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0년 중국 10대 유행어
중국의 문예월간지 《교문작자(咬文嚼字)》가 12월 4일 “2020년 중국 10대 유행어”를 발표했다.
교문작자》는 매년 12월 한 해 동안 중국에서 영향력을 가진 문구나 온라인에서 화제가 된
신조어를 선정해왔다. 올해는 단연 코로나19 국면을 반영한 유행어들이 눈에 띈다.
위기 돌파를 위한 중국 정부의 결연한 정책 기조부터 경쟁사회를 풍자하는 젊은 세대의
신조어까지 다양한 시대 정서를 살펴볼 수 있다.
1. 인민지상, 생명지상(人民至上,生命至上)
“인민지상, 생명지상(人民至上,生命至上)”은 말 그대로 중국 인민의 생명을 최우선으로 삼겠다는 의미다.
시진핑 주석이 지난 5월 제13기 전국인민대표대회 3차 회의에 참석해 한 말이다. 이날 회의에서 시진핑
주석은 코로나19로 중국 정부가 국민을 보호하는데 어떠한 대가도 치르겠다는 의지를 표현했다.
중국은 국가 지도자의 말 한마디가 사회 주류 가치관 형성에 큰 영향력을 끼친다.
특히나 올해는 정부의 리더십과 국민의 단결로 코로나19 난관에 잘 대처하고 있다는 자체적 평가가
이뤄지고 있다.
정부의 ‘인민지상, 생명지상’의 기조로 어려움을 극복한 중국의 자신감이 반영된 화제어라고 할 수 있다.
2. 역행자(逆行者)
“역행자(逆行者)” 역시 코로나19 국면을 반영하고 있다.
코로나19 위기 속에서 개인의 안위보다 타인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나선 모든 이를 “역행자”라고
표현한 것이다. 구체적으로 의료 종사자, 질병통제요원, 인민 해방군 장병, 과학 종사자, 지역사회 종사자,
공안 경찰 등 방역 최전선에서 안전한 사회질서 유지를 위해 공헌한 개인과 집단을 가리킨다.
이러한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한 일명 ‘코로나19 항역 드라마(抗疫电视剧)’ <가장 아름다운 역행자(最美逆行者)>,
<함께(在一起)>가 올 한해 중국에서 화제리에 방영되기도 했다.
<코로나19 항역 드라마 ‘함께’의 스틸컷
3. 싸(飒)
본래 ‘싸(飒)’는 바람 소리를 표현한 중국 의성어다.
현재 유행하는 “싸(飒)”는 ‘멋지고 깔끔하며 자연스럽고 쿨하다’는 의미로 주로 여성에게 많이 쓰인다.
올해는 특별히 중국 방역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는 여성을 형용하는 말로 사용됐다.
통계에 따르면 중국 방역 현장 의사 중 약 50%가 여성이고, 여성 간호사가 90%를 넘는 것으로 집계됐다.
중국 네티즌들은 온라인상에서 “쩐싸(真飒)”, 즉 “정말 멋지다”라는 말로 여성 의료진, 여성 군인에게
아낌없는 경의를 표했다.
4. 허우랑(后浪)
<비리비리의 5.4청년절 기념 영상
‘다가올 물결’을 뜻하는 “허우랑(后浪)”은 중국 ‘젊은 세대’를 비유적으로 일컫는 말이다.
중국의 유튜브라 할 수 있는 ‘비리비리(bilibili)’가 올해 5.4청년절을 기념해 제작한 영상에서 비롯된 유행어다.
4분 길이의 영상에는 중국 배우 허빙(何冰)이 청년들을 “허우랑(后浪)”이라고 지칭하며 힘찬 격려와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영상은 단시간 내 중국 네티즌들 사이에서 큰 화제를 불러 모았다.
5. 신수(神兽)
<코로나19로 아이를 돌보느라 지친 학부모 일러스트
“신수(神兽)”는 중국 고대 민간 신화에 등장하는 ‘기이한 짐승’을 뜻한다.
올해 “신수”는 코로나19로 집에서 온라인 강의를 듣는 아이들을 지칭하는 신조어가 됐다.
상반기 전국 초중고 및 대학교의 개학이 연기되면서 중국 학부모들은 집에서 온라인 강의를 듣는 자녀들을
장시간 동안 돌봐야 했다. 학부모들은 아이를 돌보는 게 꼭 “신수”와의 지략 싸움을 벌이는 것과 같다며
탄식했다. 아이들이 신화 속 동물 “신수”처럼 귀하지만, 자기 힘으로 도저히 어쩔 수 없다는 심정을
유머러스하게 표현한 것이다. 중국 학부모들 역시 아이들의 개학을 ‘염원’하며 올 상반기를 버텼다.
6. 라이브커머스(直播带货)
온라인 플랫폼 생방송으로 상품을 판매하는 “라이브커머스(直播带货)”는 이미 중국에서 널리 알려진
유행어이다. 올해 중국 라이브커머스 시장은 예년보다 더 크게 흥했다.
코로나19로 오프라인 매장의 고객이 줄자 재고가 쌓이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상품을 라이브커머스로
판매한 것이다. 하지만 라이브커머스 시장의 폭발적 성장세 이면에는 여러 문제점도 지적되고 있다.
불법 홍보, 데이터 조작, 위조 제품 판매, 미비한 AS서비스 등, 효과적인 관리가 급선무가 되었다.
7. 쌍순환(双循环)
2020년 5월 14일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는 '국내와 국제 쌍순환을 상호 촉진하는 새로운 발전
구조를 구축하자'라고 제안했다.
지난 11월 발표된 공산당 제19기 오중전회(五中全会)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국민경제 및 사회발전에 관한
제14차 5개년 계획과 2035년 장기 목표에 관한 건의>에서도 재차 “국내 대순환을 주체로 한 국내와 국제 쌍순환
상호 촉진의 새로운 발전 구조 구축을 가속화”하자고 강조했다.
‘국내를 주체’로 한 국내외 “쌍순환”발전 구조의 강조는 중국 내수시장 활성화로 코로나19 경기 불황을
타개하려는 중국 정부의 전략으로 풀이될 수 있다.
8. 다공런(打工人)
<‘굿모닝, 다공런!’ 화제의 패러디 영상. 사납게 짖고 개 영상과 함께 “우리가 노력해야 사장이 빨리 원하는 삶을
살 수 있어”라는 자막과 성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다공(打工)”은 “일하다”라는 뜻으로 주로 임시직 아르바이트 업무를 가리킨다.
“다공런(打工人)”은 원래 블루칼라 노동자를 가리키며 보통 외지에서 온 막노동자를 지칭한다.
지난 9월 한 네티즌이 온라인에 자신이 직접 찍은 짧은 영상을 게시했다. 영상 속 남자는 출근을 위해 막 집을
나서며 말을 건넨다. “부지런한 노동자는 벌써 타워크레인에 올랐다.
아직 이불 속에서 기지개를 켜고 있는 당신은 자신의 삶을 진지하게 대하지 않는 것이다.
굿모닝, 다공런!” 이후 이 영상은 네티즌들의 다양한 패러디 영상을 낳았고
“다공런”은 곧바로 온라인상의 유행어가 되었다. 이 과정에서 “다공런”의 적용 범위는 점점 확대되었는데,
거의 모든 분야의 노동자를 통칭하는 말이 됐다. 화이트칼라든 블루칼라든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지만 버는 돈이
적은 현대인을 “다공런”으로 통칭하게 된 것이다.
특히 중국 청년들이 직접 만든 패러디 영상에서 자조적인 어조로 자신을 “다공런”이라 칭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9. 네이쥐엔(内卷)
<최고 레벨의 쥐엔왕으로 불리며 온라인상에서 화제가 된 칭화대 학생의 사진
일명 “네이쥐엔화(内卷化)”라고 하며 영어로 ‘인볼루션(involution)’, 한국어로는 ‘내향적 정교화’로 번역될
수 있다. 사회학 학술용어로 한 사회나 문화 모델이 어느 수준까지 발전하면 정체되어 앞으로 나가지 못하거나
더 고급화된 모델로 전환되지 못하는 현상을 가리킨다.
2020년 하반기 몇 장의 사진이 중국 온라인상에 도배됐다. 자전거를 탄 채 책을 보고 있는 사람, 자전거를 타며
컴퓨터를 하는 사람 등 불가능한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하고 있는 사람들의 사진이다.
“자전거를 타며 컴퓨터를 하는” 학생은 쥐엔왕(卷王, 공부왕)이라고 불리며 온라인 화제 검색어에 올랐다.
“네이쥐엔”이 유행하기 시작하면서 대학생들은 이를 비이성적인 내부 경쟁의 의미로 사용했다.
예를 들어 교수가 5천 자의 논문을 요구하면 적지 않은 학생들이 우수한 평가를 받기 위해 1만 자 혹은
그 이상의 글을 써낸다. 그러나 모두가 요구 조건 이상으로 과제를 잘 해내도, 좋은 성적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의
비율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 “네이쥐엔”은 대학생들에게 이미 일상화되었고, 여러 업계 내부에서도 비이성적인
경쟁을 “네이쥐엔”이라고 칭하게 됐다.
10. 베르사유 문학(凡尔赛文学)
<베르사유 문학 작품의 예. 먹을 수 없는 벤츠 차 키를 선물한 남자친구를 원망하는 한 여성의 SNS 게시글
“베르사유 문학(凡尔赛文学)”은 SNS 상에서 “겸손하게 자신을 과시”하는 방식을 뜻한다.
이 표현방식의 특징은 자신을 뽐내기 위해 일단 절제하고, 표면상 자신을 비하하는 것 같지만 암암리에 자신을
뽐내고, 자기 말만 하고, 괴로운 척하며 속상한 말투로 자신을 과시한다.
예를 들어 “나한테 이 열쇠를 주면 무슨 소용 있어? 다른 애들 남자친구는 햄버거랑 버블티를 사주는데,
이 열쇠는 먹을 수나 있어? 할 말이 없다”라며 올린 한 여성의 SNS 게시글이 있다.
“베르사유 문학”은 일본 만화 『베르사유 장미』에서 유래된 것으로 이 작품은 18세기 말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
생활의 사치스러움을 디테일하게 묘사하고 있다.
중국 네티즌들은 고급스럽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이 “베르사유”라는 단어를 빌려 표현하고 있다.
지난 11월 위챗에서 작가로 알려진 한 네티즌이 자신의 계정에 “소박하다”는 문구로 그녀의 ‘고급 진’ 일상을
게시했고, 이것이 네티즌들의 비아냥을 샀다.
이후 “베르사유 문학”이 화제가 되어 온라인상에서 “베르사유 문학 창작대회”가 열리기도 했다.
사실상, 이 “베르사유 문학” 작품 대다수는 이제 자랑이 아닌 일종의 조롱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