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찬송가 289장 (구 208장) / 누가복음 7 : 36 – 50
*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하겠습니다.
* 찬송가 289장을 함께 부르겠습니다.
* 하나님 말씀은 누가복음 7장 36절 – 50절입니다.
36 한 바리새인이 예수께 자기와 함께 잡수시기를 청하니,
이에 바리새인의 집에 들어가 앉으셨을 때에,
37 그 동네에 죄를 지은 한 여자가 있어 예수께서 바리새인의 집에
앉아 계심을 알고 향유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38 예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닦고 그 발에 입맞추고 향유를 부으니,
39 예수를 청한 바리새인이 그것을 보고 마음에 이르되,
이 사람이 만일 선지자라면 자기를 만지는 이 여자가 누구며,
어떠한 자, 곧 죄인인 줄을 알았으리라 하거늘,
4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시몬아, 내가 네게 이를 말이 있다 하시니,
그가 이르되 선생님 말씀하소서.
41 이르시되 빚 주는 사람에게 빚진 자가 둘이 있어,
하나는 오백 데나리온을 졌고, 하나는 오십 데나리온을 졌는데,
42 갚을 것이 없으므로 둘 다 탕감하여 주었으니,
둘 중에 누가 글 더 사랑하겠느냐.
43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내 생각에는 많이 탕감함을 받은 자니이다.
이르시되 네 판단이 옳다 하시고,
44 그 여자를 돌아보시며 시몬에게 이르시되 이 여자를 보느냐.
내가 네 집에 들어올 때 너는 내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아니하였으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그 머리털로 닦았으며,
45 너는 내게 입맞추지 아니하였으되,
그는 내가 들어올 때로부터 내 발에 입맞추기를 그치지 아니하였으며,
46 너는 내 머리에 감람유도 붓지 아니하였으되 그는 향유를 내 발에 부었느니라.
47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그의 많은 죄가 사하였졌도다.
이는 그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48 이에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49 함께 앉아 있는 자들이 속으로 말하되 이가 누구이기에 죄도 사하는가 하더라.
50 예수께서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니라. 아멘!
오늘 본문 말씀은 향유 옥합을 깨뜨린 여자의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는 예수님에 대한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의 여인은 37절 말씀대로 "그 동네에 죄인인 한 여자" 였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시몬이라는 사람이 예수님을 모시고 잔치를 벌였는데 그 집에 초대되지 않은 불청객이었습니다. 그 동네에서 손가락질을 받은 과거를 가진 죄 많은 여인이 잔치 집에 초대되었을 까닭이 없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어둡고 추했던 지난날의 삶을 청산하고 그녀가 예수를 믿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는 예수 믿고 변화된 사람입니다. 베드로도 변했고, 마태도 변했고, 삭개오도 변했고, 사마리아 여자도 변했고, 본문의 여인도 변했습니다. 변해야 정상입니다. 다른 하나는 예수 믿어도 변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20년, 30년 교회를 드나들었는데도 변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생각도 그대로, 습관도 그대로, 사는 것도 그대로 변하지 않습니다. 구원받고 성령 받으면 변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변해야 정상입니다. 본문의 여인도 변했습니다. 변해도 보통 변한 것이 아닙니다. 철저하게 본질적으로 변했습니다.
어느 날 주님께서 한 바리새인의 집에 식사를 초대받아 가시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예기치 않은 일을 만나게 됩니다. 식사에 초대받지 않은 "그 동네에 죄인인 한 여자가" 주님이 앉으신 식탁으로 나와서 예수님의 발 곁에 엎드려 흐느껴 울며 자신의 머리를 풀고 그 머리털로 주님의 발을 닦으며 그 발에 입을 맞추고 향유를 담은 옥합을 쏟아 붓습니다. 이것은 가히 충격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사건이 소위 메시아라고 자처하는 예수와 관계되어 벌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리새인 시몬이 내린 결론은 예수님은 선지자가 아니다 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이 주는 몇 가지 교훈을 보겠습니다. 첫째로, 여인은 귀한 것을 드렸습니다. 37절 말씀에서는 "향유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예수님의 발에 부었다." 고 했는데, 요한복음 12장 3절에서는 "순전한 나드 한근" 이라고 했습니다. 그 당시 그 향유 값은 300데나리온 이었습니다. 300데나리온은 노동자가 1년 간 벌어서 한 푼도 안 쓰고 모아야 모을 수 있는 돈이었습니다. 엄청난 값을 줘야 살 수 있는 향유를 왜 드렸을까요? 협박한 일도 없었고 누가 사주한 일도 없었습니다. 38절을 보면 "예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씻고 그 발에 입 맞추고" 라고 했습니다. 그녀에게는 남다른 감격이 있었습니다.
그녀가 죄에 파묻혀 영혼과 육체가 병들어가고 있던 어느 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 날 죄 사함 받고 구원의 기쁨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녀로서는 잠을 자도, 잠에서 깨어도, 길을 가도, 집안에 있어도 그 감동과 감격을 주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날 예수님이 계시는 시몬의 집을 찾아가 가장 귀한 것을 드리고 자신의 사랑을 눈물로 고백했던 것입니다.
받은 은혜가 크면 감동과 감사도 큰 법입니다. 주님을 위해 뭔가를 드리고 싶은 사람이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가장 힘들 때 슬플 때 고통스러울 때 생각나는 사람, 만나고 싶은 사람, 곁에 있었으면 하는 사람이 바로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가장 기쁘고 즐거울 때, 좋은 일이 있고 좋은 것을 보았을 때 함께 나누고 싶은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나와 주님의 관계는 어떻습니까? 주님께 드리고 싶습니까? 주님을 위해 뭔가를 하고 싶습니까?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 주님이 생각납니까? 그렇다면 그는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교회 나와 앉아 있어도 주님이 떠오르지 않는 사람은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둘째로, 여인은 비난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39절 이하를 보면, 그녀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던 집주인이 마음속으로 "어쩌자고 예수는 천박한 여인의 행동을 묵인하고 있는가?" 라며 못마땅하게 생각했고, 마태복음 26:8을 보면 제자들이 보고 분하여 “무슨 의사로 이것을 허비하느냐?" 고 호통을 쳤습니다. 한마디로 칭찬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고 비난만 빗발쳤습니다. 남이 하는 좋은 일을 비난하거나 방해하는 것은 악한 행동입니다.
주님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는 일을 비난하거나 방해하는 것은 사단의 공작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제자가 뭐라 하든, 집주인이 뭐라 하든, 사람들이 비난하든,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자기 할 일을 했고, 자기 갈 길을 갔습니다. 이유는 주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것은 인간이 할 수 있는 일 가운데 가장 귀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좋은 일을 하는 사람들 주를 위해 헌신하는 사람들을 비난하지 맙시다. 그리고 비난을 받더라도 겁내지 맙시다. 주님을 사랑한다면 그 일을 계속합시다.
셋째로, 그 날 그 여인이 받은 은총은 평안이었습니다. 50절을 보면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고 했습니다. 어떻게 믿었느냐, 어떻게 일했느냐, 어떻게 살았느냐 하는 것은 결과가 대답해 줍니다. 정말로 예수님을 바로 믿고 사랑했다면 이 여인처럼 평안의 은총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정말로 주님을 위한 일이였다면, 하고 난 다음 심령이 평안할 것입니다. 주님은 사랑하고 그 은총의 감격 때문에 시간을 바치고 물질을 바쳤다면 그 이후 그 마음이 평안으로 충만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면 교회를 다니고 직분을 맡고 일을 해도 마음이 평안하지 못할 것입니다. "평안을 너에게 주노라. 세상이 줄 수 없는 세상이 알 수도 없는 평안 평안 평안 평안을 네게 주노라."
주님은 시몬의 속마음을 아시고 "시몬아 내가 네게 이를 말이 있다."(40절) 고 하시면서 한 비유를 들어 설명하셨습니다.(41∼42절) 주님은 이 비유에서 탕감 받은 두 사람은 곧 바리새인 시몬과 죄 많은 여인을 두고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탕감 받은 두 사람중 한 사람인 이 죄 많은 여인은 그 탕감의 은혜를 감사할 줄 아는데 다른 한 사람인 바리새인 시몬은 감사를 모른다는 것입니다. 탕감의 은총을 입은 자는 감사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우리도 이 여자를 한번 바라봅시다. 이 여자의 모습 속에서 우리의 신앙의 상태를 점검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종교적 지식꾼인 바리새인이 되지 말고 탕감의 은혜를 아는 눈물의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이 여인은 어떻게 감사하고 있습니까? 첫째로, 눈물로 감격한 감사였습니다. 둘째로, 입 맞추는 경배의 감사였습니다. 셋째로, 여인은 자신의 귀한 것을 아낌없이 주님 앞에 드리는 헌신의 감사가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신앙은 어떻게 표현되고 있습니까? 바리새인 시몬처럼 입니까? 아니면 여인처럼 입니까? 누구와 닮은 것 같습니까? "내가 네게 이를 말이 있다. 네가 이 여자를 보느냐?" 우리가 보는 오늘 본문의 여인처럼 눈물로 감격한 감사와 입 맞추는 경배의 감사, 자신의 귀한 것을 아낌없이 주님 앞에 드리는 헌신의 감사가 있어 주님으로부터 죄 사함 받고,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의 은총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으로 간구하고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