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하가 뉴스로 돌아왔다. 2년 넘는 공백은 티끌만한 흔적도 남기지 못했다. 화면 한 구석에 박혀 있는 글자가 MBC에서 MBN으로, 끝에 하나가 바뀌면서 직위는 특임이사로 높아졌다. 여러 임원이 함께 쓰는 널찍한 공간에서, 그의 자리는 남산 한옥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창가에 있었다. 수척해진 것 같다고 하자, 그는 책상 밑을 가리켰다. 침낭이 있었다.
대체 출·퇴근 시간이 어떻기에 침낭까지 갖다 놨습니까?
“아침 7시 반에 나와서, 밤에 뉴스 끝나고 모니터하면 10시쯤 들어가요. 8시 반에 하는 아침 회의에 들어가야 발제를 할 수 있고, 의견을 낼 수 있어요. 특히 제가 맡은 대담 코너를 하려면 아침부터 섭외할 수밖에 없거든요. 그러니 아침 회의 참석은 필수이고, 그 회의에 참석하려면 미리 나와서 조간신문을 다 봐야죠. 회의 끝나면 한 시간 정도 소파 뒤에 침낭 깔고 자요.”
침낭은 얇았고, 바닥은 딱딱했다. 점심식사는 30분 안에 끝내고 오후 2시 회의를 준비한다고 했다. 그는 살이 너무 많이 빠진다고 걱정했다.
뉴스 편집권 보장받은 앵커
아까 ‘발제’라는 표현을 했는데, 예전에 앵커 할 때와는 다르군요(주-필자는 2008년 김주하가 진행하던 MBC 주말 뉴스데스크의 뉴스PD였다). 특임이사니까 뉴스 편집에 관해 상당한 권한과 역할이 있다는 얘긴가요?
“네. MBN에 올 때 그런 조건이 얘기가 됐습니다.”
손석희 JTBC 사장이 앵커이면서 보도 부문 사장으로서 편집권을 행사하는 것과 비슷한가요?
“그게 사실 미국식이잖아요. 우리도 손석희 선배가 하시면서 그런 쪽으로 많이 가게 됐고, 제 개인적인 생각에는 마흔 넘은 여자 앵커가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이기 때문에 가능해진 것 같아요.
처음에 제가 종편을 간다니까 우려의 목소리가 많았어요. 그때 뉴스를 읽어주기만 하는 단순한 리더reader 역할에 그쳐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나에게 어떤 권한과 책임이 주어진다면, 부담스럽지만 내가 종편으로 옮겨보겠다고 결심했죠.”
예전보다 신경 쓸 게 많아졌네요.
“예를 들어 뉴스 도중에 진행 PD가 ‘3번 아이템이 안 왔다’고 하면, 뒤에 있던 4·5번을 묶어서 갈지 아니면 다른 걸로 바꿀지, 제가 앵커를 하면서 순서 바꾸는 결정도 내려야 합니다. 편집 순서는 물론이고 회사에서 여러 부분에 권한을 주시니까 엄청난 부담이에요.
뉴스 예고를 찍을 때도 제가 언론 인터뷰에서 답한 내용(‘불편하고 믿고 싶지 않아도, 누구 편이 중요한 게 아니라 뉴스가 끝까지 지켜야 하는 건 진실이죠. 진실을 의심받지 않는 뉴스를 하고 싶습니다.’)을 그대로 쓰게 하더라고요. 제가 말한 방향으로 가도록 밀어주는 느낌이라고 할까….”
‘궁금증 풀어주는 뉴스’ 지향
그렇게 권한도 커지고 뉴스에서도 고정 인터뷰 코너도 있으니까, 더 잘하려고 준비하고 의식도 하나요?
“저는 그런 건 의식 안하려고 해요. 뭘 보이려고 하는 것 자체가 안 좋다고 보거든요. 제가 예전에 어떤 인터뷰에서 ‘표정 연습은 어떻게 하세요? 거울보고 하세요?’라는 질문을 받고 깜짝 놀랐어요. 앵커는 배우가 아닌데, 뭣 하러 연기를 해야 됩니까? 내가 슬픈 뉴스를 하는데 설마 웃으며 하겠습니까, 좋은 뉴스를 하는데 울면서 하겠습니까, 내 마음에서 우러나는 대로 하면 되는데….”
뉴스 아이템을 발제할 때는 뭘 의식합니까?
“북한의 목함 지뢰 건을 예로 들면요, 북한이 거기에 왜 지뢰를 깔았으며, 그렇게 할 때 우리 군은 뭘 했으며…. 여러 의문이 생기죠. 그리고 날짜를 보니까 북한이 목함 지뢰를 심은 시점은 이희호 여사한테 방북 초청장을 보내기 전이란 말이죠. 궁금한 것 투성이잖아요. ‘나는 이게 궁금하다’는 걸 중심에 놓습니다.
인터뷰 대담도 내가 궁금한 걸 하면 되는 거죠. 제가 어느 부장이 낸 아이템을 싫다고 한다면, 제일 큰 이유는 이거예요. ‘난 이것에 대해서 더 이상 궁금하지 않다’”
‘궁금하면 물어보세요’라는 시청자와 소통하려는 클로징도 그래서 생겼군요.
“우리가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말고, 시청자들이 듣고 싶은 것, 궁금해 하는 걸 얘기해주자는 생각이었죠. 만약 모르면 내일 취재기자를 통해 알아보겠다든가…. 그냥 솔직하게 하자는 뜻이었어요. 뉴스니까. MBN 사이트나 카카오톡 등으로 시청자 피드백을 받고 있어요.
그런데 원래 클로징은 남자 앵커가 하셨어요. 그분이 보도본부장이신데, 그동안 뉴스를 다 챙기시고 여기까지 MBN 뉴스를 키워놓으셨어요. 제가 생각했던 클로징을 말씀드렸더니 흔쾌히 받아주셔서 바로 도입됐죠.”
MBC를 떠나며
MBC는 왜 그만뒀습니까?
“뉴스가 하고 싶어서요. MBC에서 만약 5분짜리 뉴스라도 맡겼으면 그냥 있었을 거예요. 그런데 이제는 (뉴스 할 기회를) 더 기다리다가는 할머니가 될 것 같더라고요. 시청자들이 못 알아보면 어떡해요(웃음).”
그 웃음은 웃음이 아니었다. 김주하가 2010년 2월 트위터에 쓴 글을 떠올린다면 그 웃음의 의미를 짐작하는 게 어렵지 않다. “저를 지키고 싶습니다. MBC를 지키고 싶습니다. 여러분과 지키고 싶습니다.” MBC의 암흑기를 몰고 온 김재철 체제가 시작되기 직전이었다. 그 문구는 한 달 뒤 MBC 파업의 구호가 됐고, 노조원들의 티셔츠에도 새겨졌다.
MBC를 지키고 싶다며 주저하지 않고 표현했던 사람으로서 회사를 옮기는 게 심적으로 간단하진 않았을 텐데요.
“그래서 이렇게 오래 걸렸죠. 제가 참 기쁘고도 슬펐던 게 후배 기자들이 전화해서 많이 울었어요, 후배들이. 나는 그게 너무 고마워요. 보통은 ‘우리 버리고 가냐.’ 이래야 할 텐데, 울었어요. 나는 그게 너무 마음이 아파요. ‘지.못.미.’ 하면서 울었다고. 남자 후배들도….”
인터뷰는 잠시 중단됐다.
그래도 MBC 내부가 아닌 일반인들을 만나보면 ‘김주하가 종편 간 것을 어떻게 봐야 하나요?’라는 질문을 많이 받습니다. 당혹감, 실망감을 뜻할 텐데요.
“그런 반응은 많이 접했습니다. 하지만 그걸 다 생각했기에 이제야 한 것이고요. 그러니까 후회 없이 나올 수 있었어요. 예전에 가정사로 힘들 때, 내가 하나님한테 ‘하나님, 나, 이제는 죽는다 하더라도 뭐라고 못해요.’라고 했던 것과 비슷한 마음…. 이제는 내가 (MBC를) 떠나는 것에 대해 누구에게 말해도 떳떳하다는 마음이었어요.”
개인사도 노출돼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는데, 여성 김주하는 어떤 모습이기를 원합니까?
“처음에 개인사에 대한 기사가 나고 여러 반응 중에서 충격적인 게 뭐였냐면, 나름 오래 알고 지낸 언니며, 동생이며, 친구가 이러는 거예요. ‘주하야, 사실은 나도 5년 전부터 혼자 살아.’, ‘나도 내가 벌어서 두 아이랑 살아.’ 한두 명이 아니었어요. 저는 그런 것들이 친구에게조차 숨겨야 될 부끄러움인지 의문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한 명에게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봤어요. ‘왜 숨겨? 네가 뭘 잘못했는데?’ 그랬더니 ‘내가 혼자 산다는 걸 알면 직장이나 외부에서 남자들이 날 쉽게 봐. 그게 싫어.’ 그런 얘기도 충격적이고….
아, 그런 걸 없애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오히려 내 일도 별일 아니고,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겪고 있는 일이고, 앞으로도 겪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죠. 그래서 저는 이런 게 드러나고 밝혀져도 ‘잘 사네’, ‘똑같네’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요. 여성들이 자기들의 솔직한 모습을 드러내면서도 편하게 살 수 있는, 굳이 숨길 필요가 없는 세상이 됐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