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끝에>
체험의 언어에 담아놓은 선한 영향력
전병호
1.
먼저 시를 한 편 읽어볼까요?
밤새 별들이
풀밭으로 내려오는
이유는 무얼까?
노래하는 풀벌레
목축이라고
이슬방울을 숨기는 걸 거야
밤새 별들이
옹달샘으로 내려오는
이유는 무얼까?
맑은 샘물이
더 반짝이라고
별빛을 풀어놓는 걸 거야.
「별이 한 일」 전문
시인이 묻습니다. “밤새 별들이 / 풀밭으로 내려오는 / 이유는 무얼까?”라고 말입니다. 생각해 보지만 답이 얼른 떠오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2연을 읽어봅니다. 아하, “노래하는 풀벌레 / 목축이라고” 그랬다는군요. 밤새 노래했으니 목이 많이 마르겠지요.
시인이 다시 묻습니다. “밤새 별들이 / 옹달샘으로 내려오는 / 이유는 무얼까?”라고 말입니다. 그것은 “맑은 샘물이 / 더 반짝이라고” 별빛을 풀어놓는 것이라는군요. 맑은 샘물이 더 맑아지겠네요.
이 시를 읽으면 밤새워 노래하는 풀벌레, 풀잎 끝에 맺히는 이슬, 옹달샘 맑은 물 속에서 반짝이는 별 이미지가 가슴에 가득 차오르면서 시를 읽는 사람의 마음을 더 없이 맑고 순수해지게 합니다. 아마도 서향숙 시인이 궁극적으로 추구하고자 하는 동심의 세계가 이런 것이 아닐까 합니다.
연 단위로 묻고 답하는 문답식 구조, 맑고 깨끗한 자연물을 통해 보여주는 순수 동심의 세계, 저학년 어린이에게 맞춘 눈높이, 단순명쾌성을 살린 시적 표현, 별이 풀밭으로 내려온다는 물활론의 세계 등 서향숙 시인의 시 세계를 들여다 볼 수 있는 핵심 요소들을 두루 갖추고 있는 시입니다.
2.
서향숙 시인의 이력을 살펴보면 높은 수준의 목표를 세우고 이를 성취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면서 열정적으로 살아온 온 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시인은 1972년 광주교육대학교를 졸업하고 초등학교 교사가 되었습니다만 결혼과 동시에 휴직했다가 몇 년 후에 복직합니다. “그동안 공부하고픈 열망은 항상 가슴 속에서 끓어오르고 있었다. 열성적으로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글짓기 교육을 했다. 또 밤이면 사랑하는 세 아들의 공부를 봐주는 틈틈이 동시와 동화를 습작했다.”복직 후의 일상을 기술한 글입니다. 학교에서는 선생님이요, 가정에서는 어머니이며, 개인적으로는 작가 지망생으로서 고군분투하는 시인의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합니다. 참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시인은 끊임없이 노력하여 마침내 하나씩 꿈을 실현해 나갔습니다.
처음으로 말할 수 있는 기쁜 일은 시인이 되고자 했던 꿈을 성취한 것입니다. 시인은 1996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동시 부문에 당선했고, 같은 해 <아동문학평론> 동시 부문에서도 신인상을 받음으로써 간절하게 소망하던 시인의 꿈을 이루었습니다. 위 글에서는 “틈틈이 동시와 동화를 습작했다.”고 겸손하게 말하고 있지만 아마 남 모르게 수많은 밤을 지새웠을 것입니다.
시인은 학문 연구에도 혼신의 힘을 다했습니다.
“시력이 나빠져서 안경 도수를 높여가며 컴퓨터로 논문을 치다 보니, 자라목이 되고 어깨엔 근육이 뭉쳐 고통이 뒤따랐다. 4년 반 동안 노력해서 박사 논문 「김요섭 문학의 장르별 특성 연구」가 3차 논문 심사를 통과한 날, 심야고속버스 속에서 얼마나 숨죽여 울었던가?”
마침내 박사 학위 논문이 심사위원회의 엄정한 심사를 통과한 날을 돌아보며 쓴 글입니다. 4년 반 동안 광주에서 서울까지 그 멀고먼 길을 오르내리며 학문 연구를 위해 기울인 혼신의 노력이 마침내 결실을 맺은 것입니다. 수많은 난관과 그에 따른 심적 고통, 육체적, 정신적 피로 등 무한대로 참고 견디어내야만 했던 인고의 세월이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또 학교에서는 선생님으로서 열정적으로 어린이들을 가르치며 글짓기 교육을 위해 쏟아부은 남다른 노력도 돋보입니다. 아이세움 독후감 대회, 창비 독후감 대회, 호남예술제 백일장, 전국 사랑의 일기 쓰기 대회, 애송시 낭송대회 등 전국 및 지역 단위의 각종 대회에서 지도교사상을 수상한 것을 보니 놀랍습니다. 한 번도 아니고 그것도 여러 차례 지도교사상을 수상했다는 것은 탁월한 글짓기 지도 능력을 갖춰야 하는 것은 물론이지만 그보다는 먼저 교육자로서의 사명감과 하나라도 더 가르치고자 하는 열정이 있지 않으면 성취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시인이 글짓기 교육에 얼마나 진심이었는지가 느껴집니다.
더 많이 있습니다만 위에서 예로 들은 일들만 살펴봐도 충분히 그 공통점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우호적이지 않은 환경 → 꺾이지 않는 마음으로 노력함 → 마침내 갈망하던 것들을 성취”하는 과정을 거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시인이 갖고 있는 현실 대응 자세라고 할 수 있는데요. 이것이 알게 모르게 시인의 시를 형성하는 기본적인 시적 정서가 되고 있다고 판단됩니다. 시인이 평생 교단에서 어린이들을 지도하면서 은연중에 갖게된 교육성도 영향이 크겠지만 그보다는 시인이 삶의 목표를 정하고 성취해가면서 하나씩 획득하게된 삶의 철학이 가장 큰 영향을 끼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시인이 가진 이런 삶의 철학은 동시집을 흐르는 지배적인 정서가 되고 있음을 여러 편의 작품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달다고?
벌들이
일하느라 흘린
땀방울을 봤니?
벌들이
일하느라 쏟아낸
눈물 맛을 봤니?
「아카시아 꿀」 전문
아까시아 꿀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데 시인은 그런 말은 하지 않고 뜻밖에도 꿀이 “달다고?” 반문합니다. 왜 그럴까요? 2연과 3연을 읽어보면 이유를 알게 됩니다. 꿀을 모으기 위해서 벌들이 많은 땀방울을 흘렸다는 것입니다. 땀방울뿐일까요? 때로 눈물도 숱하게 쏟았을 것입니다. 시인은 꿀을 먹기 전에 먼저 벌이 흘린 땀방울과 눈물을 생각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시인이 누구보다도 땀방울과 눈물의 의미를 알기에 그런 말을 한 것입니다.
굴리자
굴
리
자
쇠똥
쇠똥구리는
큰 공 굴리는
일학년 학생들이다.
무더위에
쇠똥 굴리기 한다고
비웃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속으로
웃어대는 쇠똥구리
난
부지런하거든.
「쇠똥구리」 전문
지금은 보기 힘들어졌습니다만 옛날에는 길이나 들에서 쇠똥구리가 소똥을 뭉치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었습니다. 먹기도 하고 소똥 속에 알을 낳기도 해야 하니까 쇠똥구리는 뙤약볕에서도 열심히 소똥을 뭉쳐 굴렸습니다. 그런데 무더위에 쉬지않고 쇠똥을 굴린다고 비웃는 사람이 있었나 봅니다. 그래도 쇠똥구리는 속상해하지 않고 자기 일을 열심히 했습니다. 열심히 일한 만큼 보람도 클 것이니까요. 세상에 쉽고 편하기만 한 일은 없습니다. 다 필요한 만큼 땀을 흘려야 합니다. 시인은 그 사실을 경험으로 잘 알고 있습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극복하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을 시마다 담아내고 있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지퍼의 생일」, 「풍력발전기의 바람」, 「누리호」, 「소금 호수」, 「염전」, 「도미노 놀이」, 「쥐불놀이」, 「백일홍」, 「겨울나무」 등도 열심히 노력해서 어려움을 이겨내고 꿈을 실현한다는 삶의 철학을 담아놓은 시들입니다.
3.
이 동시집의 가장 큰 특징은 저학년 어린이들에게 적극적으로 눈높이를 맞추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세히 살펴볼까요?
첫째, 저학년 어린이의 발단 단계에 맞는 시적 표현과 시적 사고를 전개하고 있습니다.
달이 숨을 크게
들이 마신다
불룩불룩
몸이 부푼 보름달
달이 숨을 크게
내 쉰다
푸우푸우
한 쪽 몸이 살 빠진
반달
숨을 크게 크게
내 쉰다
휴우우~
홀쭉하게 더 날씬해진
그믐달.
「숨 쉬는 달」 전문
시적화자인 어린이는 달이 왜 동그랗게 부풀었다가 반쪽만 남았다가 홀쭉해졌을까 하고 오랫동안 궁금해했을 것입니다. 그 결과 시적화자가 알아낸 것은 숨을 크게 들이 마시면 보름달이 되었다가 크게 내쉬면 반달이 되고 숨을 ‘크게 크게’ 내쉬면 그믐달이 된다는 것입니다. 마치 달을 숨을 불어넣는 풍선처럼 생각하고 있는 저학년 어린이의 생각을 읽을 수 있습니다. 시적 표현도 시에 담긴 생각도 저학년 어린이의 발달단계에 맞게 썼습니다.
둘째, 직관의 언어로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보는 단순명쾌성을 얻고 있습니다.
초록빛
도깨비 방망이
줄
줄
줄
걸어 놓았다.
「수세미」 전문
수세미가 주렁주렁 달려있는 모습을 보고 시인은 ‘도깨비 방망이’를 떠올렸을 것입니다. 생김새나 크기가 비슷하니까요. 동일성의 원리에 의하여 도깨비 방망이라고 비유했는데 아주 적절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수세미 열매로 설거지할 때 쓰는 수세미를 만들고 줄기의 액으로는 화장수를 만듭니다. 시인은 수세미에 대한 이런 일반적인 지식을 들려주는 것이 아니라 수세미 열매를 본 순간의 느낌을 비유해서 보여주고 있을 뿐입니다. 수세미를 못 본 어린이도 이 시를 읽으면 ‘수세미 열매=도깨비 방망이’라고 그 이미지를 오래 기억할 것입니다. 이처럼 시인은 사물을 바라본 순간 얻게된 직관의 언어로 비유도 얻고 단순명쾌성도 획득하고 있습니다.
셋째, 참신한 비유로 새로운 시적 의미를 발견해냅니다.
누군가
아무도 몰래 내려와
미사보를
씌워 주었다
이팝나무는
작은 성당이
되었다.
-「이팝나무」 전문
이팝나무는 남부지방에 널리 분포되어 자라는 나무입니다만 중부지방에서는 가로수로 많이 심기도 합니다. 늦은 봄 나뭇가지 끝에 흰종이를 길고 잘게 썰어놓은 것같은 꽃이 피는데 멀리서 보면 꽃이 흰 쌀밥을 퍼놓은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이밥나무’라고 했답니다. ‘이밥’이 나중에는 ‘이팝’으로 바뀌었습니다.
시인은 이팝나무가 꽃핀 것을 본 순간의 느낌을 미사보를 씌워주었다고 표현했습니다. 미사보란 무엇인가요? 천주교회에서 여성 신자들이 머리에 쓰는 베일을 가리킵니다. 그러니까 이팝나무가 사람처럼 미사보를 쓰고 겸허한 마음으로 미사 드리는 것 같은 성스러운 분위기가 됩니다. 그래서 시인이 “이팝나무는 / 작은 성당이 / 되었다”라고 말했는데 충분히 공감이 됩니다. 시인은 낯선 비유를 찾아냄으로써 상투성에서 벗어나는 것은 물론 새로운 시를 읽는 느낌도 갖게 합니다.
「목성의 재주」, 「현미경」, 「천둥과 번개」, 「백일홍」 등 많은 시에서 참신한 비유와 새로운 시적 의미를 찾아낼 수 있습니다.
4.
시인은 지난날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열심히 살아왔지만 이제는 한 걸음 물러서서 삶을 관조하게 되지 않았나 합니다. 그 때문일까요? 시가 순해지고 깊어졌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것이 본질을 꿰뚫어보는 직관의 언어로 단순명쾌성을 획득하면서 저학년 어린이에게 눈높이를 맞춘 시로 나타난 것이 아닌가 합니다.
빨간
기도 책
백일 동안
올린 기도가
빼곡하다.
「백일홍」 전문
비록 5행 18자 밖에 안 되는 짧은 시이지만 시적 감동은 그 어떤 시보다도 큽니다. “빨간 / 기도책”이라는 것은 겉표지가 빨간 책일 수도 있지만 백 일 동안 치열하게 기도를 올렸기 때문에 심리적으로 느껴지는 색일 수 있습니다. 시적화자가 무엇을 기도했는지 내용은 모르지만 매우 긴절한 마음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혼신의 힘을 다 하는 그 마음이 감동을 느끼게 합니다.
백일홍이 비록 100일 동안 꽃이 핀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기는 하나 백일홍을 보고 아무나 이와같은 시를 쓸 수 없습니다. 열심히 살아온 사람만이 자신의 체험을 담아 쓸 수 있는 시인 것입니다.
빈 공터
한쪽에 버려진
오토바이 바퀴 속
박새가
집을 지었나보다.
친구와 지나가다
우연히 발견한
박새집
살그머니 가보니
알 품기 한
박새엄마가 놀라서
쓰윽쓰윽 쓱쓱
오토바이 바퀴도
가슴 졸이고 있겠다.
- 「오토바이 바퀴 이야기」 전문
오토바이 바퀴가 공터 한쪽에 버려졌다는 것은 이제는 닳아 쓸모가 없어졌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바퀴로써 수명이 다 한 것이지요. 그런데 생각하지도 않은 반전이 일어납니다. 박새가 버려진 오토바이 바퀴 속에 집을 짓고 알을 낳은 것입니다. 오토바이 바퀴는 자신이 아직 할 일이 있다는 것을 알고 얼마나 가슴 뿌듯했을까요? 그것도 다른 일이 아니고 새 생명을 낳아 기르는 일이니 말입니다.
그런데 어린이들이 지나가다가 박새집을 본 것입니다. 누구도 모르게 하고 싶었던 비밀이고 싶었는데요. 만약 심술궂은 아이라면 박새알을 꺼내갈지도 모르는 위기상황이 닥쳐온 것입니다. 그러나 별로 걱정이 되지 않습니다. 시적화자는 박새 집을 건들리지 않을 뿐더러 경우에 따라서는 적극적으로 보호해줄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시인의 시 작법에 비밀이 숨겨져 있습니다.
시인이 박새알을 건드리지 말자, 박새알을 잘 보호하자 이런 말을 직접 하지 않습니다. 다만 버려진 오토바이 바퀴 속에서 박새가 알을 낳은 모습과 놀라는 박새 엄마의 모습만 그림처럼 그려 보여줍니다. 독자가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를 스스로 판단하도록 한 것입니다. 이처럼 시인은 박새알과 관련된 객관적 상관물을 보여줌으로써 동심을 불러일으키는 고도의 시 창작 기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럼으로써 독자들은 시적화자가 한 일을 자기가 한 일처럼 받아들이게 됩니다.
작은 생명이라도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 알을 보호하려는 박새의 모성애, 버려진 물건도 소중하게 쓰일 수 있다는 기대와 믿음, 그럼으로써 얻게되는 삶의 희망과 용기 등 이 시가 주고있는 감동적인 메시지는 마음에 오래 남을 것입니다.
5.
서향숙 시인의 연보를 살펴보면 유난히 눈에 띄이는 것이 있습니다. 2012년 명지대학교대학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면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광주교육대학교대학원 아동문학과에 겸임교수로 출강합니다. 이후, 광주광역시 남구청, KBC 광주방송, 광주 MBC, 광주광역시 노대동성당, 광주 수완초, 광주광역시 동구청 평생교육원 등에서 동시와 동요 창작 강의를 해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서향숙 동시 낭송과 동요발표회」를 열기도 했고 KBS 창작 동요대회 노랫말 입상, 한국동요음악대상(작사 부문)을 수상하는 등 동요 작사가로서도 활발한 활동을 펼쳐오고 있습니다. 알고 보니까 서향숙 시인은 초등학생 때는 합창단원이었고 어른이 되어서는 순천시립합창단에서도 활동했다고 하네요. 서향숙 시인이 동요 작사에 진심인 이유가 있었어요.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서향숙 시인이 동심의 시와 동심의 노래를 사람들에게 널리 나눠주려는 선한 영향력을 펼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높은 수준의 목표를 세우고 이를 성취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면서 획득하게 된 삶의 철학을 저학년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게 직관의 언어로 담아놓은 이번 동시집에는 세상을 동심으로 가득 차게 하려는 선한 영향력이 넘치도록 담겨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