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 서울 할아버지
조 흥 제
어느 날 한복을 입은 할아버지 한 분이 오셨다.
외가하고 친인척 되는 분이라고 하여 여러 날 묵으셨다. 나는 그 할아버지가 서울서 왔다는 데 관심을 가졌다.
서울! 가장 가보고 싶은 곳이다.
서울에 집이 몇 채나 있느냐고 여쭈어 보았더니 수십만 호라고 하였다. ‘어휴!’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우리 동네는 겨우 8백호 밖에 안 되는데.
모교 장단국민학교(그 때는 초등학교를 국민학교라고 불렀다)에서는 5학년 때 서울로 소풍을 갔다.
1학년은 도랍산, 2학년은 조랑진, 3학년은 덕물산, 4학년은 개성, 5학년은 서울, 6학년은 인천, 이렇게 소풍 가는 행선지가 학년마다 정해져 있었다. 올해 나는 서울로 소풍을 갈 차례인데 난리가 나서 못 갔다.
서울에는 사람이 1백 50만 명이 살고, 화신상이라는 큰 가게에는 물건 파는 사람이 300명이라고 하였다. 우리 동네 가게에는 한-두 명 밖에 안 되는데 300명이 물건을 파는 상점은 얼마나 클까?(화신상은 종각 건너편에 있는 7층 건물로 왜정 때 박흥식이 건립, 지금은 없어짐)
그 외에 임금님이 살던 궁전, 대통령이 사는 집, 서울에 들어가는 문인 남대문, 멋있는 서울 역 건물을 얘기 해 주셔서 나는 날개를 달고 서울 하늘을 훨훨 날았다. 어렸을 때 그렇게 살고 싶어 했던 서울을 성인이 되어서 60년을 사니 비록 가진 것은 없지만 얼마나 행복한가.
내가 서울 올라와 보기 전 이승만 대통령이 대전에 오셨다. 도청에서 주무신다고 하여 도청을 바라보면서 ‘저기 대통령이 계시다.’고 생각하니 괜히 어깨가 들썩들썩 했다. 대통령이 사는 경무대(청와대의 전 이름)를 매일 바라보는 서울 사람들은 얼마나 행복할까.
민주당 대통령 후보 신익희선생이 한강 백사장에서 선거 유세할 때 군중이 30만이 모였다는 기사가 신문에 실렸다. 서울에는 얼마나 사람이 많이 살 길래 대전 시민만한 군중이 모일까. 그 신익희 선생이 대전에 왔다. 원동국민학교에서 선거 유세 한다고 하여 갔다. 머리가 하얗고 키가 작은 노인이었다. 그날 저녁 호남선 열차 타고 전라도 광주로 가다가 열차 칸에서 심장 마비로 숨졌다.
목이 메인 이별가를 불러야 옳으냐
돌아서서 이 눈물을 흘려야 옳으냐
사랑이란 이런가요 비내리는 호남선에
헤어지던 그 인사가 야속도 하더란다
라는 '비 내리는 호남선' 노래다. 신익희선생 부인의 입장에서 쓴 가사다. 암살당한 것이 아니냐 하는 의문이 가사 속에 숨어 있어 금지곡이 되었다.
그런 서울을 55년에 왔다. 역마다 서는 완행열차를 탔다. 창틀에 성냥 곽을 놓고 역에서 설 때마다 성냥개비 하나씩 꺼내 놓았다. 서울 역에 와서 세어 보니 29개였고, 5시간이 걸렸다. 한강 철교를 건널 때의 그 웅장한 교각, 서울 역에 내려서 사진에서만 보던 웅장한 시계 지붕, 큰 기와집의 남대문, 희고 큰 중앙청…, 사진에서만 보던 것들을 실물로 보니 신이 났다. 이런 서울에서 사는 사람들은 얼마나 좋을까.
꿈에 그리던 서울로 63년에 이사왔다. 74년에 지하철 1호선이 개통되었을 때 시청 역에서 노량진까지 타고 출퇴근할 때 얼마나 신났던가. 우리 집은 장승배기지만 1km 남짓 걸어서 노량진 역에서 전철을 탔다. 4정거장이면 10여 분 걸리니 길 막힐 염려도 없으니 얼마나 좋은가. 지방 사람들은 지하철을 얼마나 타고 싶어 했던가. 서울 사람은 지하철을 맘대로 타고, 남산 타워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서울 시내를 감상하고, 여의도 63빌딩 전망대에 올라 보는 것은 서울 구경 온 시골 사람들의 단골 코스였다. 그걸 못 해 본 지방 사람은 서울 갔다 온 사람들의 얘기를 듣고 얼마나 부러워할까.
그때 나온 노래도 서울을 부러워하게 하는 가사가 많다.'아름다운 서울에서 서울에서 살으렵니다.', ‘지하도를 건너서 육교를 올라…’출근하는 내용이다. 지하도와 육교가 없는 지방 사람은 그렇게 출근하는 서울 사람을 부러워하여 ‘물동이, 호밋자루’ 내던지고 서울로 왔다.
몇 년 전 제주도에 갔을 때 택시를 탔다. 내가 서울서 왔다니까 서울에서 택시를 많이 타느냐고 물었다. 지하철을 많이 이용한다고 했더니 무척 부러워하였다. 제주도에는 지하철은커녕 기차도 없으니 지하철을 일상적으로 타는 서울 사람을 부러워 했던 것 같다.
10층 창문으로 밖을 내다 본다. 월드컵 경기장이 보이고, 여의도에서 제일 높은 4개 건물(파크윈 타워.333m), 국제금융센터(ifc. 283), 63빌딩, 전경련)이 눈에 들어 오고 안산 너머 서울타워 상층부가 보인다. 새해 아침에는 거대한 태양이 서울타워를 안고 뜬다. 인공위성이 뜰 때 화염 속에 싸여 이륙하는 것 같다. 그걸 보고 대한민국이 잘 되게 해 달라고 두 손을 마주 잡고 기도한다. 무엇보다도 북한산 백운대를 볼 수 있다는게 복이다. 거대한 바위 봉우리 위를 흰 구름이 살짝 감쌀 때는 황홀경에 휩싸인다.
이렇게 좋은 서울에서 오래 살면서 노년에 글을 쓰고 보내는 것은 하나님께서 돌보아 주심이고, 72년 전 서울 할아버지가 서울을 재미 있게 소개해 주셨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