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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노화 약품의 출현?
오스태드가 20~30년 안에 개발된다고 자신한 약이 바로 노화의 흐름을 뒤틀어 ‘120세의 벽’을 깨는 약이다. 노화 관련 유전자 기능을 바꾸는 물질 3~4가지를 혼합한 약으로, 그는 ‘소염 기능 향상’이 핵심 기능일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인간은 아프거나 다쳤을 때 염증이 생기는데, 나이 들수록 염증이 자주, 쉽게 생긴다. 생쥐 실험에서도 소염 기능 향상이 수명 연장의 핵심인 경우가 많았다.
오스태드는 “최초의 150세 인간은 중년에 접어들 무렵 막 시판되기 시작한 여러 항(抗)노화 약품 가운데 하나를 복용하기 시작할 텐데, 실제로 그 약이 효험이 있다는 사실은 100~120세 무렵이 돼서 밝혀질 것”이라고 했다. 19세기 말 개발된 아스피린의 효능이 지금도 계속 추가로 밝혀지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
수많은 약 중에서 하필 그 약을 택해 적절한 시점에 복용하려면 상당한 수준의 지식과 혜안(慧眼)이 필요하다. 오스태드는 “그래서 고학력·고소득자일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150세 인간의 출현은 인류 전체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모두가 그녀만큼 장수하진 못하겠지만, 다른 사람들도 같은 약을 먹고 점차 수명이 연장될 것이라고 오스태드는 말했다. 그녀가 우리 모두의 견인차가 된다는 뜻이다.
◆노화는 막을 수 없다?
훈풍이 남은 텍사스 평원과 달리, 오스태드의 적수 올샨스키가 살고 있는 시카고는 삭풍이 몰아치고 흰 눈이 두텁게 쌓여 있었다. 올샨스키는 “오스태드가 말한 약은 절대로 나올 수 없고, 신(神)이 개입하지 않는 한 이 내기는 내가 이긴다”고 했다.
의학이 빠르게 발달한다지만, 노화의 흐름을 돌리거나 늦추는 것은 SF 영화의 소재지 과학의 영역은 아니다. 백 번 양보해서 그 비슷한 약물이 나온다 해도 수명을 2~3년 연장하는 데 그칠 거라고 올샨스키는 말했다.
“가령 영화배우 데미 무어(Moore·49)처럼 의학과 미용의 도움으로 시간을 냉동시키는 데 성공한 듯한 인물도 남보다 천천히 늙는 것뿐이지 무어 자신이 어제보다 오늘 더 젊어지는 일은 없습니다. 완벽한 라이프스타일을 유지하고 전신 성형수술을 해도 무어는 시시각각 늙어갑니다. 그 흐름을 돌리는 약은 최소한 지금 살아있는 사람들이 살아있는 동안에는 안 나옵니다.”
◆벌어지는 건강격차
그러나 두 학자가 확실하게 동의하는 지점이 있었다. 세계 어디서나 ‘건강 격차’가 어마어마하게 벌어질 거라는 대목이다.
오스태드는 “‘평균’이라는 낱말에 속지 말라”고 했다. 앞으로 한국인의 평균수명이 늘어난다 해서 모든 한국인이 균등하게 장수하는 건 아니다. 가난하고 교육 수준이 낮은 그룹은 질병에 시달리다 70~80대에 죽고, 부유하고 교육 수준이 높은 그룹은 100세 전후까지 팔팔하게 살 가능성이 오히려 크다고 그는 말했다. 젊은 날의 사회경제적 격차가 노년의 건강 격차를 증폭시키는 것이다.
올샨스키도 “바로 이런 부분을 해결하는 데 정부와 학계가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고 했다. 그동안 학자들은 노인들이 정정하게 살다가 특정 연령대에 집중적으로 짧게 앓고 대거 사망할 거라는 ‘와병(臥病) 기간 압축’ 가설과, 수명이 길어지는 만큼 자리보전 기간도 따라서 늘어난다는 ‘와병 기간 확장’ 가설을 놓고 논쟁해왔다.
올샨스키는 “실제로는 두 가지 현상이 동시에 일어날 것”이라고 했다. 고소득·고학력자는 와병 기간이 압축되고, 저소득·저학력자는 와병 기간이 확장된다는 얘기다.
◆사각형 인구구조
건강 격차만큼이나 공포스러운 측면이 또 있다. 고령화로 인한 사회적 비용이다. 인류는 어린이가 많고 노인이 적은 ‘피라미드’형 인구 구조에서 어린이는 줄어드는데 노인은 줄지 않는 ‘사각형’ 인구 구조로 이행했다. 지구의 역사를 통틀어 그 어떤 생물 종(種)에서도 이런 인구 구조는 없었다. 올샨스키는 “한국 정부가 그 어떤 출산 장려정책을 써도 이 흐름은 못 막을 것”이라고 했다.
이런 변화는 엄청난 충격을 수반한다. 미국의 사회보장제도는 대공황 직후(1935년) ‘최대 수급자 2500만명’을 전제로 설계됐지만, 2000년에 벌써 수급자가 3800만명을 넘어섰다. 올샨스키는 “이 정도는 아직 약과”라고 했다. 올해부터 베이비붐 세대의 퇴직이 본격화되면 장차 7000만명까지 수급자가 불어난다. 재정 파탄, 노인 빈곤, 세대 갈등…. 한국도 같은 위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그는 말했다.
◆“장수는 축복”
그러나 지레 겁먹을 이유는 없다. 두 석학은 “장수를 축복으로 받아들이고, 노인을 ‘사회적 자산’으로 대접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출발점”이라는 데 공통적이었다.
오스태드는 “장기적으로 볼 때 삶은 향상되고, 고통은 줄어든다”고 했다. 20세기 초 유럽 생의학자들은 “노인이 급증한다”고 걱정했지만, 당시 유럽의 평균수명은 50세에도 못 미쳤다. 오스태드는 “제아무리 고령화의 파도가 높아도, 위생도 의학도 형편없던 20세기 초로 돌아가서 살고 싶다는 사람은 없다”고 했다.
올샨스키는 “지금 우리가 저지를 수 있는 최악의 우행(愚行)은 노인들을 박대하고 일터에서 몰아내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사회적 약자, 특히 학령기를 벗어난 사람들에게 다양한 교육 기회를 주는 것이 최우선”이라고 했다.
2001년 5월 문을 연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소재 '노블카운티'. 20층짜리 2개 동 건물 내부엔 200m 달리기 트랙에다 9개 레인을 갖춘 수영장 등 각종 스포츠·레저 시설들이 구비돼 있다. 입주 보증금만 3억~9억원에 달하는 국내 최고급 양로·요양시설이다.
9년 전 부인과 함께 입주한 김광태(88·가명)씨는 시중 은행 전무 출신으로, 41년간의 은행 생활을 접은 뒤 중소업체 회장으로 8년을 더 일해 누구나 부러워할 화려한 현역 생활을 누렸다.
입주 당시 김씨 부부는 보증금 6억원에, 월 생활비 300만원 안팎을 내기로 했다. 저축해놓은 돈이 있어 월 300만원 충당은 문제없을 것으로 예상했다. 그런데 2005년부터 보증금을 까먹기 시작했다. 보증금 일부를 생활비로 돌려 쓰는 '역모기지(보증금 일부 전환)' 제도를 선택한 것이다. 월 생활비 300만원에다 잔병치레가 늘어 의료비 부담이 커지면서 은행 잔고가 서서히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김씨는 "지금도 생각보다 오래 살고 있는데, 점점 의술(醫術)이 발전하니 100세까지도 살 것 같다"면서 "노후가 예상보다 장기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 대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노블카운티에서는 현재 500여명 입주자 중 20여명이 보증금을 까먹는 역모기지 제도를 이용하고 있다.
노블카운티의 한 관계자는 "보증금은 자녀에게 물려줄 유산(遺産)이라고 여기던 입주민 중에는 예상보다 늘어난 노후 비용 때문에 (보증금을 깎아 먹는) 역모기지를 택하는 경우가 있다"고 전했다.
◆연금생활자가 최고
'100세 인생'이 예상보다 빠르게 다가오면서 '80세 인생'의 시간표에 맞춰 노후를 준비해온 사람들은 비상(非常)이다. 은퇴 후 삶의 기간이 훨씬 길어지자 준비했던 노후 자금마저 바닥을 드러내는 '장수(長壽) 리스크'가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다.
미래에셋퇴직연금연구소에 따르면, 한국인의 장수리스크 지수는 0.87로, 미국(0.37)·일본(0.35)·영국(0.33)보다 세 배 가까이 높다. 장수리스크 지수란 예상치 못한 은퇴 후 기간을 예상한 은퇴기간으로 나눈 값으로, 0.87은 예상보다 87% 더 긴 은퇴 기간을 산다는 뜻이다.
그러나 노후 준비는 여전히 부실하다. 본지가 갤럽에 의뢰해 전국 1000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노후 준비를 위해 국민연금이 아닌 별도의 재테크를 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44.1%가 '전혀 하지 않고 있다'고 답했다.
장수 리스크가 커지면서 노블카운티에는 '주류(主流) 교체' 현상이 진행되고 있다. 아내와 사별한 뒤 2005년 입주한 최웅기(67)씨는 전직 중학교 교장이다. 보증금 4억원은 아파트를 전세 준 돈으로, 월 160만원의 생활비는 교원연금(약 200여만원)으로 충당한다. 최씨는 "연금이 없었으면 나는 여기 못 들어왔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씨처럼, 요즘 노블카운티의 주류는 전직 교사·군인·공무원 등 '연금생활자'들이다. 이들의 비중은 개원 초기 10%도 안 됐지만 지금은 30%를 넘겼다.
원래 이곳의 주류는 강남과 분당 출신에, 직업별로는 전문 경영인이나 변호사·의사 등 고소득 전문직 출신이었다. 하지만 노후 기간이 길어지면서 매달 안정적인 연금이 나오는 직업군에 전문직이 밀리는 것이다.
◆준비 안 된 사람들
더 절박한 것은 경제력이 없는 서민층 고령자들이다. 지난해 12월 8일 서울 강서구 가양동 주공아파트 7단지 관리사무소 뒤편. 회색 컨테이너 건물 옆에 천막이 쳐져 있고, 대기업 택배 회사들의 트럭이 오가며 소란스러운 하차 작업이 한창이었다.
'까치 택배'라는 간판이 붙은 이곳은 60대 이상 은퇴자 20여명이 만든 택배 회사다. 여느 택배 회사와 다른 점은 직접 주문을 받아 배달하는 게 아니라 아파트 단지 내로 들어오는 대형 택배 회사들이 단지 내에 물품을 내려놓으면 건당 800원씩 받고 집집마다 배달하는 것이다.
이곳에서 일하는 노인 택배원들은 저마다 잘나가던 현역 시절을 갖고 있었다. 이들은 건당 800원을 벌려 아파트 단지를 누비는 사연은 이랬다. 대기업 정년퇴직 후 아픈 아내에게 매달 들어가는 수십만원의 약값 때문에 일 나온 이모씨, 공무원 출신으로 아내 병구완을 하다 카드빚으로 신용불량자가 된 류모씨, 외국계 회사에서 총무과장까지 지냈지만 조기퇴직 후 돈벌이 나온 정모씨….
예상보다 빨리 닥치는 '100세 쇼크'는 대한민국 여기저기서 준비 안 된 사람들을 몰아붙이고 있었다.
경기도 일산에 사는 김정복(50)씨는 지난해 12월 10일 2.65㎏의 건강한 아들을 제왕절개 수술로 출산했다. 서른아홉 살에 결혼해서 10년 만에 어렵게 얻은 아들이라 온 집안이 축제 분위기다. 쏟아지는 축하 전화로 남편(51·사업) 휴대전화는 불이 났다. 김씨는 스스로를 '인간 승리'라고 했다.
"아들이 대학생이 되면 저는 칠순 잔치를 하겠지요. 하지만 우리 부부는 남들보다 늦은 만큼 아이 교육자금도 알뜰히 준비해 놨고, 건강관리도 철저히 하고 있어요. 우리 둘 중 하나는 최소한 80세 이상 살 테니 부모 노릇도 톡톡히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보통 사람도 상당한 확률로 100세 가까이 살게 되는 '100세 시대'가 현실로 다가오면서 출산 연령도 갈수록 늦어지고 있다. 이젠 40대 출산도 드물지 않다. '올드 맘(old mom)'이 대세(大勢)가 된 것이다.
신(新)기대수명을 산출한 고려대 박유성 교수팀이 통계청의 출생통계 11년치(1997~2007년)를 바탕으로 분석한 결과, 한국 여성의 '출산 피크 연령'(그해 가장 많이 출산한 여성 연령)이 '1981년 26세→2010년 30세'로 후퇴한 것으로 나타났다.
신생아 기준으로 바꿔 말하면 1981년에 태어난 아기는 10명 중 8명이 20대 엄마 품에서 첫 울음을 터트렸지만, 2009년에는 아기 10명 중 4명만 20대 엄마 품에 안겼다.
반면, 30대 엄마에게서 태어난 아기는 네 배 늘어났고(14.7%→56.8%), 40대 엄마 품에 안긴 아기는 두 배 가까이 늘었다(0.95%→1.7%).
출산 피크 연령은 갈수록 늦춰질 것으로 예상된다. 통계청은 20년 뒤 출산 피크 연령이 31세가 될 것으로 예상한다. 하지만 박 교수팀은 새 분석틀을 통해 2030년 이 연령이 만 34세로, 통계청 예측보다 세 살 더 올라갈 것이라는 전망치를 내놓았다. 30~40대 엄마가 늘어나는 현상이 가속화된다는 것이다.
출산 피크 연령에 도달했을 때 실제로 아기를 낳는 여성의 수 역시 줄어들고 있다. 1981년에는 출산 피크 연령(26세)에 도달한 여성(1955년생) 4명 중 1명이 엄마가 됐다(26.5%).
그러나 한 세대가 지난 2010년에는 출산 피크 연령에 도달한 여성(1980년생) 8명 중 1명만 아기를 낳았다(12.2%). 2030년에는 출산 피크 연령 여성(1996년생) 9명 중 1명만 실제로 아기를 낳을 것으로 박 교수팀은 예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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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차병원 차동현 교수는 "50대 중반에 다른 사람 난자를 통해 쌍둥이를 낳은 사례가 심심찮게 나올 정도로 불임치료 기술이 발달해 노산(老産)의 두려움이 엷어졌다"고 했다. 현대 의학의 도움으로 과거엔 상상할 수도 없던 '늦둥이'의 기쁨을 누릴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늦게라도 아이를 갖고 싶은 부부에겐 노산이 축복일지 몰라도, 사회적으로는 재앙 측면이 크다. 노산이 저출산으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20대에 출산하면 둘째, 셋째를 낳을 여지가 많지만, 30대 중반~40대에 출산하면 연년생을 낳지 않는 한 아이를 여럿 낳기 힘들다.
'100세 쇼크'는 '만혼(晩婚)→노산→저출산'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낳고 있다. 이 고리를 끊지 않으면 100세 시대의 대한민국은 '인구 감소'로 쪼그라드는 내리막길을 벗어날 수 없다고 한양대 김두섭 교수(저출산대책포럼 위원장)는 말했다.
<특별취재팀>
김철중 의학전문기자
이인열 기자 곽창렬 기자 김경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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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현석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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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봉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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