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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희
자리 외 4편
1996-2000년 북경한미약품유한공사/ 2001년-2006년 대동전자유한공사
2006년-2016년 한국의학연구소/ 2016년-현재 녹지코리아
2015년 서울디지털대학교 문예창작과 졸업/ 2017년 양양사이버대학교 상담심리학과 재학 중
에세이스트 올해의작품상 (2015, 2017) 2회 수상
현 에세이스트 이사
주소 : 제주도 서귀포시 강정동
이메일: peaceplus2@daum.net
8년을 근무한 직장을 때려치운 이유는 끝내 자리 때문이었다. 그분이 입원하신 후부터 나는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었다. 두 달 동안 서너 번 자리를 이동했고, 팀원은 한 명씩 타부서로 인사발령이 났으며, 그래도 버티자 위계질서가 엄연한 회사에서 내가 소속된 팀을 타 팀의 하위에 소속시키는 굴욕을 주었다. 그리고 내 자리는 사무실 중간의, 도로의 교차로 같은 곳에 배치되었다. 마치 한가운데서 벌을 서고 있는 것 같은 치욕을 느꼈고 이로 인한 스트레스가 쌓이자 숨이 막히면서 공황장애가 올 것만 같았다. 숨통을 터줄 창가의 자리는 대여섯 명의 임원들이 ‘단독 부스’를 만들어 차지하였고, 남은 한두 개의 창마저 힘 있는 부서가 차지하여 우리는 늘 환기가 안 되는 탁한 공기 속에서 일해야 했다. 그들이 문을 열면 외부의 시원한 바람이 아니라 담배연기만 날아왔다, 파티션으로 구간을 나누긴 했지만 바로 옆에는 복사기와 끊임없이 작업 중인 종이 파쇄기까지 놓여있었다. 매캐한 먼지 냄새에 자리 부근 천정에 설치된 CCTV까지, 나는 극심한 피해의식에 사로잡혔다. 자리가 이 모양이니 팀장인 나는 팀원들을 볼 면목이 없었다. 이게 알아서 나가라는 의미구나, 하고 생각했지만 이직 준비가 안 되었기 때문에 나는 우선 고충상담부서에 인권보호차원에서 CCTV를 꺼두든지 제거하든지 해달라고 요청했다. 그거라도 수락하면 참고 견뎌볼 생각이었다. 아주 간단한 요구임에도 불구하고 내 요청은 무시당했고 자존심은 바닥에 떨어졌다. 결국 나는 사표를 내기로 결정했고 팀원 두 명도 한 달 정도의 간격으로 모두 사표를 내고 말았다.
<자리> 부분
인터넷쇼핑 중독인 남자와, 자녀, 강아지가 있는 집은 사실 ‘무소유’를 실천하기가 쉽지 않다. 낭비 방지는 물론이고 지구의 자원을 아끼는 차원에서, 인간들은 미니멀라이프에 동참해야 할 판이다. 아무리 괜찮은 물건도 둘 이상이 되면 여유는 있으되 소중하지 않다. 특히 거주 공간이 넉넉하지 않다면 물건에 치여 사는 바보스러운 짓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
남자와 여자는 20평 정도의 집에서 산다. 다른 집에 비하면 물건도 많은 편은 아니다. 앞서 언급했지만 이사를 많이 하다 보니 물건들은 끊임없이 선택되고 버려졌다. 가장 버리기 아까운 물건은 책이지만 그 무지막지한 무게 때문에 가장 많이 버려진 것도 결국은 책이었다. 책을 버릴 때마다 여자는 ‘버려지지 않는 책의 작가’가 되지 못할 바에는 차라리… 하는 비장한 각오를 하지만 그게 어디 뜻대로 되는 일인가.
인간의 수명을 80년으로 봤을 때, 우리는 일생 동안 양치질에 3.1년, 막히는 도로 위에서 2.5년, 가사노동에 6.2년, 식사에 4,2년, 티브이·컴퓨터·폰 등 전자기기 이용에 9.2년 사용한다고 한다. 물건이 많을수록 우리의 생명은 소모적이다.
<미니멀라이프> 부분
제주도에 온 지 100일이 지났다. 아기들은 생후 100일이 지나면 방싯거리면서 모성애를 자극하는 앙증맞은 몸짓들로 모성을 자극한다. 그런데 나는 여기에서 생활한 지 100일쯤 되자 점점 퇴행하는 것만 같았다. 시간은 과거보다 훨씬 많은데 글쓰기를 포함한 모든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제주도에서 살게 되면 주말에는 올레길을 걷고, 여유 시간이 상대적으로 많으니 글쓰기 등 많은 것을 할 수 있겠구나, 생각했는데 어찌된 일인가.
티브이를 볼 수도, 책을 읽을 수도, 운동을 할 수도 있겠지만 아무 것도 하고 싶지가 않았고 늘 식욕이 없었다. 혼자여서 좋고, 혼자여서 싫다, 라는 책 제목을 어디서 본 것 같은데, 내 마음이 그렇게 오락가락했다. 심지어 독거노인들의 마음이 헤아려지면서 날로 우울해졌다. 남편이 며칠 내려와 있어도 외로움은 조금도 해소되지 않았다. 강아지 건으로 다툰 터라 오랜만에 만났지만 우리는 서로 이야기가 겉돌았고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했다. 외로움은 누가 곁에 있어준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었다. 나의 외로움은 높은 벽을 마주하고 있는 그런 막막함이었다. 나는 소망도 그리움도 없는 무생물이 되어가고 있었다.
금요일 저녁이 오고, 아직 밝은 대낮에 퇴근했지만 나는 갈 곳을 찾지 못하고 집 주변을 맴돌았다. 거리에는 온통 술을 권하는 네온사인들이 번쩍이고 있었다. 호프집에 들어가서 ‘혼술’이라도 할까, 하는 생각도 해봤지만 여자가 객지에서 그건 아닌 것 같아서 참았다. 결국 내가 찾은 곳은 책을 아무렇게나 쌓아놓은 허름한 문고였다. 나는 거기서 책 몇 권을 사들고 귀가했다. 혜민스님의 책부터 읽기 시작했다.
어두운 동굴 속에서 빛줄기 같은 것이 보였다. 여럿이 있을 때는 입을 지키기가 어렵고, 혼자 있을 때는 마음을 지키기 어렵다고 한다.
<아직도 너를 가지고 있다는 거> 부분
우리가 머문 호텔은 최고급 호텔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시설이 매우 편리하고 지능적으로 설계되어 있었다. 금속 휴지통은 적외선 센스가 있어서 손을 가까이 가져가면 자동적으로 열린다. 과거에 조잡하게 만들었던 호텔 일회용 물품들도 상당히 정교해졌다. 특히 양치용 컵은 입구가 경사진 얇고 하얀 사기잔인데 하나 갖고 싶을 정도로 질이 좋고 예뻤다. made in china는 과거의 그것이 아니었다. 매립형 티브이 화면에는 “존경하는 ○○○고객님께서 귀가하신 것을 환영합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아름다운 선율의 배경음악이 잔잔하게 흘러나왔다.
이제 중국인들은 품질뿐만 아니라 디테일까지 추구한다. 하드웨어만큼은 세계 그 어디에도 뒤처지지 않는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으며 그 자부심은 대단했다. 나는 한국의 공항이나 마트에서 중국인들이 너무나 당당하게 중국어로, 다소 무례한 태도로 물건을 사는 것을 보았다. 이러한 광경을 볼 때마다 힘이 약한 나라에 대한 안타까움, 국민 의식 수준이 하드웨어의 발전 속도에 미치지 못하는 중국인에 대한 유감이 교차한다. 등소평이 경제를 먼저 발전시켜야 한다고 호소한 것은 선견지명이 있었다. 경제가 발전하면 의식 수준은 메아리처럼, 언젠가는 뒤따라온다. 부유해진 중국에서는 이미 몇 년 전부터 해외유학의 붐이 일었다. 탄탄한 기초 학력에 외국어 능력까지 갖추고 해외의 선진기술과 문화를 배운 후 귀국하여 젊은 나이에 창업을 하거나 좋은 회사에 취직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N포 세대라나 뭐래나? 20대들, 아니 30대들 가운데도 아직 캥거루족들이 많다. 수준 낮은 정치까지 더해 국격이 상당히 추락되었다.
한때 논란을 빚었던 당대 최고의 수학자이자 한·중·일 비교문학의 대부인 김용운 선생의 인터뷰 내용을 들어보면 우리에게는 너무나도 아프지만 새겨들어야 할 말들이 있다.
“나는 ‘위안부 소녀상’을 부끄럽게 여깁니다. 후손들에게 자존심을 살리는 인물을 내세워야지 왜 당한 사람을 내세우는가요. 프랑스의 잔다르크나 미국의 자유의 여신상 등은 그 나라의 기백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 인류 역사는 전쟁의 역사입니다. 일본인들은, 전쟁은 범죄행위가 아니며 국가 생존의 수단이라고 믿는데 지들이 정말 잘못했다고 생각하겠습니까. 그런데도 대일 외교를 과거사 문제로 일관해왔으니 한국 사람은 독특하지 않습니까?”
여기까지 들었을 때 공감이 가면서도 화가 났다. ‘이 사람 대체 뭐야? 혹시 친일파 후손인가?’하면서 고개를 갸우뚱했었다. 하지만 그 다음 이어진 그의 말에 나는 동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일본이 스스로 바뀌도록 이끌려면 우리의 국격(國格)과 품위를 올려야 합니다.”
이어서 그는 이렇게 인터뷰를 이어갔다. “(중국은) 그렇게 인심은 얻고, 뒷날 일본의 자본과 기술을 도입 받는 실리를 취했지요. 중국의 외교술은 우리와 비교가 안 됩니다. 외교에서는 감정을 드러내는 게 아니라 국가 이익을 얻는 겁니다. (…) 일본에서는 나를 일본을 반대하는 사람으로 봅니다. 20년 전 일본에서 『추한 한국인』이라는 책이 나온 적이 있었지요. 이에 맞서 내가 『추한 일본인』을 펴냈습니다.”
상대방의 추한 모습을 까밝히는 것은 도발이지만 스스로의 추한 모습을 찾고 고치고자 하는 노력은 자성(自省)이다. 국민 개개인의 자성이 곧 국격이고 애국일 것이다.
중국에는 『추한 중국인』을 쓴 붜양(栢楊)이라는 대만작가가 있다. 1985년에 출판된 이 책은 영어, 일어, 독일어로 번역되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작가가 이 책을 쓰기로 결심한 것은 그가 미국 유학 시절에 중국인이 공중장소에서 떠들고, 지저분한 행동을 하며, 질서를 지키지 않는 모습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는 또 이렇게 말한다.
“중국인은 상처가 깊은 민족입니다. 상대방을 칭찬하고 장점을 배우는 능력을 배양하지 못했습니다. 지들끼리 싸우거나 타인에게 아부만 할 줄 아는 양극화 동물로 발전했습니다.”
피해의식에만 머물러 있지 말고 적에게도 장점은 배우라는 의미까지 내포하고 있었다. 출판 당신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이 책이 중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된 것은, 문화대혁명이라는 도덕성의 단층(斷層) 이후 많은 사람들이 그의 견해에 공감했기 때문이다.
<닫혀 있는 나라> 부분
‘어쩌다가… 젊은 나이에…’
평소 커피 마니아이고 특히 광화문에서 근무할 때 예의 그 커피 브랜드를 좋아했던 사람으로서 위의 자살 기사는 나에게도 사뭇 충격적이었다. 가족이 오붓하게 저녁 식사를 하는 시간, 저녁 뉴스에서도 그 사건이 방송되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가수 이상민씨는 참 대단한 사람이야. 빚이 수십억이 넘게 되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보통 파산신청이나 자살까지 생각하는데 그는 빚 갚겠다고 공황장애까지 걸려가면서도 열 개가 넘는 프로그램을 뛰고 있으니 온 국민이 도와주고 응원하잖아. 최근에는 CF도 찍고, 채권자의 입장에서는 성실하게 채무를 상환하고 있는 이상민씨가 얼마나 고마울까.”
딸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남편은 “이상민은 이제 식상할 정도지”하며 엇박자를 놓았다. 나는 ‘자기는 티브이를 많이 보니까 식상하겠지’하는 생각을 하면서 화제를 돌렸다. 딸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였다.
“한 독실한 불교도가 어려운 일에 봉착해서 절에 갔나봐. 관세음보살님께 도움을 청하려고 말이야. 그런데 관세음보살님 상 앞에 이미 어떤 사람이 엎드려 절을 하고 있었나봐. 생김새가 꼭 관세음보살님과 닮아서 물어봤대. 왜 자신의 불상 앞에서 절을 하고 있냐고. 그랬더니 관세음보살님이 답하시기를, 어려움에 봉착했는데 남한테 도움을 구하는 것이 스스로에게 도움을 구하는 것보다 못하기에 자기 자신에게 도움을 청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는 거야. (…) 하늘도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스스로 포기하지 않고 사물이나 상황을 긍정적인 측면에서 바라본다면 어떤 불운이 닥쳐도 이겨낼 수 있어. 그리고 기회라는 것이 항상 긍정적인 사건의 형태로 오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말이야.”
‘자살’이라는 글자는 거꾸로 읽으면 ‘살자’이다. 우리의 삶에는 이처럼 헤아릴 수 없는 역설들이 있다.
스스로 돕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나는 스스로 돕는다는 것의 출발점이 ‘수용’, ‘자신에 대한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잡초는 항상 짓밟힐 수밖에 없다는 견해를 펼 사람도, 아무리 생명력이 강해도 계속 짓밟히면 죽는다는 사람도, 어차피 약자는 강자에게 먹힐 수밖에 없는 세상이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짓밟힘을 수용하는 ‘잡초처럼’은 나에게 큰 힘이 된다. 척박한 토양에 뿌리내렸어도, 짓밟혀도, 스스로 물줄기를 더듬고 바위의 무게를 견뎌내며 강인함을 품은 잡초에게 기어이 봄바람은 불어올 것이다.
잡초는 항상 짓밟힐 수밖에 없다는 견해를 펼 사람도, 아무리 생명력이 강해도 계속 짓밟히면 죽는다는 사람도, 어차피 약자는 강자에게 먹힐 수밖에 없는 세상이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짓밟힘을 수용하는 ‘잡초처럼’은 나에게 큰 힘이 된다. 척박한 토양에 뿌리내렸어도, 짓밟혀도, 스스로 물줄기를 더듬고 바위의 무게를 견뎌내며 강인함을 품은 잡초에게 기어이 봄바람은 불어올 것이다.
<잡초처럼> 부분
여자는 한 번도 제 손으로 연을 날려본 적은 없지만 연이 하늘 공중을 날고 있는 꿈은 몇 번 꾼 적이 있다. 연을 날릴 때 바라보았던 꿈속의 하늘 풍경은 늘 기이했다. 검푸른, 비현실적인 밤하늘과 연 놀이… 왜 하필 밤일까? 연 날리는 여자는 연줄을 놓아버리지 않은 것으로, 그리고 그 연이 캄캄한 밤하늘에서 종적을 감추지 않고 기어이 돌아온 것에 안도했다.
어제, 여자는 남자가 하늘을 날고 있는 터무니없는 꿈을 꾸었다. 남자는 여자더러 나일론 줄의 끝을 꼭 잡고 있으라고 하더니 비행기가 이륙할 때처럼 전속력으로 앞을 향해 내달렸다. 잠시 후 남자는 비행기처럼 저 멀리 하늘에서 날고 있었다. 여자는 남자와 연결된 끈을 잡고 있었지만 함께 날지는 못하고 다만 넓은 운동장 같은 데를 빙빙 돌고만 있을 뿐이다. 스릴 넘치는 연놀이 같기도 했다. 하늘은 여전히 검푸른 색이고 이따금 오로라의 섬광 같은 빛이 번쩍였다. 남자는 공중을 한참 비행하더니 다이빙 자세로 늪지 같은 곳에 착륙했다. 달려가보니 팔뚝은 온통 긁힌 상처였으나 다행히 크게 다친 곳은 없었다. 남자는 씩 웃으며 여자의 손을 잡아끌었다….
여자는 남편을 ‘남자’라고 부른다. 그렇게 부른 지 꽤 오래 되었다. 성별만 부여된 한 사람, 즉 ‘남자’라는 3인칭에는 책임이나 감정의 색채 같은, 번뇌를 불러올만한 모든 요소들이 배제되어 있다. 남편에게 감정의 앙금이 남아있어도 ‘남자’로 거리두기를 하면 그냥 순수한 존재로, 연민과 함께 오롯이 수용된다. 그렇게 남편은 다소 건조한 느낌의 ‘남자’로 변신하여 여자의 텍스트에 자주 등장하는 인물이 되었다. 어쩌면 자기방어적인, 여자 특유의 ‘가시 박힌 배려’인지도 모른다. 그런들 어쩌랴.
남자와 여자의 갈등은 마치 ‘애증’이라는 전분이 ‘글쓰기’라는 누룩을 통해 ‘연민’이라는 막걸리로 발효되는 과정 같기도 하다. 여자는 술 빚는 솜씨가 조금 늘었지만 여전히 꿈을 꾼다. 어쩌면 영원히 발효되지 않을 기대와 욕망, 편견, 파국적 사고의 무기질 같은 파편들이 의식의 심연에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여자는 무언가를 공중에 날려보려고 헛되이 애쓴다. 연이, 남자가… 여기저기 긁히고 찢어져도 기어이 여자에게로 돌아오는 남자를 보면, 두 사람이 잡고 있는 ‘연줄’이 꽤나 질기고 팽팽한 모양이다.
<작가노트>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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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춘희 축하드립니다. 무지무지 기대되네요. ^ ^
민혜 선생님, 감사합니다. 저는 가슴이 마구마구 두방망이질을 하고 있습니다. 응원 감사드립니다.
글, 잘 읽겠습니다. 제주에서의 생활이 재충전의 기회로 보람되게 이용되시기 바랍니다. 불원간 커피 데이트라도 신청하겠습니다. 즐거운 연말되셨으면 합니다.
고태현 선생님, 정말 정말 감사드립니다^^
이춘희 선생님 축하드립니다. 크게 기대됩니다.
이춘희 선생님 축하드립니다.
선생님 말씀 많이 들었는데 이번 합평회에서 뵙겠네요~.
다시한번 축하드립니다~.
이춘희 선생님 축하드립니다.
어서 77호 책 받아 보고 싶네요. 위에 글만 읽어도 확 당기는군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