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극작가의 극비수첩
성별: 남
나이: 79살 (1945년)
혈액형: AB형
MBTI: 검사 불응
작업시간: 조용한 새벽 3시
취미: 영화 감상
좋아하는 영화: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Andrei Tarkovsky) 감독의 영화
좋아하는 색깔: 연초록
좋아하는 음식: 모든 음식
좋아하는 글자체: 함초롬 바탕 (신명조에서 갈아탐)
타자 속도: 손가락 6개면 문제없음
좋아하는 운동: 근력운동(하체)
주량: 소주 반병
흡연: 한 갑
좋아하는 카페 메뉴: 카페라떼
뀨하! 나는 오늘도 극작가들의 성격과 행동 유형을 분석하여 잘 쓰는 극작가들의 공통점이 있는지, 혹은 그 비책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잠입 취재를 한다. 그 대상은 2023년 부산시립극단에서 ‘스타 프로젝트’에 선정된 김문홍 극작가이다. 3명의 연출가가 각각 한 작품씩, 3개 작품을 연달아 공연한다고 하니 재밌는 프로젝트가 될 것 같다.
오랜만에 고속도로를 타고 부산에 도착했다. 일찌감치 나와서 나를 맞이해주셨다. 손을 크게 흔들며 주차 자리까지 안내해주시니 핸들 돌리는 손이 빨라졌다. 주차하고 들어가려는데 식사부터 하자고 하신다. 두둥! ‘낙지볶음’ 매콤하고 꾸덕꾸덕한 양념을 밥에 비벼 먹으니 꿀맛이다. 초면에 체면 불고하고 소면까지 비벼 먹었다.
오늘 인터뷰 장소는 1984년도부터 운영해오던 ‘액터스 소극장’이다. 중간에 이름이 바뀌긴 했지만, 긴 세월 동안 부산에서 수많은 작품을 품에 안았을 소극장이라고 생각하니 바닥에 못 자국에도 정감이 간다.
뀨 간단한 본인 소개를 부탁합니다.
김문홍 네, 안녕하세요. 저는 부산에서 희곡 작가, 연극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는 김문홍이라고 합니다.
뀨 여기 희곡집은 선생님께서 내신 건가요?
김문홍 네.
뀨 우와, 많이 쓰셨네요.
김문홍 공연된 희곡을 모아놨다가 수정 보완한 후에 희곡집으로 묶어서 내고 있습니다.
뀨 그럼 희곡은 언제부터?
김문홍 1980년도부터 쓰기 시작했으니 43년째네요.
뀨 실례지만 나이가···
김문홍 1945년에 태어났으니, 올해 우리 나이로 79살이 되었네요.
갑자기 자리가 어려워졌다. 이렇게 나이가 많은 연극인과 마주 앉아 얘기했던 경험이 있었던가?
김문홍 처음부터 희곡을 썼던 것은 아니에요. 1973년에 부산교육대학 극예술연구회 출신들이 ‘한새벌’이라는 극단을 만들었어요.
뀨 그럼 창단을 같이하신 건가요?
김문홍 그렇죠. 그 대학에 있는 터 이름이 ‘한새벌’이었는데 그 이름을 딴것이지요. 그 극단에서 저는 배우를 주로 했어요. 근데 대사 외우는 것이 너무 힘들더라고요. 출연을 6편 정도 했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배우가 대사를 못 외우면 자격 미달이잖아요. 그래서 ‘이 길은 내 길이 아니구나’ 하면서 포기했어요. 그리고 연출을 하기 시작했는데 연출은 작품에만 몰입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한데 작품 외적인 부분들이 너무 애를 먹이더라고요.
뀨 어떤 부분이요?
김문홍 (고개를 저으며) 배우들이 너무 애를 먹여요.
더 이상 묻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김문홍 내가 연출을 오래 하다가는 제 명에 못 살 것 같아서 딱 세 개 작품을 하고 연출도 포기했어요. 그러니 이제 할 수 있는 건 글 쓰는 것밖에 없잖아요.
뀨 대단히 솔직하시네요. (웃음)
어쩔 수 없이 한 것처럼, 할 수 있는 것이 그것뿐인 것처럼 말씀하셨지만 어떻게든 연극 곁에 머물러있으려는 애정을 느낄 수 있다.
뀨 1980년도에 처음 희곡을 쓰셨다고 했는데 어떤 작품인가요?
김문홍 〈수직환상〉이라고 권력의 말을 듣지 않는 한 작가를 섬으로 데려가서 그 시절 체제에 맞는 글을 쓸 수 있도록 훈련 시키는 내용이에요. 말하자면 정권을 비판하는 내용이에요.
뀨 용감하셨네요.
김문홍 그 작품을 공연할 때 연출은 교대 국어 교육과 교수님이셨는데 그분이 고민을 많이 했어요. ‘이거 이러다가 걸리면 어떡하냐?’ 노심초사하며 공연했던 기억이 나네요.
뀨 지금까지 쓰신 희곡작품은 몇 개나 되나요?
김문홍 쓰기는 39개 작품을 썼는데 그중에 3개 작품은 아직 공연으로 만들어지진 못했네요.
39개 작품?!
뀨 그럼 그중에 가장 사랑하는 작품은 어떤 작품인가요?
김문홍 글쎄요. 사랑하는 작품이라···
뀨 질문이 좀 바보 같았네요. 그럼, 지금, 이 순간, 생각나는 작품은?
김문홍 (웃음) 여섯 번째 희곡집 『섬섬옥수』에 실린 〈눈보라 치는 밤, 집을 떠나다〉 가 생각나네요.
뀨 어떤 내용이에요?
김문홍 쓴지는 한 2년 됐는데 아직 공연으로 만들어지진 못했어요. 내용은 조선 영조 시대에 최북이라는 화가가 있었어요. 지금은 조선의 고흐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스스로 자기 눈을 찌른 광기의 예술가이지요. 이 사람의 삶을 통해서 예술에 대한 사랑과 예술이 사회에서 감당해야 할 임무가 무엇인지 얘기하고 싶었어요. 우리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가장 사랑하는 작품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고민하는 주저함과 예술의 임무를 얘기하는 강한 눈빛에서 그가 그동안 어떤 마음으로 글을 썼는지 조금 짐작할 수 있었다. 나는 어떤 마음으로 글을 쓰고 있지?
뀨 참, 이번에 기쁜 소식이 있던데요. 부산시립극단에서 〈안개주의보〉 〈사자의 편지〉 〈목련꽃 그날 아래서〉 3개 작품을 엮어서 ‘극작가 김문홍 전’을 하신다고 들었어요.
김문홍 고마운 일이지요. 시립극단과 작업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에요. 아전인수격이지만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지역의 예술가들에게 많은 기회가 돌아갔으면 좋겠어요.
뀨 프로젝트는 어떤 식으로 운영되나요? 그럼 3개 작품을 연달아 공연하는 건가요?
김문홍 그렇죠. 작품별로 한 명의 연출가가 선정되었고요. 출연자가 많다 보니 시립극단 상임 배우 일부가 출연하고 연출가의 필요에 따라 현장의 배우를 캐스팅 할 수 있어요.
뀨 연출가에 따라 작품의 느낌이 다를 수 있겠네요. 이미 제작 회의는 하셨을 건데 연출가가 각색하거나 희곡에 손을 대는 것을 허락하시나요?
김문홍 주제 의식과 작가의 관점(현실인식)만 훼손하지 않는다면 허락하는 편입니다. 그리고 연출가가 희곡을 대하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저는 그들을 믿습니다. 어느 연출가든 자기 이름을 내세운 공연을 엉망으로 만들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요.
뀨 작품 소개를 부탁합니다.
김문홍 〈안개주의보〉는 1987년에 쓴 작품으로 부산연극제에서 희곡상을 받은 작품이에요. 〈사자의 편지〉는 제가 쓴 추리소설, 『살인 방정식』을 각색한 작품인데 탈고한 지 20년 만에 첫선을 보이는 작품입니다. 〈목련꽃 그늘 아래서〉는 2005년에 회갑 기념 공연으로 초연만 하고 묵혀둔 작품입니다.
뀨 줄거리가 궁금했는데, 공연으로 확인해야겠네요. (웃음) 근데 조금 전에 소설도 쓰셨다고 했는데 소설보다 희곡이 더 좋으신가요?
김문홍 소설은 써놓으면 독자들의 반응을 제가 알 수가 없잖아요. 근데 희곡은 눈앞에 무대로 펼쳐지는 현장성, 또 관객과 함께 공연을 보면서 즉각적인 반응을 공유하고···. 그게 참 매력적인 것 같아요.
뀨 희곡을 쓸 때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요?
김문홍 초기작업인 것 같아요. 필요에 따라 취재도 하고요. 그리고 저는 뜸을 많이 들입니다. 머릿속에서 이야기를 계속 굴리는 거지요. 일종의 발효과정이지요. 이 기간이 적어도 두어 달은 걸리는 것 같아요. 그래서 그 시기엔 하루종일 작품 생각만 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컴퓨터 앞에 앉으면 열흘 만에 다 써버리는 것 같아요. 쓰기 시작하면 금방 써버리는데 컴퓨터 앞에 앉기까지가 또 오래 걸리는 거지.
뀨 대사를 쓰실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이 있나요?
김문홍 리듬과 은유, 상징. 대사는 배우들이 잘 읽을 수 있고 관객들이 잘 이해할 수 있게 리듬감을 찾는 것, 그리고 너무 직설적인 대사보다 은유적인 대사, 상징적인 대사를 찾는 것이지요. 대사에도 틈이 있어야 해요, 관객들이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대사가 직설적이면 관객은 생각할 틈을 잃어버려요.
뀨 동의가 되는 말씀이네요. 근데 저도 대사를 쓸 때 가끔 너무 상징적이거나 은유적으로 쓰면 문어체 같기도 해서, 그 경계를 찾는 게 어려운 것 같아요.
김문홍 (웃음) 맞아요. 그래서 연출들이 가끔 문어체가 많다고 하더라고요. 저도 고치려고 하는데 그게 잘 안 돼요. 너무 어려워지면 안 되니까.
뀨 얼마나 관객을 배려해야 할지 고민이네요.
김문홍 그래도 희곡이 사회적 기능을 잃으면 희곡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희곡이 공연으로 올라가고 관객은 공연을 보고 공연을 통해 관객들의 생각이 변하고 나아가서는 그 생각이 행동을 변화시키는 힘, 그래서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겠다. 우리 시대가 이래서는 안 되겠다’하는 그런 관객(독자) 의식을 전환시킬 수 있는 희곡이 좋은 희곡이라고 생각해요.
그렇다. 극작가는 혼자서 대중과 소리 없는 전쟁을 치러내는 전사일지도 모르겠다.
뀨 희곡을 쓸 때 막히는 경우도 있잖아요. 그 어려움에 봉착했을 때 극복해나가는 팁이 있나요?
김문홍 술이지, 뭐. (머쓱하게 웃으며) 근데 술을 마시면서도 작품을 생각하니 미칠 노릇이지. 가끔은 먼저 서사의 결론을 내어놓고 쓰기도 합니다. 완벽하지 않더라도 일단 완성을 시켜놓는 거지 그리고 다시 읽으면서 수정을 반복하기도 해요. 그럼, 인물이 일관성이 없고 엉망일 때가 있어요. 참!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작가가 만든 피조물이잖아요. 근데 아무리 작가가 만들었다지만 그 인물을 함부로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근데 요즘 작품들은··· 말초적··· 재미만··· (중략)
‘내가 만든 피조물이지만 함부로 하면 안 된다’라는 말속에 참 많은 의미가 내포되어있는 것 같다.
뀨 본인의 작품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대사가 있나요?
김문홍 ‘문체는 곧 그 사람과 그 시대라 했거늘 문체를 고치라 함은 곧 생각과 영혼을 버리라 함이요.’ 〈방외지사 이옥〉이라는 작품에 나오는 대사예요. 아무리 권력의 핵심부에 있는 사람일지라도 시인이나 작가의 글 쓰는 데까지 간섭해서는 안 된다는 거지요.
뀨 말씀 중에 저항의 정신이 느껴지네요.
김문홍 작가는 시대의 불합리함을 깨닫고 혐오하고 저항하는 역할이지요. 세상이 너무 이상적이면 작가가 무슨 할 말이 있겠어요.
글에는 정말 힘이 있을까? 자극적이고 즉각적이고 감각적인 콘텐츠가 늘어나는 시대에 글이 힘을 잃지 않으려면···
김문홍 우리 집사람이 그래요. 내 작품은 재미가 없대요. 세상에 무슨 불평, 불만이 그렇게 많냐고, 관객들을 자꾸 가르치려고 한 대요. (웃음) 평소에 대놓고 얘기를 못 하니까 나도 모르게 작품 속에 녹이나 봐요. 내가 관객이라도 싫어할 만해.
뀨 사모님을 위해서 어느 정도 양보하셔서 중간쯤에서 합의하시는 것도 좋겠네요. (웃음) 혹시 좋아하는 작가와 작품이 있나요?
김문홍 이강백 작가의 초기작품들이 좋아요. 정권과 권력에 대한 우화적인 표현들이 참 좋습니다. 또 배삼식 작가의 따뜻한 문체도 참 좋아합니다.
따뜻한 문체라, 저는 선생님의 따뜻한 화법이 좋습니다.
뀨 후배 극작가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김문홍 현장을 알아야 합니다. 희곡은 연극의 메커니즘과 본질을 알아야 쓸 수 있습니다. 극장으로 달려가세요. 책상에서만 희곡을 쓰면 결국 관념만 남을 수밖에 없어요. 연극이 무엇인지 알아야 해요. 연극의 메커니즘과 구조, 본질을 모르고서는 희곡을 쓸 수 없어요. 어떠한 방법으로든 연극인들과 교류하면서 현장을 가까이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희곡은 연극을 위한 텍스트니까 연극성을 무시하고는 쓸 수 없어요. 또 공연에 급급해서 대중을 쫓아가더라도 희곡을 통해서 자기가 할 이야기를 하세요. 이리저리 휘둘리다 보면 정작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잊어버릴 때가 있어요.
뀨 희곡을 쓸 때 나만의 팁이 있나요?
김문홍 첫째, 피드백 받기를 두려워하지 마세요. 둘째, 오래 뜸을 들이세요.
뀨 마지막으로 스스로를 정의하자면?
김문홍 저는 연극을 하기 전에는 사회성이 부족했어요. 부끄러움도 많고 대인관계가 넓지 못하고 내가 꼭 좋아하는 사람, 마음 맞는 사람하고만 관계했어요. 근데 연극을 하면서 그런 편협한 대인관계가 해소된 것 같아요. 연극을 하면 사람을 이해하게 되고 사랑하게 됩니다.
‘연극을 하면 사람을 이해하게 되고 사랑하게 된다’라는 말이 마음속에 작은 씨앗으로 심어졌다.
뀨 긴 시간 동안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는지요?
김문홍 참 희곡도 쓰고 연출도 한다고 했지요? 둘 다 잘하는 사람이 되세요. 문학성과 연극성, 둘다 모두 중요합니다. 그리고 지치지 말고 치열하게 쓰세요. 43년을 써보니 이제 조금 감이 잡히네요. 관객의 기억 속에 불멸의 인장을 찍을 수 있는 작품 하나를 남기기 위해 쓴다고 생각하세요.
뀨 마지막 말씀을 저에게 해주시다니···. 제가 받은 용기를 다시 지면으로 옮길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감사합니다.
글을 쓰실 때는 손가락 6개만 쓰신다고 했는데, 나와 인사할 때는 두 손을 펴서 손가락 10개로 흔들어주셨다. 글 쓰는 정성보다 사람에게 정성을 더 쏟으시나 보다.
|
첫댓글 MBTI: 검사 불응
ㅎㅎ 처음부터 호기심을 자극하는 인물 분석입니다.
근데 멀리서 온 취재 기자의 이름은 어디에도 없어요. 궁금.
<극작가의 극비 수첩>
제목이 주는 궁금증에서 들어왔다가
김문홍 선생님의 솔직한 입담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고뇌가 많았을 겁니다.
연극인도 해보고 극작가도 되었다가
연출까지 하면서 느낀 소회가 남다를 듯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