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민들의 마지막 저항
아픈 상처 진주만
진주만의 아픈 상처를 돌아본다. “리멤버 펄하버(Remember Pearl Harbor)”라고 외치며 절규했던 미국 국민은 그래서 굳게 단결하여 오늘날의 강대국이 되었을 것이다.
세계 제2차 대전 중이었다. 1941년 12월 8일 새벽 일본 연합함대의 공격기 364대가 날아와 진주만에 정박 중이 던 미국 태평양 함대를 기습 공격하여 격침4척 손상 3척 전사자 2천4백여 명 부상자 1천2백여 명이라는 큰 피해를 입혔다. 아마도 미국으로서는 9․11테러 나기 전까지는 가장 큰 피해 사건이었을 것이다.
일본 항공모함은 300마일 밖 해상에 몰래 정박하여 6개월 간 도상 예행연습을 했다. 하와이 주재 일본공사가 소풍객으로 가장하여 산에 올라가 진주만에 드나드는 전함들의 동태를 일일이 보고하였다. 그때 야마모도 이소로구 장군은 적극 반대했다한다. 미 해군사관학교 출신인 야마모도 장군은 미국을 잘 알기 때문에 ‘이는 매우 위험한 모험이다.’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리면 화를 입을 수 있다.’ 고 했으나 일본의 전쟁광신자들은 기어코 전쟁을 감행하여 대승을 거두었고 온 일본인들은 축제의 분위기로 환호했다. 그러나 “리멤버 펄 하버”를 부르짖고 선전포고에 들어간 미국은 일본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에 원폭을 투하함으로써 3년 8개월 만에 전쟁을 완승으로 이끌었고 일본은 패망의 길을 가게 된다. 그 덕에 우리도 8․15해방을 맞아 독립을 하게 되는 역사의 기록을 남기게 되었다.
진주만 폭격의 기념관을 둘러본다. 여러 가지 자료와 폭격당시의 처참했던 사진들을 전시해 놓았고 사상자의 유가족들이 각종 수익사업을 벌여 활동하고 있으나 곳곳에 Sony제품을 비롯한 일제 광고문구들이 걸려있는 것이 아이러니칼하게 보였다.
독특한 문화 행사 폴리네시안 민속춤은 하와이의 대표적인 관광 상품이다. 폴리네시아는 하와이를 포함하여 남태평양에 위치해있는 통가, 피지, 타이티, 사모아, 아오테아로아(뉴질랜드), 마르케사스, 하와이 섬을 묶어 부르는 말이다. 이들 섬의 독특한 문화를 보전하는 목적과 아울러 관광 상품으로 만들어놓은 민속촌의 볼거리가 필수 관광 코스로 자리 잡고 있다. 호놀루루에서 동북향으로 해안을 따라 1시간 반쯤의 거리에 있으며, 몰몬교에서 운영하며 이익금 전액이 대학생들의 장학금으로 쓰여 진다는 것이다.
섬들의 전통적인 생활양식과 풍습을 한 곳에 모아 재현해 놓은 민속촌인데 마을별로 독특한 음악이 유학생들에 의해 실연되고 있다. 중앙에는 운하가 있어 카누를 타고 촌락들을 견학할 수 있고 구불구불 나 있는 도로를 따라 걸으면서 즉석에서 각 마을의 민속댄스를 배우거나 게임에 참가할 수도 있다. 연못 위의 카누에서 공연되는 민속 무용 쇼가 매일 4회 정도 연출되는데 그 독특한 볼거리가 최고의 인기품목으로 길이 남을 것 같다. 각 섬별로 공연되는 다양한 민속춤이 카누를 타고 등장할 때마다 관람객들의 환호와 박수갈채를 받는다. 참고로 각 섬의 인사말(안녕하세요?)을 메모해 본다.
<폴리네시안의 민속쇼 장면>
• 통가 섬 : 말로에렐레이 • 아오테아로아 : 키아오라
• 피지 섬 : 불나 비나카 • 마르케사스섬 : 카오하
• 타이티섬 : 이아 오라나 • 하와이 섬 : 알로하 (안녕하세요?)
• 사모아섬 : 탈로파 마할로 (고맙습니다.)
하와이의 마지막 날 밤 이장환 님의 안내로 정 ․ 이 여사님과 함께 와이키키비치 야간데이트에 나섰다. 아람드리 야자수 그늘 아래로 이따금씩 드물게 걸어 다니는 아베크족들이 보인다. 보안등 불빛이 많이 밝지 않아 하늘에는 달도 별도 보였다. 조용 조심 출렁거리는 와이키키 밤바다는 지울 수 없는 낭만의 추억으로 장식될 것이다. 낮에도 밤에도 남달리 와이키키비치의 투어를 즐길 수 있었던 것은 이장환 님의 배려가 컸다. 진주만 사건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이 분은 현역 해군 장교시절 구축함장을 지냈고 하와이도 두 번이나 방문했으며 영어를 구사하는데도 불편이 없었다.
<세계최고의 골든 부리지(금문교), 그러나 현재는 우리도 인천대교,서해대교,영종대교 등 더 좋은 자랑거리가 있다.>
아름다운 샌프란시스코
旅遊堂
가을의 촉촉한 아침 이슬이 빛나는 태양을 함박 머금은 하와이 공항을 이륙하여 샌프란시스코로 간다.
사랑과 낭만의 도시, 안개의 항구도시, 예술의 도시, 세계 5대 미항(시드니. 나폴리, 리오데자네이로, 홍콩,)인 샌프란시스코는 인구 130만으로 북 캘리포니아에서 네 번째 큰(로스엔젤레스, 샌디에고, 세너제이) 도시이다. 도시의 초창기 이탈리아계 어부들이 많았던 관계로 그들은 지금 좋은 지역에 부자마을을 형성하고 있다. 다양한 민속문화가 응축되어 미국적인 것과 그렇지 않은 모든 분위기가 서로 중복되어 있다.
새크라멘토 강 하구에 태평양에서 흘러온 차가운 안개는 레드우드 숲을 만들고, 밀려오는 거친 파도가 복잡한 해안선을 만들어 냈다. 눈부신 태양과 새파란 캘리포니아의 하늘을 배경으로 가파른 언덕이 많은 항구도시 샌프란시스코의 날씨는 변덕스럽다. 365일 중 300일은 안개가 끼고 우리나라에서 겪는 태풍 같은 재앙은 없으나 지진이 무섭다고 한다.
새크라멘토 강 유역에 펼쳐진 내륙부는 미국 전체에서도 몇 안 되는 농업지대로 아메리카다운 한적한 풍경이 펼쳐진다. 아름다운 구릉지대에서는 잘 익은 포도로 포도주를 만들어내고, 시에라네바다의 산에서는 은백색의 비탈이 사람을 기다리고 광활한 토지(Golden State)를 직접 피부로 느껴 볼 수 있는 곳이 샌프란시스코의 자랑이다.
멋진 항구 도시는 천연의 만(灣:gulf)을 끼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태평양을 왼쪽으로 놓고 볼 때 K 모양의 만을 형성한 샌프란시스코의 지형은 새크라멘토 강 하구와 만나는 북동쪽으로 산 라페얼 부리지와 동서로 아름다운 베이부리지가 놓여 있고, 남북으로 세계 최고라는 금문교(Golden Gate Brige)가 연결되어 있어 자연과 인공미의 절경을 연출해내고 있다.
골든게이트 부리지(금문교)는 1937년 완공하였으며 당시 경제 대공황에 대처하는 국책사업으로 추진되어 중국인 노무자들을 동원하였고 3천5백만불(약420억원)의 공사비가 들었다고 한다. 샌프란시스코와 마린카운티를 남북으로 연결하는 이 다리는 왕복10차선으로 길 양편에 인도가 있으며 길이 2736미터, 폭 27미터 중심부 높이가 67미터인 현수교인데 원래는 금색이었으나 안개 때문에 안개에 가장 잘 노출되는 붉은 색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규모나 공법으로 볼 때 우리나라의 서해대교나 영종대교에 비하면 별로 감탄할 일도 아니지만 일제시대의 암흑기에 김두한이 종로를 접수하던 시절이었으니 우리로서는 상상도 못하는 시기에 만들었다는 점이 놀라울 뿐이다.
물개들의 휴식처<샌프란시스코>
베이부리지는 샌프란시스코와 오클랜드를 연결하는 두 구간으로 된 다리로서 중간에 있는 트레져아일랜드로부터의 전망이 아름다워 사진작가들의 촬영장소로 애용되고 있으며, 특히 조명이 켜진 상태는 그야말로 절경인데 금문교의 명성에 가려져 모르고 지내왔다. 이날 나는 부두에 나오자마자 내 시야에 들어온 그 다리가 베이부리지인 것을 모르고 의아했다. 규모나 크기로 보아 분명 금문교여야 하는데 사진에서 보았던 모양이 아니어서 참 이상하다 했으나 남쪽으로 더 내려가니 금문교는 따로 있었다. 베이부리지는 금문교와 함께 샌프란시스코를 아름답게 빛내주는 또 하나의 다리였다. 베이부리지를 기준으로 북쪽은 홀수, 남쪽은 짝수 번호로 부두의 번호를 붙여놓았다.
20불 옵션으로 베이크루즈 유람선을 탔다. 피어39(연안부두)에서 승선하여 알 카포네를 비롯한 악명 높은 죄수들의 감옥이었다는 알카트라즈 섬을 돌아오는 유람선 투어는 금문교 밑을 갔다 오면서 석양빛이 지기 전에 사진 찍기에 바빴다.
알카트라즈 섬은 영화 빠삐용의 촬영 장소로도 알려져 있는 섬이다. 섬이라기보다는 어느 부호의 저택을 물 가운데 지어놓은 것 같은 돌 섬인데 연방정부의 교도소로 쓰이다가 41년 전 폐쇄 되었다. 금문교가 완성되던 해에 한 죄수가 사라진 것을 비롯 적어도 네 명의 기결수가 사라졌고 오늘날까지 발견되지 않고 있다고 하나 29년 동안 공식적 탈출에 성공한 사례는 없었으며, 바닷물이 차고 상어가 살기 때문에 탈출 한다 해도 죽을 수밖에 없다는 가이드의 설명이었다.
죄수들의 감옥이었던 알카트라즈섬 <지금은 감옥이 아니다>
샌프란시스코에서의 첫 식사(저녁)의 장소는 피어39에서 노을이 져 가는 금문교의 아름다운 광경이 바로 보이는 2층집이었다. 피셔멘스워프 동쪽에 위치해있는 피어39(부두)는 원래 화물용 어시장이었던 것을 개조하여 갤러리나 선물가게 레스토랑으로 쓰이는 제각각의 어트랙션이 모여 있다. 유람선을 타기 위해 막 도착했을 때 부두의 경치를 한 장 찍으려고 여기저기 구도를 잡는데 돼지들의 꾁꾁거리는 소리가 요란하여 자세히 보니 물개 떼들이 뭍에 나와 새카맣게 모여 질러대는 소리였다. 한국 같으면 쥐도 새도 모르게 몸보신용으로 사라질 것이라 한 마디 하는 이도 있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LA까지는 680㎞인데 요세미티와 라스베가스 그랜드캐니언을 거쳐 이틀 후에나 도착할 예정이다. 요세미티 국립공원을 갈 때와 요세미티를 보고 나서 프레즈노까지 올 때 그 넓은 평야에 끝없이 펼쳐진 농장들은 감격에 감탄의 연속이었다. 농업의 대표적 중심 도시인 프레즈노에서 1박하기로 되어있는 날이었다. 입담 좋고 쉴새없이 말 잘하는 가이드 말에 의하면, 한국의 낙농업자 젖소 500마리 이상을 키우는 사장님들이 이곳에 한 번 와서 목장을 방문하셨는데 젖소가 가장 많으신 사장님 한 분이 자기는 1500마리를 기른다고 자랑스럽게 말하면서 당신은 몇 마리나 되냐고 미국 사람에게 물었다고 한다. 글쎄요? 하더니 몇 천인지 만인지 셀 수가 없어서 알지 못해 미안하다고 했다는 것이다. 캘리포니아의 목장은 끝없이 넓은 초원에 방목을 하기 때문에 수를 셀 수도 없지만 알아야할 필요도 없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