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부터 아마추어 레슬링으로 유명했던 개리 올브라이트는 대학생 때도 여러 대회에서 입상합니다.
오클라호마의 프로모터 빌 와츠는 개리 올브라이트를 눈여겨보고는 프로레슬링을 하라고 권유합니다.
20세기의 거물 프로레슬러였던 빌리 로빈슨, 대니 하지, 루 테즈가 코치로서 그의 훈련을 돕습니다.
훈련을 끝마친 개리 올브라이트는 대학생 때부터 알고 지낸 브라이언 필먼을 따라 캐나다로 향합니다.
캐나다에서 활동하던 중 프로모터 브루스 하트의 소개로 UWF를 알게 되어 일본으로 향합니다.
개리 올브라이트는 UWF에서 활동하며 온갖 수플렉스의 달인으로서 일본에서 이름을 알립니다.
특히 주력기로서 여럿 쓰러뜨린 풀 넬슨 수플렉스는 '사람 잡는 수플렉스'라는 이름으로 불립니다
UWF가 몰락하기 시작하자 개리 올브라이트는 스티브 윌리엄스의 권유로 AJPW에 입단합니다.
입단한 뒤 한동안 자기를 불러들인 스티브 윌리엄스나 스탠 한센과 태그 팀으로서 경기를 뜁니다.
스탠 한센과는 함께 세계 최강 태그 리그 결정전에 참전했지만 15점을 거두고는 우승을 놓칩니다.
개리 올브라이트는 미사와 미츠하루를 상대로 삼관 헤비급 챔피언십에 도전했지만 실패합니다.
챔피언 카니발이 개최되자 다시 기회를 잡기 위해 출전했지만 12점을 기록하고는 우승을 놓칩니다.
한동안 개리 올브라이트는 타이틀에 도전하는 일 없이 여러 선수와 함께 태그 팀 매치를 치릅니다.
ECW 소속 랍 밴 댐과도 태그 팀으로 출전했으며 사부와는 함께 세계 최강 태그 리그 결정전에 출전합니다.
랍 밴 댐과 사부는 일본에서 활동할 때 개리 올브라이트와는 링 밖에서도 어울리며 함께 술을 마셨다고 회고합니다.
개리 올브라이트는 일본에 머무르며 같은 미국인인 스티브 윌리엄스나 라크로스와 종종 태그 팀을 이룹니다.
G.E.T.의 멤버로 활동하던 스티브 윌리엄스는 팀에서 탈퇴한 뒤 개리 올브라이트와 라크로스를 끌어들입니다.
셋이 뭉쳐 '트라이앵글 오브 파워'(T.O.P.)를 결성했는데 개리 올브라이트는 주로 스티브 윌리엄스와 함께 경기에 나섭니다.
G.E.T.을 꺾은 개리 올브라이트와 스티브 윌리엄스는 T.O.P.의 이름으로 제33대 AJPW 세계 태그 팀 챔피언의 자리에 오릅니다.
T.O.P.의 멤버들은 일본에서 어마어마한 인기를 누렸는데 도쿄 돔에서 치른 경기는 58,300장이나 팔리며 기록을 세웁니다.
스티브 윌리엄스가 일본을 떠나고 라크로스가 개별 활동을 시작하자 개리 올브라이트는 새 멤버들을 끌어들입니다.
타카마야 요시히로와 카키하라 마사히토가 개리 올브라이트에게 선택받아 T.O.P.의 새 멤버로 합류합니다.
개리 올브라이트는 물론 나머지 둘도 UWF-i에서 활동한 적이 있었기에 U-T.O.P.라는 이름으로도 불립니다.
개리 올브라이트는 타카야마 요시히로와 함께 세계 태그 팀 챔피언십에 도전하지만 결과는 패배였습니다.
이후 U-T.O.P.는 타이틀에 도전하는 일 없이 흐지부지 해체됐고 개리 올브라이트는 다른 선수와 태그 팀으로 출전합니다.
개리 올브라이트는 한때 '라크로스'로 활동하던 울프 호크필드와 다시 뭉칩니다.
옛 T.O.P. 멤버끼리 세계 최강 태그 결정 리그전에 출전했지만 우승은 차지하지 못합니다.
개리 올브라이트는 아파 아노아이의 딸 모니카 아노아이와 결혼하고 슬하에 세 자녀를 뒀습니다.
처자식이 미국에 살고 있었기에 언젠가는 일본을 떠나 다시 미국에 정착할 생각이었습니다.
귀국한 개리 올브라이트는 장인 아파 아노아이가 운영하는 단체인 WXW에 섭외됩니다.
개리 올브라이트는 당시 당뇨병을 앓아 몸이 망가졌기에 간단한 훈련도 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예정대로 링 위에 올라 루시퍼 그림을 상대하던 도중 쓰러집니다
사람들이 달려들어 심폐소생술을 시도했지만 끝내 36살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납니다.
WXW에서 개리 올브라이트를 위한 추모 흥행을 개최하자 AJPW는 물론 WWE에서도 선수를 보냅니다.
추모 흥행이 시작하기에 앞서 WWE 메인이벤터였던 더 락이 종매부 개리 올브라이트를 향한 추도사를 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