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 댁은 늙어서도 청주댁
산마루에 아침 해는 이제야 비비고 올라 와도 청주 댁은 벌써 일어나 집안을 스무 바퀴도 더 돌았다
아침 이라고는 어제 먹든 술지게미로 배는 채웠다
물 한 대접 들이키고 마디 굵은 손바닥으로 얼굴 한번 문지르고 침 한번 삼키면 끝이다
안방 윗목 에 모셔두었던 어제 유성 장에서 사온 쌀 다섯 말 밀가루 포대에 담긴 그 대로 뒤집어 이고 집에서 나설 때는 발로 걷고 개울 건널 때는 종아리로 건너뛰고 독 골재 오를 때는 허리로 오르긴 올랐는데 목이 어깨인지 어깨가 목인지 알 수가 없다
내려오는 길은 긴 한숨 내뱉으며 내려와 대전 큰장에 왔어도 오뉴월 긴긴해 다 보내고 서야 이고 간 쌀 팔아 오백 원 남겼으니 어제 밑진 백 원 제하고도 사백 원 벌었다
그렇게 벌은 돈은 고스란히 들어가고도 모자라서 큰딸 방직 공장에서 솜 먼지 먹고 실 틀에 손가락 다처 가며 벌은 돈 그 돈하고 둘째딸 목 터 저라 오라이 외쳐가며 버스 차장 질 해 벌은 돈도
청주 댁 외아들 박 원장 공부 밑천으로 다 들어가고도 소는 몇 마리를 팔았는지 모른다
마지막 남은 열 식구 보릿고개 넘겨주었던 은들 닷 마지기 논도 팔고서야 외아들 박 원장은 의사가 되었다
그러니 다른 딸들 온전히 배울 리가 있나 그런데도 딸 일곱 다들 시집가서 잘 살고들 있으니 청주 댁은 그저 딸들 보기 미안하기만 하다
엊그제 새로 지은 큰 병원 개업 테이프 자르는데는 청주 댁도 큰딸도 다른 형제들도 가위 들고 흰 장갑 낀 사람은 안보이고 유난히 큰 물방울 다이아 반지 낀 박 원장 마누라가 큰 궁둥이를 제일 많이 흔들고 다녔다...
그때 쯤 청주 댁이 시집와 평생을 같이한 텃밭 푸성귀에 오줌 주려 들고 가는 요강하고 청주 댁의 굽은 허리가 걸음을 뗄수록 코하고 가까워 졌을 때
청주 댁의 눈에서 물방울 다이아 반지보다 더 큰 눈물이 한 방울 떨어지는 걸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래도 그 날만은 평생에 제일 좋은 날이라고 동네사람 다 불러 술지게미 말고 막걸리 퍼 먹이고 저녁 내내 장고 치고 춤추었다...
청주 댁은 늙어서도 청주 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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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댁은 늙어서도 청주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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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상쾌한 경음악과 함께 좋은 시 잘읽고=3=3=3 건강하세요
정겨움 넘치는 청주댁 사연음악과섞어서 너무 재미있게 보고갑니다...포근한밤되셔요
^^ 청주댁 3째딸 정도의 세대를 살은것같아요... 벌어서 동생들 바라지를 했으니요... ^^
그라지라~~정감이 있는글 참 좋습니다...
청주댁////////// 천상에도 봄이 왔습니까? 그곳에도 술지기미 있는지요!~ 감사합니다,^^
즐겁게 글과 함께 추믈.....저절로 밟지누만요/ㅎㅎㅎㅎㅎ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