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효 아키텍트-116] 브랜드를 만드는 건축가 김동진(下)
매일경제 2022.02.11
[효효 아키텍트-116] 경기도 연천군 장남면 원당리 디아스포라(2017년)의 건축주는 귀촌 문화 공동체를 지향하는 삶을 추구하고 있다. 건축가는 대지가 가진 특수성을 고려하는 것은 기본이다. 건축가는 디아스포라의 정체성을 부여하기 위해 개별화 수순을 거쳤다. 박공형의 기본 모듈→내부 중정을 위한 보이드→경관(scene)을 조율하는 외부로 확장된 벽→기능적 요구에 따른 확장 가능성의 순이다.
▲ 연천 디아스포라 / 사진 제공 = 로(L’EAU) 건축사사무소
건축가는 마스터플랜의 기본 틀을 구성하는 두 가지 조건으로 지역의 적설량 등 기후 특성에 적합한 일정한 박공 기울기를 정했다. 또한 멀리 감악산 전경과 마주하는 마을공동체가 경관을 다 함께 공유하도록 배치 축을 마련했다.
▲ 연천 디아스포라 / 사진 제공 = 로(L’EAU) 건축사사무소
박공형 볼륨의 외피는 너와와 벽돌을 사용했다. 전망은 한쪽 방향으로만 냈다. 박공형의 볼륨은 방의 기능에 따라 향을 고려해 배치하되, 꽉 찬 볼륨을 부분적으로 덜어내고 보이드 공간으로 채워 내부로 자연을 유입시키면서 기본형을 만들고, 추후 필요한 실들이 볼륨으로 부가되어 시간에 따라 변형 가능한 생성적 구조를 만들었다. 현재는 두 채가 건축을 마쳤으며 점차적으로 확장할 예정이다.
▲ 수서 유유자적 주택 / 사진 제공 = 로(L’EAU) 건축사사무소
서울 수서 유유자적 주택(2017년)은 한 가족이 대모산 끝자락에 정주할 수 있는 터를 마련하는 프로젝트였다. 건축가는 '내외부가 교차되는 연속적 경험(suspense sequence)'을 콘셉트로 잡았다. 전제가 소나무와 단풍나무 두 그루를 그대로 두어야 했다. 스포츠카 애호가인 건축주의 취향을 고려해 통상 각종 잡동사니 보관창고 겸용인 차고 벽을 유리로 처리해 차가 실내 관상용이 되도록 디자인했다. 세 개의 매스를 관통하는 내부 계단을 두었고 자연과 소통하며 테라스를 경유하는 외부 계단을 두었다. 새로운 형식에 대한 도전이었다고 자평한다.
▲ 논현 ID병원 / 사진 제공 = 로(L’EAU) 건축사사무소
김동진은 서울 강남구 논현 ID병원(Gradation Tower·2015년)의 콘셉트를 '공간의 성격을 건축 스스로 부여하면서 프로그램의 유연성을 갖는다'로 정했다. 강남 도산대로변에 있는 오래된 대형 건물들이 대부분 기능하고 관계없는 외투를 걸치고 있는데, 그런 모습을 지양하고 싶었다. 층 경계를 없애려 했던 계획을 바꿔 층마다 다른 프로그램을 외관으로 표현했다.
전체 16개 층을 메디텔(meditel)과 뷰티케어 영역으로 구성하되 최상층에는 로비 역할을 하는 루프 라운지, 그 하부에 상담과 전문적 컨설팅을 위한 메디텔 라운지, 지하에 뷰티케어 라운지를 두었다. 각 라운지는 프로그램의 유연성을 고려해 분산적으로 배치됐고 빌딩 전체의 원활한 순환을 돕는다.
서울의 호텔은 강북 또는 강남 어디에 자리 잡느냐에 따라 경쟁력이 정해진다. 강북의 C호텔은 강남의 I호텔 고객을 뺏어올 수 없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C호텔을 계열사로 갖고 있는 S그룹이 호텔 사업을 포기하지 않는 한 호텔 자리 부동산 가치가 아무리 많이 올라도 팔 수 없다.
일명 장승배기로 알려진 상도동은 제3한강교 축선에 따른 한강 이남 지역으로 전형적인 주택 구역이다. 핸드픽트 호텔(2016년) 건축주는 대기업 호텔들이 부심을 중심으로 진출하는 비즈니스 체인 호텔과의 경쟁력도 고려해야 했다. 김동진 건축가가 프로젝트에 부여한 명칭은 '카무플라주(camouflage)'다. 프랑스어로 '은폐' '위장'이라는 뜻이다.
지역에 위압감과 위화감을 주지 않고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주변에 붉은 벽돌 건물이 산재한 점을 감안해 같은 톤의 벽돌로 박스를 치고 그 안은 검은 빛깔의 '구로철판'(구로공단에서 쓰는 공장용 철판)으로 외관을 특징지어 투박함과 날카로움으로 고급 호텔 이미지를 희석시키려 했다. 유리창과 벽돌의 크기와 형태를 달리해 변화를 줬다. 호텔 뒤편 외벽과 내벽은 노출 콘크리트를 써서 근대 건축의 이미지를 부여했다. 9층과 10층을 반사 유리로 마감해 지역을 벗어나서 볼 때만 효과를 발휘하도록 의도했다.
지역민들을 고려해 북서쪽으로 여의도 고층빌딩, 남쪽으로 관악산이 바라보이는 옥상은 야외 결혼식장이나 소규모 콘서트장으로 쓰이도록 했다. 지하의 카페와 레스토랑, 꽃집, 작은 갤러리 또한 개방형으로 지어졌다.
10여 년 전부터 도심 호텔들이 건축물 특성상 고객과 내방객이 뒤섞이는 1층을 벗어나 층간에 고급 로비 및 프런트를 만드는 양식도 고려했다. 9층 로비에 위치한 레스토랑의 통유리로 내려다보이는 뷰는 1950~2000년대까지 근대와 현대가 뒤섞인 한국 주택 양식의 파노라마다. 부심에 위치하면서도 외국인 투숙객을 유치하기 위한 건축주와 건축가의 전략적 선택이다.
마트료시카(2014년)는 서울 논현동 1종 주거지역으로 구청 공무원과의 만남 후 당초 계획을 변경했다. 시공 과정 또는 시공 후 인접한 주민들과 사생활 민원 발생이 예상됐기 때문이다. 창을 만들고 차폐 시설을 하는 수순을 거슬러 차폐 시설부터 만들었다.
▲ 논현 마트료시카 / 사진 제공 = 로(L’EAU) 건축사사무소
용지는 네모난 형태로 사선 제한에 따라 위로 좁아지는 피라미드 모양의 틀을 갖고 있다. 여기에 내부 공간을 유연하게 만들어주는 단단한 껍질을 세우고, 이 껍질은 상층부로 갈수록 점점 작아지며 포개져 경계 안에 경계를 품는 구조가 된다. 내부로 빛의 유입을 원활하게 했으며, 수직적으로 층별 단절된 공간 구조를 탈피하면서 가로와의 소통을 위해 계단을 외부로 냈다.
마치 러시아 인형 마트료시카처럼 반복되며 포개지는 '사물 안에 유사한 사물 구조(object-within-similar object)'를 이룬다. 자연스럽게 유연한 공기층이 형성돼 경계 안에서 자기만의 아우라가 생성되는 여유를 만들면서도 둘러싼 주거들에 대해 사생활권을 보호한다.
김동진은 건축은 스스로 스토리를 만들어간다고 믿는다. 처음 의도대로 설계하지 않았기에 부동산 수익 가치만 염두에 둔 부동산 전문가들의 공식을 거꾸로 적용해 자산가치로도 성공했다. 서울 강남 청담동 근린생활시설 '바티리을'(2008년)은 경사지인 동쪽 외벽의 경우 ㄴ 자 노출 콘크리트가 공중에 매달린 ㄱ을 떠받치고 있는 모양이다. 북쪽 입면은 커다란 ㄹ 자를 그리고 있다.
이 건물은 김동진 건축가 특유의 '도시-가로-건물과의 유연한 관계 맺기'의 철학이 잘 반영된 전형이다. 그는 근린생활시설을 "도시 내 주거지에서 가로 공간과 건물 블록 간 관계를 설정하는 것"이라고 규정한다.
"가로의 연속성을 통한 입체적 접근성과 임대에 따른 프로그램의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융통성을 가지면서 내부 동선이 원활한 수직적 공간 구조 체계에 대한 고려가 절실하다. 소규모의 근생은 수직적으로 층별 단절된 공간 구조를 탈피하면 주변의 유동적 흐름에 따라 교류할 수 있는 장의 역할을 한다. 이는 건축적인 면과 건물 소유주의 수익성도 보장할 것이다."
▲ 바티리을 / 사진 제공 = 로(L’EAU) 건축사사무소
바티리을의 핵심 장치는 북동쪽 모퉁이의 콘크리트 계단이다. 엘리베이터를 의도적으로 건물 뒤편에 숨기고 계단을 노출해 이용자들 간 소통을 꾀했다. 일직선으로 4층까지 뻗은 계단은 층마다 작은 테라스와 연결된다. 이 계단은 언제나 외부에 개방된다.
층마다 외벽을 조금씩 엇갈려 쌓았기 때문에 건물 아래에서 올려다본 입면은 울퉁불퉁하다. 밖을 내다보는 시선의 방향도 층층이 여러 갈래로 엇갈린다. 지상 6층~지하 1층에 연면적은 742.88㎡다. 김동진이 일에 임하는 태도는 '유연성'이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게 있다. 이미 그려놓은 이미지도 갖고 있고, 구체적인 콜라주 방식도 있으나 상황에 대비해 비워놓고, 재미있는 요소를 찾으며 문제는 회피하지 않고 맞닥뜨리길 좋아한다.
김동진 건축가는 미디어아트 작가를 지향한다. 모든 비주얼은 빛의 반사에 따른다. 건축 대가들은 자연 채광을 잘 썼다. 김동진은 미디어아트 미술관(박물관) 설계를 수주받아 연구하면서 인공 조명에 푹 빠졌다. 그의 관심은 꾸준히 모아온 조명 기구와도 접점을 만난다. 조명 기구가 건축적 요소를 지니고 있기도 하다. 빛은 파동이고 에너지다. 자체 발광해야 제 기능을 하는 디지털 미디어를 들여다보니 인테리어가 덧없는다는 생각에까지 이르렀다. 빛과 미디어를 결합한 새로운 건축의 길을 찾고 있다.
[프리랜서 효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