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쓰는 데 제법 오랜 시간이 걸렸다. 시적인 영화란 무엇일까, 그 범주에는 어떤 영화가 속할 수 있을까를 곰곰 생각해보던 도중, 나는 ‘시적’이라는 것, 나아가 ‘시’라는 것에 대해서도 점점 자신이 없어졌다. 시의 경향이 바뀔 수 있듯이, ‘시적’이란 말도 변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시인이나 시네아스트를 중앙에 놓는다면, 그것을 ‘개인적인 공시성individual synchronicity’이라 불러도 좋을 것이다. 가령, 폴란드의 영화감독 크쥐시토프 키에슬롭스키처럼 초기엔 《야간 짐꾼의 시각에서》(1977), 《기차역》(1980)과 같은 다큐멘터리 제작에 힘을 쏟다가 나중에 《베로니카의 이중생활》(1991), 《세 가지 색 시리즈: 블루, 레드, 화이트》(1993-1994) 등 형이상학적인 극영화를 제작할 수도 있지 않은가. 물론, 키에슬롭스키의 작품 경향이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갑자기 변경된 것은 아니다. 그가 제작한 여러 장·단편영화(가령,《눈먼 기회》(1981) 등)는 다큐멘터리와 극영화를 반씩 섞어놓은 듯한 느낌을 가져다준다. 그러나 그가 《살인에 관한 짧은 필름》(1988)과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1988)을 거쳐 제작한 영화《베로니카의 이중생활》(1991)은 키에슬롭스키가 다큐멘터리의 외피를 벗고 과감하게 이미지에 심취하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시작時作에 있어 풍자와 코미디를 가장 중히 여기는 시인에게는 버스터 키튼의 영화나 루이스 부뉴엘의 후기작들이 시적일 수 있을까. 이런 나의 고민은 과연 시적인 영화가 가능한가, 그렇다면 연극적인 영화는, 조각적인 시, 회화적인 연극은 어떨까 따위의 질문으로 이어졌다. 만약 내가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노스탤지어》(1983)나 테오 앙겔로풀로스의 《영원과 하루》(1998), 혹은 빔 벤더스의 《베를린 천사의 시》(1987)에 대해 썼다면 다소 수월했을 것이다. 적어도 이 영화들 속에는 아름답고 쓸쓸한 이미지가 넘쳐난다. 루치노 비스콘티의 《베니스에서 죽다》(1971)는 또 어떤가. 토마스 만의 동명 소설을 바탕으로 만든 이 영화는 말러 교향곡 5번의 서정적 선율에 모든 대사와 이미지들이 녹아 있다. 예컨대, 콜레라의 창궐로 점점 창백해지는 베니스의 골목, 햇빛 쏟아지는 바다, 황폐해진 모래밭에서 뒹굴며 노는 미소년들, 작곡가 아셴바흐의 회상 장면 등이 음악을 타고 교차적으로 펼쳐지는 것이다. 젊어지기 위해 염색(dye)까지 했지만 결국 모래밭의 벤치 위에서 비참하게 죽고(die) 마는 아셴바흐의 마지막 모습은 대단히 인상적이다. 산문적이면서도 최면적 서사성을 지닌 주관적 이미지-기호들의 집합을 ‘시적 영화’라고 보았던 파졸리니에게는 《베니스에서 죽다》야 말로 가장 시적인 영화였을지도 모른다. 영화에서 재현된 언어의 중요한 특징으로 파졸리니는 구술성, 울림성을 지적하는데, 이 말은 등장인물의 말하는 방식, 어조, 악센트 등이 영화 내에서 ‘시의 언어’가 된다고 믿는 것과 다름 아니다. 이 점에 있어서도 《베니스에서 죽다》는 시적 언어의 이상이 철저히 실현되는 작품인데, 이는 주인공 아셴바흐의 신경질적인 목소리와 독특한 악센트가 베니스가 지닌 휴양지 인상과 자꾸만 충돌하기 때문이다.
나는 일단 한 발짝 뒤로 물러서기로 했다. 문자가 시를 창조하듯, 이미지가 영화를 정의하는 데 유용한 것은 분명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시적인 영화란 어쩌면 이미지로 문자-언어를 창조하려고 부단히 노력하는 영화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려면 자연히 기존의 영화규칙들을 거부해야 할 테고, 그 과정에서 놀라운 상상력과 기지가 발휘될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나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예술계의 영원한 ‘앙팡 테리블’ 이 말은 장 콕토의 소설 제목에서 처음 사용되었다. 장 콕토를 떠올렸다.
화가 혹은 시인의 운명-《시인의 피》
장 콕토는 대단히 용기 있는 청년이었다. 그가 《시인의 피》(1930)를 만든 것은 마흔이 넘어서였지만, 앞에서도 언급했듯 그는 언제나 앙팡 테리블로서, 사람들을 깜짝깜짝 놀라게 하는 재주를 지니고 있었다. 주지하다시피, 그는 시인이었고 빼어난 피아니스트였으며 어떤 때엔 발레곡을 쓰기도 했다. 오늘날 르네상스 맨, 종합예술인이란 용어가 하나의 유행처럼 쓰이고 있지만, 콕토만큼 다방면에 족적을 남긴 예술가는 드물 것이다. 다재다능했던 콕토였지만, 때때로 그는 비평가들의 신랄한 공격을 받아야 했다. 공격의 요지는, 그가 다양한 예술 장르에 개입하였지만 실제로 어떤 영역에서도 최고의 지위에 오르지 못했다는 것이다. 부르주아 출신에서 오는 경제적 윤택함은 그가 여러 장르에서 ‘스스로 원하는 대로’ 실험을 할 수 있도록 도왔다. 또한 자유로운 사고방식은 그로 하여금 자신이 품고 있는 것을 영화에 담을 수 있게 해주었다. 《시인의 피》는 다음의 문장들이 화면을 가득 채우며 시작된다. “모든 시는 문장紋章이다. 그것은 판독되어야 한다. 얼마나 많은 피와 눈물을, 도끼와 총구, 유니콘, 횃불, 탑, 발 없는 새, 별의 묘목, 그리고 푸른 들판과 맞바꾸어야 했는가!” 이어서 1부 제목 ‘상처 입은 손이냐 시인의 흉터냐’가 성우에 의해 발설될 때, 우리는 이미 불안하다. 왜냐하면 흔들리는 탑의 모습이 우리의 시선을 확 사로잡기 때문이다. 그리고 등에 별 모양의 흉터를 지닌 젊은 화가 이 화가를 콕토 자신으로 봐도 무방할 것 같다(사실, 주인공의 얼굴은 콕토의 첫 번째 애인이었던 레이몽 라디게와 거의 흡사하다). 실제로 콕토 자신이 화가이기도 하지만, 극중 화가의 드로잉풍이 콕토의 그것과 똑같다. 그는 아마 화가의 몸을 빌려 시인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에게 있어, 시인은 곧 화가였다. 가 드로잉을 하는 모습이 비춰진다. 그는 자신이 그린 입이 살아서 씰룩거리자 손으로 문질러 그것을 지워버린다. 그런데 이게 웬일. 문지른 손바닥으로 입이 어느새 전이되어 있다. 입은 힘없이 하얗게 끔뻑거린다. 그는 그것을 떼어내려 안간힘을 쓰지만, 결국 캔버스에서 튀어나온 입과 자신의 입을 포개버리고 만다. 이것은 마치 끊임없이 말을 달고 살아야 하는 시인의 운명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는 행위처럼 보인다. 다음날, 화가는 전신조각상 조각상이 원래 그 방에 있었느냐 하는 문제는 중요치 않다. 콕토가 자신의 책 『영화에 대한 대담』에서 밝힌 바 있듯, 시는 어디서 오는지 모르게 오는 것이어야 하고, 시를 창작한다는 의도에서 오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이 비논리적이고 초현실적인 구성은 그가 생각하는 ‘강한 시’의 요체이기도 하다. 의 입에 자신의 손을 갖다댄다. 손에는 여전히 ‘말할 욕구로 충만한’ 입이 매달려 있었다. 마침내 ‘입을 얻은’ 석고상은 살아나고, 화가가 있는 방의 출구는 닫힌다. 당황한 화가는 석고상의 조언대로 거울 오르페우스가 에우리디케를 구하러 명계冥界를 통과했듯(《시인의 피》는 콕토의 《오르페》(1951), 《오르페의 유언》(1959)과 더불어 ‘오르페우스’ 3부작 중 하나임), 화가는 영감을 얻기 위해 거울을 부수고 들어간다. 콕토처럼 많은 영화감독들이 거울 이미지를 영화에 사용했는데, 그 대표적인 예로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를 들 수 있을 것이다(영화 《거울》(1975)). 타르코프스키의 ‘거울’이 개인의 기억을 더듬어 종래에 그/녀의 원형을 찾아다주는 도구로써 기능한다면, 반대로 콕토의 거울은 개인을 영감이 충만한 다른 세계로 연결해주어 창조를 진작하는 역할을 한다. 을 통과하기로 마음먹는다. 그는 물에 빠지듯 거울을 관통해 ‘저 세계’로 나아가 ‘미친 연극’ 영화의 이점을 그다지 살리지 못한 세트구성, 간소한 소품, 박수치는 관람객의 등장 때문에 이 영화의 4부 ‘성체 모독’은 처음부터 끝까지 굉장히 연극적이다. 이란 이름의 호텔에 도착한다. 화가는 먼저 열쇠구멍을 통해 17호를 훔쳐보기 시작하는데, 그곳에선 한 남자가 누군가의 총에 맞아 죽고 다시 살아나는 모습이 슬로모션으로 반복되고 있었다. 그 남자에게는 ‘죽고 다시 살아나 또 다시 죽는’ 것이 운명인 듯 보였다. 돌고 도는 순간들은 너무나 일시적이고 불확실해서, 엡스탱이 이 장면을 봤으면 아마 포토제닉하다고 평가했을 것이다. 21호에서는 한창 날기 수업이 진행 중이었는데, 어떤 부인이 채찍질을 하며 소녀에게 나는 것을 종용하고 있었다. 겁에 질린 소녀는 결국 천사의 자세를 하고 벽에 붙어 천장으로 올라가기 시작한다. 날 수 있게 된 소녀는 천장에서 부인을 조롱하고, 그것을 훔쳐보는 화가 역시 날아오를 것 같다. 이는 시를 쓸 때 타자를 드러내고 관찰함으로써 사고의 동화를 겪을 수 있다고 말한 콕토의 주장이 스크린으로 확대되는 장면이라 할 수 있겠다. 화가는 25호를 지나 복도 끝에 다다른다. 화가는 아직까지 영혼의 갈증을 풀지 못했다. 거울을 통해 건너온 세상은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때 어떤 여자가 그에게 권총을 내민다. 총을 쏘라는 그녀의 친절한 명령에 화가는 방아쇠를 담기고 피를 흘리며 죽는다. 그러나 그는 이미 17호를 지나온 상태였다. 17호의 그 남자처럼 화가는 다시 살아나고, 자신이 이제 거울을 다시 깨부수고 현실로 돌아가야 한다는 걸 깨닫는다. 화가의 운명을 비웃기라도 하듯, 어디선가 ‘영광이여 영원하라’는 외침이 들린다. 다시 방으로 들어온 화가, 가차 없이 조각상을 부숴버린다. 일전에 조각상의 입이 열리자 방의 출구가 닫혔듯, 그가 조각상을 부수자 하나의 모험이 다른 것으로 바뀌게 된다. 화가가 도착한 곳은 한바탕 눈이 내린 공터였다. 그곳에선 망토를 입은 아이들이 한창 눈싸움을 하고 있었다. 조각상을 중심으로 뱅뱅 돌며 눈싸움을 하던 도중, 싸움대장이라 불리는 한 아이가 다른 아이에게 ‘적의 칼날처럼 무서운’ 눈송이를 던진다. 눈송이를 맞은 아이는 피를 흘리며 죽게 되고 이 영화에서 무언가를 부순다는 것은 다른 세계로 모험을 떠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거울을 부수었을 때, 화가는 ‘미친 연극’이란 이름의 호텔에 도착했고 조각상을 부수었을 때엔 소년들이 뛰노는 광장으로 이동했었다. 광장에서 한 아이가 상대의 눈송이에 맞아 죽자(부서지자), 무대는 다시 실내로 바뀌게 된다. , 영화는 4부로 넘어가게 된다. 우아한 밤을 음미라도 하듯, 이제 화가는 어떤 실내에서 예의 그 조각상과 카드게임을 하고 있다. 그들의 경기를 구경하러 여왕과 귀족들이 2층으로 몰려든다. 로베르 브레송 식으로 얘기하자면, 모든 인물들은 배우처럼 보이기보다는 모델처럼 존재한다. 그들은 꼭 필요하지 않은 표정은 절대 짓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는 것 같아 보인다. 앞서 밝혔듯, 4부 ‘성체 모독’은 연극적이다. 단, 등장인물들의 연기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그때 침묵을 뚫고 여자(조각상)가 말한다. “하트 에이스가 없으면 당신은 져요.” 눈치 챘겠지만, 화가가 든 카드에는 하트 에이스가 없다. 화가는 아까 죽은 아이―죽은 아이는 테이블 앞에 태연히 놓여져 있다―의 재킷 안주머니에서 하트 에이스를 슬쩍한다. 마치 여태 애써 걸어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가기 싫다는 듯이. 그때 아이의 수호천사가 등장한다. 그는 몸이 반질반질 빛나는 절름발이 흑인이다. 이는 우리가 그동안 상식적으로 생각해왔던 천사의 모습―피부가 하얗고 피부보다 더 하얀 날개를 단―과는 너무도 다르다. 그의 날개는 철사를 대충 꼬고 엮어서 만든, 전혀 볼품이 없는 것이다. 이런 볼품없는 인물은 그가 늘어놓는 비현실적인 사건에 현실성을 부여하는 역할을 한다. 다리를 절며 너무도 태연히 등장하는 사람-천사는, 관객으로 하여금 마치 저런 천사라면 있을 법도 하다는 생각을 갖게 해준다. 수호천사는 아이의 몸을 잘 덮어주고 남자의 패에서 하트 에이스를 뺏은 뒤, 자신이 무대에 등장할 때 그랬던 것처럼 천천히 당당하게 사라진다. 졌다는 걸 안 화가는 2부에서처럼 총을 빼들고 자신의 관자놀이를 향해 총알을 발사한다. 별 모양의 상처에서 까만 피가 흐르기 시작한다. 자살을 하는 것, 그것은 영광을 재현하는 하나의 방식일 뿐이다. 《시인의 피》에서의 영광은 참으로 ‘빌어먹을’ 것이다. 따라서 죽는 사람들은 결코 숭고하거나 아름답지 않다. 죽음은 단지 죽음으로 끝나지 않고 제 3의 어떤 것을 태어나게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조각상을 부수거나 거울을 깨뜨리는 것에도 그대로 해당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출구는 입구로 통하고, 낯선 곳에서 새로운 것을 창조해야 하는 화가의 운명은 계속된다. 브레송의 『시네마토그래프에 대한 단상』(오일환·김경온 옮김, 동문선, 2003)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내 영화는 먼저 나의 머리에서 태어나고, 종이 위에서 죽는다. 필름 위에서 죽었다가 어떤 순서에 따라 놓고, 스크린에 투영되어 물속에 핀 꽃처럼 생기를 되찾는―내가 사용하는 살아 있는 사람과 실재의 대상들이 되살아난다.” 이 말은 콕토의 영화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콕토는 브레송이 1945년에 제작한 영화《불로뉴 숲의 아가씨들》의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하기도 했다.
방아쇠를 당겼으므로, 여인은 다시 한 번 조각이 되어야 한다. 그녀는 크고 장식적인, 그러나 결코 깜박이지 않는 눈을 달고 소를 이끌며 유장히 무대 밖으로 퇴장한다. 아니, 그녀는 하프와 지구본을 들고 퇴장한다. 그게 무엇이든 상관이 있으랴. 오프닝 장면에서 제시되었듯, 얼마나 많은 피와 눈물이 문장紋章을 위해, 아니 문장文章을 위해 희생되었는가 말이다. 콕토가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도 바로 여기에 있다. 자신 안에 있는 것을 온전히 담아낼 때까지, 끝까지 피 흘리는 것. 1부 초입에 흔들리던 탑이 무너지는 마지막 장면으로 《시인의 피》는 막을 내린다. 탑이 기어이 무너졌으니, 이제 그 다음 부분의 책임은 관객(독자)이자 또 다른 시인인, 바로 당신에게 있다.
시인이 피를 흘린다는 것
콕토는 《시인의 피》를 통해 이미지를 언어 삼아 시를 조형하는 실험을 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공들여 쌓은 탑을 일순간에 무너뜨려버린다. 약 한 시간의 러닝타임 동안 벌어졌던 무수한 일들이 눈 깜박이는 새 먼지가 되어 사라진다. 여태 우리가 본 것은 환상에 불과했을까. 연기 부연 잿더미 속에서 하트 에이스를 발견하는 것은 가능한가. ‘참다운 시인은 죽은 사람과 같아 산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듯’, 그의 영화에서 의미를 발견하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왜냐하면 참다운 시인과 마찬가지로, 그의 영화에서 의미는 ‘적극적으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별 모양의 상처 부위에서 흐르던 피들을, 그 속에서 꿈틀거리던 영혼 알갱이들을, 하트 에이스에서 심장처럼 굳은 핏자국을. 그러므로 시인이여, 피를 흘려라. 권총을 뽑아들어 자신의 관자놀이를 향해 방아쇠를 당겨라.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려면 ‘스스로’ 문을 두드리는 수밖에 없다. 화가가 거울 속으로 뛰어들었듯이, 과감히 조각상을 부수었듯이, 다시 태어나기 위해 몇 번의 죽음을 단행했듯이. 어쩌면 《시인의 피》가 시적이라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따로 있을지도 모른다. 그는 화가-시인이 자기만의 공간-밀실에서 탈출해 열쇠구멍의 작은 틈새로 다른 밀실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열어주었다. 아니 말을 바꾸자. 그는 오히려 시인을 밀실에 가둠으로써, 시인으로 하여금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다. 한 땀 한 땀 시를 기워가는 순례 여정이 시 창작의 전부는 아닐 것이다. 아프락사스가 되기 위해 알을 깬 새처럼, 시인 역시 밀실에서 나오기 위해 피를 흘려야 한다. 그 행위는 시도로서 이미 충분히 시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