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익는 마을의 책 이야기
황선만 소설 『내가 뭐 어때서』
소설은 왜 읽는가
나는 독서시민이다. 남이 쓴 글을 읽는 것을 좋아한다. 그럼 내가 쓰는 것은? 싫다. 잼병이다. 그러나 독후감은 꾸준히 쓰고 있다. 독서라는 것이 읽고, 쓰고, 토론하기라는 3박자로 가야 비로소 완성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설은 왜 쓰는가?는 내 고민이 아니다. 그건 쓰는 재미에 폭 빠진 이의 몫이고, 내 고민은 소설을 왜 읽는가?이다. 왜? 나는 읽는 재미에 폭 빠진 이이기 때문이다.
옛날에 나 어릴 적 생각하면 할머니나 어머니가 만화책 읽고, 어깨동무 잡지를 보거나 하면 혼을 냈다. 동아전과를 보고 있으면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 동화책을 봐도 그랬다. 공부는 언제 하냐고. 나 옛날의 더 옛날에는 형설지공이라 했지만 소작농의 아들이 남폿불에 책을 볼라 치면 기름 아깝다고 불 끄고 자라고 했다. 기름값이 아깝기도 하고, 일찍 자고 농사일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지금의 아이들은 유투브 동영상을 본다. 책을 들고 있으면 엄청 칭찬 받을 일이 되었다. 형설지공 시절 사람들은 몰래 책을 보았고, 지금의 50~60대들은 만화나 동화를 읽었고, 지금의 아이들은 유튜브를 보고 있는 공통점은 무엇이었을까? 바로 재미다. 재미있으니까 보는 거다. 아직도 여전히 책을 잡고 읽는 것에 익숙한 세대인 우리들에게 소설은 바로 그런 것이다. 재밌어서.
내가 뭐 어때서
이 책은 10편의 단편집을 엮어 만들었다. 작가는 사회 활동을 역동적으로 해 오는 홍반장 같은 인물이다. 그러나 가슴은 항상 ‘소설 쓰기’를 지향하고 있었다. 나름 꾸준히 써 왔다. 그 시간이 20년이다. 그 내공이 이 번에 빛을 본 것이다. 소설은 가독성이 높았다. 오체투지하며 긴 시간 작품을 완성했을 작가에게 미안할 정도로 잘 읽힌다. 이유는 뭘까? 내가 소설가의 언어에 익숙하기 때문이고, 소설의 등장인물과 이야기 전개가 어디서 겪었을 것 같은 친숙함 때문일 것이다. 문장도 독자를 괴롭히지 않으며 천박하지 않게 만든다.
글을 읽고 나서는 여운도 남는다. 조금은 헛헛하지만, 맘을 따뜻하게 해 주기도 하고, 내 뒤통수를 때리며 자신을 되돌아 보게 하기도 한다.
<내가 뭐 어때서>는 귀촌한 포토에세이 작가가 광산촌 이야기를 작품집으로 만드는 3억원 규모의 관프로젝트를 수주하려는 광부 출신 지역민들을 도와주는 이야기다. 주민들은 도와준 작가를 배제하고 3억원을 나눠 먹으려고 한다. 작가는 그들의 이야기를 우연히 엿듣고 만다. 이 소설에는 “내가 뭐 어때서”라는 문장은 없다. 소설가는 왜 이런 제목을 지었을까? ‘사람들은 상처를 받기도 하고, 상처를 주기도 한다. 상처 받았을 때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 담담해야 하고 위축되지 말아야 한다. 스스로 자존감을 세울 수 있어야 한다.’ 소설가의 이야기다. 소설 속 작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마음을 어떻게 추스렸을까? 그는 ‘숨 한 번 크게 쉬고’ 마을에 당당히 서 있는 느티나무를 찍으러 간다. 독자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어떻게 상처난 내 자존감을 회복하고 보존할 것인가?
위선과 위악, 선의와 호의 그 사이
<해 뜨는 집>은 학생 때 도시빈민운동을 했던 ‘북소리 OB모임’들이 정기모임 하는 음식점이다. 이 집은 이들이 학생때부터 있었던 선술집이다. 년말 행사 때 대기업 임원이 된 기철이 연말에 의미 있는 일 하자고 제안한다. 변호사인 성진이 연탄배달을 직접 하자고 한다. 다들 뜨뜻 미지근 했지만 일단 결정. 추진하기로 했다. 디데이날 누가 나왔을까? 총무와 테이프 만드는 중소기업 영업맨 호웅, 과외 일 하며 열심히 사는 전업주부 미영. 이렇게 셋이다. 당근 죽을 고생 다 했다. 그 후 연말 행사에 미영이 대학 은사님을 초대하면 어떻겠냐고 제안한다. 또 다들 호응. 그는 여당의 공천심사의원으로 사회 유력자가 되었다. 근데 성진이 모임을 ‘해뜨는 집’이 아니라 그 앞 고급 한정식 집 ‘진주성’에서 하자고 제안한다. 본인이 돈 다 낸다고. 당일 날도 초대한 미영이와 회장을 제치고 성진이 교수 옆에 앉는다. 말도 다 한다. 연탄배달 봉사를 가지고 공치사를 한다. 이에 화가 난 총무와 호웅은 밖으로 나와 ‘해뜨는 집’으로 간다.
<우정의 거처>에서는 학생 때 등록금 인하투쟁에 의기투합했던 6명이 20년 지나 모였다. 나오기로 했던 대기업이사, 중견기업 CEO, 공무원인 친구는 나오지 못했다. 중학교 선생 문사, 동대문 옷가게 사장 설주, 신촌 80평 노래방 사장 덕배만 나왔다. 그들은 누가 진짜 사장인지, 자영업과 직장인 중 누가 나은지를 가지고 논쟁한다. 덕배가 노래방에 가자고 한다. 느즈막하게 도착한 노래방에는 덕배의 부인이 바쁘게 일하고 있다. 그들은 그 녀에게 면박을 당하고 만다.
가만히 생각하면 나도 그렇다. 위선과 위악으로 산 경우도 많았다. 근데 이거 잘 기억 안 난다. 또한 선의와 호의로 사람을 잘 대한 적도 있다. 근데 이거 잘 기억난다. 우리는 그런 존재다. 내 이익과 우리의 이익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며 사는 존재. 소설은 그렇게 우리의 가슴을 탁탁쳐 주고 있다.
책 익는 마을 원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