자들을 이탈시켰으며 각 종교 건축 공간에 새로운 변화를 요구한다.
필자는 얼마전 매일경제 주최·주관의 발당장애인 전시회 자리에서 모 가톨릭 수도회 소속의 신부에게 "개신교 부흥회에 오라고 초청받았으나 거절했다"고 말했다. 그는 "왜 가지 않았느냐, 개신교도 가톨릭과 같은 뿌리"라고 말해 잠시 혼란스러웠다. 유럽은 이웃 종교와 한 공간에서 미사(예배)를 집전하는 교회 일치 운동(Ecumenical movement)이 일어나고 있다.
김동진은 새로운 시대에 맞게 정말 필요로 하는 장소와 공간, 즉 형식을 만들어 나가면 새로운 틀이 만들어진다고 본다. 다양한 필요에 따른 '내부의 삶'에서 시작한 건축은 시대에 따라 외부가 자연스럽게 나온다고 본다.
▲ 이태원 '블로피시' / 사진 제공 = 로(L'EAU) 건축사사무소
인근 용산 미군부대가 이전하며 공원으로 변모되었고, 건물은 삼각형의 대지에 오래전에 지어진 수차례 재료와 형태를 바꿔가며 정체성 없는 하나의 덩어리가 되어 있었다. 기존 철근콘크리트에 철골을 더하는 리노베이션으로 방향을 잡았다. 건물 이름 '블로피시'(blow fish, 2020년)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몸을 부풀리는 물고기에서 유래한다.
'욕망의 운반체'(vehicle of desire)인 자동차가 주요 건축물의 로비 등 주요 공간 내부에서 전시 상품이 된 것은 1980년대 후반부터이다. 마이카 붐에 따른 자동차 대중화 시대가 도래한 때였다. 자동차 쇼룸과 사무실을 겸한 공간은 대로변 모퉁이 길에 많이 들어섰다. 밤에 조명을 켜 놓아 건물 자체가 빛났다. 건물주들은 건물 가치가 높아지는 자동차 전시장을 입주시키려고 애썼다.
외제차(수입차) 시장이 본격적으로 열리기 시작한 2000년대 들어 강남에 새로 구축된 전시장은 개념을 달리했다. 1층 평면 공간에 전시되던 차들이 3, 4층 이상에 전시되어 그 자체로 건물 파사드를 만들었다. 승용차를 리프트로 통째로 이동시켜 상층부에 전시한다는 개념은 신선했다. 야간에 자동차 주행을 하며 바라보는 전시장은 조명이 승용차 금속 도장에 비추어져 고급스러움과 화려함의 극치를 더했다. 상대적으로 주변 기존 단층 쇼룸에 갖힌 최신 디자인의 프리미엄 브랜드 차들이 구식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레저용 이륜차, 즉 모터사이클은 대중 승용차나 고급 수입차와 달라야했고, 서울 충무로 가로변에 늘어선 대중적인 일본제들과 전시장 위치와 디스플레이 콘셉트가 달라야 했다. 한국에 뒤늦게 진출한 미국 브랜드 인디언(INDIAN)은 거대 산업으로 발전한 모터사이클 시장에서 빠른 시간 내에 메이저 브랜드인 두카티, 할리데이비슨, BMW급 브랜드에 포지셔닝되어야 했다.
모터사이클은 중년 남성의 로망이다. 온·오프로드 레이싱도 브랜드별 동호회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인디언은 안소니 홉킨스 주연의 영화 "세상에서 가장 빠른 인디언"으로 수년 전부터 알려졌다. 한때 생산이 중단되었던 100년 넘은 아메리칸 스타일의 모터사이클이 건축물과 전시장으로 한국 시장 브랜드 구축에 도전한 것이다.
건축물은 프로그램 성격에 따라 지어지는 게 바람직하나 건축주가 오너인 기업의 업태가 위치를 규정하며 기업은 생래적으로 자체 사옥을 갖길 원한다. 임대료 절감과 부동산 가치 상승이 목적이다. 메트로폴리스 서울에서 연차가 낮은 기업이 번듯한 사옥을 갖기는 쉽지 않다.
▲ 파크 애드호크라시 외관 / 사진 제공 = 로(L'EAU) 건축사사무소
사람이 핵심 자원인 네트워크 사업 본사는 주력 시장인 큰 대도시에 자리를 잡아야 한다. 사람을 도제식으로 길러내는 교육장은 대중교통과 연계가 원활해야 하며, 자체 주차장도 갖추어야 경쟁력을 갖는다. 네트워크 기업의 사옥을 대도시 및 수도권을 떠나 충남 공주에 마련하는 시도 자체가 업계에서는 파격이라고 평가받는다.
▲ 파크 애드호크라시 내부 / 사진 제공 = 로(L'EAU) 건축사사무소
네트워크 기업 애터미(ATOMY) 사옥인 '파크 애드호크라시'(Park Adhocracy, 2019년) 건축주는 건축가에게 업(業)의 성격을 일부러 다 드러내지 않은 듯하다. 그랬기에 건축가는 건축주에게 '일과 삶의 경계 허물기'라는 콘셉트로 사무 공간의 고정 개념을 다 뒤집어 놓았으며, '사용자가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할 수 있었을 것이다.
수영장과 헬스장도 설계에 반영했지만 전체적으로는 성인용 놀이터와 같은 공간을 염두에 두었다. 상근 사무직과 방문자들의 동선이 겹치지 않도록만 주의했다. 건축가는 '오피스가 이렇게도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건축가는 절대 공간의 고정 틀 속에서 다양한 프로그램에 반응할 수 있는 다중적 내부 공간 형식을 적용했다. 관광버스로 피교육자들을 실어나르고 그 공간에 사람들을 풀어놓고, 그들끼리 교류하게 하는 현상을 '일종의 놀이 같은 것'으로 본 듯하다.
▲ 행당 거꾸로 된 파테마 / 사진 제공 = 로(L'EAU) 건축사사무소
서울 성동구 '행당 거꾸로 된 파테마'(Patema Inverted, 2019년)는 왕십리 일대의 맥락을 고려해 수직적으로 입면을 분할한 프로젝트로, 근린생활시설·오피스·오피스텔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건축물 하나에 담겨 있다.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 '파테마 인버티드'는 하늘을 공유하면서 반대의 중력이 존재하는 세계를 설정해 놓고 서로를 통해 차이를 인지하고 화합을 이루어가는 스토리다.
'파테마'는 지하세계에 살고 있는 족장의 딸이자 호기심 많은 열네 살 소녀다. '파테마'는 중력이 반대로 되어 있는 지상세계로 나오게 되면서 소년 '에이지'와 마주친다. 건축물이 파테마이고 시장은 에이지인 셈이다.
시장 초입에 위치한 건물은 1, 2층을 붉은 벽돌과 투명 유리를 외장 재료로 하고, 시장 사거리 쪽으로 오픈된 카페를 배치했다. 저층부는 인근 근린생활 시설 건물군과 비슷한 레벨의 하얀색 볼륨으로 구성했으며, 그 위 주거 부분은 두 가지 톤의 회색 시멘트 벽돌로 마감했다. 주변 환경에서 추출된 3가지 레벨을 적용했으며, 수직적 분절과 오밀조밀한 도시 풍경을 담으려고 했다.
[프리랜서 효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