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일생
한 동 훈
간밤에 꾼 꿈이 묘하긴 했다. 꿈속의 여자는 낯이 익었다. 꿈을 꿀 때는 그 여자가 누군지를 알았지만 깨고 보니 아리송했다. 얼굴 몇 개가 겹쳐 떠올랐지만 어쩐지 그 여자가 ‘그녀’ 같았다. 그만큼 ‘그녀’는 내 가슴에서 떠나지 않고 있었다. 꿈 내용은 이랬다. 초인종소리에 현관문을 열어보니 갸름한 얼굴과 오뚝한 코, 우수에 잠긴 듯한 눈매, 뒤에서 하나로 묶은 머리칼의 여자가 서 있었다. 포대기에 싼 아기를 안은 채 망연한 눈길로 나를 바라보던 그 여자. 당신 자식이에요. 나는 여자의 망연한 눈빛을, 오갈 데 없으니 받아달라는 부탁으로, 당신의 아이니 책임지라는 추궁으로 이해했다. 그리곤 침대 위에서 그 여자와 질펀한 정사를 벌였다. 출근 준비를 재촉하는 자명종소리만 아니었다면 정말이지 깨고 싶지 않은 꿈이었다. 이런 꿈은 정욕이 왕성한 남자라면 누구나 꿀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의 열등감을 녹여줄 아름다운 미모의 여인이 어느 날 갑자기 아기를 안고 나타나 당신의 씨앗이라면서 함께 살기를 종용하는 그런 꿈. 아이를 구실로 미인을 묶어두고 싶은 건 선녀를 향한 나무꾼만의 욕심은 아닌 듯했다.
간밤 꿈의 내용이 현실로 나타나기를 바라는 마음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아니 오히려 절실히 원했지만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날 확률은 구렁이가 각시가 될 가능성보다 적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황홀경에서 빠져나가고 싶지 않아 얄팍한 기대감을 흐트러뜨리지 않은 채 영업을 나간다는 핑계를 대고 한 시간 일찍 퇴근했다. 집으로 오는 길에 꽃가게에 들러 장미까지 한 다발 사 들었다. 따스한 봄 햇살이 노을 속으로 스러지는 저녁 무렵, 나는 귀한 손님을 맞을 준비라도 하듯 창문을 활짝 열고 먼지를 털고 온갖 것들을 닦고 정리했다. 그리고 단정한 캐주얼로 갈아입고 거실 소파에 앉아 시집을 꺼내들고 읽기 시작했다.
시를 열 편쯤 읽었을 때 초인종소리가 났다. 나는 문득 이상한 기대에 몸을 떨었다. 내 집을 찾아오는 사람이래야 아래층 집주인이나 물품배달원, 외판원, 가스안전 점검원, 중국음식 배달원, 피자 배달원들이 거개였지만 왠지 지금 현관문 밖에 서 있는 사람이 내게 특별한 의미를 지닌 존재일 것 같다는 야릇한 예감에 휩싸였다. 나는 벌렁거리는 가슴을 억누르며 현관으로 가 문을 열었다.
순간 내 눈을 믿을 수 없었다. 그녀가 있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내가 그토록 사랑하던 그녀. 어쩌면 짝사랑이라고 불러도 좋을 그녀. 내가 그토록 쫓아다닐 때는 슬금슬금 피하다가 어쩌다 마지못해 만나주던 사람. 모든 추억을 지워버리는 시간의 위력에 맞서는 일에 점차 지치기 시작할 무렵에 불쑥, 아무런 예고도 없이 유령처럼 내 눈앞에 굳건한 현실로 서 있는 그녀를 나는 믿을 수도, 믿지 않을 수도 없었다.
오, 신이시여.
나는 미워하기만 하던 신을 처음으로 경배했다. 그녀는 헝클어진 머리칼에 퉁퉁 부은 얼굴, 시퍼런 눈두덩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귀신처럼 서 있는 그녀를 집 안으로 들였다.
*
그녀를 알게 된 건 이 년 전 사진 동호회에서였다. 막 디지털카메라를 장만해 사진 찍는 데 재미를 붙여 혼자 돌아다니던 중에 아는 사람의 소개로 알게 된 곳이었다. 월말에는 경치 좋은 지방으로 출사를 나가고 그 외 주말에는 가까운 유원지나 공원을 찾아 소풍 겸해서 가볍게 사진을 찍는 모임이었다.
내가 처음 나간 곳은 용산가족공원이었다. 초가을 햇살이 따사롭게 내리쬐는 그곳에 그녀가 있었다. 정문 안쪽 쉼터에 모인 일행에게서 몇 발짝 떨어진 벤치에 앉아 니콘 카메라를 만지작거리는 그녀의 모습이 내 가슴에 단아한 나비처럼 사뿐 내려와 앉았다. 깨끗한 흰 티셔츠, 단정한 청바지와 수수한 갈색 단화, 곱게 하나로 묶은 머리칼, 작고 갸름한 얼굴, 오뚝한 코, 청아한 눈망울, 꼭 다문 작은 입, 발그레한 볼…….
운영자가 카메라 초점 맞추기, 노출 정도, 셔터 속도 등에 관해 초보자들에게 설명해주는 동안 나는 그녀를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그녀는 호기심어린 눈으로 운영자의 설명을 가만히 듣고 있었다. 말을 마친 운영자는 초보자 몇 명에게 시범을 보여주었다. 운영자는 그녀에게 카메라 작동법을 친절하게 설명했고 그녀는 이제 막 입학한 초등학생처럼 눈을 빛내며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좋은 카메라군요. 잠시 봐도 될까요?
나는 그녀의 옆에 서 있다가 운영자가 다른 사람에게로 가자 말을 걸었다. 그녀는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겨우 알아들을 목소리로 네, 하고 대답했다. 따스한 체온이 남아 있는 카메라를 받아든 나는 그녀의 내밀한 어떤 것을 수중에 넣은 것처럼 들키지 않을 만큼 가볍게 몸을 떨었다. 그녀의 니콘 카메라 뷰파인더에 눈을 가져다대고 초점링, 조리개링, 셔터다이얼을 돌려보았다. 그녀가 아낌없이 손길을 주었을 그 카메라가 나는 부러웠다. 그녀의 사랑스러운 눈길과 감각적인 손길을 받을 수만 있다면 나는 그녀의 니콘 카메라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문득 했다.
이후 일정에 대한 설명까지 끝나자 우리는 연못 주위를 돌면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연못에서는 흰색, 갈색, 검은색 오리 네댓 마리가 일렬로 줄을 지어 우리 쪽으로 헤엄쳐오고 있었다. 하얀 오리 두엇은 연못가 갈대숲을 한가롭게 거닐고 있었다. 저 멀리 맞은편의 껑충한 느티나무 두 그루를 찍은 나는 앞으로 나아가면서 진홍색, 자주색, 노란색, 하얀색 꽃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청아한 진홍빛 꽃을 피운 코스모스를 찍고 있을 때 그녀가 다가왔다.
셔터 속도를 이렇게 맞추면 되나요?
그녀가 가느다란 목소리로 물어오자 나 역시도 초심자였지만 아는 지식을 억지로 떠올려 주워섬겼다. 선생님에게서 가르침을 받는 초등학생처럼 그녀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주위 사물을 하나씩 찍어나갔고, 나는 머뭇머뭇하면서도 틈틈이 그녀에게 다가가 촬영 자세와 각도를 바로잡아주었다. 그녀에게선 담백한 체취가 풍겨났다. 향수 따위를 뿌리지 않았어도 화장을 하지 않았어도 순백의 코스모스 꽃향기 같은 아릿함이 머릿속으로 은은하게 스며들어왔다. 언뜻 보이는 그녀의 하얀 양말은 세상의 티끌 하나 묻어 있는 것 같지 않았다.
모델 촬영 시간에 그녀는 주위의 재촉에 못 이겨 얼떨결에 모델로 나섰다. 독촉하는 그 목소리들 가운데 내 목청이 가장 높고 과장된 것 같았다. 나는 그녀의 은밀한 사생활을 훔쳐내기라도 하듯 나무 둥치를 배경으로 벤치에 앉아 있는 그녀의 모습을 조심스레 찍어나갔다. 주위의 요구에 그녀는 어색해하면서도 은근히 자연스러운 자세와 표정을 취했다. 정면을 보고 이를 살짝 드러내며 웃는 얼굴, 고개를 외로 틀고 두 손을 무릎 위에 다소곳이 올린 자세, 얼굴을 살짝 숙여 눈을 내리깐 모습, 일어서서 하늘을 망연히 바라보는 자태. 나는 일행들 속에 섞여 나만의 각도와 거리를 유지하면서 그녀를 찍었다. 너무 바싹 다가붙지 않으면서도 구석구석을 찍었다. 줌으로 당겨 모델의 목에서부터 무릎까지 뷰파인더 안에 꽉 차도록 넣었다. 옆으로 살짝 벗어나 옆얼굴도 담았다. 머리칼을 단정하게 묶은 베이지색 고무줄이 뷰파인더에 들어왔다. 더욱 옆으로 치우쳐 피사체 얼굴의 한쪽 눈만이 들어오도록 하고 셔터를 눌렀다. 조금 더 뒤쪽으로 가 피사체의 코가 보이지 않는 각도에서 상반신을 담았다. 점점 일행과 떨어진 나는 아예 그녀의 뒷모습을 담으려 했다. 역광을 테스트하는 것이라는 핑계까지 준비해두었지만 오해를 살 것 같아 범행을 목격당하기 직전의 범인처럼 애써 태연스럽게 그녀의 측면으로 천천히 이동했다.
공원 근처 삼겹살집에서 가진 뒤풀이에서 그녀는 공식적으로 닉네임을 밝혔다. 하늘꽃,이라는 단어가 얇은 입술 사이로 빠져나오자 내 입에서도 아, 하는 탄성과 함께 한숨이 흘러나왔다. 예쁜 닉네임이네요, 멋져요, 하는 추임새 사이로 나도 당신에게 잘 어울리는군요, 하고 입을 떼었지만 밖으로 새어나오진 않았다. 하늘꽃처럼 이쁘게 살고 싶어서요. 여행을 좋아하고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어 아버지 카메라를 들고 나왔어요. 소개를 마친 그녀는 자리가 파할 때까지 오가는 말들을 얌전히 들으며 가끔 질문에 대답만 하다가 손이 심심하면 삼겹살로 젓가락을 가져가곤 했다.
*
내 집으로 들어온 그녀는 식탁에 앉아 내가 권하는 소주잔의 술을 한 모금 마시고는 고개를 숙이고 띄엄띄엄 자초지종을 풀어놓았다.
처음에는 행복했어요…… 날 위해주고 챙겨주고 할 때는 마냥 좋았죠…… 그런데 언젠가부터 그의 세세한 관심이 집착이 되어 간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어느 날 TV에서 신승훈이 나와서 내가 넋을 놓고 바라보다가 정말 멋진 남자야, 하는 말을 무심결에 흘렸는가 봐요. 옆에 있던 그 사람이 고함을 버럭 질렀어요. 붉게 상기된 얼굴에 눈에는 불꽃이 이글거렸지요. 나중에 그 사람이 사과했지만 왠지 무섭게 느껴지기 시작했어요.
가끔씩 들어 보이는 눈가의 짓무른 눈물 자국 위로 또 다른 눈물이 흘러내렸다. 나는 손수건을 건네주었다. 자신의 팔자가 서러운지 울먹이다 흐느끼다 하는 사이사이 가느다랗게 토해놓은 사연은 이랬다. 한번은 친구들을 만나느라고 늦게 귀가했는데 그 동거남이 한 시간 동안이나 문을 열어주지 않았고, 어떤 모임에 참여하느라 자정쯤 들어왔을 때는 그 남자가 화를 벌컥 내면서 추궁하다가 그녀가 대꾸를 하자 손찌검까지 했다. 남자는 갈수록 불안해하고 초조해하면서 그녀가 밖에서 누군가를 만나 바람을 피우지 않는지 노골적으로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급기야 어제는 술을 잔뜩 먹고 들어와서 그녀를 발로 차고 주먹으로 때리기까지 했다. 그 남자와 계속 살다가는 병원 신세를 질 것 같아 할 수 없이 집을 나왔다. 집을 나오고 보니 갈 데가 없어 예전에 내 집에서 집들이했을 때 왔던 일을 떠올리고 이리로 왔다고 했다.
당분간 여기서 머물러요.
나는 ‘영원히’란 말을 ‘당분간’으로 바꾸어 입 밖에 내놓았다.
내가 얼마나 사랑했는지를 그녀가 뒤늦게 깨닫고 찾아온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여자는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가 아니라 자신을 사랑해주는 남자와 결혼해야 한다는 말도 있지 않는가. 그녀를 행복하게 해주는 데 필요한 것이 있다면 내 뼈가 부서지는 한이 있어도 수중에 넣고야말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녀를 위해서라면 이 세상 무슨 일이라도 못하겠는가. 건설 현장에서 떨어져 죽는 한이 있어도, 막장이 무너져 갇혀 죽는 한이 있어도. 만일 지금의 영업 일을 더 못하게 되는 경우가 생기면 낮에 경비를 보고 새벽에 신문과 우유 배달이라도 하겠다고 결연하게 다짐했다.
그로부터 한동안은 정말 꿈결 같았다. 그녀는 점차 안정을 찾아갔고 나는 인생의 낙을 알게 되었다. ‘당분간’이 정말 ‘당분간’으로 끝나지 않도록 나는 매사에 신중을 기울였다.
이제 내가 귀가하면 그녀가 맞아준다. 그녀는 소파에 앉아 TV를 보고 있거나 부엌에서 조리를 하거나 청소를 하고 있다가 내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면 쪼르르 달려 나와 반갑게 가방을 받아든다.
어서 오세요, 정수 씨. 정수 씨 좋아하는 해물탕 끓여 놨어요.
그녀는 생글생글 눈웃음을 지으며 내 팔을 잡아 식탁으로 끌었다.
혜은 씨도 들지 그래?
아녜요. 나는 많이 먹었어요. 심심해서 이것저것 집어 먹었어요.
그녀의 말처럼 소파 위와 밑에는 마가렛트, 애플쨈쿠키, 딸기쿠키, 카스타드, 칙촉, 날씬감자, 팅클 따위의 빈 과자곽과 봉투가 나뒹굴고 있었다.
오늘 시장에 가서 장을 봐왔어요. 우유도 사고, 캔맥주, 새우탕컵라면, 콩나물, 포장김치, 포장김을 사왔어요. 정수 씨 좋아할 거 같아 즉석해물탕도 사왔는데 사천 오백 원밖에 안 하던데요. 이 알루미늄 용기는 다시 쓸 수 있어요. 다음에는 홍합도 사올게요. 신호등 있는 데 포장마차 알죠? 거기 삶은 홍합을 한 그릇에 이천 원에 팔더라구요. 홍합에 소주 한 잔 곁들이는 거 정수 씨 무지 좋아하잖아요.
내가 게살을 발라내고 새우 껍데기를 벗겨낼 동안 그녀는 하루의 무료함을 내게 쏟아놓았다.
오늘 주인아저씨가 올라와서 옥상으로 올라가는 철계단 입구를 빨래건조대를 접어 막고 전깃줄로 고정시켰어요. 주인집 아기가 옥상으로 기어 올라가는 걸 제가 마침 발견하지 않았으면 큰일 날 뻔했거든요. 주인아저씨가 저한테 무척 고마워하더군요.
정수 씨, 레이첼 알죠? 사진 동호회. 오늘 걔한테서 전화가 왔는데 글쎄 스파이더맨과 원더우먼이 아무래도 사귀는 것 같대요. 호호. 생각해봐요. 그 산적 같은 덩치에 매미 같은 아이가 달라붙어 있는 모습을.
혜은 씨, 옷 좀 사줄까?
나는 별 생각 없이 TV홈쇼핑을 시청하다 문득 그녀에게 옷이 필요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녀만큼이나 청아하고 깔끔한 비비안 프리미엄 브라팬티 8종. 회색 햅번주름 모직스커트. 분홍색 벨벳 티셔츠. 채널을 돌려가며 묻는 내 질문에 그녀는 부끄러운 듯 말없이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품절 임박,이라는 문구가 깜박이는 것을 보고 다급한 손길로 수화기를 들어올렸다.
저기, 우리 결혼할까?
내가 가슴에 담아둔 말을 어렵게 꺼내자 그녀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니까, 정식 결혼 말고 약식으로 우리끼리만. 멋진 결혼식은 나중에 올리고.
그녀는 머뭇거렸지만 내가 설득하자 마지못해 응낙했다. 결혼의 구속감에 부담을 느끼는 것 같았다.
그 주 토요일 밤, 나는 양복을 말끔하게 차려입었고, 그녀는 내가 사준 아랫단이 회색, 윗단이 갈색인 원피스를 차려입고 식탁에 앉았다. 케이크에 초를 꽂아놓고 붉은 와인을 두 잔 따랐다.
나는 당신을 아내로 맞아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평생을 함께할 것을 다짐합니다.
내 다짐에 그녀는 망설이다가 이윽고 입을 열었다.
나는 당신을 남편으로 맞아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평생을 함께할 것을 다짐합니다.
핏빛 같은 와인이 든 잔을 가볍게 부딪치고 입으로 가져가는 우리 모습을 작은 초 다섯 개가 불그레하게 비춰주고 있었다.
*
사진 동호회에서 그녀를 알게 된 그해 가을, 낙엽이 지기 시작할 무렵 우리 팀은 강화도에서 석모도로 가는 배 위에서 뒤쫓아 오는 갈매기들이 바닷물을 아슬아슬하게 스쳐 날아오르는 모습을 담고 있었고, 단풍이 거의 다 떨어져갈 때는 일출을 보려고 적상산 전망대로 가는 차 안에서 새벽 여명 속에 하얗게 흩날리는 첫눈을 맞이했다. 찬바람이 불어오는 늦가을에는 태안반도에서 추위에 오들오들 떨며 일몰과 일출의 해변 풍경 속에 있었고, 새해 첫날에는 동해안 신남에서 얼음장같이 차가운 바다 저 끝 수평선에서 희끄무레한 구름을 밀쳐내고 붉게 떠오르는 해를 맞이하고 있었다. 한겨울에는 무주리조트 설천봉에서 함박눈을 맞으며 눈꽃을 촬영했고, 추위가 한풀 꺾인 늦겨울에는 거제도 해금강에서 이슬비를 맞으며 시린 바다를 렌즈에 담았다.
지방 정기 출사와 주말 근교 촬영에 자주 참여해온 그녀와 나는 조금씩 서로의 낯과 면모를 익혔지만 그녀가 워낙 말수가 적고 나까지 적극적이지 못해 둘 사이에는 아무래도 무언가 어색한 것이 남아 있었다. 나는 항상 그녀를 의식하고 있어서 말과 행동이 부자연스러웠고 그녀와 동호회 친구 이상의 관계가 되길 원했지만 내 사교술은 그러기엔 너무 서툴렀다.
그런 그녀와 한결 가까워지는 계기가 우연히 찾아왔다. 따뜻한 봄날 초저녁 S구민회관에서 하는 어린왕자 뮤지컬을 관람하게 된 것이었다. 내가 인터넷 게시판에 제안을 올렸을 때 처음에는 여러 명이 나올 것 같더니 결국 그녀와 나, 단 둘만이 참가하게 된 것이었다. 회관 입구에서 그녀를 본 나는 걷잡을 수 없이 가슴이 뛰었다. 단아한 옷차림의 그녀에게 점점 깊이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무료 공연이라 근처 아파트 단지의 어린아이들까지 단체로 몰려와 공연 내내 왁자지껄하게 떠들어서 나는 그녀가 불편한 나머지 그만 나가자고 하지 않을까 적이 긴장했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공연 뒤에 도보로 십오 분쯤 걸리는 전철역으로 걸어가면서 나는 몹시 초조했다. 그녀와 단둘이 오붓하게 보낼 수 있는 이 기회를 이렇게 허망하게 놓칠 수 없다는 생각이 가슴을 압박했다. 전철역에 가까워질수록 나는 다급한 눈길로 길가 상점 간판을 살폈다. ‘김가네 김밥’이라는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식사 안 하셨죠? 저기서 간단히 먹고 갈래요?
몇 번을 입 안에서 되씹다가 겨우 어눌하게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는 질문을 받으면 늘 머뭇머뭇 말할 듯하면서도 입을 떼지 않아 사람 애를 태웠지만 제안자가 리드하면 따라나서겠다는 뉘앙스를 암묵적으로 풍기는 타입이었다. 내가 그녀를 점점 좋아하게 된 것도 그런 새치름한 것 같으면서도 순수하고 도도한 것 같으면서도 이끄는 대로 따라올 것 같은 수동성와 청순가련한 이미지였다. 쉽게 범접하지 못하게 신비스러우면서도 기품 있는 외모, 반면 어느 정도 노력하면 어렵지 않게 쟁취할 수 있을 것 같은 소녀 같은 이미지. 그녀는 외모와 나이, 가난과 구질구질한 삶 따위의 내 모든 결점을 지우고 그 자리를 자신감으로 메워줄 내 인생의 유일한 여자 같았다.
그녀는 대답 없이 망설이면서도 나를 따라 분식집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라면을, 나는 김밥과 메밀을 시켰다. 그녀가 라면 가닥을 젓가락으로 말아 작은 입으로 쏙 집어넣는 것을 보고 나는 그녀와 단둘이 이런 개인적인 자리에서 식사를 다하다니, 하는 감격에 젖어들었다. 내가 빈 컵을 들고 생수기로 가서 물을 먹는 사이에 그녀는 테이블 위에 놓인 내 책을 뒤적거렸다. ‘세계 석학 14명이 예측한 지식사회의 미래’. 나는 그녀가 내 물건에 관심을 보인다는 사실, 내 정신세계의 간접 표현물을 그녀가 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이 벅찼다. 나는 그녀의 전공이 경제학임을 상기하고 쓰리엠의 창의적 경영과 피터 드러커와 레스터 서로 같은 세계적 석학들이 예측한 지식사회의 미래를 읽은 대로 들려주었다. 그녀는 내 말 사이사이에 고개를 끄덕이며 관심을 보이다가 말이 끝나자 다 읽고 나면 책을 빌려달라고 했다. 둘만의 오붓한 식사를 마치고 전철역으로 걸어가는 저녁의 거리는 가로등과 네온사인의 투명한 불빛으로 가슴이 시렸다.
시원하고 신선한 이런 저녁이 좋지 않아요?
좋아해요.
그녀는 여전히 가느다란 목소리로 대답했지만 표정은 한결 밝아보였다. 나는 아직도 그 길을 걷던 때를 기억한다. 나비처럼 날아오르는 거리의 투명한 불빛과 온몸을 부드럽게 감싸는 상쾌한 밤공기.
이룰 수 없을 것 같은 사랑을 나는 틈틈이 상상으로 채웠다. 컴퓨터로 옮겨놓은 그녀의 사진을 모니터로 보며 내가 좋아하는 수락산을 그녀와 함께 올랐다. 한적한 계곡 초입을 걸으면서 다정스런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가파른 바윗길에서는 그녀의 손을 꼭 잡아 끌어올렸다. 어떤 때는 단둘이 서해 바다 노을을 바라보며 그녀가 어깨를 기대왔고 나는 한 팔로 그 어깨를 감싸 안으며 그녀의 입에 내 얼굴을 가져갔다. 더러는 여의도공원에서 그녀의 손을 놓치지 않고 인라인스케이트를 타는 광경을 떠올리기도 했다. 오빠 사랑해, 하는 말이 작은 입에서 새어나오면 나는 온몸을 부르르 떨며 쾌감에 젖어들었다가 이내 허무감 속으로 곤두박질쳤다.
그녀가 내 애인이 되어주기만 한다면 못할 일이 없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녀를 내 여자로 만들고 싶었다. 그녀가 내 여자가 되느냐 마느냐는 순전히 내 의지에 달린 것 같았다. 이른 나이에 프랜차이즈 음식점을 벌였다가 실패해 빚밖에 가진 것 없었고 그녀가 좋아하는 신승훈의 외모나 목소리와는 거리가 먼 데다 나이차도 적지 않았지만 내 진실성과 그녀를 향한 일편단심만은 진심이었다. 내 열등감은 그녀 앞에 선 나를 자꾸 주눅 들게 했지만 그녀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지옥의 구렁텅이에라도 뛰어들 수 있었고 평생 지구를 들고 서 있는 형벌이라도 받을 수 있었다. 단 한 달만이라도, 아니 단 일 주일만이라도 연애가 허락된다면 내 목숨을 내놓을 수도 있었다. 억겁의 우주 속에서 스치듯 명멸하는 이 짧은 생에서 그녀와의 인연을 결국 이루지 못하고 저 암흑의 무(無)로 영원히 떨어질 것을 생각하면 내 가엾은 영혼이 참을 수 없이 슬퍼지는 것이었다.
*
김 과장, 팩스 다시 보내.
내가 패키지 소프트웨어 시장동향을 인터넷으로 살펴보고 있을 때 부장이 다가와서 말을 던졌다.
A사 박 과장한테서 연락 왔는데, 교육용 제품 견적이 날아왔대. 그 회사가 무슨 교육기관이야.
내가 뒤통수를 긁적이며 미안해하는 기색을 보이자 부장이 한 마디 덧붙였다.
근데 요즘 김 과장 무슨 좋은 일이 있나 봐? 하루종일 싱글벙글거리네. 애인이라도 생겼나?
나는 슬금슬금 기어오르는 말을 속으로 삼켰다. 네, 그런 일이 있어요. 결혼했거든요. 쥐구멍에도 볕들 날이 있다고요. 하지만 나는 내 아내를 주위 사람들에게 내보이고 싶지 않았다. 네 이웃의 아내를 탐하지 말라,는 말도 있긴 하지만 아름답고 청순한 내 아내를 대하면 없던 욕심도 생길 수 있었다. 그까진 아니라도 나만의 아내에게 뭇 사내들의 탐색어린 시선이 가닿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렇더라도 일은 제대로 챙기게.
부장은 씩 웃으며 자리를 떠났고 나는 좀 더 차분해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며칠 뒤 오후 아내로부터 갑작스런 전화를 받고 집으로 달려갔다. 무서워요. 수화기 속의 목소리는 떨고 있었다. 현관문을 와락 열고 들어가니 아내는 소파 한 구석에 몸을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여보, 괜찮아? 무슨 일이야?
무서웠어요. 왜 이제야 왔어요? 시커먼 고양이가…… 찌개를 태워서…… 연기 때문에…… 너무 무서웠어요.
아내는 오들오들 떨면서 울먹거렸다. 어떤 충격과 두려움 때문에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내가 감싸 쥔 오른쪽 종아리를 보니 무언가가 할퀸 상처가 있었다. 아내를 겨우 진정시키고 자초지종을 들었다. 아내가 김치찌개를 가스버너 위에 올려놓고 깜빡 잠이 들었는데 무언가가 타는 냄새를 맡고 일어나 부엌으로 가보니 김치찌개가 새카맣게 타 있었다. 매캐한 연기를 빼내려고 창문이란 창문은 모조리 열어두고 찌개 냄비를 치우고 있는데 무언가가 휙 하고 지나갔고, 순간 종아리에 날카로운 아픔이 전해져 거실 쪽을 보니 시커먼 고양이가 열린 현관문으로 달아나고 있더라는 거였다. 싱크대 옆 무릎 높이의 작은 창문 바깥은 옥상으로 가는 철계단이 지나고 있었다. 동네를 어슬렁거리는 그 검은 도둑고양이가 부엌 창문으로 들어와 아내를 할퀴고 현관으로 빠져나간 것이었다.
그날 저녁부터 나는 서해안 출사 여행 때 채집해온 아기 주먹만 한 자갈돌을 주머니에 몇 개 넣고 그 놈을 찾으러 동네를 어슬렁거렸다. 예전에는 내 집 가까이에서 아기 울음소리를 내며 배회하던 놈이었는데 그 사건 이후로는 꼬리도 비치지 않았다. 사흘째 되는 날, 나는 그 놈을 골목 입구 구멍가게 근처에서 발견했다. 놈은 내다놓은 쓰레기봉투의 내용물을 풀어헤치다가 나를 발견하고는 도로 쪽으로 튀었다. 내게서 위험 신호를 감지한 것이리라. 나는 녀석의 뒤를 쫓으며 주머니에서 자갈을 하나 꺼내 놈을 향해 힘껏 내던졌다. 자갈은 놈을 맞히지 못했지만 마침 입구로 들어오는 시커먼 승용차가 놈을 깔아뭉갰다. 차가 지나가자 공황에 빠진 놈이 벌떡 일어나 오른쪽 길로 달아났다. 놈이 비틀거리는가 싶었는데 다음 순간 놈의 오른쪽 뒷다리가 부러졌음을 알 수 있었다. 놈은 오른쪽 다리를 덜렁거리며 땅에 질질 끌면서 남은 세 다리만으로도 놀라운 속도로 달아나고 있었다. 사력을 다해, 온몸을 삐뚤거리며.
녀석의 시체를 본 것은 그로부터 보름쯤 지났을 때였다. 몸이 불편하고 못 먹어서 죽은 듯싶은 녀석은 구멍가게 근처 쓰레기봉투 더미 밑에 모로 누워 있었다. 먼지가 덕지덕지 묻은 죽은 몸뚱어리에 박힌 구슬 같은 눈알을 쏘아보며 나는 말했다. 감히 네 이웃의 아내를 탐하려고 했더냐.
*
나는 구민회관에서 공짜 뮤지컬을 보고 난 다음부터 그녀의 관심을 끌기 위해 메일을 자주 보냈다. 집에 잘 들어갔느냐 부터 시작해서 학교 공부는 잘 하고 있느냐, 환절기에 건강은 괜찮느냐, 내가 당신 팬클럽 회장을 해도 되겠느냐는 농담을 담은 편지까지 일 주일에 두세 번, 한 달간 꾸준히 보냈다. 그녀는 두어 번에 한 번씩 답장을 보내와서 내 속을 바싹바싹 태워놓았다. 하늘꽃 은아, dream,이라는 서명을 말미에 덧붙여오는 메일을 나는 모니터가 닳도록 읽었다. 그 속에 나에 대한 그녀의 감정을 나타내는 어떤 실마리가 있는지 한 단어 한 단어를 꼼꼼히 살폈다. 그녀는 한 집에 사는 남동생이나 가끔 대구에서 올라오는 어머니 이야기를 적기도 했고 졸업 이후 진로와 경제적 상황에 대한 답답한 마음을 토로하기도 했다. 아이스크림 ‘더위사냥’을 세 개나 먹었다는 내 말에 그녀는 감기 조심하라는 답장을 보내왔고, 드라마 ‘아름다운 날들’의 최지우와 이병헌의 사랑이 너무 애틋하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정말 그렇다는 대답을 보내왔다. 나는 시커먼 숯이 되어가는 연정을 가누지 못하고 긴장과 걱정 속에 몇 번이나 지웠다 다시 썼다를 반복하며 어렵게 작성한 고백 메일을 보내고 나서야 지켜야 할 선을 넘어버렸다는 후회를 했지만 행인지 불행인지 그녀는 그 고백을 안 들은 걸로 하겠다면서 그런 얘길 듣다보면 정말 공주병이 더 심해질지도 모른다는 농담을 섞어 보내왔다. 나는 내 마음을 들켜서 불안했고 그녀의 거부 의사에 몸속에 돌덩이를 넣은 것처럼 무거웠지만 그녀의 농담에 또다시 희망을 걸었다.
나는 그녀와의 인연을 스쳐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결과를 이루고야 말 필연으로 만들기 위해 온갖 구실을 다 만들어냈다. 다행히 그녀는 주저하면서도 내 제안을 단호하게 거절하진 않았다. 자그마한 대화의 끈이라도 하나 더 확보하기 위해 메신저 프로그램을 사용하느냐고 물었지만 컴퓨터 문제로 사용하지 않는다는 대답이 날아왔다. 나는 프랜차이즈 음식점을 운영할 때 탐독하던 경제 및 인터넷 관련 서적을 주겠다고 제안해서 억지로 만남을 만들었다. 그녀의 집 근처로 가서 책을 전달하고 가까운 카페에서 함께 커피와 맥주를 마시고 던킨도너츠에서 도너츠와 팥빙수를 먹었다. 영화를 보여주겠다고 어렵사리 전화를 한 끝에 코엑스몰 영화관에서 ‘재밌는 영화’를 함께 보았다. 삼각김밥으로 출출함을 달래가며 킬킬거리며 보는 것까진 좋았으나 ‘거짓말’을 패러디한 부분에서 예상 외로 지저분한 장면이 나오자 나는 그녀의 표정을 살폈다. 속이 메슥거린다는 그녀의 기색에 나는 시간이 빠듯하다고 아무렇게나 영화를 선택한 내 멍청함을 막심하게 후회했다. 관람 후에는 스타벅스 커피와 스파게티를 먹었고 반디엔루니스에 가서 그녀에게 디즈니 영어 동화책을 사서 선물했다. 내가 사준 책에 그녀의 시선과 손길이 가닿을 생각을 하니 그녀와 나 사이를 은밀한 끈으로 연결한 것 같아 야릇한 쾌감에 살갗이 근질근질했다.
그 뒤로도 그녀에게 몇 번 전화를 걸어 토익 시험은 잘 보았느냐, 올라온 어머니는 내려가셨느냐, 취업 준비는 잘 되어 가느냐를 설레는 목소리로 묻기도 했고, 주말 사진 모임이 끝나면 옆 동네에 사는 그녀 집까지 가끔 바래다주면서 여러 얘기를 나누기도 했다. 그녀는 나를 편하게 대하는 것 같았다. 말을 잘 하지 않는 타입이라 그녀에겐 대화 상대가 많지 않아 보였고 그런 그녀에게 나는 그럭저럭 괜찮은 말상대가 되고 있는 느낌이었다. 물론 그녀는 내 연모의 마음을 잘 모를 것이었다. 난 그녀가 내 속을 모르길 바랐다. 내 진심을 알게 된다면 부담스러워할 것이고 그러면 둘 사이의 관계는 결국 어색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
엄마한테서 전화가 왔어요. 추석 때 인사차 대구로 한번 내려오라구요.
장모님이? 그러고 보니 양가 어른들을 모시지 않고 둘이서만 도둑 결혼을 올린 것 같아 새삼스레 죄책감이 들었다.
당연히 찾아뵈어야지. 조만간 근사한 데서 외식이라도 할까? 처남도 오라고 하고. 처가에 신경 못써서 미안해.
괜찮아요. 상황이 나아지면 당당하게 찾아뵈어요.
아내는 행복한 듯 새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밝게 웃었다. 착한 아내를 바라보며 나는 아무래도 신혼여행을 생략한 게 마음에 걸렸다. 형편이 어렵더라도 다녀오는 게 아내를 위해서도 좋을 것 같았다.
가을에 휴가 받아 발리로 신혼여행 다녀올까? 근사한 풍경 속에서 느긋하게 쉬었다오면 기분이 한결 나아질 거야, 어때? 해변에서 수영도 하고. 당신의 청아한 미소와 세련된 몸매를 다들 부러운 시선으로 쳐다볼 거야. 나도 자연 속에서 활짝 웃는 당신 모습을 보고 싶어.
정말요? 아내는 해맑은 웃음을 띠며 내 품에 안겨들었다. 아, 행복하다. 이대로 시간이 멈춰버렸으면 좋겠다.
그 주 일요일 오후 나는 아내와 함께 백조의호수 발레 공연을 보러 예술의전당으로 갔다. 아내는 분홍빛 티셔츠에 노란색 카디건, 하늘빛 치마를 입었고 나는 갈색 양복으로 말끔하게 차려입었다. 우리는 예술의전당 입구로 들어가 계단을 올랐다. 초여름 따사로운 햇볕 아래 나의 아리따운 공주는 우아하고 여성스럽고 단아하고 청순하고 화사했다. 모처럼의 외출이라서 그런지 아내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밝아보였다. 아내는 저 앞 화단에 핀 노랗고 흰 꽃이 변신한 존재처럼 황홀하게 아름다웠다. 나는 우선 팸플릿을 사서 아내에게 주었다. 공연 내용을 미리 파악하고 나중에 추억으로 간직하는 데 팸플릿만큼 훌륭하고 깔끔한 것은 없었다. 우리는 오페라하우스 출입구 옆에 붙은 좌석표를 보고 자리를 확인했다.
커피 괜찮아? 케이크도 좀 먹을래?
우리는 널찍한 홀에서 커피 두 잔과 케이크 한 조각을 얹은 쟁반을 들고 빈자리를 찾아 앉았다. 저녁 식사를 염두에 두고 입맛만 당길 요량이었으므로 케이크는 한 조각만으로도 충분했다. 아내는 커피를 한 모금 삼키고 케이크를 조금 떼어내 작은 입 안에 넣고 오물거렸다. 홀에는 부모 손을 잡고 온 아이들이 많았다. 그 중 상당수는 발레를 배우는 아이들 같았다. 우리, 여자아이가 태어나면 꼭 발레를 가르치자.
발레는 멋졌고 환상적이었다. 잔잔한 음악과 하늘거리는 몸짓의 절묘한 조화가 감정의 파문을 일으켰다. 아내는 시력이 안 좋은지 고개를 앞으로 빼고 안경을 썼다 벗었다 했다. 앞좌석을 잡는 건데 하는 아쉬움이 몰려왔다. 안경을 하나 맞추어주어야겠어.
원래 비극 같은데 어쩐지 좀 밝게 끝난 것 같지 않아?
관람을 마치고 건물 밖으로 나오면서 고개를 갸웃거리며 동의를 구하는 나에게 아내는 투명한 웃음소리를 내며 그렇지요? 하고 맞장구를 쳤다. 우리는 예전에 한번 들른 적이 있는 근처의 리츠 레스토랑에서 해물 스파게티를 먹으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작년 이맘때였지, 아마. 명성황후 공연 같이 본 거 기억나? 그전에 당신과 어린왕자 공연을 왁자지껄한 데서 본 것 같아 그럴듯한 공연을 예매한 게 그거였지. 당신과 처음으로 오붓한 데이트를 하면서 내가 얼마나 기뻤는지 알아?
그때 당신이 저한테 작업 들어온 거 얼마나 어설펐는지 알아요? 목소리도 기어들어갔고 몸짓도 어색했어요.
그때 약속일을 기다리며 나는 아리따운 공주와의 알현을 앞둔 미천한 대장장이 아들처럼 어찌나 설레고 행복했던지. 당신을 어떤 표정과 제스처로 만나는 게 좋은지, 공연장까지는 어떻게 들어갈지, 공연 끝나고 식사는 어떻게 할지, 식사하자는 말은 어떻게 꺼낼지 일일이 궁리하느라 머리가 지끈거렸다니까.
후훗. 그때 제가 왜 당신 진심을 몰라주었을까요?
그렇게 안정을 되찾아가던 아내가 보름쯤 지나서 다시 불안한 행동을 보이기 시작했다. 겁에 질린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창밖 거리를 살피거나 초조하게 한 군데 가만히 앉아 있질 못했다.
누군가가 나를 따라다녀요. 시장에서 돌아올 때 기척이 느껴져 뒤를 돌아보면 누군가가 재빨리 숨어요. 낮에 초인종을 누르기도 하고 저기 통유리창 밖으로 한동안 시커먼 형체가 어른거려요. 주인아저씨한테 물어보니 시커먼 옷에 까만 선글라스를 낀 남자가 가끔 우리 계단으로 올라간대요. 무서워요.
그 사람이 누군지 모르겠느냐는 질문에 아내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처남보고 당분간 여기 와 있으라고 얘길 할게. 아내는 그제서야 한결 마음을 놓는 것 같았다.
김 과장, 자꾸 실수 할 거야? A사와 B사에 왜 팩스를 바꿔 넣어? 정신을 어디다 두고 있는 거야? 그리고 왜 C학교는 계약서를 이렇게 작성했어? 보라구. 금액에 동글뱅이 하나가 빠졌잖아.
부장은 나를 노려보다가 한 마디 덧붙이고 가버렸다.
조심해. 요즘 회사 형편 안 좋아.
나는 계약서에 영 하나가 빠진 금액 부분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문득 숫자들이 몸을 쫙 펴고 바늘처럼 내 눈을 찌르는 것 같아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다음 날 나는 계약서를 다시 작성하기 위해 대전에 내려갔다가 어둑해져서야 집에 돌아와 보니 기어이 일이 벌어져 있었다. 처남은 며칠 동안 대구에 다녀온다고 내려가고 없었다. 작은방 구석에서 아내는 담요를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담요를 떼어내려는 나를 아내는 비명을 지르며 밀쳐내려 했다. 담요를 빼앗기고도 아내는 고개를 무릎 사이에 박고 부들부들 떨었다. 한참 만에 나를 알아본 아내는 퉁퉁 부은 얼굴로 울면서 말했다. 내 권고도 있고 해서 하루종일 집 안에만 틀어박혀 있는데 초인종이 울리기에 누구냐고 물어보니 대구에서 소포가 왔다고 했다. 어머니가 무언가를 보내온 것으로 생각하고 문을 열어주는데 시커먼 모자에 까만 선글라스를 낀 사내가 밀치고 들어왔다. 사내는 다짜고짜 아내를 소파로 밀어붙이고 옷을 벗기려 했다. 아내는 공포에 질려 찍 소리도 내지 못하고 있다가 사내의 딴딴한 물건이 몸속으로 불쑥 들어오자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사내는 아내의 뺨을 때리고 입을 틀어막고 그 짓을 계속했으나 잠시 뒤 현관문이 열리며 주인아저씨가 들어왔다. 놀란 사내는 다급하게 옷을 추스르고 주인아저씨를 밀치고 뛰어 달아났다.
그 사내가 누군지 아느냐는 질문에 아내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나를 큰방의 컴퓨터 앞으로 이끌었다. 그녀는 예전 동거남이 보내온 메일을 보여주었다. 내가 잘못했다, 내게 한 번만 기회를 다오, 하는 간청 메일에서부터 빨리 돌아오지 않으면 너를 죽여 버리겠다, 네가 있는 곳을 다 알고 있다는 협박 메일, 나를 배신하고 잘 사나 보자, 지옥의 저주가 네게 퍼부어 질 것이다,는 저주 메일까지 다양했다. 그놈의 주소를 가르쳐달라고 했지만 아내는 아직도 옛정이 남아 있는지 고개를 흔들며 입을 열려고 하지 않았다. 윽박지르려다가 가뜩이나 두려움에 질린 아내를 더욱 구석에 모는 것 같아 그만두었다.
나는 잠바 양 주머니에 묵직한 자갈돌을 한 개씩 집어넣고 집을 나섰다. 녀석의 집은 택시로 십 분 거리에 있었다. 주소는 그 메일 서비스 제공 업체에 근무하는 친구에게 부탁해서 겨우 알아낸 것이었다. 나는 녀석의 빌라 앞 골목을 천천히 오가다가 건물 현관으로 들어가 우편함을 뒤졌다. 이백일 호. 녀석 앞으로 온 핸드폰 요금청구서가 있었다. 나는 이층으로 올라가 이백일 호 앞 계단에 앉아 담배를 꺼내 물었다. 담배 세 대를 피워도 녀석은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몇 시간이나 기다려야 할까. 나는 인근 구멍가게로 가서 바나나 우유를 하나 사 들고 다시 이백일 호 앞으로 돌아왔다. 우유를 한 모금 마시고 담배 한 대를 피고 다시 한 모금 마시고 담배를 피웠다. 우유를 다 마실 때까지 담배 다섯 대를 피웠지만 녀석은 여전히 나오지 않았다. 이대로 있다가는 몇 시간이 지나도 녀석이 나올 것 같지 않았다. 나는 초인종을 눌렀다. 인터폰에서 굵은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누구세요?
택뱁니다.
무슨 택배요?
경품에 당선되셨습니다. 엠피쓰리 플레이어요.
끼익 소리를 내며 현관문이 뻐끔 열리자 나는 왼손으로 문을 벌컥 여는 것과 동시에 오른손으로 녀석을 밀며 들이닥쳤다. 무방비였던 녀석은 현관 턱에 걸려 뒤로 벌렁 나자빠졌다. 나는 잠바 주머니에서 묵직한 자갈돌을 꺼냈다. 아주 죽여 놓을 작정이었다. 나는 의도된 작업을 하는 동안 녀석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말했다. 감히 네 이웃의 아내를 탐하려고 했더냐.
*
사진 동호회 게시판에 올라온 하늘꽃의 글을 보고 나는 그녀의 집으로 정신없이 뛰어갔다. 숨이 차서 헐떡거렸지만 터질 듯한 가슴을 누를 길이 없었다.
축하해주세요. 드디어 제가 취직했어요. 그간 도움 주신 여러분들에게 감사드려요. 특히 제 남자친구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요.
그녀의 글은 내게 반의 절망과 반의 희망이었다. 그 ‘남자친구’가 나를 암시하는 것일 수도 있었고 다른 사람을 말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 나는 생애 처음으로 여자의 말 한마디로 내 꿈이 무너지거나 실현되는 기로에 서게 되었다. 모 아니면 도.
그녀의 집 앞에서 전화를 걸었지만 그녀는 이십 분쯤 뒤에 어기적어기적 밖으로 나왔다. 수화기 속의 목소리는 지금 꼭 나가야 되느냐는, 자다가 깬 듯한 목소리였다. 슈퍼마켓 바깥 테이블에 앉아 삼십 분 동안 끈질기게 묻는 말에 그녀가 한 말은 겨우 서너 마디가 전부였다.
저, 푸른바다님, 좋은 분인 거 아는데요…… 저, 당분간은 남자 사귈 생각 없거든요…… 그리고 제가 좋아하는 사람 있어요. 그렇게 잘 되고 있진 않지만…….
나는 내 순정을 짓밟는 그녀에게 허탈감과 분노를 느꼈다. 네가 그렇게 잘 났느냐, 얼마나 잘 났기에 내 불타는 연정을 이리도 쉽게 짓부수느냐, 너는 내 마음을 받을 자격이 없다, 그런 너에게 여태까지 그토록 뜨거운 진심을 쏟았다니 내 자신이 다 불쌍하다. 이렇게 외치는 절규가 정수리까지 치솟았다. 속이 뒤집힐 것 같고 두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러나 이 허탈감과 분노는 그녀를 향한 내 마음을 한 점도 남기지 않고 태워버리는 더욱 강렬한 사랑의 다른 이름이었다.
나는 벌떡 일어나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잠 오는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순간 그녀의 머리통을 잡고 입 위에 내 입을 덮었다. 맥박이 딱 세 번 뛸 동안. 나는 두 손을 떼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뚜벅뚜벅 걸어갔다. 갑자기 헛웃음이 나왔다. 어느덧 웃음이 흐느낌으로 바뀌고 있었다.
*
김 과장, 집들이 안 해? 정말 그러기야?
평소 허물없이 지내는 개발팀 조 과장이 느물거리며 들러붙었다. 지난밤 조 과장과 가진 술자리에서 사실대로 털어놓은 것을 끈덕지게 물고 늘어지는 것이었다. 동거한 지 몇 달 되었다는 것, 둘만의 약식 결혼식을 올려 부부가 되었다는 것, 예전에 내가 쫓아다니던 여자라는 것 따위의 기본적인 사실 몇 가지만 들려주었다. 조 과장 같은 동료라면 집으로 초대해도 괜찮을 것이다. 박 대리, 경리 김 양도 다감한 사람들이다. 그러고 보니 아내에게 회사 동료들을 소개해주는 것도 나쁠 것 같지 않았다. 아내가 남들과 어울리는 모습을 거의 못 본 것 같다. 내 집으로 들어오고 나서 안정을 되찾은 아내는 점차 밝아지고 옛날의 웃음을 되찾아갔지만 두어 번의 좋지 않은 사건 때문에 다시 불안해하고 우울해했다. 최근의 낯선 사내의 침입 사건으로 아내는 그 어느 때보다 혼자 있는 것을 두려워해서 나에게 회사를 나가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낯선 사람이 두려운지 밖으로 나다니려고도 하지 않았다. 퇴근길에 아내에게 귀여운 강아지 한 마리를 사다주는 것도 나쁘진 않으리라. 그러면 혼자 지내기가 한결 수월할 것이다.
그러지, 뭐. 퇴근하고 함께 가세.
낯을 심하게 가리는 아내를 생각하면 집들이를 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았지만 지나치게 혼자 두는 것 또한 정신건강에 이롭지 않아 보였다. 아내의 순결한 몸 위를 스멀스멀 기어다닐 뭇 사내들의 시선이 싫었고, 다소곳한 아내가 가녀린 목소리로 그들과 말상대하는 모습을 떠올리면 날카로운 질투심이 치솟았지만 내 아리따운 아내를 남들에게 자랑하고픈 마음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여럿이서 찾아가면 아내에게 노골적인 눈길을 보내지도 못할 것이다. 게다가 이 사람들은 일상을 함께하는 동료들이 아닌가. 그러고 보니 아내 때문에 내가 너무 민감해진 것 같기도 했다.
퇴근길에 애완견 숍에서 산 미니어처 슈나우저종을 품에 안은 김 양은 갓난아기를 대하듯 싱글벙글거렸다.
귀여운 아가야. 네 마나님이 너를 기다리고 있단다. 곧 너랑 헤어질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지는구나.
초인종을 눌렀지만 아내는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문을 당겨보니 스르르 열렸다. 문을 잠가두라고 그렇게 일렀는데. 현관 옆의 스위치를 올렸다. 거실이 밝아졌다. 아내는 등을 돌리고 소파 구석에 기대앉아 TV를 보고 있었다. TV에서는 아내가 좋아하는 저녁 드라마가 방영되고 있었다. 그 동안 입이 심심했는지 과자곽과 봉투가 소파 주위에 어지럽게 늘려 있었다.
여보, 나왔어.
오늘따라 아내는 대답이 없다. 살짝 고개를 돌려 이쪽을 본 것 같았는데. 내 동료들이 낯설어 그런 건가.
안녕하세요, 사모님.
김 양이 신발을 벗으며 강아지를 거실 바닥에 내려놓았다.
여보, 나왔다니까. 이 사람 참, 낯을 그렇게 가리면 쓰나. 내 동료들이야, 인사해야지.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니 TV를 보다가 선잠이 든 모양이었다. 그럼 그렇지. 깨어 있는데 모른 척 할 까닭이 없지.
나는 동료들을 돌아보았다. 동료들은 현관에 구두를 벗어놓고 거실로 오르고 있었다.
여러분, 아내가 TV를 보다가 잠이 들었어요. 초대를 해놓고 준비를 못해서 미안합니다. 아까 전화를 했는데.
나는 초조하게 아내의 몸을 흔들었다.
일어나봐, 여보. 손님들 맞아야지. 서방님 회사 동료들이야.
아무리 편한 동료들이라지만 손님으로 모셔놓고 아무런 준비를 해놓지 않은 게 여간 미안하지 않았다. 그때 이리로 달려온 강아지가 소파로 뛰어올라 말릴 틈도 없이 아내의 어깨를 딛고 머리칼을 이빨로 잡아당겼다. 난데없는 사태에 나는 부리나케 놈을 아내에게서 떼어내 바닥으로 내동댕이쳤다. 그 소동에 아내는 머리칼을 뜯긴 채 소파에서 떨어졌다. 나는 바닥에 떨어진 아내의 몸을 흔들며 소리쳤다.
여보, 괜찮아?
저 빌어먹을 놈의 강아지 새끼. 강아지의 입에는 아내의 머리칼이 잔뜩 물려 있었다. 동료들은 바닥에 떨어진 아내와 한쪽에 자빠져 낑낑거리는 강아지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자리에 붙박인 그들에겐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나도 이런 사태가 일어나리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잠시 비켜 봐. 이 분이 자네 부인인가?
이쪽으로 다가온 조 과장이 아내에게 이상한 눈길을 보내고 있었다. 믿었던 친군데 이 녀석까지 내 아내를 욕심내는군. 비켜 임마.
조 과장은 어느 새 아내 몸에 손을 대고 있었다. 이 사람 이거 큰일 낼 사람이구만.
큰일은 내가 아니라 네 놈이 낼 것 같다. 이웃의 아내를 탐하지 말라니깐.
이건 사람이 아니잖아!
사람이 아니고 선녀지. 네 같은 건 평생 꿈도 못 꿀 거야.
여보게들, 이리로 와 보게.
동료들이 주위로 몰려왔다. 집단적으로 작당하여 아내를 탐하려는 것 같았다.
손 대지마. 만지지 말란 말이야.
리얼돌(realdoll)이야! 실리콘 재질의!
조 과장의 외침과 동료들의 웅성거림이 내 귓가에서 어지럽게 윙윙 울렸다.
<단편소설 200x106매>
첫댓글 처음에는 이 양반이 남의 글을 퍼와서 올렸나 싶더니만, [리얼돌]에서 퍽~ 역시 그러면 그렇지.ㅋㅋㅋ 웬만하면 여자 하나 사귀슈~*^^* 궁상맞구려.
꿈같은 사랑은 현실속에서 깨어나기도 찾아내기도 힘들져. 찾더라도 우연히 지나는 자신은 정작 모르고 스쳐가는 만남을 중시해야 할듯같네요. 왠지 불륜을 논하는거 같기도 합니다.
유쾌한 환상과 마지막의 반전이 돋뵈는데.. 결국 주인공으로선 비극인데 사람을 웃게 하는 군요. 뭐랄까,아카키아카키예비치의 '외투'가 떠오를 지경으로...
원경/ 궁상스런 상상력이 내 전문아니겠소. 흐흐... 원경님도 만만치 않구려. 먼저 결혼하는 사람한테 계란던지기 합시다. ^^ 쿠르테니/불륜이야말로 진정한 '밤의 도덕' 아닐까요? 부도덕을 바라보는 관점에 부도덕함이 없는지 반성적 성찰이 필요하리라 봅니다. 아무튼 고마워요~ 마젤란/ 외국 작품을 많이 보신 것
같군요. 전 외국작품 독서량이 턱없이 짧아서 남들한테 줄거리를 듣고 상상력을 보태서 읽은 것으로 치는 게으름이 있거든요. ^^ 과분한 칭찬 같습니다. 과거와 현재의 교차적 배치와 관련된 구성 문제 때문에 굉장히 고심을 많이 한 작품입니다. 마지막 단 하나의 문장을 향해 줄달음친 작품으로는 거의 처음인 것 같기도
하구요. 아구~ 왠 자찬... 졸작을 읽어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