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사지에 전해오는 이야기로
『정혜사지는 옥산서원을 지나 서북쪽으로 약 2km 떨어진 곳에 있다. 정혜사는 신라 때의 사찰이기는 하나 창건연대를 알 수는 없다. '동경통지'에는 "신라 제27대 선덕여왕원년(780년)에 당의 첨의사 백우경이 참소를 입어 이곳 자옥산 아래에 우거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뛰어난 경치터를 골라서 영월당과 만세암을 세웠는데 선덕왕도 행차한 바가 있다"고 적고 있다. "후에 이것을 고쳐 절을 마련했는데 곧 정혜사라 한다"고 기록했다. 이 절터에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독특한 형태의 13층 석탑만 남아 있다.』 - 위키백과 자료
경주 정혜사지 십삼층석탑(慶州 淨惠寺址 十三層石塔)은 경상북도 경주시 안강읍 옥산리, 정혜사지에 있는 통일신라 시대에 만들어진 독특한 십삼층석탑입니다.
경주 정혜사터에 세워져 있는 탑으로, 흙으로 쌓은 1단의 기단(基壇) 위에 1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인데, 통일신라시대에서는 그 비슷한 예를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모습입니다.
1층 탑몸돌이 거대한데 비해 2층부터는 몸돌과 지붕돌 모두가 급격히 작아져서, 2층 이상은 마치 1층탑 위에 덧붙여진 머리장식처럼 보입니다. 큰 규모로 만들어진 1층 몸돌은 네 모서리에 사각형의 돌기둥을 세웠으며, 그 안에 다시 보조기둥을 붙여 세워 문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이렇듯 문을 마련해 놓은 것은 열린 공간을 추구하고자 한 의지의 표현으로 보여집니다.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을 조각이 아닌 별개의 다른 돌로 만들어 놓았고, 직선을 그리던 처마는 네 귀퉁이에 이르러서 경쾌하게 들려 있습니다.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의 받침돌인 노반(露盤)만이 남아있습니다.
통일신라시대인 9세기 즈음에 세워졌을 것으로 추측되는 이 탑은 13층이라는 보기 드문 층수에, 기단부 역시 일반적인 양식에서 벗어나 당시의 석탑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비교적 옛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으며, 1층을 크게 부각시킨 후 2층부터 급격히 줄여나간 양식으로 인해 탑 전체에 안정감이 느껴집니다. 전체 높이는 5.9m 입니다.
정혜사지 13층석탑과 지척에 우리나라 세계문화유산 유네스코 등재 서원 9개 중 하나인 옥산서원이 있습니다. 경주 옥산서원(慶州 玉山書院)은 동방사현으로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 선생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서원입니다.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 선생은 한훤당(寒暄堂) 김굉필(金宏弼)선생, 일두(一蠹) 정여창(鄭汝昌)선생, 정암(靜菴 (조광조(趙光祖)선생과 함께 동방사현으로 불립니다. 또 우리나라 유네스코 등재 9개 서원은 안동 도산서원, 안동 병산서원, 경주 옥산서원, 영주 소수서원, 달성 도동서원, 함양 남계서원, 장성 필안서원, 정읍 무성서원, 논산 돈암서원이 있습니다. 필자는 9대 서원 답사을 계획하고 답사를 하였으나, 아직 2곳(무성서원, 돈암서원)을 답사하지 못했습니다.
정혜사지 십상층석탑 모습
경주 옥사서원 모습
경주 독락당 모습(이언적 선생이 기거 했던 곳)
첫댓글 노고많으셨습니다.
독락당 뒤쪽 왼편에 있는
정혜사지 탑을 처음 보았을 때에
아! 하고
나도 모르게 탄성을 내질렀던 기억이 납니다.
아름다운 모습 다시 보고
추억에 잠깁니다.
감사합니다.
흔히 보는 석탑과 달라서 저도 탄성을 질렀습니다.~~^^
정혜사지는 회재 선생님이 은거하시던 독락당과는 담을 경계로 하고 있습니다. 회재선생은 수시로 정해사 주지 스님과 독락당에서 많은 학문의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합니다. 답사를 가면 흔히 독락당만 한 바퀴 돌고 돌아 나오는데 ---
탑의 양식이 특이하여, 신라 이형탑으로 분류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비록 크기는 작지만 펄공산 염불암의 마당에 있는 고려탑과 같은 양식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렇군요. 다시 배웁니다.
염불암 마애불도 볼만한 문화재인데 이제 발걸음이 자꾸 멀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