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참으로 오랜만에 거울을 들여다봤다.
"이게 무슨 꼴이냐."
한탄을 해버렸다. 머리는 언제 감았는지 모르고, 눈은 풀려있었다. 옷에는 때가 껴서 검은
옷인지, 흰옷인지 구별이 잘가지 않았다. 이런 모습은 나뿐만 아니었다. 거울속에 비친 방
안의 모습은 더 한심했다. 밥 대신 먹은 컵라면용기의 높이만 봐도 족히 30cm는 되는 것 같
았다. 모니터옆에 재떨이에는 담배들이 빼곡이 박혀있는 것도 모잘라, 꽁초들이 모니터주위
를 꾸며주고 있었다. 방바닥에는 머리카락, 과자가루, 라면국물들이 널려있었다.
침대위에 있는 두꺼운 겨울이불은 바닥으로 떨어져있었다. 얼마나 두꺼운지, 그 안에 사람
들어가 있는 것 같았다. 창문에는 먼지들이 끼어들어가 햇빛이 잘 들어오지 않았다.
방 안의 공기는 탁할 대로 탁해서, 안개가 낀 것 같았다.
이런 상황도 이상한 것이 아니다. 방학이 되면 폐인생활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나는
온라인게임에 빠져, 말그대로 폐인이 되었던 것이다. 집이 그런대로 부유해서, 집을 얻어
혼자살고 있다. 혼자살지 않는다면, 당연히 이런 꼴이 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거울도 컴퓨터달력을 보고 방학이 거의 끝나가길래 본 것이다. 잠을 거의 자지 않았다.
잤더라도, 의자위에서 새우잠자는 것이 고작이다. 눈밑에는 누군가에게 맞은 것처럼 검다.
방학이 끝나갈때쯤이면 항상 청소를 했다. 그러니까 청소는 1년에 두 번뿐이다.
그러다보니, 하는 방법을 알 리가 없다. 어차피 난 평소에 청소하는게 무슨 규칙이 필요하
냐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리 신경쓰지는 않았다.
창문부터 열었다. 아무리 폐인생활을 했더라도, 밖에 공기를 온 몸으로 받아들이니깐 기분
이 좋아졌다. 안에 탁한 공기와 밖에 신선한 공기들이 교차되는 순간이었다.
'내가 이렇게 세상과 문을 닫고 살았구나.'라고 생각했다. 컵라면 용기와 담배꽁초도 갖다
버리고, 걸레로 바닥도 닦고! 즐겁게하자는 마음으로 댄스음악도 틀어놨다.
태양은 낮게 떠서 그런지 햇빛도 잘 들어왔다. 구정물을 가득 빨아들인, 걸레를 다시 빨려
고, 욕실로 들어갔다. 물을 틀어놓고, 욕실의 거울을 보니 온 몸이 가려운 것 같았다.
반신욕이라는 말을 인터넷에서 봐서 알고 있었지만, 한번도 해보지 않았다. 청소하고 있었
다는 것을 잠시 미루고 욕조에 따뜻한 물을 받았다.
"물은 반쯤이면 될테고, 몇도의 물이라고 했더라? 뭐 대충 따뜻하면 되겠지."
물이 대충 받아지자 때가 찌들은 옷들을 벗어던졌다. 오랜만에 물속에 들어가자, 숨구멍에
서는 공기방울이 올라왔다.
"가슴 아래라고 했고. 몇 분이라고 했는데. 아 몰라몰라. 대충 땀나면 나오면 되지"
물의 온기들이 살며시 나에게 다가오는 것 같았다. 처음에는 손장난좀 치면서, 놀았지만,
온몸이 따뜻해지자, 잠이 쏟아졌다.
2
욕실안은 온통 어둠뿐이었다. 눈을 떠보니 그렇게 되있는 것이다.
"아, 깜빡 잠이 들었네." 물은 어느새 차가워졌다. 차가워진 물속에 오래 들어 가있어서인
몸이 떨려왔다. 수건으로 몸을 대충 닦고, 방으로 갔다.
아침에 열어놓은 창문은 아직도 열려있었다. 창문을 닫아도, 방안에서는 입김이 나왔다.
온 몸에 열이 나는 것 같았다. 덜덜 떨려오는 몸을 진정시키려고, 주위를 살피는데, 아직
치우지 않은 두꺼운 이불이 눈에 들어왔다. 방학동안 한번도 덮지않은 이불이었다.
난 몸을 옮겨서 이불을 들었다. 다리부터 천천히 들어갔다. 하지만, 몸이 전부 들어가지 않
았다. 나무토막이 이불안에 있는 것처럼 묵직한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무토막이라고 하
기에는 물컹했다. 물체를 보기위해 이불을 걷어찼다.
난 비명을 질렀다. 짧고 굵은 비명이었다. 왜 이런 것이 여기에 있는거지.
반쯤은 썩어들어가는 나체상태의 여자가 있었다. 한쪽 가슴은 익지않은 토마토처럼 썩어있
었다. 한번도 경험하지 않은 것에는 익숙하지 않았다. 더욱이 이런 이해하지 못할 일에는
더욱 그렇다. 여자의 얼굴은 문드러져 누구인지 알아보지 않았다. 난 그것이 내가 아는 사
람이 아니길 빌었다. 그게 문제가 아니라 왜 시체가 이곳에 있냐는 것이다.
고민하는 사이에 시체속에서 풍겨나오는 냄새가 코를 움켜지게 만들었다. 만약, 먹은 라면
이 소화되지 않았다면, 다시 밖으로 나올 것 같았다.
112. 모니터옆에 있는 핸드폰을 바라봤다. 이럴때는 일단 신고부터 해야하는거야.
핸드폰을 들고, 떨리는 손으으로 버튼을 눌렀지만, 신호가 가지 않았다.
"젠장!" 방학동안 전화하지 않아서 배터리가 방전된지 몰랐다. 거실에 있는 전화를 생각해
냈다. 한번도 112에 전화해본적은 없다. "여..여보세요. 우리집에 시체가 있는데.. 아이 빨
리와주세요. 그냥 시체가 있다니까요! 빠..빨리요. 지금 당장요!"
사람이 초조하면 그 자리에 가만히 있지 못 하는 것일까. 긴장되서 쾅쾅뛰는 심장을 달래줄
방법은 계속 움직이는 것이었다. 하지만, 심장을 진정시키는데에는 도움을 별로 주지 못했
다. 딩동-
"경찰입니다." 난 10년만에 보는 친구라도 보듯이 빠른 걸음으로 문을 열어줬다.
"왜 이제 오셨어요! 얼른 들어오세요." 난 두명의 경찰에게 말했다.
하지만, 그들은 들어오지 않았다. 오히려 이상하다는 표정을 진 것은 경찰들이었다.
"신고를 받고 왔는데요. 옆 집에는 아무도 살지 않나요?"
"무슨 말씀이세요? 제가 신고했는데.."
난 아직 영문을 알지 못했다. 물론, 경찰들도 그렇다는 표정이었다.
"1016호에 신고 받고 왔는데요."
"여기가 1016호예요. 빨리 들어오세요."
"문에는 1017호라고 써있는데요?"
"네!? 그럴 리가."
난 밖에 나가서 경찰들 사이로 들어가서 문상단에 써있는 숫자를 봤다. 분명했다.
내가 착각을 한 것이다. 그러면 내가 어떻게 여기에 있었던 것이지?
그리고 우리집형태와 너무 똑같다. 그래서 내가 알지 못했던 것이다.
"어떻게 된거죠?"
"자,잘모르겠어요."
"시체는 그곳에 있습니까?"
"네."
"일단, 들어가죠."
난 당황스러웠다. 이렇게 되면 내가 가장 강력한 용의자가 되는 것이다. 난 아무런 증거도
없다. 그렇다고 이곳은 나의 집도 아니다. 뭐가 어떻게 되는지 아직 정리되지 않는다.
경찰들을 뒤따라 들어갔다. 시체는 여전히 있었다. 문 끝에 서서 경찰들이 하는 행동을지
켜봤다.
"선배님, 시체가 너무 썩었는데요."
키가 큰 경찰이 말했다. 그는 갈색가죽점퍼를 입고 있었으며, 그에 어울리는 장갑을 끼고
있었다. 그 손으로 시체를 콕콕 찔렀다. 시체의 피부는 탄력성을 잃어서 금방 튀어나오지
않았다. 이불속은 습기때문인지 푸른빛으로 물들어있었다.
"그러게말야. 그런데 이게 뭐야?"
그가 가리킨 방향은 시체밑에 방바닥이었다.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얼룩같은 것이었다.
"정액같은데. 성폭행하다가 안되니깐 죽인거아냐?"
"감식반 부를까요?"
"그걸 말이라고 해? 빨리 불러."
"시체가 이상해요. 왜 한쪽에만 저렇게 썩은것이죠?"
"아마 이불 때문에 그렇겠지. 습기가 저렇게 차 있는데 어쩔수 있겠어? 방바닥은 이리도 차갑고,
시체를 발견했을 때보다 심장이 더 뛰었다. 이러가는 내가 의심받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왜 방학내내 여기에 있었던 것인지 알지 못하는 것이다.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키큰 경찰은 전화를 하고 있고, 다른 경찰은 방안을 훝어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도둑이 자신의 발이절인냥 땀을 삐질삐질 흘리고 있었다. 경찰은 내게 다가왔다.
"저희랑 같이 가셔야 할 것 같습니다."
"왜, 왜요. 전 아무 상관 없어요. 진짜예요."
내가 왜 흥분하는 것이지? 이러면 안되는데.
"그냥 증인차원으로 가시는 겁니다. 이상부분도 많거든요."
경찰의 말이 끝났을 때, 흰가운을 입은 사람들이 들어왔다.
'가시죠'라는 말에 내가 저항할 수 있는 힘은 아무것도 없었다.
3
"왜 다른 집에 있었던 것입니까?"
경찰은 타자기에 손을 얹고 있었다. 날 범인취급하는 것 같았다.
"전 정말 모른다니까요. 방학이라서 컴퓨터만 했는데, 오랜만에 청소하려고 했어요. 그러
다가 이불속에 시체가 발견된 것이예요. 제가 옆집에 와있다는 것은 그때까지도 몰랐어요."
"그게 말이되요?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고요."
속이 답답했다. 내가 이해못하는 일인데, 어떻게 설명을 하겠는가.
난 강력한 용의자라는 이유로 잠시동안 구치소에 갇혀있었다. 하지만, 곧 풀려났다.
그 이유는 현장에서 발견된 정액과 내 정액의 DNA가 맞지않다는 이유에서였다. 집에 돌아온
나는 한동안은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었다. 밖에 나가면 모든 사람들이 날 살인자로 몰
것 같았다. 왜 이리 죄책감이 드는지 알 수 없었다. 내가 시체와 한달이 넘는 날을 생활해
서였을까?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었던 난 정신과치료까지 받게 되었다. 내가 미친놈이냐고 거부했지만,
가족과 친구들때문이었다. 나도 정상적인 생활을 하고 싶었다.
꿈을 꾸면 썩어문드러진 시체들이 나왔다. 그 시체들과 섹스를 나누고. 누군가 나의 몸속에
들어와있는 것 같았다. 정신병원에 간 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다.
4
겨울비가 한창 내리다가 마지막 구름이 지나가자 그쳤다.
달은 구름위로 빼꼼히 고개를 내민다. 하지만 그 몸을 전부 보여주는 적은 없다.
겨울에 어울리지 않은 시원한 바람이 나뭇가지를 흔들고, 구름을 옮긴다. 구름은 솜사탕을
떼놓은 것 같다. 물안개는 벚꽃이 피는 것처럼 퍼져 바람과 함께 어울린다.
가로등불빛만 비추던 도로에는 차가 한 대 지나간다. 세상은 고요하다.
1017호라고 씌여있는 문을 열고 들어가면 새로운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들어가는 자는 무의식적이다. 자신이 무슨 광경을 목격하고 있는지 모른다. 여릿하고, 깊은
신음소리가 흘려나온다. 하지만, 다시 밖으로 나간다.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고통의 대한 신음인지, 쾌락의 대한 신음인지는 소리로는 구별이 가지 않는다. 집을 더 깊
게 들어가보면, 쉽게 보기 힘든 장면을 본다.
저항하는 여자와 강제적인 남자.
볼륨있는 가슴과 엉덩이가 돋보이는 짧은 옷을 입고 있는 여자는 악을 쓰고 있다.
거친손에 의해 짧은 티는 금방 찢어져버린다. 손은 서서히 그 안으로 들어간다. 그럴수록
여자의 발악하는 소리는 거세진다. 그러나 남자는 웃고 있다. 소리내어 웃고있지만, 여자의
소리에 묻혀버린다. 방해가 됬는지, 티를 완전히 찢어버린다. 그러자 가슴을 지탱해주는 브
레이지어가 보인다. 그것조차 남자는 벗겨버린다. 아무것도 저항할 수 없는 여자는 모든 것
을 포기한 듯 가만히 있는다. 남자의 혀는 여자의 몸을 핥는다. 자신의 몸에 구더기가 기어
다니는 것처럼 혐오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밖에는 바람이 더 세차게 불고 있다.
아무리 세차게 불고 있지만, 비에 젖어 땅에 달라붙은 종이는 꼼짝하지 않는다.
여자의 소리는 신음에서 비명으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바람이 유리창을 때리는 소리
가 더 크기 때문에 사람들은 알지 못 한다. 어느 새 여자의 몸은 알몸이 되어있다.
볼륨적인 몸매에는 달라붙은 종이조차 미끄러져 내릴 것만 같다.
거친숨소리가 지속되다가 마무리됬을때쯤 여자가 말한다. 남자의 표정은 굳어진다.
활화산처럼 붉어진다. 거친손으로 가느다란 여자의 목을 감싼다. 손에는 굵은핏줄이 튀어
나온다. 여자는 쓰러진다. 당황한 남자는 도망가려고 밖으로 나갔는데, 옆집의 문이 열려
있는 것을 발견한다. 다시 1017호로 들어가 여자를 들쳐엎고, 옆집으로 들어간다.
아무도 없다. 이상하게 1017호랑 집의 생김새가 똑같다. 여자를 어디에다가 놓을까 고민하
다가 다시 열린문으로 들어간다. 방 안은 어지럽혀있다. 시체를 그냥 놓고 가려다가, 다시
들어와 떨어진 이불속에 감추어놓는다. 밖으로 나가 옆집의 문의 번호를 떼서 1017호와 바
꾸어놓는다. 그리곤 어디론가 사라진다.
잠시 후 무의식적은 사람이 1017호라고 씌여있는 곳으로 들어간다. 방으로 들어가 컴퓨터가
놓여있는 의자에 앉아서 잔다.
아침해가 뜨자, 바람과 물안개는 사라진다. 달빛도 서서히 햇빛에 잡혀먹힌다.
무의식적인 사람은 가끔 화장실 가는 것 외에는 거의 움직이지 않는다.
5
"네? 몽유병이라뇨."
집에 돌아온 나는 검은옷을 입은 사람이 집주위를 어슬렁거리는 것을 목격했다.
그 사람의 손에는 신문지로 감싼 무엇인가 들려있었다.
난 아직도 1017호가 우리집인지 옆집인이 헤갈린다.
"누구세요?" 집에 들어가면 집청소를 하겠다고 다짐했다.
"누구세요? 저기요. 누구시냐니까요."
오늘밤에는 보름달이 뜬다고 한다. 보름달이.
-등업기념으로 최근에 쓴걸로 올려봅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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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 공포소설
[단편] 폐인이 청소하는 날
학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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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4.14 23:27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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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글 재미있게 잘 봤습니다. ^^
소재가 참신햇는대 뭔가 부족함이 그래두 잘 봤습니다^^
재밌는데..좀 어려운듯..다시 자세히 읽어볼게요..ㅎ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으음....그러니까......여자를 죽인 범인이 1017호 사람인데.....시체를 옆집으로 옳기고 명패를 바꿨다는 건가요?? (그리고 오타가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