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m.blog.naver.com/dejan0727/223167024525
첫 시즌 인천에서 나는 20골을 넣었다. 시즌이 끝나고 우리(데얀, 드라간, 칼레)는 휴가를 얻어 고향으로 돌
아왔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자기 모두 돌아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구단에 갔더니 다짜고짜 “데얀,
너 FC서울에 팔렸으니까 지금 가서 계약해. 드라간, 너는 우리와 재계약. 칼레, 미안하지만 너는 계약 만료”
라고 통보했다. 뭐라고? 프로축구선수의 삶이 원래 그렇다곤 해도 인천의 일처리 방식은 너무 급작스러웠
다. 아니, 지금 서울 사무실로 가라고? 그게 어디 있는데? 뭘 타고 가는 거지?
나를 선택한 사람은 서울의 당시 감독이었던 셰놀 귀네슈였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이지만, 귀네슈 감독이
“다른 선수는 모르겠고 데얀은 꼭 사달라”라고 요청했다고 했다. 서울 사무실에 도착해서 계약 협상을 했다.
구단은 내게 계약기간을 얼마나 원하느냐고 물었다. 인천과 계약은 1년이었다. 나는 조심스레 “혹시 2년 계
약 가능한가?”라고 물었다. 서울 담당자가 “2년?”이라고 되물었다. 나는 속으로 ‘아, 망했다. 너무 욕심부렸
나 봐’라며 자책했다. 옆에 있던 에이전트는 계속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랬더니 담당자는 “겨우 2년? 아니
야. 4년 어때?”라고 말했다. 만세.
계약은 정확히 3+1년이었다. 연봉 조건도 좋았다. 신기했다. 인천에서 뛰었을 때, 서울월드컵경기장에 서
울과 맨체스터유나이티드의 친선전을 보러 갔었다. 경기를 보면서 나는 함께 갔던 친구에게 “서울은 제대
로 된 골잡이만 있으면 골을 훨씬 많이 넣을 것 같아. 나 같은 선수 말이야”라고 농담하며 웃었다. 그로부터
6개월 후에 나는 서울 선수가 되었고, 1년 뒤 열린 두 번째 친선전에서 나는 맨유를 상대로 두 골을 넣었다.
(중략)
수원으로 이적한 뒤에 출전했던 첫 슈퍼매치(0-0무)는 인생을 통틀어 가장 힘들고 불편했던 경기였다. 원래
나는 스트레스를 잘 참는 타입이다. 빅매치에서 언제나 나는 ‘골을 넣어줘야 할 선수’였기 때문에 그 부분에
만 집중한다. 몬테네그로 국가대표팀에서도 압박감을 잘 견뎠다. 하지만 수원 선수가 되어 처음 뛴 슈퍼매치
는 견디기 어려웠다.
경기 일주일 전부터 마음을 어떻게 다스려야 할지 몰랐다. 서울 동료들이 문자를 보내오고, 언론과 팬이 몰
려들었다. 서정원 당시 감독까지 나서서 내 부담감을 덜어주려고 애썼다. 어떻게 뛰어야 할지, 골을 넣고 셀
러브레이션을 할지 말지, 여러 생각이 들어서 너무 힘들었다. 최악의 경기력은 아니었지만, 마음은 정말 최
악이었다. 경기 종료 휘슬이 정말 고마웠다. 그 슈퍼매치는 인생에서 가장 마음이 불편했던 순간으로 남는
다. (빨간 팀에서 파란 팀으로 이적한 이야기는 다음에 더 자세히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