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히 30년 전인 1973년, 유서 깊은 윔블던 테니스 코트에 패기 만만한 16세 소녀가 첫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녀의 이름은 마르티나 나브라틸로바. 체코 출신인 그녀는 여자 테니스의 역사를 갈아치울 운명을 타고난 선수였다.
나브라틸로바는 이후 메이저대회에서만 18차례 우승하는 등 무려 167개의 단식 우승 트로피를 끌어모으며 여자 테니스 ‘철의 여인’으로 군림했다. 전성기에 세운 74경기 연속승리의 대기록은 앞으로도 쉽게 깨지지 않을 불멸의 기록으로 남아있다.
윔블던 첫 출전으로부터 30년의 세월이 흐른 2003년 7월 7일, 나브라틸로바는 레안더 파에스(인디아)와 조를 이뤄 혼합복식 결승에 나섰다. 나브라틸로바가 윔블던 첫 우승을 차지한 78년에 파트너인 파에스는 여섯 살짜리 코흘리개였고 상대팀 앤디 램(23·이스라엘)과 아나스타샤 로디오노바(21·러시아)는 태어나지도 않았다.
‘관록의 여제’는 상대 남자선수인 앤디 램의 인정사정 없는 스트로크를 받으면서도 전혀 위축되지 않았고 결국 2대0(6―3,6―3) 완승을 거둬 역사에 남을 두 개의 이정표를 추가했다.
윔블던 단식 9회, 복식 7회, 혼합복식 3회 우승으로 19번 타이틀을 차지했던 나브라틸로바는 20번째 우승으로 전설적인 스타 빌리진 킹(미국)이 갖고 있던 이 부문 신기록과 타이를 이뤘고 마가렛 듀폰(미국)이 62년 세운 최고령 우승기록(44세)도 갈아치웠다. 그녀는 “다시 이 코트에 설 수 있을 줄 몰랐다”며 기쁨을 만끽했고 파트너인 파에스는 “위대한 선수와 함께 경기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다”고 축하 인사를 건넸다.
이에 앞서 끝난 남자 단식에선 ‘알프스 사나이’ 로저 페더러(스위스)가 캐넌 서버 마크 필리포시스(호주)를 3대0으로 꺾고 생애 첫 우승을 차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