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화 - 신라의 아름다웠던 시절, 황룡사터1](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2%2F09%2F23%2F20220923185533973_thumb.jpg)
인생의 허무함을 느낄 수 있는 황룡사터로 가다
경주 역사유적지구에서 마지막으로 들를 곳은 황룡사 지구다. 남산 지구는 경주 국립공원 여행기를 쓸 때 소개했으며, 명활산성이 있는 산성 지구도 있지만 아직 거기까진 발걸음이 닿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릉원 지구, 월성 지구, 황룡사 지구는 서로 인접한 곳에 있어 하루 만에 다 둘러보는 것도 가능하다. 천천히 여유롭게 보려면 이틀 동안 둘러봐야 하지만 경주까지 가는 게 힘든 사람들은 하루 만에도 다 볼 수 있다. 시간이 촉박한 사람들은 황룡사 지구를 제외하고 나머지 유적들만 보게 되는데, 이는 황룡사 지구가 다른 지구와는 달리 말 그대로 '폐허'이기 때문이다.
![제19화 - 신라의 아름다웠던 시절, 황룡사터2](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2%2F09%2F23%2F20220923185907338_thumb.jpg)
![제19화 - 신라의 아름다웠던 시절, 황룡사터3](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2%2F09%2F23%2F20220923185908326_thumb.jpg)
![제19화 - 신라의 아름다웠던 시절, 황룡사터4](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2%2F09%2F23%2F20220923185908235_thumb.jpg)
![제19화 - 신라의 아름다웠던 시절, 황룡사터5](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2%2F09%2F23%2F20220923185908186_thumb.jpg)
나 또한 다른 사람들과 다를 바 없이 황룡사 지구를 가장 나중에 보았다. 실제로는 하루 만에 세 지구 모두를 빠르게 둘러봤지만, 이후 각 유적들을 꼼꼼히 감상할 때는 황룡사 지구를 가장 후순위로 두었던 것이다. 그 사이 기간 동안 경주는 많이 변화했다. 낙후된 주택가였던 황남동에 황리단길이 생겨 주말이면 엄청나게 붐비게 되었고, 황룡사지에도 황룡사지 역사문화관이 들어서 황룡사의 역사, 그리고 황룡사 목탑의 규모에 대해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수학여행이라는 낡고 고루한 관광지였던 경주는 최근에 다시 부활하여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찾는 관광 도시로 변모한 것이다.
한국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이야기 19 - 황룡사지
황룡사는 신라 진흥왕 14년(553)에 경주 월성의 동쪽에 궁궐을 짓다가, 그곳에서 황룡(黃龍)이 나타났다는 말을 듣고 절로 고쳐 짓기 시작하여 17년 만에 완성되었다. 그 후 574년, 인도의 아소카왕이 철 57,000근·금 3만 분으로 석가 삼존불상을 만들려다 뜻을 이루지 못하고 금과 철, 그리고 삼존불상의 모형을 배에 실어 보낸 것이 신라 땅에 닿게 되자 이것을 재료로 삼존불상을 만들게 되었다. 5m가 넘는 이 불상을 모시기 위해 진평왕 6년(584)에 금당을 짓게 되었다. 선덕여왕 12년(643)에는 당나라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자장의 권유로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한 바람의 9층 목탑을 짓게 되는데, 각 층마다 적국을 상징하도록 하였으며, 백제의 장인 아비지에 의해 645년에 완공되었다.
이와 같이 황룡사는 93년간에 걸친 국가사업으로 조성된 큰 절이었으며, 신라의 3가지 보물 중 천사옥대(天賜玉帶)를 제외한 2가지 보물이 황룡사 9층 목탑과 장육존상이었다는 것에서도 황룡사가 차지하는 비중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신라의 땅이 곧 부처가 사는 땅'이라는 신라인들의 불교관이 잘 나타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제19화 - 신라의 아름다웠던 시절, 황룡사터6](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2%2F09%2F23%2F20220923185855490_thumb.jpg)
![제19화 - 신라의 아름다웠던 시절, 황룡사터7](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2%2F09%2F23%2F20220923185855574_thumb.jpg)
![제19화 - 신라의 아름다웠던 시절, 황룡사터8](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2%2F09%2F23%2F20220923185855415_thumb.jpg)
그러나 황룡사는 고려 고종 25년(1238)에 몽고의 침입으로 모두 불타 없어져 지금은 그 흔적만 남아있다. 늪지를 메워서 그 위에 지은 황룡사는 중문·목탑·금당·강당이 남북으로 길게 배치된 1 탑 식 배치였다. 그러나 장육존상과 목탑 등이 조성된 후 금당 좌우에 작은 금당이 배치되는 1 탑 3 금당식으로 바뀌고, 탑의 좌우에 종루와 경루(經樓)가 대칭을 이루어 배치되었다. 또 사방은 복도와 같은 회랑으로 둘러싸여, 독특한 가람배치를 보이고 있다.『삼국유사』에 의하면 종루에는 거대한 종이 있었는데, 몽고가 침입했을 때에 없어진 것으로 보인다.
1976년부터 시작한 발굴조사에서 금동불입상·풍탁·금동귀걸이·각종 유리 등 4만여 점의 유물이 출토되었으며, 높이 182㎝에 이르는 대형 치미는 건물의 웅장한 규모를 짐작하게 한다. 금당에는 솔거가 그린 벽화가 있었다고 전하며, 목탑지에서 발견된 당나라 백자 항아리는 당시의 문물교류를 잘 알 수 있게 한다.
거대한 목탑의 흔적이 있는 황룡사와 신비한 불탑이 서 있는 분황사
황리단길이 생긴 뒤 왁자지껄하게 변한 황남동을 걸었다. 이미 경주에는 열 번도 넘게 와 본 터라 경주의 중요한 유적들 대신 황리단길의 트렌디한 식당과 카페에서 시간을 보냈다. 황리단길과 가까운 곳에 대릉원과 첨성대, 계림이 있지만 이들 유적이 오늘 목적지는 아니었다. 바르게 한 번 둘러봤지만 시간을 들여 자세하게 보고 싶은 황룡사지가 이번 여행의 가장 중요한 목표였다.
![제19화 - 신라의 아름다웠던 시절, 황룡사터9](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2%2F09%2F23%2F20220923185841788_thumb.jpg)
![제19화 - 신라의 아름다웠던 시절, 황룡사터10](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2%2F09%2F23%2F20220923185842114_thumb.jpg)
![제19화 - 신라의 아름다웠던 시절, 황룡사터11](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2%2F09%2F23%2F20220923185842330_thumb.jpg)
황룡사 지구는 황룡사지뿐 아니라 분황사도 포함하고 있다. 분황사의 법당은 현대에 세워진 볼품없고 초라한 건물이라 딱히 보지 않아도 되지만 분황사가 세계유산에 포함된 건 한가운데 있는 아름다운 석탑 때문이다. 분황사의 석탑은 현재 남아있는 신라 석탑 가운데 가장 오래된 걸작품으로, 돌을 벽돌 모양으로 다듬어 쌓아 올린 모전석탑(模塼石塔)이다. 원래 9층이었다는 기록이 있으나 지금은 3층만 남아있다.
![제19화 - 신라의 아름다웠던 시절, 황룡사터12](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2%2F09%2F23%2F20220923185830636_thumb.jpg)
![제19화 - 신라의 아름다웠던 시절, 황룡사터13](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2%2F09%2F23%2F20220923185831139_thumb.jpg)
![제19화 - 신라의 아름다웠던 시절, 황룡사터14](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2%2F09%2F23%2F20220923185831198_thumb.jpg)
탑은 널찍한 1단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착실히 쌓아 올린 모습이다. 기단은 벽돌이 아닌 자연석으로 이루어져 있고, 네 모퉁이마다 화강암으로 조각된 사자상이 한 마리씩 앉아있다. 회흑색 안산암을 작게 벽돌 모양으로 잘라 쌓아 올린 탑신은 거대한 1층 몸돌에 비해 2층부터는 현저하게 줄어드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1층 몸돌에는 네 면마다 문을 만들고, 그 양쪽에 불교의 법을 수호하는 인왕상(仁王像)을 힘찬 모습으로 조각해 놓았다. 지붕돌은 아래 윗면 모두 계단 모양의 층을 이루고 있는데, 3층 지붕돌만은 윗면이 네 모서리에서 위쪽으로 둥글게 솟은 모양이며, 그 위로 화강암으로 만든 활짝 핀 연꽃 장식이 놓여 있다.
![제19화 - 신라의 아름다웠던 시절, 황룡사터15](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2%2F09%2F23%2F20220923185809775_thumb.jpg)
![제19화 - 신라의 아름다웠던 시절, 황룡사터16](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2%2F09%2F23%2F20220923185810052_thumb.jpg)
선덕여왕 3년(634) 분황사의 창건과 함께 건립된 것으로 추측되며,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익산 미륵사지 석탑(국보)과도 좋은 대조를 이룬다. 특히, 부드러우면서도 힘차게 표현된 인왕상 조각은 당시 7세기 신라 조각 양식을 살피는데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1915년 일본인에 의해 수리된 이후 지금까지 그 모습을 유지하고 있으며, 수리 당시 탑 안에서 사리함과 구슬 등의 많은 유물들이 발견되었다.
![제19화 - 신라의 아름다웠던 시절, 황룡사터17](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2%2F09%2F23%2F20220923185802871_thumb.jpg)
![제19화 - 신라의 아름다웠던 시절, 황룡사터18](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2%2F09%2F23%2F20220923185802960_thumb.jpg)
![제19화 - 신라의 아름다웠던 시절, 황룡사터19](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2%2F09%2F23%2F20220923185803011_thumb.jpg)
경주의 대표적인 석탑인 불국사의 석가탑과 다보탑은 말 그대로 돌로 만들어진 석탑이지만, 분황사의 석탑은 돌을 이용해 벽돌처럼 쌓아 올렸다는 점에서 특이한 양식이다. 벽돌로 만들어진 전탑은 한국에선 흔치 않으며 경북 북부 안동 지방에서 많이 발견되는데, 그 전탑들을 포함해도 분황사의 석탑이 가장 오래되었을 정도로 이 석탑이 가지는 가치는 뛰어나다. 게다가 벽돌 대신 돌을 쌓아 만들어 내구도가 약한 전탑의 특성을 잘 보완하여 지금까지 안 무너진 상태로 남아있으니 신라인들의 지혜가 돋보인다.
![제19화 - 신라의 아름다웠던 시절, 황룡사터20](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2%2F09%2F23%2F20220923185751373_thumb.jpg)
![제19화 - 신라의 아름다웠던 시절, 황룡사터21](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2%2F09%2F23%2F20220923185751526_thumb.jpg)
![제19화 - 신라의 아름다웠던 시절, 황룡사터22](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2%2F09%2F23%2F20220923185751559_thumb.jpg)
황룡사지는 분황사 남서쪽에 위치해 있다. 신라의 수도인 경주에서도 가장 큰 중심 사찰이었던 황룡사는 건설되는데 100년이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오랜 세월 동안 건설하였고 왕실의 총애를 받은 절인 데다 수도 한가운데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그 규모는 엄청났다. 가람의 규모뿐 아니라 5m나 되는 거대한 불상을 안치하기 위해 지은 목탑 또한 상당히 높았을 것이다. 비록 지금은 모든 건물이 불에 타 사라졌지만 황룡사의 엄청난 규모를 상상하는 건 어렵지 않다. 수많은 발굴 조사로 황룡사의 기와와 건물의 주춧돌이 다수 발견되었고, 깔끔하게 정비된 건물의 터만 봐도 황룡사가 얼마나 거대한 사찰인지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제19화 - 신라의 아름다웠던 시절, 황룡사터23](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2%2F09%2F23%2F20220923185740617_thumb.jpg)
![제19화 - 신라의 아름다웠던 시절, 황룡사터24](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2%2F09%2F23%2F20220923185740721_thumb.jpg)
![제19화 - 신라의 아름다웠던 시절, 황룡사터25](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2%2F09%2F23%2F20220923185740630_thumb.jpg)
황룡사지는 주변이 다 논으로 둘러싸여 있어 멀리서도 그 규모를 알 수 있다. 엄청난 수의 까마귀로 뒤덮인 경주 시내의 논밭은 경주의 유적이 얼마나 잘 보존되고 있는지 보여주는 예다. 현대의 급속한 발전에서 떨어져 새들의 천국이 된 이곳은 과거에 수많은 사람들이 들락날락했을 황룡사의 모습과는 정반대 되는 모습이다.
![제19화 - 신라의 아름다웠던 시절, 황룡사터26](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2%2F09%2F23%2F20220923185729856_thumb.jpg)
![제19화 - 신라의 아름다웠던 시절, 황룡사터27](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2%2F09%2F23%2F20220923185730119_thumb.jpg)
![제19화 - 신라의 아름다웠던 시절, 황룡사터28](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2%2F09%2F23%2F20220923185730143_thumb.jpg)
![제19화 - 신라의 아름다웠던 시절, 황룡사터29](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2%2F09%2F23%2F20220923185730185_thumb.jpg)
황룡사는 중문을 뒤로 목탑, 금당, 강당이 배치되어 있는 형태다. 주춧돌을 통해 각 건물의 흔적과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절 한가운데 세워진 황룡사 구층 목탑의 규모를 보면 건축 기술이 발전하지 않은 당시에 국가의 사활을 걸고 건설한 건물임을 알 수 있다. 당시엔 불교가 국교로 공인되고 종교가 아닌 사상으로 자리 잡았으므로 황룡사에 거대한 목탑을 지을 수 있었던 것이다.
![제19화 - 신라의 아름다웠던 시절, 황룡사터30](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2%2F09%2F23%2F20220923185716031_thumb.jpg)
![제19화 - 신라의 아름다웠던 시절, 황룡사터31](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2%2F09%2F23%2F20220923185716125_thumb.jpg)
![제19화 - 신라의 아름다웠던 시절, 황룡사터32](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2%2F09%2F23%2F20220923185716268_thumb.jpg)
눈과 머리로 상상한 뒤에 황룡사 역사문화관에 들어갔다. 역사문화관에서는 황룡사지에서 출토된 기와와 유적들을 감상할 수 있으며, 작은 규모로 복원된 황룡사 구층 목탑도 볼 수 있다. 건물 안에 세워진 목탑도 충분히 큰데 원래 세워졌던 목탑은 훨씬 큰 규모였다고 하니 신라인들의 불심이 얼마나 컸는지 알 수 있다.
![제19화 - 신라의 아름다웠던 시절, 황룡사터33](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2%2F09%2F23%2F20220923185701579_thumb.jpg)
![제19화 - 신라의 아름다웠던 시절, 황룡사터34](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2%2F09%2F23%2F20220923185701874_thumb.jpg)
![제19화 - 신라의 아름다웠던 시절, 황룡사터35](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2%2F09%2F23%2F20220923185702566_thumb.jpg)
![제19화 - 신라의 아름다웠던 시절, 황룡사터36](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2%2F09%2F23%2F20220923185702985_thumb.jpg)
역사문화관을 나오니 어느덧 해가 질 무렵이다. 황룡사지에서 발굴된 수많은 돌은 원래 있던 곳을 알지 못한 채 한 곳에 옹기종기 모여있다. 이렇게 많은 돌로 건설된 황룡사의 원래 모습은 어떠했을지 너무나 궁금하다. 사진이 없던 시절 그림으로라도 황룡사의 모습을 남겼으면 좋았을 테지만 안타깝게도 그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전쟁을 일으켜 다른 국가의 소중한 문화유산을 파괴한 몽골군의 잔혹함에 치를 떨 수밖에 없다.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을 지키기 위해서는 문화유산의 보존도 중요하지만, 한편으로는 현대에 발맞추어 우리의 국력과 기술을 발전시키는 걸 게을리하지 않아야 한다는 걸 깨닫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