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용봉희라 불리는 잔인한 처형방법
군유명은 눈 한 번 깜빡이지 않았다. 그의 얼굴에서는 한 가닥의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차갑고 무뚝뚝했으며 뻣뻣하게 몸을 굽히고 강칠을 땅바닥에 누른 채 상반신을 옆으로 기울이더니 어느덧 기진이보가 쌓여 있는 석지(石池) 안에서 한 대의 금침(金針)을 찾아내는 것이었다.
이 금침은 보기에도 상당히 오래된 것 같았다.
금침의 길이는 약 일곱 치 정도였으며 끝부분은 날카롭기 이를 데 없었으며 꼬리 부분은 희한하게도 일종의 기이한 나비의 형상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그 나비 모양의 꼬리 부분의 사방에 알알이 색채가 산뜻하고 오색영롱한 빛을 내는 여섯 모의 보석들이 박혀 있었다.
금침을 손으로 가볍게 흔들어 본다면 석실 안쪽 벽의 야명주가 내뿜는 광채 아래에서 갖가지 뿌옇고 무지개빛과 같은 광채를 영롱하게 반짝이는 것이었다.
이와같이 희귀한 광채는 마치 안개 속에 녹아나듯, 아니면 비 속에 스며들 듯, 기이하기 이를 데 없으며 또한 사랑스럽기 이를 데 없었다.
만약에 당신이 이를 자세히 본다면 금침의 몸통에는 지극히 정교한 꽃무늬가 새겨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으리라…
군유명은 왼손 식지로 그 날카롭기 이를 데 없는 바늘 끝을 한 번 시험해 보더니 한 가닥의 웃음을 떠올렸다.
그러나 그 한 가닥의 웃음띤 얼굴은 이상야릇했고 공허했으며 조롱하는 듯하여 근본적으로 손톱만큼도 웃음다운 빛이 그 안에 스며 있지 않았다.
그는 땅바닥에 쓰러져 있는 강칠을 내려다보며 피곤하면서도 딱딱한 어조로 이야기하는 것처럼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이 한 대의 금침으로 말하면 명심추(明心錐)라고 하지. 어째서 명심추라고 할까? 이 가운데에는 한 토막의 매우 재미있는 원인이 있지…』
군유명은 입술을 혓바닥으로 적신 후에 계속해서 이야기했다.
『전 왕조(王朝)의 어느 시기에 한 분의 태자께서 대통(大統)을 이어받아 천하의 만방(萬邦)을 다스리게 되었다. 황룡(黃龍) 위에 앉은 구승지존(九乘之尊)이시며 진명천자(眞命天子)이신 그분은 영명하고 예의에 밝을 뿐만 아니라 덕망이나 지혜에 있어서도 뛰어나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유일한 결점은, 따지고 보면 실제에 있어서는 일종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가 지니고 있는 결점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바로 그의 심성이 너무나 의심이 많아 사람을 신임하지 못한다는 점이었지. 그에게 이와같은 결점이 있게 되자 물론 그를 따르는 많은 왕공대신들이나 문무백관들은 좀처럼 편안하게 세월을 보낼 수가 없었다고 하더군. 이 황상폐하(皇上陛下)께서는 매번 자기의 신하들을 의심하게 되었을 적에는 사람을 시켜 이 금침을 가지고, 그러니까 이 명심추를 가지고 그 신하를 찾아가서 그 신하에게 건네어 주었는데 명심추를 받은 신하는 그야말로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과 다름없는 처지에 놓이게 되는 것이지…』
그는 입 언저리를 살짝 오므려 웃는 듯 마는 듯한 표정지 지어 보이고는 재차 말을 이었다.
『왜냐하면 그 명심추를 받은 그 신하가 자기의 군주에게 충성하고 백성을 사랑하는 등 영원히 두 가지 마음을 굽히지 않는다는 점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명심추를 잡고 자기의 목을 찔러 자결함으로써 자기의 충성스러운 마음을 밝혀야 하기 때문이지. 만약 자결을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그것은 바로 마음을 밝힐 뜻이 없는, 즉 명심의 뜻이 없다는 것이 되는데, 그렇게 되었을 때는 황상에게 자기가 불충하다고 알리는 결과가 되지. 그가 명심을 하지 않게 되면 황제 늙은이는 즉시 사람을 보내 즉시 그의 머리통을 잘라 벌했다고 하더군. 따라서 이 명심추는 바로 죽음의 징조이며 또한 죽음의 소식이기도 한데 이를 보거나 받은 사람은 볼장 다 보았음을 알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방법 이외에는 달리 택할 길이 없었다고 하더군…』
똑똑하게 이야기를 들려준 군유명의 눈동자에는 어느덧 엷은 야유와 조롱의 빛이 서려 있었다.
그와같은 눈빛으로 그는 다시 입을 열었다.
『앞서서 나는 그 만세야(萬歲爺)의 의심을 하는 결점이 또한 일종의 장점이라고 이야기를 했는데 그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답은 간단하지. 예를 들어 말한다면 내 자신에게는 바로 유감스럽게도 그와같은 결점이 없었다는 것이지. 만약에 나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의심하는 성격이 좀더 짙으며 나의 수하들에게 조금이라도 경계를 했더라면 오늘 나는 바로 그와같은 불이익을 당하지 않았을 것이고 좌절도 겪지 않았을 테지.』
군유명은 씩, 웃어 보이고 금미의 잿빛처럼 변한 얼굴을 바라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이것은 바로 금 소저가 나에게 한 마디의 명언을 알려준 것과 마찬가지인데 나는 그 한 마디의 명언을 영원히 기억하게 될 거야. 그 명언이라는 것은 '신임이 바로 독약이다.'라는 것이지.』
자기도 모르게 전율을 느낀 듯 몸을 한 차례 부르르 떤 금미는 입술을 꼭 다문 채 아무 소리도 하지 않았다.
흩어진 머리카락은 바로 경미하고도 경미하게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군유명은 손에 들고 있는 금침으로 땅바닥의 강칠을 한 번 가볍게 찌르는 시늉을 하면서 입을 열어 설명했다.
『이 명심추는 순금에 약간의 청강(靑鋼)을 섞어서 만든 것으로 딱딱하면서도 뾰족하기 이를 데 없는데 손잡이 쪽이 나비 모양으로 만들어져 있고, 그 위에는 또 각가지 빛깔의 여섯모꼴 보석을 박아 놓아 상당한 귀중품이 되었었지. 더군다나 아름답고 눈을 즐겁게 하기 때문에 겉으로만 명심추를 보았을 때는 좀처럼 이 명심추가 상징하고 있는 공포의 내막을 알아차릴 수가 없겠지. 물론 만세야께서 사용하시던 어용지물(御用之物)은 어찌 되었든 간에 귀중하고 아름다워야 되지. 명심추를 받는 사람은 존귀한 사람이지. 한 나라의 군주가 내리는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으니 영광스러울 테고 그 죽음은 모름지기 다채롭고 약간은 숭고해지겠지. 만약에 우리와 같이 초망(草莽)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처럼 하찮은 칼에 맞아 죽는다거나 또는 한 자루의 녹이 슨 쇠막대기에 맞아 죽는 것은 명심추를 받고 죽는 것에 비하면 너무나 평범하고 보람없는 것으로 보여지지 않을까?』
군유명은 금침을 손등으로 한두 번 두드리며 다시 말을 계속했다.
『이 명심추라고 불리는 물건이 너무나 흉악한 것이었기 때문에 내가 수집하여 손에 넣게 되었을 적에는 역시 저 여러 보물들이 모여 있는 석지 중에 던져 버리게 되었던 것인데 어젯밤에 공교롭게도 나는 그 명심추를 발견하게 됐지. 이것은 마침 석지 가장자리에 위치하고 있더군. 그리하여 나는 갑자기 명심추를 사용하여 여러분들의 마음을 밝혀 볼 수 있겠구나 하는 점을 문득 떠올리게 되었지.』
거기까지 말한 그는 야릇하게 웃으며 다시 말을 이었다.
『물론 나는 구승지존의 진명천자도 아니고 여러분들 또한 내가 거느리는 왕공 대신들도 아니지. 하지만 성공한 사람은 왕이 되고 패한 사람은 도적이 된다고 했으니까 이와같은 도리로 이야기를 하도록 하세. 그러니까 나는 곧이어 잠시동안 황제의 거드름을 피우게 되겠고 여러분들 역시 억울하겠지만 잠시동안만 명심을 기다리는 신하 노릇을 해주었으면 하고 바라는 바일세.』
마치 일장 훈시를 하듯 네 사람에게 그와같은 이야기를 하던 군유명은 다시 미소를 지으며 시선을 대천비 곽청에게 옮겼다.
『사숙님, 어르신께서는 그 동반사를 풀어 놓도록 하시죠.』
동반사라는 이름을 듣게 되자 금미와 마백수는 그만 약간 어리둥절해져서는 어리둥절해 했다.
그러나 강칠과 양릉은 어떻게 된 노릇인지 알고 있었다.
삽시간에 두 사람은 그만 커다랗게 입을 벌리고 두 눈의 눈망울마저 별안간 불쑥 눈 밖으로 굴러떨어질 것 같았으며 두 얼굴의 근육이 모두 다 일그러지고 말았다.
오관마저도 대뜸 원래의 위치에서 이탈되고 마치 줄을 타는 사람처럼 벌벌 떨고 있었다.
극도의 공포는 이미 그들의 심장을 놀라서 위축되게 했고 그들의 간담마저도 놀라 거의 찢어 놓은 모양이었다.
군유명은 담담히 웃으며 말했다.
『가장 먼저 우리들은 우선 용봉희(龍鳳戱), 음, 용봉희를 즐겨보지!』
대천비 곽청이 이 때 나직하고도 무거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나는 뱀을 풀어 놓겠다. 이 녀석아, 조심하도록 해라!』
군유명은 고개를 끄덕이고 앞으로 몇 걸음 나서더니 입을 열었다.
『사숙님께서는 주머니의 귀퉁이를 이 녀석 쪽으로 향하도록 하고 풀도록 하십시오. 나는 반드시 그 귀엽고도 조그만 뱀이 나의 발밑으로 딸려오도록 해야겠습니다.』
대천비 곽청은 두눈을 번뜩이며 벼락같이 호통을 내질렀다.
『조심해라!』
호통소리와 더불어 대천비 곽청은 오른손에 들고 있는 하나의 부드러운 소가죽으로 만든 주머니의 주둥이를 갑자기 느슨하게 풀어주었다.
그러자 한 마리의 황갈색의 화살처럼 꿈틀거리고 싸늘하면서도 매끄러운 꽃무늬를 지닌 것이, 뭐라고 말로서 표현할 수 없이 신속하게 가장 가까운 곳에 서 있는 군유명 쪽, 바로 그의 발목이 있는 쪽을 향해 쏘아지듯 달려드는 것이었다.
군유명은 발끝을 거의 털끝만치도 움직이는 기척을 보이지 않고 약간 떨더니 어느덧 두 걸음 뒤로 물러나 있었다. 그리하여 그 흉악하고도 매서우며 극독을 품고 있는 동반사는 대뜸 허공을 덮치게 되었다.
그런데 그 동반사가 다시 몸을 날리기 전에 군유명의 오른손이 벼락같이 앞으로 뻗쳤으며 금빛 광채가 번쩍하면서 유성처럼 날았다.
윙, 하는 소리와 함께 그 동반사는 어느덧 군유명이 던져낸 명심추에 꼬리부분을 관통당해서는 정확하고도 견고하게 땅바닥에 박히게 되었다.
이 동반사는 어린애 가죽처럼 굵었고 길이는 여섯 자 정도였으며 머리부분은 세모꼴이었다.
두 눈은 작고 둥글었으며 눈동자에서는 파란 빛이 은연중 쏟아지고 있었고 주둥이는 크고 넙적한데 윗쪽 이빨이 불쑥 튀어나와 있었다.
매번 그 빨간 혓바닥을 날름거릴 때 똑똑히 동반사의 입안에 두 쌍의 독니를 볼 수 있었는데 독이빨은 황백색을 이루고 안쪽으로 예리한 갈고리처럼 구부러져 있었다.
이 두 쌍의 독이빨은 심각한 의미를 심어주었다.
그 모양이 낙시같은 독이빨이 살속을 파고들게 되었을 적에 그 안에 들어 있던 독이 완전히 쏟아지지 않으면 영원히 이빨을 빼내지 않을 것이었다.
그 뱀의 전체 몸뚱이에는 황갈색의 꽃무늬가 잔뜩 나 있었는데 둥근 원은 서로 이어져 빽빽하게 연결되어 있었으며 찐득찐득하고 매끄러운 광채를 반사하고 있었다.
그 광채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모골이 송연할 정도로 섬뜩한 느낌을 주었고 구역질을 느끼게 하였다.
동반사는 고통과 분노에 차서 몸을 뒤틀고 있었다.
그 동반사의 상반신은 평지에서 쭉 뻗쳐 위로 쳐들리게 되었고 혓바닥은 신속하게 날름거리고 있었는데 날름거릴 때마다 쉭쉭, 하는 공포의 소리를 내었다.
한 쌍의 눈을 동그랗게 뜨고 사방에 늘어서 있는 사람을 노려보는 것이었다.
『악독한 놈!』
마백수는 송곳으로 가슴을 찌르는 두려움 속에 자기도 모르게 군유명을 욕을 했다.
이 동반사라는 한 마리의 독사는 지극히 흉폭한 독물이라 할 수 있었다.
한 번 보기만 해도 혼비백산토록 하고 좌불안석이 되도록 만들었는데도 군유명은 동반사를 한 마리의 귀엽고 조그만 뱀이라고 했으니 마백수로서는 어처구니가 없고 기가 찰 지경이었다.
그 뱀은 아무래도 서너 근은 나갈 것 같았다. 그와같이 무서운 형상은 근본적으로 귀엽다는 말과는 영 거리가 멀어 보였다.
강칠은 놀라 거의 숨을 못쉬는 형편이었다. 그의 얼굴은 지나친 공포로 인해서 이미 인간의 얼굴이 아니었다.
지금 강칠은 이미 흘릴 눈물도 말랐으며 말도 하지 못했다. 입가로 허연 거품만 내쏟고 있었다.
그의 온몸은 뻣뻣해져서 그저 죽어라하고 숨쉬기 바빴는데 한 쌍의 눈동자는 마치 귀신에 홀린 것처럼 멍청하니 그 동반사의 분노에 차서 뒤트는 동체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가만히 그리고 느릿하게 군유명은 강칠에게로 다가가더니 차갑기 이를 데 없는 어조로 입을 열었다.
『강칠, 너는 네가 지은 죄를 알고 있겠지?』
강칠은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는 격렬하게 떨고 있을 뿐이었다. 눈 속에는 벼를 에이는 비애와 공포, 그리고 애걸하는 빛이 서려 있었는데 그와같은 눈초리를 군유명에게 던지는 것이었다.
강칠의 두껍고 거품으로 축축해진 입술은 벌름거려지면서 떨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아무리 노력을 해 보아도 한 마디의 말을 입밖으로 내 놓을 수가 없는 모양이었다.
군유명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슬픔과 연민에 찬 어조로 입을 열었다.
『나는 네가 두려워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 강칠, 나는 알고 있단 말이다. 그러나 너는 어째서 이와 같은 혹독한 형벌을 받아 마땅한 나쁜 짓을 저질렀느냐? 너는 저질러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너는 친히 우리 철위부에서 어떻게 너와 같이 죄를 범한 사람을 벌하는지 보아왔지 않느냐? 그리고 너는 더욱이 몸소 그들의 울부짖음과 비명소리를 들은 바가 있다. 그런데도 너는 어째서 그와 같은 죄를 지어야 했느냐 말이다.』
혼이 거의 날라가고 간담이 찢어진 강칠이 어떤 반응을 보이기를 기다리지 않고 군유명은 이미 발끝으로 강칠의 뒷덜미를 밀어서 천천히 앞쪽으로 한 자 정도 밀어붙였다.
그러자 동반사가 독이빨로 공격할 수 있는 곳까지는 겨우 한 자의 간격밖에 남지 않게 되었는데 그 한 자는 지극히 짧고도 짧은 거리에 지나지 않았다.
쉭쉭, 하는 소리를 내면서 뱀의 몸뚱아리는 마구 땅바닥에 부딪치고 있었다. 심지어 뱀의 몸뚱이에서는 한 가닥 맡기 어려운 누린내가 나고 있었다.
그토록 가깝게 다가가 한 자의 간격만 남게 된 상태인지라 강칠은 똑똑히 그것을 듣고 자세히 볼 수가 있었다.
이 세상에 태어난 이래 강칠은 처음으로 이토록 한 마리의 독사와 가까운 거리에 있는 것이었다. 이번에 그는 생애 최초로 뱀을 가장 가까이 하게 된 모양이었다.
군유명은 담담한 어조로 다시 입을 열었다.
『나는 네가 구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으며 또한 너의 탐욕스런 목적이 어디에 있었는지도 알고 있었다. 그것은 많은 양의 재부(財富)와 높은 지위다. 그렇지 않으냐? 맞다. 네가 그와 같은 것을 생각하는데 사실 천하의 모든 사람들이 그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들 가운데에는 나도 포함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너는 많은 재보와 더욱 높은 지위를 얻는 것이 결코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반드시 땅을 꼭 밟아 딛고 한 걸음 한 걸음 정당한 길을 따라서 구하고 손에 넣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어야 했다. 너는 비열한 수단과 뻔뻔스러운 간계, 그리고 음독한 함정과 인의를 무시하고 저버리는 흉악한 행동으로서 차지하려고 했었다. 그러니까 너의 꿈을 다른 사람의 선혈 위에다가 세우려고 했으니 너는 반드시 벌을 받아야 한다. 설령 내가 너희들의 사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하더라도 너는 양심의 가책을 받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미 내가 사슬에서 벗어나게 되었으니 너는 나의 징벌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강칠, 내가 지금 너에게 가르쳐줄 수 있는 두 마디는 우리가 형제처럼 친한 사이인데 이와같은 결말을 맞게 된 것을 내가 퍽이나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별안간 강칠은 전신의 모든 나머지의 힘을 가득히 돋구고 허깨비가 울고 신이 울부짖듯이 몇 마디의 말을 토해냈다.
『잘못을 깨달았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아…』
군유명의 동작은 그야말로 불가사의할 정도로 빨랐다.
강칠의 울부짖는 소리가 막 석실 안의 무거워진 공기 사이로 울려퍼지게 되었을 적에 군유명의 발끝은 어느덧 강칠의 등줄기를 꽉 누르고 앞으로 가볍게 밀었던 것이다. 그렇게 길지도 짧지도 않게 꼭 한 자만 민 것이었다.
쉭, 하니 귀를 따갑게 하는 숨 쉬는 소리와 더불어 분노에 어찌할 바를 모르던 동반사가 번쩍하니 강칠을 덮쳤다.
그 두 개의 독이빨은 정확하고도 매섭게 깊이 강칠의 목아래에 있는 살속으로 파고 들었다.
이 찰나 강칠의 표정은 매우 기이하고 불안한 듯했으며 또한 흐리멍텅한 것이었다.
그는 마치 눈앞에 벌어지고 있으며 자기에게 닥친 일을 믿을 수가 없는 것 같았으며 더욱더 그 두 쌍의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독이빨이 살 속으로 들어온 사실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는 여전히 벌벌 떨면서도 뻣뻣해진 상태에서 제대로 몸을 크게 흔들거리지를 못했다.
한 쌍의 두려움에 질린 눈을 커다랗게 뜨고 일그러진 오관에 공포의 빛을 알알이 담고 있었다.
멀지 않은 곳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양릉은 이미 놀라 반 혼수상태에 빠져 있었다.
그의 얼굴은 싯누렇게 변해 있었으며 여전히 멍하니 강칠의 참혹한 모습(잠시 후에는 그의 모습이 되겠지만)을 보고 있었다.
그의 혓바닥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입 밖으로 나와 방울방울 맑은 침을 흘리고 있었다.
그의 온몸은 식은땀으로 온통 젖어 있었고 마백수의 콧구멍은 크게 벌려져 있었고 시커멓고 커다란 콧구멍에서는 거칠고 혼탁한 바람이 내뿜어지고 있었다.
마치 그 누가 그의 심장을 움켜잡은 듯이…
이 회건방의 표파자는 수염과 눈썹을 모두 떨고 있었으며 두 눈은 완전히 눈두덩이 밖으로 삐져나올 것만 같았다.
비교적 침착한 사람은 역시 금미였다. 그러나 금미 역시 침착함을 잃고 있었다.
그녀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보고 들은 것, 엿본 것, 심지어 그녀 자신이 저지른 것 등은 모두 시뻘건 피를 뿌리는 잔혹함과 아슬아슬한 위기, 살벌함, 그리고 음산한 경험으로 충만해 있었다.
그녀는 그야말로 너무나 많은 참상을 보아왔고 너무나 많은 위험을 겪은 것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눈앞의 이와같은 일은 일찌기 겪어본 적이 없었으니 이것이 일종의 어떤 느낌을 가져다주는 것인지 짐작할 수가 없었다.
그와같이 사람의 모골을 송연하게 하는 죽음의 방식과 뼈에 사무치고 염통에다가 조각해 놓은 듯한 죽음의 분위기, 그리고 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마음으로 느끼는 무서운 부담감…
금미의 얼굴도 눈처럼 창백해져 있었는데 그 얼굴은 거의 살아 있는 사람의 얼굴이 아니었다.
그녀의 두 입술은 약간 벌어져 있었으며 눈동자의 광채는 무겁고도 무서운 광경에 질식한 것만 같았다.
그녀의 두 뺨의 근육은 끊이없이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는데 그것은 마치 안에 무슨 물건이 있어서 잡아당기고 있는 것 같았으니…
군유명은 평화롭게 마치 평소처럼 매우 담담하고도 수월하게 말을 하는 것이었다.
『강칠, 독이빨이 살속으로 파고 들게 되었을 적에 약간 아프게 되겠지? 그러나 그것도 조금 아플 뿐이야. 잠시 이후에 너는 한결 기분 좋은 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갑자기 강칠은 전신을 흠칫했다. 그는 찢어질 것 같은 목청으로 공포에 질린 비명소리를 내질렀다.
『살려줘… 나를 좀 살려줘… 누가… 나좀 살려줘… 으악… 후르륵…』
그가 반쯤 부르짖게 되었을 적에 강칠은 이미 경련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그는 마치 그 누구에게 목을 졸리는 듯 힘주어 숨을 빨아들이고 있었으며 두 눈에는 흰자만 보이게 되어 있었다. 입은 크게 벌려졌으며 온 얼굴은 순식간에 자흑색으로 변했다.
대천비 곽청은 약간 연민과 안됐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무거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이 녀석아, 이 사람은 거의 다 되었다. 뱀을 떼어내도록 해라.』
군유명은 빙그레 웃어 보이고는 살며시 한 옆으로 몸을 기울이더니 번개와 같이 손으로 그 동반사의 칠촌(七寸)이 있는 곳을 잡았다.
약간 기운을 쓰자 동반사는 어느덧 한 번 떨더니 그의 독이빨을 빼내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동반사는 여전히 석연치 않은 모양이었다.
그 놈은 분노에 바둥거리고 몸을 뒤틀었을 뿐만 아니라 쉭쉭, 하는 소리를 더욱더 날카롭게 내뱉고 있었던 것이었다.
군유명은 다시 발을 들어 강칠을 한 자 밖으로 밀어내고 고개를 돌렸다.
『사숙님, 이제는 독두조를 한 마리만 풀어 놓으시죠!』
대천비 곽청은 소리 없이 한숨을 내쉬더니 손에 들고 있는 다른 하나의 부드러운 소가죽으로 되어 있는 주머니를 약간 풀었다.
휙, 하는 소리와 함께 한 무더기의 잿빛 그림자가 주머니로부터 달려 나오더니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그 한 무더기의 잿빛 그림자가 주머니에서 날라오는 기세가 너무나 맹렬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위에 견고하고 두꺼운 천정이 가로막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인지 그만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동굴 천정에 부딪치고 말았다.
그러자 그 한 무더기의 잿빛 그림자는 짹, 하는 비명소리를 내지르며 무겁게 아래로 떨어지게 되었는데 떨어지는 장소가 바로 마백수의 그 장대한 몸뚱이 위였다.
간담이 찢어지게 된 마백수는 하마터면 놀라 기절할 뻔한 나머지 경악에 찬 소리를 부르짖었다.
『사람 살려!』
바로 그 처절하고도 떨리는 음성의 여운이 미처 허공으로 울려퍼지게 되었을 적에 마백수의 위에 떨어지게 된 그 잿빛 그림자는 갑자기 한쪽으로 기울어지면서 그 어떤 형태없는 힘에 떠밀리는 것처럼 후닥닥 방향을 틀더니 무겁게 다른 한 사람의 몸뚱아리로 내동댕이쳐졌다.
그 다른 한 사람은 바로 강칠이었다.
군유명은 막 열십자 모양으로 교차했던 두 손을 내리며 싱글벙글 웃으며 입을 열었다.
『늙은이, 나의 이 한 수의 점허력(粘虛力)이 어떻소?』
마백수에게 무슨 기운과 정신이 남아 있어 대답을 하겠는가?
그는 그저 멍청하니 그 한 무더기 강칠의 몸뚱아리에 떨어진 잿빛 그림자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잿빛 그림자는 한 마리의 새였는데 그야말로 추악하기 이를 데 없고 무시무시하게 생긴 괴조(怪鳥)였다.
이 새는 크기가 한 마리의 독수리 정도였다. 그러나 독수리보다도 더욱더 흉측하고 흉폭했으며 추악했다.
이 괴조는 독수리와 비슷한 머리를 가지고 있었으나 주둥이는 뾰족하면서도 가늘고 길었으며 온 몸에는 빽빽하게 딱딱한 잿빛 깃털이 가득 자라 있었지만 유독 목 아래쪽 두 치쯤 되는 부위에는 털이 없었다.
털이 없는 곳이라 분홍색의 표피(表皮)가 드러나게 되었고 분홍색의 표피 위에는 다시 한 알 한 알의 오돌도톨한 혹 같은 것이 돋아 있어서 보기에도 우둘두툴한 것이 메스꺼움을 느끼게 했다.
한 쌍의 발톱은 새까만데 갈고리처럼 예리했다. 그리고 한 발에는 네 개의 발톱이 있었는데 마치 네 개의 구부러진 강철 갈고리를 연상시켰다.
이 때 그 괴조는 정신을 차린 듯 강칠에게 부딪쳐 미미하게 한 번 꿈틀거리는 것 같았다.
그러더니 돌연 후닥닥 두 눈을 번쩍 뜨는 것이 아닌가.
정말 대단한 놈이었다. 그 놈은 한 쌍의 눈을 부릅떴는데 놀랍게도 피빛이었고 형형하게 흉측한 광채를 내쏟고 있었다.
군유명은 나직하게 말했다.
『사숙님, 이 독두조가 지금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알고 싶어하는군요…』
대천비 곽청은 나직하고도 무거운 어조로 그 말을 받았다.
『걱정하지 말아라. 이 녀석아, 그놈은 좀 지나면 알게 될 것이다.』
곽청의 말이 아직도 그 꼬리의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강칠의 몸에 쓰러져 있던 독두조는 후닥닥하니 짝, 하는 소리와 함께 날카롭게 울부짖었다. 그리고 두 날개를 갑자기 펼치면서 한 번 발버둥을 치더니 두 발톱으로 퍽, 하는 둔탁한 소리와 더불어 깊이 강칠의 등줄기를 한껏 내리 쪼는 것이었다.
동시에 그 가느다랗고 긴 주둥이가 어느덧 찍, 하는 소리를 내며 강칠의 두툼한 볼따구니의 살속으로 파고 들었다.
군유명은 얼굴에 한 가닥의 차갑고도 전혀 개의치 않는 미소를 띠우고 두 손을 부비고 땅바닥에 웅크리고 있는 다른 두 사람을 바라보면서 설명을 했다.
『여러분, 이 새로 말하면 독두조라고 하는데 전문적으로 사람과 짐승의 피를 빨아먹는 습관이 있으며 이 반고산 구역에서 보기 드믄 특산품이라 하고 있소이다. 우리의 사숙부님께서는 상당히 정성을 들여서 두 마리를 잡았던 것인데 그러니만큼 여러분들은 이 독두조의 습성을 잘 감상하시기 바라오. 이와같은 인연은 매우 얻기 어려운 것이고 이후 아마도 당신들은 다시 구경할 행운을 갖지 못하리라고 생각이 드는군요.』
독두조는 별안간 다시 뾰족하고도 예리하고 기다란 주둥이를 강칠의 볼따구니 살에서 뽑아내더니 두 발톱으로 즉시 신속하게 강칠의 등줄기에 있는 살을 찢었다.
한 가닥 한 가닥 가죽이 찢어지고 살이 뒤집히는 상처가 드러나면서 강칠의 몸에서는 붉은 피가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이윽고 독두조는 다시 짝, 짝, 하는 괴이한 소리를 내지르더니 익숙하고도 재빠르게 기다란 주둥이를 푹, 하는 소리와 함께 강칠의 척추골 뼈다귀 안으로 꽂는 것이었다.
강칠은 아직도 숨이 끊어지지 않은 듯 독두조의 기다란 그의 등줄기 뼈마디 사이로 파고들게 되었을 적에 약간 한 번 꿈틀거렸다.
그는 입과 목에서 한숨을 쉬듯 아, 하는 소리를 애매모호하게 내뱉고 있었다.
그는 이미 움직일 수 없었으며 입을 벌리고 신음소리를 내뱉을 수도 없었다.
곧이어 한 쌍의 돼지눈도 반쯤 뜨여지고 반쯤 감겨져 있는 상태로 변했다.
독두조는 두 예리한 발톱을 끊임없이 강칠의 전신을 찍고 할퀴었으며 뾰족하고도 날카로운 부리를 뽑았다가 꽂고 다시 꽂았다가는 뽑는 등 마음대로 강칠의 몸 안에 있는 피를 뽑아 마셨다.
잠시 후에 강칠의 온몸 아래위의 옷자락이 모조리 찢겨져 나가게 되고 살이 뒤집히면서 뼈마디가 드러나게 되었다. 그의 피는 밑바닥을 흥건히 적시고 있었다.
군유명은 강칠의 상처자국이 온몸에 퍼져 있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매우 한가롭게 입을 열었다.
『사숙님, 이 한 토막의 용봉희는 어떻습니까?』
대천비 곽청은 숨을 들이마시더니 중얼거렸다.
『너무 악독하다.』
군유명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렇습니다. 저 역시 그와 같은 생각이 드는군요.』
그는 잠시 여유를 두었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기실, 좀 더 많이 보게 된다면 자연스럽게 여겨지게 되지요. 사람의 살이라는 것도 다른 동물의 살과 별고 다른 점이 없습니다. 역시 피가 흘러내리고 부들부들 떨리는 것이며 한 커다란 조각으로도 되고 한 가닥 한 가닥씩으로도 나눌 수가 있는 것이지요. 그러니 짐승의 살고기를 나누는 것과 사람의 살고기를 나누거나 가르는 것은 거의 비슷한 거지요. 이것은 관념상의 문제일 뿐이지요. 이는 마치 한 쟁반의 사람 고기를 갖다 주고 고기를 먹는 사람에게 어떤 고기라고 말을 하지 않았을 때 그 사람은 틀림없이 어떤 의심도 하지 않고서 마음속으로 이 고기는 일종의 고기일 뿐이라고 여길게 틀림이 없습니다.』
대천비 곽청은 그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싸늘히 코웃음 치더니 냉랭히 내뱉었다.
『궤변이다!』
군유명은 빙그레 웃고는 자조하듯 말했다.
『저는 사숙님께서 저에게 한 마디 고론(高論)이라고 칭찬의 말을 해주시리라고 잔뜩 기대를 걸었었습니다.』
대천비 곽청은 갑자기 일순 어리둥절해지더니 불쑥 입을 열었다.
『이 녀석아, 강칠의 몸에서 흐르는 피를 보아라.』
군유명은 조금도 이상스럽게 생각하지 않고 픽하니 웃으며 그 말을 받았다.
『엷은 흑색으로 변했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다. 강칠의 몸에서 흘러내리는 피는 얼핏 보게 되었을 때에 붉게 보였으나 만약에 자세히 관찰을 하게 된다면 그 새빨간 핏속에 놀랍게도 엷은 검은 빛이 서려 있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군유명은 그 광경을 보더니 느릿한 어조로 말했다.
『저 추악하고 괴상하게 생긴 독두조를 봉황으로 비유하고 저 흉악한 동반사를 용으로 비유한다는 것은 어느 정도 용과 봉이라는 두 글자를 모독하는 바가 없지 않아 있는 것 같군요. 그러나 저는 무슨 일을 하든지 간에 좀 더 풍류적이고 우아하기를 바라지요. 비유가 약간 부당하다 하더라도 저 자신이 자신에게 미안한 감을 느낌으로서 끝내야 하는 것이겠지요.』
대천비 곽청은 나직하고도 무거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뭐가 용봉희란 말인가, 정말 얼토당토 않는 것 같군…』
군유명이 입술을 핥으며 정히 또 뭐라고 입을 열려고 했을 적에 강칠의 피를 빨아먹고 있던 독두조가 갑자기 날카롭게 몇 번 부르짖었다. 그리고 두 날개를 퍼득거리며 발버둥 치듯 몇 번 뛰어오르려고 하더니 끝내는 머리부터 수구린 채 땅바닥에다가 머리를 처박았고 두 발의 균형을 잃고서 부들부들 떨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꼼짝도 하지 않았다.
군유명은 눈길을 옆으로 돌리며 한숨 쉬듯 말했다.
『저 새는 정말 우둔하군요. 설마하니 그는 강칠의 몸 안에서 흘러내리는 피맛이 좀 달라진 것을 맛볼 수 없었을까요?』
대천비 곽청은 약간 어처구니가 없는 듯 그 말을 받았다.
『저것은 한 마리의 미천한 날짐승에 불과한데 어떻게 그와 같은 신통력을 지니고 있겠느냐?』
군유명은 머리를 쓰다듬었다.
『원래 저놈은 미천한 날짐승에 불과하군요…』
눈길을 강칠의 몸뚱아리에 시선을 던진 곽청마저도 그만 마음속으로 진저리를 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맙소사! 지금의 강칠은 강칠이라고 할 수가 없었다. 비단 전신의 아래위 피와 살이 모호하여 목불인견으로 참혹할 뿐만 아니라 두 눈동자는 눈두덩이에서 불거져 나왔고 죽어도 눈을 감을 수 없다는 듯 부릅뜬 상태였다.
그의 온몸 근육은 모두 다 검은 빛에 자색을 띤 빛깔로 바뀌어져 있었다. 그리고 가슴팍은 마치 북처럼 부풀어올라 있었고 얼굴의 오관은 지나친 고통으로 인해서 일그러진 나머지 한테 모아져 있는 것 같았다.
혓바닥은 시뻘겋게 상당히 길게 빠져나와 있었고 혓바닥 끝에서는 역시 방울방울 자색의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대천비 곽청은 강칠이 먼저 연마혈을 짚혀서 근본적으로 발버둥을 칠 수 없었지만 그렇지 않았을 때에는 아마 이리저리 뒹굴고 몸을 날리는 등 발버둥을 쳤을 것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가 있었다.
강칠은 처절한 비명을 내지를 기회도 많지 않았다. 그 원인은 그가 소리 내어 부르짖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동반사의 독성이 중독된 사람을 지극히 빠른 시간 안에 질식하게 한다는 것을 곽청도 잘 알고 있었다.
그 원인은 들면 기관(氣管)이 신속하게 부어올라 중독된 사람이 숨을 쉴 수 없게 만들기 때문이었다.
다시 말을 한다면 산 채로 가슴이 갑갑해져서 숨을 쉬지 못해 질식사하게 되는 것이었다.
이와 같은 상황하에서 죽어가는 사람은 종종 폐가 터져서 찢어지는 수가 있었다.
더군다나 단 한 마리의 흉폭하기 이를 데 없는 독두조가 동시에 그의 몸뚱아리에 마구잡이로 찢고 피를 빨아대는 등 흉악한 짓을 해대니 어찌 견딜 수가 있겠는가?
군유명은 죽은 사람들을 너무나 많이 보아 왔기 때문에 강칠을 보자마자 앞으로 다가가서 살펴볼 필요도 없이 반역자가 이미 숨이 끊어졌다는 것을 알고는 담담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사숙님, 강칠은 이미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대천비 곽청은 한숨을 내쉬며 무거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이와 같은 악독한 형벌하에서 그 누가 견딜 수 있겠느냐? 사람은 살로 만들어진 것이지 그 어느 누구도 무쇠로 만들어지지는 않았지.』
군유명은 빙그레 웃고는 다시 양릉에게로 다가갔다.
그토록 명성을 떨쳤던 청포 양릉은 지금 이미 혼비백산한 나머지 겨우 한 가닥 숨만 붙어 있고, 한 점의 오락가락하는 영지(靈智)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물론 그 역시도 영웅호걸로서 죽을 때까지 버텨보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해도 버틸 수가 없었다.
그는 분명히 이번 액겁에서 도망치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정말로 믿고 싶은 생각이 없었으며 죽음이 두려운 것은 절대 틀림이 없는 사실이었다.
자고로 가장 어려운 일이 죽는 일이라고 했다. 그러니 그 몇 사람이 애써 죽음 앞에서 내노라고 천연덕스러운 척 할 수가 있겠는가.
군유명은 한 가닥의 미안한 마음을 가지면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미안하이, 나의 오래된 형제여. 그리고 내가 가장 신임하는 동료여, 너의 부수(副手)인 소염왕(小閻王)은 이미 노염왕(老閻王)이 계신 곳으로 신고를 하러 갔다. 그러니 너 역시도 빨리 한 걸음 앞당겨서 그와 길동무가 되어주는 것이 의리를 지키는 것이 아니겠느냐?
극도의 공포에 질린 나머지 벌벌 떨면서 양릉은 애써 자기가 말을 할 수 있도록 노력을 했다.
하지만 입 밖으로 새어나가는 소리는 이미 벌벌 떨려서 무슨 말인지 제대로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공자… 제발… 어르신… 께서는… 제가… 몇 년 동안… 보살핀 점을 참작하시어… 근 십 년 간… 많은 공로… 공자… 제발… 목숨만 살려주십시오…』
군유명은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너는 네 죄를 알겠느냐?』
별안간 양릉은 한 차례 진저리를 치듯 부르르 가볍게 몸을 떨더니 절망에 찬 어조로 입을 열었다.
『제발… 어르신… 공자… 저… 저는… 한평생… 단 한 번… 잘못을 저지른 것이오니… 공자… 제발 은덕을… 베푸시어… 용서해 주십시오… 이번만큼만…』
군유명은 빙그레 웃었다.
『옛날부터 전해오는 두 마디의 속담이 있는데 그 두 마디의 말을 기억하는가? 한 번 발을 잘못 들여 놓게 되면 천고(千古)에 한을 남기고 다시 돌아서게 되었을 적에는 이미 세월이 백 년이 지난 후였다. 양릉, 지금이 바로 네가 천고의 한을 품게 된 때이다.』
그는 다시 양릉의 그 무섭고 불쌍하게 느껴지는 참담한 얼굴을 보지 않고 고개를 쳐들더니 느릿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인간 세상에 태어나서 많은 일에 있어서 잘못을 저지르게 되었을 적에 참회를 하고 통렬히 회계하여 앞의 잘못을 고칠 수도 있지만 또한 많은 일들에 있어서는 한 번으로 끝인 경우가 있지. 그 한 번의 잘못으로 인해서 영원히 다시 참회할 기회를 얻지 못하게 되는데 지금의 네가 바로 그와 같다. 사람이 살아 있는 것은 그저 짧고도 촉박한 한 토막의 세월에 불과하니 모든 일들을 결코 막을 방법이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한다면 어떠한 종류의 결과를 맛볼 방법이 없다는 말이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에게는 삼강오륜이라는 것이 있고 선악을 갈라 놓고 있다. 이와 같은 것들은 우리들에게 어떠한 일들은 할 수 있고 어떠한 일들은 할 수 없으며 어떠한 일들은 마땅히 해야 하며 어떠한 일들은 하지 말아야 한다고 알려주고 있지. 만일 인륜을 저버리고 도덕을 저버리며 흑백을 마구 뒤섞고 선악을 전도한다면 그 사람은 바로 사악한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사악한 사람은 견딜 수가 없는 것이다. 물론 그 사람이 자기가 저지른 이 사악하다는 것을 모른다면, 예를 든다면 세 살 먹은 어린애가 되겠는데, 양릉, 너는 결코 그와 같은 조건에 부합되지 않는다. 너는 이미 충분히 철이 들만큼 나이를 먹었다.』
양릉은 전율하며 슬픔과 공포에 질려 목이 터져라 부르짖었다.
『저는… 저는 당신의 옛… 형제입니다.』
군유명은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맞았다. 너는 나의 오래된 형제이며 한때는 적지 않은 피와 땀을 흘려서 공로를 세웠고 또한 나와 함께 동고동락한 바가 있다. 몰론 이와 같은 것들을 나는 전혀 부인하지 않는다. 나는 한 가지 의문이 있는데 양릉, 우리들의 사이가 그토록 친한데 너는 어째서 나를 함정에 빠뜨리려고 했으며 다른 사람을 도와 나의 기업을 빼앗으려고 했으며 또한 나의 수족 같은 형제들을 해치고 처 될 사람과 누이 될 사람을 도모했느냐? 그리고 내가 숨겨 놓은 보물을 탐냈을 뿐만 아니라 내 목숨까지도 엿보았다. 대체 무엇 때문인가?』
양릉은 그만 말문이 콱 막혔다.
그렇다. 무엇 때문일까? 그것은 무엇 때문일까?
하지만 그 자신이 탐욕, 이기심, 음독함, 야심, 그리고 수치와 양심을 상실했기 때문이라고 솔직히 시인할 수가 있겠는가?
군유명은 여전히 담담한 어조로 물었다.
『이제 너는 또 무슨 할 말이 없느냐?』
양릉은 갑자기 눈물 콧물을 마구 펑펑 쏟으면서 대성통곡을 하기 시작했으며 처절하게 울부짖었다.
『제가 잘못했소이다. 공자… 잘못했소이다. 제발… 용서해 주십시오… 이번만큼만… 제발 부탁입니다.』
군유명은 한숨을 내쉬었다.
『양릉, 자네가 이번에 저지른 잘못은 애석하게도 한평생 단지 한 번밖에 저지를 수 없는 종류에 속하는 것이다. 내가 만약에 너를 용서한다면 훗날 내 어찌 다른 사람을 통솔할 수 있겠느냐?』
너무나 경악하여 숨이 넘어갈 것처럼 뾰족한 비명소리를 내지른 양릉은 마혈(麻穴)을 잡힌 몸이었지만 놀랍게도 지나친 발버둥으로 인해 미미하게 움직이기까지 했다.
군유명은 가볍게 고개를 흔들며 발끝을 벼락같이 내밀었다. 그야말로 말할 수 없이 정확하게 양릉의 몽뚱아리는 어느덧 곧장 그 여전히 노기가 가라앉지 않은 동반사의 앞으로 다가들게 되었다.
그 동방사의 독이빨 속에 머금고 있는 독은 아직도 완전히 쏟아낸 것이 아니었다.
그는 군유명의 손에 의해 억지로 강칠의 몸에서 떨어진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동반사의 흉악한 성질은 여전히 결렬한 셈이었다.
거기다가 강칠의 시체에서 나는 피비린내는 그를 잔뜩 흥분시킨 모양으로 고개를 쳐들고 혓바닥을 날름거리는 것이 참혹하기 이를 데 없어 보였다.
그런데다가 이제 반항할 힘을 잃은 양릉이 다시 뱀의 앞으로 디밀어졌으니 이와 같은 기회를 뱀이 어찌 놓칠 수가 있겠는가?
양릉의 높다랗고도 사람의 모발을 곤두서게 하는 울부짖음이 미처 반도 터져 나오기 전에 동반사는 대가리를 어느덧 한 번 낮추는가 하더니 곧 번개같이 양릉을 물었다.
이번에 동반사는 양릉의 목을 무는 것이 아니라 단숨에 양릉의 이마를 깨물어 버렸다.
두 쌍의 독이빨이 살속으로 파고드는 그 찰나에 어렴풋이나마 한 소리 지끈,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양릉의 처참한 울부짖음은 삽시간에 답답한 신음소리로 사그러들었고 이제 질식한 것처럼 나직이 신음소리를 아, 아, 하고 뱉어내고 있었다.
그는 전신을 와들와들하고 떨었는데 그 모습이 동반사의 매끄럽게 꿈틀거리는 몸뚱아리와 조화를 이루어서 한 폭의 지극히 공포스러운 잔혹하고도 사나운 광경 이루는 것이 아닌가?
두껍고도 짧은 뱀의 꼬리는 여전히 그 명심추에 의해 땅바닥에 꼭 박혀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매번 뱀의 몸뚱아리가 뒤틀리게 되었을 적에 고통이 전해졌다.
동반사는 조금도 연민의 정을 느끼지 않고 완전히 그의 포획물의 몸뚱이에다가 독을 모조리 주입시켰다.
대천비 곽청은 힘주어 침을 탁, 뱉더니 매스꺼운 듯 말했다.
『세상에 태어난 이래 나는 한 번도 이와같이 뱀을 구경해본 적이 없다.』
군유명은 빙그레 웃었다.
『사숙님, 그것은 어르신께서 뱀이 얼마나 잔혹하고 악독한 물건인지 보지 못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어르신께서는 저를 비추어서 하신 말이 아니기를 바랍니다.』
대천비 곽청은 짙게 코웃음 쳤다.
『흥, 네 녀석도 별로 나을 게 없다.』
군유명은 눈을 깜박깜박하더니 화제를 돌렸다.
『사숙님, 이제 그 남아 있는 독두조를 풀어 놓으시죠.』
대천비 곽청은 아무 말 하지 않고 그 부드러운 소가죽으로 만들어진 주머니의 주둥이를 풀어 놓았다.
이윽고 다시 한 무더기의 잿빛 그림자가 찢어지는 듯한 소리를 내지르며 마치 질식할 때처럼 내 놓는 괴이한 소리를 내지르면서 훌쩍훌쩍 날아 나왔다.
이 독두조 역시 너무나 세차게 날아올랐기 때문에 그만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동굴의 천정에 부딪치게 되었고 똑같이 부딪치게 되는 바람에 정신이 가물가물해진 모양인지 아래로 쭉 떨어지게 되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조금도 옆으로 기울어지거나 옆으로 비스듬히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공교롭게도 바로 한 가닥 숨만 붙어 있는 양릉의 몸뚱이 위에 떨어지게 되었다.
잠시 후에 독두조는 정신을 차리게 되었다. 그러자 즉시 찢어지는 듯한 소리로 울며 양릉의 피와 살을 뜯어먹기 시작했으며 양릉은 나직하고도 쉰 듯하며 무겁고 딱딱한 신음소리가 점차적으로 미약해져 갔다.
이제 양릉은 강칠과 똑같이 엎드려져 있었으며 그의 등 위에서는 독두조가 그의 피와 살을 파먹고 있었다.
그의 이마에는 동반사가 있어서 그를 꽉 깨문 채 독액을 주입하고 있었는데 이와같은 것들이 하나로 합쳐져서는 한 폭의 차마 볼 수 없는 목불인견의 참상을 이루고 있었다.
동반사의 독이빨이 아직도 양릉의 이마에서 떨어져 나오기 전에 독두조는 이미 중독되어 한 차례 푸드덕거리니 곧 두 나래를 뻗치면서 양릉의 옆에서 죽어갔다.
이윽고 군유명은 앞으로 다가가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충분하다. 이 두 막의 용봉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