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능성의 힘
② 글을 쓰면 연결된다
2012년 영화 〈점박이: 한반도의 공룡〉은 어린이들을 공룡의 세계에 빠져들게 하며 한국 애니메이션으로는 드물게 100만 관객을 동원했다. 그리고 2018년, 이 이야기는 한반도에서 아시아 전역으로 무대를 넓혀 2탄 〈점박이 한반도의 공룡 2: 새로운 낙원〉으로 찾아왔다. 그래픽 기술력은 세계적 수준으로 업그레이드되었고, 이야기 역시 한층 더 탄탄해졌다. 영화 한 편이 히트를 치면 으레 속편이 제작된다. 그런 관행에 비추어 보면 2편의 등장은 자연스럽다. 1편 이전에 공전의 성공을 거둔 동명의 다큐멘터리가 있었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모든 흐름은 완벽하다.
하지만 이 과정을 가까이서 본 나에게 2편의 탄생은 마치 드라마 같은 이야기다. 이 영화를 만든 한상호 감독은 EBS의 스타 피디이자 나에게는 둘도 없는 선배다. 그래서 이 영화의 속사정을 잘 알고 있다. 영화 팬들의 예측과 다르게 1편의 성공은 2편을 약속하지 않았다. 영화 제작은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 감독의 가까운 지인 중에 2편을 예상한 사람은 별로 없었을 것이다. 적어도 1편의 상영이 끝난 후 초기 몇 년은 그랬다. 감독의 말을 들어보자.
1편은 고난 끝에 살아남은 점박이와 막내아들이 해변을 걸어가는 장면으로 끝난다. 1편 영화 제작이 끝나가던 2011년 말 즈음 나는 편집을 하며 그 장면을 보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그들의 앞에는 완전히 낯선 새로운 세상이 펼쳐져 있다. 그 속으로 걸어가는 그 둘의 뒷모습이 왠지 짠해 보였다. ‘점박이와 막내아들, 이 둘은 새로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게 될까?’ 생각난 것을 바로 A4 종이 네 페이지 분량의 간단한 스토리를 써보았다. 그게 〈점박이 한반도의 공룡 2〉가 될 줄은 그때의 나 자신도 몰랐다.
한상호 감독은 2편의 제작 계획과 무관하게 계속 이야기를 써 내려갔다. 그 시간은 그냥 흘러가지 않았다. 2편의 이야기도 결국 한상호 감독이 만들어냈다. 작가라는 역할 역시 그가 예상했던 일이 아니었다.
◇ 점의 연결
스티브 잡스는 2005년에 스탠퍼드대학교의 졸업식 축사에서 ‘점의 연결’을 설명했다. 그것은 ‘지금은 예측할 수 없지만 모든 점(경험)은 미래와 연결된다’는 인생의 지혜에 관한 이야기였다. 이를 위해 그는 자신의 청년기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가 대학 중퇴 후 청강했던 서체 강의가 10년 뒤에 아름다운 글자체를 가진 매킨토시 컴퓨터를 만드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는 것이 그 이야기의 요지였다. 이는 ‘지구상 어딘가에서 일어난 조그만 변화가 예측할 수 없는 날씨의 원인이 된다’는 나비효과 이론을 인간관계의 우연과 인간의 성장 측면에서 바라본 이야기였다.
점의 연결이라는 프레임을 통해 한 인물의 성장을 추적해보면 여러 개의 ‘점’이 보인다. 그리고 서로 의미 없어 보이던 ‘점’들이 어느 순간 우연히 ‘연결’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스티브 잡스와 같은 저명인사들이 곧잘 자신의 성공을 운으로 돌리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내 전작 중 하나인 《나는 고작 한번 해봤을 뿐이다》는 ‘작은 성공의 경험과 중요성’에 관해 쓴 책이다. 이 책은 내가 블로그에 올린 글의 주제를 키워서 엮어내게 됐다. 블로그에 올린 첫 포스팅의 제목은 ‘나는 고작 15분 걸었을 뿐이다’였고, 이 글의 단초는 페이스북에 포스팅한 다음의 글이었다.
2014년 1월 2일, 첫 실천.
한 정거장 일찍 내리기.
뇌가 뛰고 위장의 역동이 느껴진다.
대중교통을 타고 출퇴근하면서 지하철역을 오가는 15분 동안 걸으면서 받은 느낌을 페이스북에 간단히 쓴 글이었다. 당시만 해도 정말 별 생각 없이 이 글을 썼다. SNS에서의 글쓰기는 대개 이런 식이다. 크게 고민하지 않고 쓴다. 쓰기도 쉽고, 못 쓴다고 누군가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다. 문장을 다듬는다고 한들 그다지 수고로운 일도 아니다. 당시 내가 걷기에 대한 단상을 적으면서 그 글이 ‘작은 성공 경험’이라는 큰 주제로 확장될 수 있다는 것은 전혀 예측하지 못한 일이었다. 사실 이것은 특별할 것이 없는 소재와 글이다. 걷기가 좋은 운동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으니 말이다. 다만 나는 처음으로 걷기의 힘을 제대로 경험했고, 그 경험을 놓치지 않고 짧게 기록해둔 것뿐이었다.
이렇듯 서로 아무 관련이 없던 일들이 연결되면 왕성하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창조적으로 변하게 된다. 이를 더 체계적으로 조직화시킨 것이 바로 글쓰기다. 글을 쓰기 전까지 나는 걷기를 운동 이상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걷기에 대해 쓰고 확인할수록 질문이 늘어났다. 나에게 찾아온 출간이 기회는 어디서 연유하는 걸까?
내게 블로그에 글을 쓸 것을 제안한 것은 〈허핑턴포스트〉의 에디터였다. 그가 만약 제안하지 않았고 내가 제안을 받지 않았다면 아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처음엔 이것이 점의 시작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글을 쓰며 내가 완전히 잊고 있던 기억이 떠올랐다. 블로그에 처음 글을 쓴 시점으로부터 2년 전, 페이스북 메신저로 어떤 이에게 연락이 왔다. 그는 내게 내가 오늘 올린 글을 〈ㅍㅍㅅㅅ〉라는 온라인 매체에 올려도 되겠냐고 물었고, 난 흔쾌히 동의했다. 그 뒤 정말 내 글은 약간의 윤색을 거쳐 사이트에 올라갔다. 잠깐 연재해볼 궁리를 했으나 포기했다. 하지만 뭔가 글을 지속해서 쓰고 싶다는 생각은 그때부터 꿈틀거린 것 같다. 이것은 글을 쓰면서 불러낸 기억이다.
글이 누적되면서 그 시작에 작은 실천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우습게도 글쓰기의 시작은 메모였다. ‘기회에 있어 완전한 우연이란 없다’라는 깨달음은 나를 더 실천형 인간으로 만들어냈다. 작은 성공경험의 힘을 알게 된 것은 글쓰기로 얻은 큰 결실 중 하나다. 이처럼 간단한 글이 의외의 힘을 알게 되기까지는 1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 더 중요한 건 그 마법의 끝을 아직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 ‘평범한 일상을 바꾸는 아주 쉽고 단순한 하루 3분 습관, 일단 오늘 한 줄 써봅시다(김민태, 비즈니스북스, 2019)’에서 옮겨 적음. (2022. 2.22. 화룡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