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경자 (千鏡子 Kyungja Chun1924년 11월11일 ~2015년 8월 6일).
출 생 : 1924년 11월 11일 전남 고흥군 옥화리
사망 : 2015년 8월 6일 미국 뉴욕
학 력 : 도쿄 여자미술전문학교 미술학
수 상 :
1983년 은관 문화훈장
1979년 대한민국 예술원장
1998년 미국으로 이주
1998년 소장 작품 93점 서울시립미술관에 기증 1995년 천경자 회고작품전 '호암갤러리'
전남 고흥에서 부친 천성욱과 모친 박운아의 1남 2녀중 장녀로 태어났다.
본명은 옥자(玉子)였다. ('경자'라는 이름은 천경자가 센티멘털하던 소녀 취미로 스스로 지어 붙인 이름이라 한다)그녀는 여동생 옥희와 남동생 규식과 고흥읍에서 어린시절을 보냈으며, 3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수려한 풍경을 가진 고흥은 그녀의 유년기의 감수성을 풍부하게 하는데 한몫하였다.
그녀는 고흥에서 고흥보통학교를 다니며 화가의 꿈을 키웠다. 또한 그녀는 보통학교 시절 소록도 나병원 간호부로 있던 선배 "길례" 언니를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
이후 길례언니는 천경자의 연작에 등장하는 상징적인 여인이 된다.
이후 1940년 동경여자미술전문학교( 동경 여자미술전문학교)에 진학하였다.
동경에서 "고바야가와 기요시" 교수의 지도를 받았으며
유학 시절, 첫 남편 '이철식'을 만나 결혼을 하지만(1944) 얼마 못가 파경에 이르게 된다.
여동생 옥희의 이른 죽음과 더불어 첫 결혼의 실패는 천경자의 삶과 작품세계에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녀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화가들이 배출되고 있는 가운데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의 한 명으로서 우뚝섯다.
채색화를 왜색풍이라 하여 무조건 경시하던 해방 이후 60년대까지의 그 길고 험난했던 시기를 극복하고 마침내 채색화 붐이 일고 있는 오늘을 예비했던 그 확신에 찬 작가정신으로 그녀의 존재는 더욱 확고하다.
노부(老婦) 1943년작 - 117× 147cm 데뷔 작품
막은 내리고 1989년 작, 41x31.5cm
얼굴 1978년
꽃무리속의 여인
미모사 향기 1977년 작
윤사월 1987년 작
탱고가 흐르는 황혼 1978년 작
편지를 읽는 여인 1993년 작품
아그라의 무희 1979년 작
막간 1986년 작
노오란 산책길 1983년 작
나바호족의 여인 1988년 작
자바의 여인
자마이카 여인 곡예사
볼티모어에서 온 여인
멀리서 온 여인 1977년 작
아파치족 여인 1988년 작
모자를 파는 그라나다의 여인 1993년 작
그라나다의 창고지기 하는 여인 1993년 작
발리섬의 소녀 1986년 작
아이누 여인 1988년 작
볼티모어에서 온 여인 1993년
내 슬픈 전설의 49페이지에서,종이에 채색 130x 162㎝ 1976년
누가 울어 1 1988년 작품, 79x99cm
누가 울어 2 1989년 작품, 79x 99cm
황혼의 통곡 1995년작 94.5× 128.5cm
북해도의 영난 1983년 작품, 31.5x45cm
꽃과 나비
뉴욕 센터랄 파크 1981년 작품
소녀와 바나나 1993년 작품,40.8x31.5cm
인도 올드델리 1979년 작품 34.8x24.2cm
<편집 후기>
서양미술사 계시중간에 틈틈히 한국 미술의 현제도 함께 조명하고자 합니다.
내용에 부족함이 있드래도 이해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