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저를 왜 구더기 사내라고 부르는지 아십니까?」
구더기 사내는 그렇게 말을 하곤 참으로 이상한 미소를 지었다. 눈을 뙤록하게 뜨고는 가량가량히 입술을 쭈뼛거렸는데 그것은 미소라기보다 마치 <거봐, 내 말 맞지.>라고 이죽거리는 듯한 표정이었다. 중세 시대의 수도사 같은 그의 원형탈모 머리가 할로겐 램프를 수직으로 받아 아등그러질 것 같았다. 친구는 뜸들이지 말고 말해보라는 듯이 그에게 술을 권했다. 구더기 사내는 술잔을 받으면서도 <거봐, 내 말 맞지.>라고 말하듯 입가에 다시 얄팍한 미소를 지었다.
「과학과 의학이 진보했다고는 하나 만병통치는 아니지요. 페니실린이 20세기 들어 최고의 발명품이란 말이 있습니다. 또 지금은 페니실린보다 월등히 뛰어난 항생제가 더욱 쏟아지고 있구요. 그러나 그 좋은 항생제도 제게는 그림의 떡이죠. 제가 몇 년 전 무릎을 다친 후로 여기 연골 안쪽부터 살이 썩어가고 있습니다.」
그는 탁자 옆으로 다리를 벌려서 바지를 무릎까지 올렸다. 아닌 게 아니라 그의 무릎은 약간 부풀어 있었고 홍두나무 이파리 같은 갈색의 수술 자국이 화석처럼 붙어 있었다. 친구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다시 입술을 쭈뼛거리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제 몸에는 항생제를 쓰지 못하죠. 거부반응 때문에 말입니다. 자칫하면 다리 하나가 아니라 생명이 위태롭기 때문에 말입니다. 그래서 뭘 넣었는지 아십니까? 검정초파리과의 3기 유충인 구더기를 몇 마리 집어넣었습니다. 저의 무릎에서 기생하는 구더기는 주로 부육(腐肉)에서 발생하는 구더기인데 생살은 두고 썩은 살만 골라 먹기 때문에 곪은 부위를 치료하는 데 적격이라 이 말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술을 날름 마셨다. 친구는 그에게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 좀비가 떠오른다고 말했다. 살아 있는 사람처럼 움직이지만 오지랖처럼 구멍 뚫린 뇌나 갈비뼈 사이로 하얀 구더기들이 꼼지락거리는 그런 좀비가. 하지만 구더기 사내는 친구의 말을 막으며 다시 홀홀한 미소를 지었다. 모르는 말씀 하지 마라는 투였다. 그는 자신의 몸 속에 있는 구더기들을 부끄럽게 여기거나 혐오하지 않고 오히려 흠숭한다고 했다.
「회충이나 십이지장충 같은 것들에 비하면 이 구더기는 얼마나 이로운 생물입니까. 회충은 생살을 뚫고 기생하면서 온갖 질병을 일으키지만 제 몸 안에 있는 구더기는 생살은 먹지 않습니다. 오직 썩은 부위만 먹을 뿐이라 이 말입니다. 회충이 얼마나 독한 놈들인지 모두들 잘 아시죠. 수컷은 온몸이 생식기로 이루어져 있고 또 암컷은 한번에 20여만 개의 알을 낳을 수 있습니다.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물 중에 이처럼 섹스만 밝히는 더러운 것들은 또 없을 겁니다. 마, 말이 잠시 옆으로 샌 것 같습니다만…」
구더기 사내는 그렇게 말했다. 친구는 술을 따르려다 빈 병인 걸 알고는 두어 병을 더 시켰다. 시계는 이미 새벽 두 시를 넘고 있었다.
「사람들은 자신이 지닌 이해력만큼 세상을 인정합니다. 이것만이 진실입니다.」
구더기 사나이는 찌개의 건더기를 아우르며 그렇게 말했다. 구더기 사내라고 부르는 그를 만난 것이 확률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구더기 사내의 표현을 빌리자면 낯선 사람과 만나 이야기하는 중에 서로가 공통적으로 아는―일테면 친구나 친척 같은―사람이 있을 확률이 99%가 넘는다고 했다.
믿을 만한 조사에 따르면 한 사람이 평생 동안 알고 지내는 사람이 일천 명이 넘는다. 우리 나라 인구를 조금 넉넉하게 잡아 오천만이라 하면 두 사람이 서로 알 확률은 5만분의 1이다. 그러나 두 사람이 공통적으로 아는 친구가 있을 확률은 50분의 1이 되며, 더군다나 한 다리를 더 건너게 되면 100분의 99 이상의 확률이 된다는 것이 구더기 사내의 말이었다.
구더기 사내는 국물을 들이키며 친구에게 고향과 출신 학교, 그리고 나이를 물었고, 이때까지 살았던 동네까지 물었다. 그러나 구더기 사내는 자신이 생각하는 인연의 끈을 쉽게 찾을 수 없는 모양이었다. 구더기 사내는 이상하다며 혹시나 있을지 모르는 공통분모를 찾기 위해 얼마 전에 죽었다는 먼 친척의 인적사항까지 동원했지만 공통점을 찾을 수는 없었다. 그는 낙심한 얼굴이었다. 대화의 고리가 끊긴 것이 못내 아쉽고 허망한 듯이 혀끝을 찼다.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면서 뭔가를 생각하려는 듯했지만 그의 머리는 주먹처럼 쉽게 움직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매번 이야기를 할 때마다 짓던 야릇한 표정은 온데간데없었고 금방이라도 자리를 비우고 집으로 돌아갈 듯한 태세였다. 보기에 조금 민망했던지 친구는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먼저 말을 꺼냈다. 당신의 말이 맞는지 아닌지 하는 사실은 내 수학적 두뇌의 한계 때문에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수학과 과학의 법칙도 우연 앞에선 별 힘이 될 수 없다는 점이다, 라고 구더기 사내에게 말을 했다. 그러면서 이번엔 친구가 되레 깔보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제가 지문을 예로 들어볼까요? 지문이 사람과 사람을 가장 뚜렷하게 구분해 준다고는 하나 그놈도 허점투성이여서 지문이 일치할 확률은 20억분의 1이나 된답니다. 자그마치 20억분의 1이나 된다면 함지박만한 아가리를 다물지 못할 사람이 꽤나 있을 것이지만 60억 인구를 생각하면 적어도 두세 명은 자신과 지문이 일치한다는 말이지요. 더군다나 그런 두세 명이 우연히 자신 주위에 있다면 변별력의 지표가 되는 지문은 허무하게 자신의 정체성을 상실하게 됩니다. 자신의 존재를 규정하는 기능과 정의를 상실하면 한 존재는 더 이상 그 존재가 아니죠. 지문은 더 이상 지문이 아니란 말입니다. 순전히 세상은 필연을 가장한 우연이 지배합니다. 과학과 수의 법칙도 우연 앞에선 무력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그런 확률 따위에 너무 연연하지 마세요.」
친구는 헛기침을 두어 번 하고는 녹음기를 구더기 사내 쪽으로 더욱 바짝 대었다. 그러나 구더기 사내는 더욱 침울했고 너무나 경직되어 있어 자칫하면 손에 들고 있는 술잔을 떨어뜨릴 것처럼 보였다. 친구는 그런 구더기 사내를 한동안이나 관찰한 후 말을 이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수의 세계는 약속의 세계에 불과하지 않습니까. 사람들은 존재하지도 않는 기호 0을 당연히 있는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0이라는 가상이 없으면 계산이 되지 않으므로 강제로 끼워맞춘, 오직 편리와 연산을 위한 억지일 뿐인데도 말입니다. 가감승제를 위해 존재하지도 않는 0을 우리들은 언제부터인가 아주 자연스럽게 믿으며 따라왔습니다. 또한 0이라는 게 실제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감히 할 수조차 없게 되었습니다. 계산은 10진법으로, 컴퓨터는 2진법으로, 시간과 각도는 60진법으로, 연력(年歷)은 12진법으로, 그렇게 소수의 학자들의 편리를 위해 약속한 것이지만 우리들은 아무런 관여도 하지 못한 채 살아왔습니다. 기술이 아무리 진보하더라도 인간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어찌 보면 세상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찾기도 전에 시작한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의 의지는 왜 세상에 관여하지 못하는가 이 말입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고 싶습니다.」
친구의 말이 끝나자 구더기 사내는 고정된 듯한 몸을 살짝 풀어 아름작거리던 입술에 술잔을 대었다. 그리고는 다시 한동안 가만히 있었다. 친구가 대답을 기다린다는 듯이 볼펜으로 노트를 툭툭 치면서 녹음기를 바라보았다. 잠시 후 구더기 사내는 다시 특유의 이상한 미소를 머금고 말을 했다.
「맞습니다. 춤을 잘 추는 사람을 무용수라고 하지 가수라고 부르지 않는 것처럼 어떤 한 존재는 자신을 규정하는 정의와 기능을 벗어나면 더 이상 그 존재가 아니지요. 사물을 보는 것이 귀가 아니라 눈인 것처럼 말이죠. 특히 존재하지 않는 0을 단 한 번의 의심도 없이 받아들인다는 말… 전 그 말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제가 바로 그런 일을 겪었으니까요.」
그때 뒤켠에서 아근바근 다투는 소란이 잠깐 일었다. 뒤 테이블에 있던 두 명이 멱살을 쥐며 서로 엉킨 채 나갔고 뒤따라 한 여자가 옷가지 등을 정리하며 일어났다. 그녀는 잔돈도 받지 않은 채 계단을 뛰어 내려갔고 잠시 후 소란은 진정되었다. 친구는 고개를 다시 구더기 사내 쪽으로 돌렸다. 구더기 사내는 어느덧 뙤록한 눈알에 가량가량히 미소를 짓고 있었다.
「저는 아주 지독한 병을 앓았습니다. 몸 안에 구더기를 넣고 다니는 건 제가 앓은 병에 비하면 병도 아니지요. 제가 유독 지독하다는 표현을 쓰는 것은 그 병이 나를 죽음으로 몰고가는 불치병 같은 중증의 병이어서가 아닙니다. 어찌 보면 이 병은 오뉴월 감기보다도 가볍고, 또 사타구니에 얽힌 습진보다도 못합니다. 그런데도 제가 굳이 지독하다는 표현을 쓰는 것은 저를 자근자근 씹으며 못살게 군다는 데 있습니다. 잠이 조금 부족하거나 약간이라도 피곤한 기색이 있으면 이 병은 여부없이 찾아왔습니다. 처음 찾았던 병원의 의사는 나붓이 앉은 자세로 저를 한동안이나 지켜보더군요. 그러면서 연신 고개만 갸우뚱거렸습니다. 제가 누차 어떤 병인가 묻자 의사는 대답하기 매우 곤란하다는 듯이 말을 했습니다.
<중심성맥락망막염(中心性脈絡網膜炎)의 일종인데 말이죠. 그 중에 중심암점(中心暗點)이라고… 그런데 저도 실제 그러한 병을 보는 것은 처음입니다. 정말 제 손에 쥐고 있는 볼펜이 보이지 않습니까?>
의사는 일부러 볼펜을 책상 위에 두들기면서 소리를 냈습니다. 물론 볼펜이 책상에 부딪히면서 나는 소리는 잘 들렸지요. 하지만 제 눈에는 아래위로 흔들거리는 의사의 빈손만 보일 뿐 그가 말하는 볼펜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의사는 몇 군데 전화를 하면서 아직도 의심이 된다는 듯이 저를 힐끗 보더군요. 전화 통화가 끝나자 의사는 보다 정밀한 조사가 필요하니 큰 병원으로 가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큰 병원에 가더라도 마찬가지일 거라는 말을 덧붙이더군요. 그러면서 자리에서 일어나는 저를 보며 의사는 계속해서 「허, 참」이라며 거친 숨을 들이켰습니다.」
친구는 믿지 못하겠다는 식으로 설마 그런 병이 다 있다니, 라고 했다. 그러나 구더기 사내는 친구의 의아심에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말을 했다.
「제가 지독하다고 말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처음엔 주위 사람들이 저를 놀리려는 줄로만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결코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저는 제 자신조차 믿지 못할 것만 같더군요. 생각해보세요. 아무리 눈을 크게 뜨고 사물을 보려고 하지만 일부분이 보이지 않는다면, 이 얼마나 억울한 일입니까. 또한 자신이 본 자명한 사실조차 의심해야 한다는 것은 일종의 사형선고와도 다름없는 일이지요. 병명이야 어쨌든 제가 더욱 답답하게 생각하는 것은 날로 심해지는 이 병이 아직 그 원인과 치료가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는 데 있습니다. 단지 지금까지 밝혀진 것은 과로나 수면부족 또는 눈이 혹사를 당했을 때 가끔 이런 증세가 발생한다는 사실뿐이지요. 이 병이 오랫동안 지속된 적은 없었습니다. 의사가 말한 것처럼 잠을 푹 자고 나거나 혹은 몇 시간 동안 눈을 감고 나면 다시 정상으로 돌아오곤 했으니까 말입니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저는 자신감마저 잃었습니다. 피곤할 때 본 것이 실제인지 아니면 지금 본 것이 실제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을 것만 같았고 저는 제 눈에 보이는 모든 것에 대한 자신감을 차츰 잃어나갔습니다. 제가 이 병을 겁내고 또한 지독하다고 느끼는 것은 제가 보고도 미처 의식하지 못하는 것이 존재한다는 점에 있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사물을 보거나 혹은 책을 읽더라도 남과 비교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에게 확인하지 않으면, 제가 본 것이 과연 진실인지 아닌지 알 수 없다는 점 말입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피곤한 날이면 길을 가다가도 모르는 사람에게 보이는 것을 물어 제가 보고 있는 것이 정상인지 확인하곤 했습니다. 저는 매일 아침마다 욕실의 물품을 확인하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했습니다. 비누 개수나 위치는 물론이고 포장지의 생김새며 광고 문구까지 외워 두고 매일 확인했지요. 그래서 만일 한 글자라도 건너뛰게 되면 모든 약속을 취소하고 집으로 들어가서 잠을 조금 더 잤습니다. 하지만 불안한 마음은 그래도 가시질 않더군요. 아무리 잠을 충분히 자더라도 항상 불안했고 또한 항상 의심하지 않을 수 없더군요. 제가 보지 못한 것은 없는지, 제가 본 것이 진실인지, 제가 본 것이 과연 전부인지, 자신이 없었으니까요.」
그러면서 구더기 사내는 잠시 고개를 숙인 뒤 창 밖을 봤다. 졸음 같은 봄볕이 도글도글 구르던 노란색 거리는 어느새 교회와 여관이 내뿜는 새벽녘 네온의 한기에 새파랗게 변해 있었다. 구더기 사내는 창 밖만큼이나 시퍼런 술병을 들고 친구에게 따르며 말을 이었다.
「자신이 보려는 사물을 붙잡고 이것이 실제인지 아니면 내 눈에만 그렇게 보이는 것인지, 혹은 전부인지 아니면 일부분인지, 이 처음 보는 물건이 어제 본 것과 같은 것인지 아니면 내일도 이 모습 그대로인지, 매일 보는 간판이 낯설기만 해 애써 외우려 한 적이 있습니까? 머리를 빗으려 거울 앞에 서다가도 갑자기 머리카락이 보이지 않는 자신을 본 적이 있습니까? 밑도 끝도 없이 생긴 이 병은, 나를 발가벗긴 채 생매장시키는 것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답답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더군요. 그러나 세수를 하다가도 비누를 찾지 못한다거나 혹은 문을 열 때 열쇠 구멍을 찾지 못하는 불편은 충분히 견딜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도저히 견딜 수 없을 만큼 답답한 것은 <나는 더 이상 내가 본 것이 진실이고 전부임을 알 수 없다>는 바로 근본이 사라졌음입니다.」
그의 벗겨진 머리 때문에 조금은 투미하고 뭔가 어수룩한 사람처럼 보였지만 그의 화술은 상당히 능수능란했다. 친구는 메모를 하다 말고 거, 보기에만 멀쩡하지 병신이랑 다름없구려, 했다.
「맞습니다. 멀쩡한 병신이 따로 없죠. 사실 이 세상에는 얼마나 멀쩡한 병신들이 많이 있습니까. 사이비 종교에 미쳐 몸 팔고 돈까지 바쳐, 이런 것들이 모두 두 눈 멀쩡한 눈 병신들이 아니고 뭐겠습니까. 그 정도면 중증이죠. 그러나 그 정도의 중증이 아니더라도 세상 사람들은 모두가 약간씩은 멀쩡한 눈 병신들이죠. 지들 눈에는 근사(近似)하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근사하다는 말은 원래 자기 눈에만 가깝다는 주관적인 것 아닙니까? 자신의 눈에만 근사하다고 모든 사람들에게 좋은 것이라 할 수 없지요. 근사하다고 그것이 진실일 수는 없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전 이렇게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지닌 이해력만큼 세상을 인정한다고. 생각해보세요. 이해력이 뛰어나다면 진실과 거짓을 잘 구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것은 노스페라투와 드라큘라의 차이와도 같은 것이죠. 수많은 드라큘라가 나왔지만 베르너 헤어조크가 만든 노스페라투의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아무리 현란한 기술로 덮어씌우더라도 흑백의 노스페라투를 따라잡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것은 노스페라투가 미인의 목덜미만을 노리는 단순한 흡혈귀가 아니라 오히려 구원을 갈망하는 박해자로 그려졌기 때문이지요. 피카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가 유명한 것은 종이라는 평면 위에 입체를 실현시켰기 때문 아닙니까. 프란치스코 고야의 그림이 인정받는 것도 신고전주의에 반대해 미술을 객관에서 주관의 세계로 끌어들였기 때문이고 쿠르베나 마네, 칸딘스키가 위대하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도 마찬가집니다. 음악? 그건 더 말할 것도 없지요. 뉴트롤즈는 고전 음악과 셰익스피어를 록음악에 접목시켰고, 섹스 피스톨즈는 펑크 운동을 폭발시켰고, 슈거 힐 갱스는 랩과 힙합을 대중 문화로 굳혔기 때문에 위대한 것 아닙니까. 사람들은 언제나 새로운 것에 도전을 하지만 결국 그것을 인정하는 것은 이해력이 아닙니까. 굽은 것을 바로 볼 수 있고, 높은 것과 낮은 것, 그리고 진정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이해력 아닙니까. 그런 이해력 때문에 상품과 예술을 구분할 수 있는 것이고 나아가 정당한 것이 제대로 대접받는 거 아니겠습니까. 제가 말하는 건 이해심이 아니라 이해력입니다. 이해심은 바보들이나 지닌 패배요, 추수주의입니다. 좆도 모르면서 마음이 넓은 척하는 것은 위선이고 무지입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인간에게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지적 능력이라 할 수 있는 이해력이라고. 마, 말이 많이 옆으로 샜습니다만, 뭐 틀린 말은 아니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선생?」
그는 친구에게 되물었지만 친구는 대답 대신에 술을 훌훌 털고는 <글쎄요> 하는 너털웃음을 지었다.
「아무튼 병에 걸려 본 사람들은 잘 알 것입니다. 얼마나 외롭고 서러운지를. 특히 저처럼 무방비 상태에서 무장해제를 당한 꼴이라면 더욱 답답하고 괴로울 것입니다. 당뇨병이나 신장병, 그리고 심장질환 같은 중병의 병을 앓는다 하더라도 눈이 정상이면 알약을 구분해서 먹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눈앞에 분명 존재하는 약들이 보이지 않는다면, 촌각을 다투는 사이에 반드시 먹어야만 하는 알약들을 찾을 수 없다면… 휴우, 그러니까 저는 병에 대한 공격은커녕 기본적인 방어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무장해제를 당한 꼴과 같은 셈입니다. 사물을 똑바로 볼 수 없다는 건 그만큼 무서운 것이지요. 평생 약에 의존해서 살라면 차라리 그것이 나을지 모르지요. 시계를 보고 일없다는 듯이 일어나 냉장고를 열고 생수를 꺼내 가볍게 약을 털어 넣으면 되니까요. 하지만 이 병은 제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기본적인 기회조차 앗아갔습니다. 생존 다음에 생활이 있는 것이고, 방어 다음에 공격이 가능하겠죠. 하지만 저는 기본적인 방어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선택의 기회를 박탈당했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구더기 사내는 잠시 화장실을 다녀오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친구는 의자를 옆으로 비켜주고는 녹음기를 껐다. 그리고는 노트를 뒤적이면서 자신이 한 메모를 훑어보았다. 더 이상 들려 줄 테이프나 CD가 없었는지 술집 주인은 라디오를 켰다.
<잠시 후 세 시에 찾아 뵙겠습니다. 본 방송은 소니뮤직코리아, 워너코리아, 야후코리아, EMI뮤직코리아, 모빌코리아, 캐스닥코리아, 씨앤씨코리아 제공입니다…>
친구는 메모를 보다 말고 벽에 걸려 있는 영화 「샤인」의 포스터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친구는 볼펜으로 포스터를 툭툭 치면서 말했다.
「내가 우습지도 않은 이야기 하나 해줄까? 샤인의 실제 인물인 피아니스트 데이비드 헬프갓을 결국 누가 구원했을까? 저 영화 나오고 나서부터 데이비드 헬프갓은 우리 나라에서 두 번이나 초청할 만큼 인기를 끌었지? 가요 탑텐만 보던 사람들이 언제부터 데이비드 헬프갓의 추종자가 되었는지 저 영화가 개봉되고 나서부터는 모든 가게의 벽에는 포스터가 붙었고, 또 라디오나 방송, 커피숍마다 하루 종일 헬프갓의 연주곡뿐이었지. 샤인이 나오기 전부터 사람들이 헬프갓의 연주 실력을 알았다면 그는 그렇게 고통을 겪지 않아도 또 더욱 좋은 연주를 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야. 지금은 기력이 떨어져 연주도 못한다며? 하긴… 그것도 이미 몇 년 전의 이야기가 되었네. 지금은 언제 그랬냐는 식으로 아주 잠잠하니 말이야. 하여튼 바람의 나라야. 바람의 나라. 아주 우습지도 않아.」
구더기 사내는 볼이 빨개진 채 들어와 앉았고 친구는 기다렸다는 듯이 녹음기를 다시 켜며 물었다.
「그래서 그 지독한 병이란 게 다 나았습니까?」
「그게 말입니다. 낫긴 나았는데… 글쎄요. 참으로 믿기지 않는 치료방법이어서 말입니다.」
술집 문이 게걸스럽게 열리더니 젊은이 몇 명이 들어와 한 테이블을 차지했다. 심야인 관계로 몇 가지 안주는 되지 않는다고 주인이 말했고 새로 들어온 손님들은 개의치 않았다. 그들은 이 부근에 있는 나이트를 갔다왔는지 의자에 앉아서 가끔씩 상체를 흔들며 무용담을 늘어놓고 있었다.
「지금 들어온 손님들이 모두 네 명 맞지요? 그 중 한 명은 모자를 썼고, 다른 한 명은 검은색 뿔테 안경을…」
구더기 사내는 그렇게 말하면서 한동안 그들을 응시했다. 그리곤 손바닥으로 자신의 머리를 치면서 친구를 바라보았다.
「아, 죄송합니다. 버릇이 되어서 말입니다. 바쁜 시간 쪼개서 술까지 사주시며 상담해 주시는데 자꾸만 이야기가 가로새어 정말 죄송합니다. 음… 제가 마지막으로 찾은 병원은 한마디로 중심성맥락망막염 전문 병원이었습니다. 제가 그 병원을 찾게 된 것은 어떤 건물의 계단을 내려오면서였습니다. 저는 이 병 같지도 않은 병을 앓으면서부터 특히 계단을 조심했습니다. 눈앞에 펼쳐진 계단들이 똑똑하게 보였지만 혹시 그 중 하나가 보이지 않아 구를 수도 있는 일이었기에 저는 발끝으로 항상 확인해서 걸어야만 했습니다. 만일 그렇게 조심해서 내려오지 않았다면 저는 그 광고스티커를 지나쳤을지 모릅니다. 노란색의 광고스티커는 계단 손잡이에 붙어 있었고 저는 눈이 아니라 손바닥에서 전해져오는 촉감으로 그것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제대로 볼 수 없습니까? 난시, 약시, 근시, 원시, 색맹, 백내장, 녹내장, 사시, 중심성맥락망막염, 각종 퇴행성 안구질환, 전문 치료…
스티커에는 분명 중심성맥락망막염이라는 병명이 적혀 있었습니다. 물론 처음에 저는 반신반의했지요. 아직 원인도 채 밝혀지지 않은 병인데다, 종합병원을 가보아도 마찬가지일 거라는 의사의 말과는 달리 완치를 보장한다는 문구가 스티커 말미에 또렷하게 인쇄되어 있었기 때문에 말입니다. 그러나 반신반의하면서도 제 마음은 이미 그 병원의 문턱에 가 있었습니다. 죽을병은 아니지만 생각해보세요. 모든 사람들의 눈에는 다 보이는데 제 눈에만 안 보이는 것이 있다면 어디 견뎌낼 재간이 있나 말이죠.」
잠시 대화가 끊겼다. 이번엔 친구가 구더기 사내의 양해를 구하고는 화장실로 갔다. 친구는 자신이 없을 때 구더기 사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기 위해 녹음기를 끄지 않았다. 시간은 어느덧 네 시를 향하고 있었다. 구더기 사내는 손가락 끝으로 잔을 빙글빙글 돌리며 건너 편 젊은이들이 있는 테이블을 응시하고 있었다.
「저들의 눈은 사물을 제대로 볼 수 있을 만큼 정상일까요?」
이어 한 무리의 여성들이 들어왔다. 여성들은 자리에 앉을 생각도 하지 않고 꼿꼿하게 서서는 앞서 들어온 젊은이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화장실에서 나온 친구는 여성들의 무리 속에 끼여서 제대로 걷지 못하고 있었다. 구더기 사내는 친구를 보자 손을 들어 크게 흔들었다. 이륙을 서두르는 전투기를 인도하는 병사처럼 구더기 사내는 손을 절도 있게 흔들었고, 여기 여기 하면서 소리까지 질렀다. 마치 친구가 지독한 근시나 장님이라도 되어 반드시 인도를 해줘야 한다는 것처럼.
친구가 자리에 앉자마자 구더기 사내는 화장실 벽에 쓰인 한문을 봤냐고 물었다.
「천하개지미지위미(天下皆知美之爲美), 사오이(斯惡已). 온 세상 사람 모두가 아름다운 것이 아름답다고 알고 있다. 그런데 사실 그것은 추한 것이다. 그것 제가 조금 전에 쓴 것입니다. 어때요? 잘 썼지요? 늙은이(老子)가 한 말이죠. 헛헛.」
친구는 아, 예 하고 짧게 내뱉고는 녹음기를 확인했다. 덮개를 열고 테이프를 꺼내더니 그 위에 시간과 기호를 몇 자 적었다. 구더기 사내는 스멀거리는 웃음으로 그런 친구를 지켜보았고 친구가 테이프를 갈아끼우자 말을 이었다.
「그럼 이야기를 계속하죠… 제가 전문 병원이라 말하기는 했지만 환자가 부지기수로 많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일반 안과 환자말고 저와 비슷한 증세를 앓고 있는 사람은 모두 두 명이었는데 원장의 말로는 의학 잡지에 중심성맥락망막염에 대한 논문도 기재한 적이 있는, 그러니까 동양에서는 중심성맥락망막염을 취급하는 유일한 전문 병원이라더군요. 저는 설명을 들으면서 한편으로 안심이 되었습니다. 생소하기만 한 이 병을 앓고 있는 사람이 또 있다는 것이 우선 그러하더군요. 원장은 당분간 입원할 것을 권유했습니다. 임상실험을 곁들인 입원이기 때문에 돈도 많이 들지 않고 또한 치료의 효과가 클 것이라고 말입니다. 입원인지, 임상실험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병원 생활을 저는 그렇게 시작했습니다. 기도원이나 정신병원처럼 산 속에 안과가 있다는 것도 그렇고, 멀쩡한 두 눈을 끔벅이면서도 하나같이 맹인용 지팡이를 지니고 다니는 환자들의 모습이 그랬고, 복도의 벽과 바닥에 강낭콩만한 요철 모양의 점자가 서툰 솜씨로 덕지덕지 붙어 있는 모습이 그랬고, 전혀 치료 같지 않은 치료 때문에 저는 마치 이상한 나라로 간 앨리스 같았습니다.」
그때 휴대폰의 벨이 송곳으로 귀를 찌르는 것처럼 큰소리로 울렸다. 구더기 사내는 뒷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네, 구더기 사내입니다.」라고 말했다. 구더기 사내는 가끔씩 아이쿠, 저런 같은 감탄사를 섞으며 말했고 친구는 술잔을 기울이며 그런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구더기 사내는 감탄사뿐인 통화를 마친 후 고꾸라질 듯이 허리를 굽힌 채 껄껄대며 웃었다.
「지금 전화한 사람이 누군지 아십니까? 저와 같이 중심성맥락망막염을 치료받던 환자 중의 한 명입니다. 이 친구가 병원을 찾은 것은 줄어든, 아니 줄어들다 못해 사라져버린 성기 때문입니다. 아, 물론 실제로 이 친구의 성기가 줄어들거나 사라져버린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렇게 보일 뿐이지요. 이 친구는 소시증(小視症)을 앓았는데, 소시증은 제가 앓고 있는 중심암점과는 달리 사물의 크기가 실제보다 작아 보이는 병이라더군요. 나머지 한 명의 환자는 사물이 비뚤게 보이는 변시증(變視症)을 앓았는데 특히 변시증을 앓고 있는 그 환자의 얼굴에는, 얼굴뿐만이 아니라 옷 밖으로 드러난 거의 모든 부위가 그러했지만, 생채기와 피딱지투성이였습니다. 그것은 아마 사물이 비뚤게 보이기 때문에 생긴 상처이겠지요. 그 환자는 물리 치료를 마치고 입원실로 들어오는 문에서도 매일 심하게 부딪히곤 했었지요. 하하. 무엇보다도 화장실에서 있었던 일 때문에 저는 소시증을 앓는 사람과 친하게 지냈지요. 이 친구가 유달리 화장실을 자주 가기에 하루는 몰래 따라가봤지요. 그랬더니 자신의 성기를 줄자로 재고 있지 않겠습니까. 아예 리스트까지 만들어 매시간 기록하고 있더라니까요. 그 뒤로 가끔은 줄자의 눈금을 같이 확인해주기도 했지요. 그러나 병신 둘이서 머리를 맞대어봤자 그것이 정상인들이 본 것만큼 정확할 수 있겠습니까마는 그래도 저희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습니다.」
친구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는 식으로 구더기 사내를 바라보았다. 그러면서 소시증이니 변시증이니 하는 그런 병을 앓는 사람들이 주위에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불합리하다고 말했다. 장님이나 시력이 나빠지는 것은 보았어도 그런 병이 우리 주위에 있을 확률이 도대체 얼마 정도 되겠냐면서 손을 가로저었다.
「나 참, 조금 전에 선생께서 말하지 않았습니까. 과학이나 확률은 엉터리라고. 의사의 말로는 이런 병에 걸릴 확률이 1억분의 1이라는군요. 그건 무얼 의미하겠어요? 확률이 있다는 건 그만큼 안전하다는 것이 아니고 더러운 꼴이 누구에게나 갈 수 있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10억분의 1이고 100억분의 1이고 간에 중요한 것은 결국 존재한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물론 소수보다는 다수를 지향하는 민주사회니 병에 걸릴 확률이 낮은 병에 대해서는 관심은커녕 아예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싶겠죠. 그것이 바로 다수를 중시 여기는 현대사회니까 말입니다. 쩝, 이야기가 자꾸 새서 미안합니다. 그래서…」
구더기 사내는 갈증이 아주 난다는 듯이 술을 단숨에 들이켰다.
「특별 입원실이라는 곳의 분위기는 사뭇 엄숙했습니다. 삼시 세 끼의 식사시간말고는 모두 원장이 설치한 교정용 유리상자를 집중해서 보는 데 모든 시간을 할애하고 있었습니다. 누구 하나 찾아오는 사람도 없었고, 술을 사먹으러 몰래 밖으로 나가는 환자도 없었다니까요. 그들과 함께 지낸다고는 하지만 그런 분위기에 젖어 저 또한 처음엔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냥 조용히 사물함에다 입고 온 셔츠를 고이 접어 넣고는 침대 위에서 오직 푹 쉬기만 할 뿐이었지요. 나이나 이름은 물론이고 그들이 무엇을 하는지 또 병이 완쾌되어 퇴원한 사람은 있었는지 나름대로 궁금한 것들이 많았지만 무거운 추처럼 하릴없이 달려 있는 제 입은 좀처럼 떨어질 줄 몰랐습니다. 보라고 발가벗은 채 있는 세상의 사물조차 보이지 않는 제가 과연 무엇을 알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말입니다. 제가 더욱 조용해진 것은 중심성맥락망막염의 유일한 치료책인 교정용 유리 상자 때문이었습니다. 저희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교정용 유리 상자에 눈을 맞추는 데 두었습니다. 유리 상자 안에는 미세한 크기로 표시된 기호가 한 그림을 이루고 있다고 했는데, 교통표지판처럼 번호와 화살표가 이리저리 흩뿌려져 있고 그것을 따라 순서대로 훑어가는, 말하자면 일종의 눈 훈련이지요.」
「그래, 그 기호와 숫자를 따라가면 어떤 그림이 보이는데요?」
「처음엔 그림은커녕 기호나 숫자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아무리 보려고 해도 도무지 볼 수가 없었어요. 저 또한 어떤 그림이 있냐고 의사에게 물었지요. 그랬더니 의사가 뭐라 했는지 아십니까? 유리 상자 안의 그림이 제대로 보이면 정상이게요? 이렇게 말하더군요. 헛헛. 세상일이 다 그렇듯이 한 마디로 아이러니죠. 생각해보세요. 치료용 유리 상자 안이 보이지도 않는데 어떻게 해서 그것을 보며 눈을 치료할 수 있는 것인지. 처음엔 저도 정말 답답하더군요. 더군다나 그림을 못 본 사람은 저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저와 같이 치료받던 다른 두 명은 저보다 일 주일 정도 일찍 왔는데도 유리 상자 안의 그림이 정확하게 무엇인지 모르더군요. 모두가 제대로 보지 못하는 눈 병신들인지라 원장이 설명한 것을 추측할 뿐 그 누구도 유리 상자 안에 있는 그림을 정확하게 알지 못했습니다. 저는 그 유리 상자에 시선을 주기조차 힘들었습니다. 설핏하게 윤곽이 보이기도 했지만 보면 볼수록 유리 상자 뒷면의 허연 벽만 보일 뿐 도무지 유리 상자 안의 그림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림은커녕 번호나 기호를 찾을 수도 없는 것이어서 미칠 것만 같았다니까요. 전부를, 그리고 진짜를 보지 못한 순간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생각해보세요. 도대체 그것이 용납되겠습니까? 두 눈을 멀쩡하게 뜨고도 말입니다. 그건 누군가 내 숨통을 끊어져라 죄고 있는데도 두 손이 묶인 채 있는 거랑 마찬가지지요.」
친구는 그런 엄중한 병에 눈 훈련만으로 치료가 된다는 것이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친구는 레이저 치료나 약물 치료, 하다못해 안마 같은 눈 지압이라도 있어야 되지 않느냐고 말했다.
「이 세상에 완벽하게 고칠 수 있는 병이 있을 것 같소? 변형바이러스 이야기도 못 들어봤소? 치료약이 개발되는 순간 새로운 질병이 탄생하지요. 수술이나 약물에는 반드시 부작용이 따르게 마련이지요. 제 몸에 현대 의학이 아닌 구더기를 집어넣은 것만 봐도 알지 않소. 물론 저도 처음엔 그런 것들을 기대했지요. 하지만 원인도 밝혀지지 않은 이 따위 병에 도대체 무슨 약을 사용한답디까? 그저 눈 훈련만이 유일한 치료라니 매달릴 수밖에 말입니다. 의사의 노력도 대단했지요. 하루에 한 번씩 눈 훈련을 도와주었는데 의사가 맹인용 지팡이를 가지고 유리 상자 안을 가리키면 우리는 집중해서 본 것을 말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두 눈을 멀쩡하게 뜨고서도 맹인용 지팡이를 가지고 다니는 우리들이 의사가 말하는 것처럼 그리 쉽게 찾을 수는 없었습니다. 대부분이 <저기, 저기.> 하다가도 이내 <아닌가?> 하고 고개를 떨구곤 했지요. 그러나 의사가 유일한 치료 방법이라고 몇 번이고 강조를 하면서 포기하지 말라고 할 때 자칫 감정에 북받쳐 눈물을 흘리는 이도 있을 정도였소. 의사는 계속 말했지요. <안 보인다고 포기하지 마세요. 자 여기 1번이 있지요? 그럼 2번은 어디 있나요? 2번을 다 찾았으면 다음 화살표 방향으로 넘어가 보세요.> 하지만 우리는 너무나 지쳐서 의사가 하는 말에 대해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습니다. 은색의 지휘봉을 쫓아 눈알을 굴리는 것을 쉬지 않고 더 이상 하다가는 눈알이 툭 하고 빠질 것만 같았다 이 말입니다.」
구더기 사내는 잠시 말을 멈추고 창 밖을 내다보았다. 창에 아른거려 정확하지는 않지만 그의 눈에 눈물이 고인 것 같았다. 구더기 사내는 녹음기나 친구의 눈길을 애써 피한 채 창 밖을 보면서 이야기했다.
「그야말로 처절했고 맹렬했습니다. 더 이상의 절대절명은 없는 것 같았습니다. 목이 터져라 구구단을 외우는 학생들처럼 우리들은 지시에 따라 숫자와 기호를 외쳐댔고, 그러면 의사는 더 큰소리로 <자, 처음부터 다시.> 하고 외쳤습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습니다. 하루는 소시증을 앓는 친구가 갑자기 뙤뙤거리며 말하더군요. <보… 보인다. 보인다…> 하고 말입니다. 기적을 목도한 사람처럼 그 친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외치기 시작했고, 이어 변시증을 앓는 사내도 무릎을 치면서 말했습니다. 드디어 보인다고 말입니다. 되레 그는 의사보다 앞질러 숫자와 기호를 말하기 시작했고 그러자 내 눈에도 뭔가가 하나씩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글쎄 그것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군요. 개안수술을 받은 장님이 붕대를 풀었을 때가 꼭 그럴까요. 아니면 어두운 극장 안에서 옆 사람의 얼굴이 익숙해지는 것처럼, 포연 같은 자욱한 안개가 걷히면서 드러나는 산자락처럼, 제 눈에도 하나씩 보이기 시작하더라 이 말입니다. 지금도 생생합니다. 동그라미 붉은 색의 1번. 두 칸 위에는 파란 색으로 2라는 숫자가 삼각형 안에 연꽃처럼 담겨 있었고 그 사이에는 화살표가 좌, 우로 나 있고… 그렇게 제 눈이 점점 열리고 확대되더니 가만히 앉아 있던 저에게 유리 상자 안의 그림이 커다랗게 다가왔습니다. 저는 그때 깨달았지요. 아, 중요한 것은 눈으로 보는 게 아니라 이해하는 거구나. 동공이나 망막, 시신경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결국은 이해하는 것이구나, 하고 말입니다.」
친구는 기가 막히다는 듯이 웃었다. 그러면서 구더기 사내를 보면서 말했다.
「그래, 병을 치료했다니 다행입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이야기가 도대체 0과는 무슨 관계요?」
구더기 사내는 다시 미소를 지었는데 그 모습은 처음에 그가 보였던 야릇하면서도 살똥스런 미소였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것이 말입니다… 그 유리 상자 안의 그림이란 게 처음부터 없었습니다. 선생의 말대로 존재하지 않는 0을 세상사람들이 마치 존재하듯이 믿고 따르는 것처럼 우리들은 있지도 않은 유리 상자 안의 그림을 본 것이지요. 이상한 일이지만 병은 다 나았고 이제 더 이상 물건을 잃어버리거나 찾아 헤매지 않아도 됩니다… 하지만 제가 선생님을 찾아뵌 것은 그 뒤로 새로운 병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뭐 병인지 아닌지는 선생님께서 판단하실 일이지만 도무지 걱정이 되어 잠을 이룰 수가 없더란 말입니다. 저는 병을 고쳐서 사물을 제대로 볼 수 있지만 과연 세상사람들은 사물을 제대로 보고 있는 것인지, 제가 보는 진실이 제대로 보지 못하는 사람들 때문에 왜곡되지는 않을지… 하는 걱정 말입니다. 그러니까 눈이 한 개인 사람들이 사는 세상으로 떨어져 눈이 두 개인 제가 오히려 병신 취급을 당하는 것과 같은 경우 말입니다.」
친구는 녹음기를 껐고 구더기 사내는 안주를 먹으며 똘방똘방한 눈알을 이리저리 굴렸다. 친구는 나에게 귓속말로 재미있는 사례라 말했다.
「미쳐도 저렇게 일목요연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건 대단한 연구 가치가 있어.」
그러면서 정신과 의사인 친구는 나에게 내일 밤도 자리를 같이하자고 권유했다. 친구는 노트와 녹음기를 정리하면서 내일은 여자 환자인데 대단한 미인이기 때문에 오늘처럼 지루하지는 않을 거란 말을 덧붙였다.
우리들은 새벽 다섯 시가 훨씬 넘어서야 술집에서 나왔다.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친구는 날이 아직 춥다며 구더기 사내를 바라보았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구더기 사내의 보기 좋게 벗겨진 대머리를 보고 있었다. 친구는 이제 눈도 고쳤으니 모자라도 하나 사서 머리를 보호하라고 농담처럼 말했다. 하지만 구더기 사내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투로 우리들에게 되물었다.
「제 머리가 어떤데요?」
「여기 벗겨진 곳 말입니다.」
친구는 구더기 사내의 머리를 만지다 말고 소스라치게 놀랬다. 그러면서 나에게 한번 만져보라는 시늉을 했다. 나는 주머니에서 손을 꺼내 구더기 사내의 머리카락을 만져보았다. 반들거리는 피부 대신에 덥수룩한 머리카락이 만져졌다. 그러나 우리들의 눈에는 머리카락이 보이지 않았다. 대신 구더기 사내가 <거봐, 내 말 맞지.>라고 말하듯이 짓는 포달스런 미소가 환한 원형 탈모 위로 떠올랐다. 그때 한 대의 버스가 우리를 스치며 지나갔다. 정류장에서 한동안이나 기다리고 있던 우리를 전혀 보지 못했다는 듯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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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원 1994년 『문학과사회』 가을호에 단편소설 「유서」로 등단하였다. 작품집으로 『이상 이상 이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