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더 웨일>은 272kg의 거구로 집안에만 틀어박혀 살아가는 대학 강사 찰리(브렌든 프레이저)의 일주일을 그린다. 그린나래미디어 제공
‘238/134. 이 혈압은 어떤 상태인가요?’ ‘119를 부르세요.’
초콜릿 바를 입 안으로 밀어넣던 찰리(브렌든 프레이저)는 검색창에 자신의 혈압을 넣어본다. 언제 숨이 끊어져도 이상하지 않은 수치다. 272㎏ 거구에 보조기구 없인 한 발짝도 떼기 어려운 그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한다. 9년 전 헤어져 한 번도 보지 못한 10대 딸 앨리(세이디 싱크)를 집으로 초대한다.
영화 <더 웨일>은 죽음을 앞둔 찰리의 닷새를 그린다. 찰리는 대학에서 글쓰기를 가르친다. 하지만 집 안에 틀어박혀 비대면 수업을 한다. 카메라가 고장났다는 핑계를 대고 내내 검은색 화면을 유지한다. 병원에도 가지 않는다.
영화는 찰리가 오랜 만에 재회한 딸의 글쓰기 과제를 봐주며 관계를 회복하려는 과정을 따라간다. 찰리는 딸에게 매일 자신을 찾아와 에세이 한 편을 완성하면 전 재산을 주겠다고 한다. 자신을 떠난 아버지를 원망하던 사춘기 딸 앨리는 제안에 응한다. 이 과정에서 찰리가 왜 앨리와 헤어졌는지, 왜 목숨을 위협할 정도로 거대한 몸을 갖게 됐는지 드러난다.
연출은 연극적이다. 이들의 사연은 플래시백 없이 등장인물들의 대사로 전달된다. 찰리가 자기 자신을 집안에 가둬둔 것처럼 카메라도 집안을 거의 벗어나지 않는다. 관객이 느낄 갑갑함은 의도된 것으로 보인다. 4:3 비율의 화면, 죽음의 날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리듯 화면 한 쪽에 뜨는 요일 표시는 찰리의 고립된 상황을 극대화한다.
배우 브렌든 프레이저가 찰리를 연기한다. 프레이저는 영화 <미이라> 시리즈 주인공으로 세계적인 스타가 됐다가 한동안 자취를 감췄다. 촬영 중 입은 부상과 이에 따른 수술, 2018년 동성에 의한 성폭력 고발까지 작품 활동보다 굴곡진 개인사로 헤드라인에 올랐다. 풍파를 겪고 변화한 그의 외모는 온라인에서 한때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폭식으로 스스로를 벌하는 듯 자기파괴적이고도 연약한 인물을 프레이저는 탁월하게 연기한다. 40일 간의 촬영 기간 내내 매일 4시간의 분장을 견뎌냈다고 한다.
<블랙 스완>, <레퀴엠>의 대런 애로노프스키 감독의 5년 만의 복귀작이다. <더 레슬러>를 통해 당대의 미남 배우였던 미키 루크를 재기하게 한 애로노프스키이기에 프레이저의 캐스팅은 더욱 흥미롭게 느껴진다. 몸과 마음이 망가진 백인 남성이 딸과의 관계 회복을 통해 성찰을 경험한다는 점에서 두 이야기는 겹쳐진다.
영화는 2023 아카데미 시상식 3개 부문에 후보로 올랐다. 남우주연상과 분장상, 여우조연상이다. 프레이저는 크리틱스초이스, 미국배우조합상 등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다만 미국 현지에서는 병적 비만 환자에 대한 묘사가 비만혐오증(그로스포비아)를 자극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미나리> 등 다양성과 작품성을 갖춘 작품들로 최근 주목받는 A24가 제작을 맡았다. 1일 개봉했다. 러닝타임은 117분. 15세 이상 관람가.
주인공 찰리의 10대 딸 엘리(세이디 싱크)는 남자친구 때문에 자신을 떠난 아버지를 미워한다. 그린나래미디어 제공
찰리의 죽은 연인 앨런의 동생인 리즈(홍 차우)는 찰리의 유일한 친구다. 간호사인 그는 병원에 가기 거부하는 찰리를 돌보고, 음식도 사서 나른다. 그린나래미디어 제공
최민지 기자 ming@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