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관문을 열자 차가운 냉기와 외로움이 방안 가득 꽉 차있고
양동이에 흙을 담아 파릇파릇하게 대파가 한 구석에 자라고 있고
점심을 먹은 빈 그릇은 싱크대에 풍덩 담겨져 밥알이 불어 있지만
엄마는 없다.
내가 3학년 때쯤 아버지는 어디서 향 나무 한그루를 얻어 와서는
우리집 부엌 앞에 심어다 놓으셨고
꼭 사람 다니는 길 앞에 걸리적 그리게 찔리면 아픈 향 나무를
심어 놨다고 늘 불만이셨던 엄마.
그 어린 향 나무가 어느듯 보기좋은 정원수로 자라고 있고
엄마가 시집와서 아이 다섯 낳고 힘들게 생활하며 힘 들때 그때마다
부엌에 숨어 혼자서 부엌 행주에 닦은 눈물
밥때 마다 소나무 가지 타는 냄새와 연기에 눈이 맵다는 핑계로 가슴에 울분을
연기에 감춰가며 남모르게 토해냈던 눈물
아버지가 돌아 가시고 삼오가 지난날 그 부엌 한 켠에서
눈이 퉁퉁 붓도록 울다 나오셨던 모습을 하나도 빠짐없이 지켜봤을
그 향나무
이듬해 허룸한 옛집이 헐릴때도
한사코 그 향나무 만은 다치지 않게 조심 하라고 포크레인 기사 한테
신신 당부를 하셨던 어머니
사람도 늙고 세월도 늙고
우리 엄마 얼굴에 주름도 쪼글쪼글 늘었지만 언제나 처럼
그자리에는 푸르런 향나무가 35년 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이런 저런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쯤
아이고 아들 왔나하며 골목에서 반갑게 엄마가 온다.
엄 마 ~
엄마란 단어? 불러도 들어도 좋고 얼굴만 봐도 좋다
아직도 우리 엄마 품에는 달달하고 향긋한 어릴적 맡았던 그 젓냄새가
나는것 같다.우리 누라한테도 맡을수 없는 그 냄새..
힘이 없는지 고개는 15도 우측으로 기울어져 있고
약간 경사진 대문을 오르며 한쪽 손은 무릅을 지탱하고 계신다.
그러면서 언제나 내 얼굴을 두손으로 한번 감싼다
손이 더 거칠어진 것 같다
힘든 농삿일로 예전에 그 보드랍던 손은 어디가고 이제는
뼈와 가죽만 남은 것 같은 투박한 우리 엄마 손.
방안에 검은 봉다리에 쌓인 반찬을 보고
야야 돈도 없을낀데 뭐 할라고 사왔노 쪼매 있으면
봄인데 봄 나물도 있고 또 혼자 살면 반찬도 필요 없다고 하시면서도
싫지는 않는지 봉지에 무었이 들었는지
일일이 풀어 본다.
"어문이얘 큰엄마 집에 계세요" 라고 누라가 묻자
그라마 집에 있지 오라고 할까 라고 되물으시고는 이내 전화를 하기 시작한다.
엄마와 큰엄마는 일찌기 한 동네에서 같이 시집살이 하면서
일찍 남편과 사별하고 친구처럼 대하면서 그 외로움을 서로 감싸주고
기쁠때나 슬플때나 맛나는 음식이 있을때는 항상 서로 불러서
같이 나눠 드시곤 하던 일흔과 여든 살 노인의 우정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쟁반에 꼬들꼬들한 족발이 올라오고
좀 연한 부분을 골라서 한 개씩 새우젖에 찍어 드렸더니
이런걸 언제 먹어 보고 안먹어 봤노
하시면서 두 노인내의 도란 도란 이야기 속으로 빠지고 있었다.
오늘 감기땜에 성주읍내 병원서 만난 할머니의
눈물을 본 엄마는 그 할망구 생각이 자꾸 난다시며 "할매 혼자 살면
외롭고 스글프고 하는 세월이 많은데 거거 가지고 울지 마세요"라고
위안을 하긴 했지만 어쩐지 그 할매가 안됐다는 생각이 든다 하시며
얼마전 큰어머니도 감기가 들어 밥도 먹기 싫고 일어 나기도 귀찮고 해도
이러다가 죽을지도 몰라 억지로 정신 차리고 밥 드시고 약 먹었다한다.
정신을 차리고 약을 먹어야 혼자 잠들다 죽지 않는다고...
밤에 자다가 방문을 평소에 걸고 주무시지만 그날은 문을 잠궈지
않고 주무셨다 한다
혹시 자다가 죽으면 자식들이 문따고 들어오기 힘 들까봐.
요사히는 방문을 걸지 않고 잠드신다. 한다.
그래도 자다가 아무도 모르게 죽으면 좋을낀데를 되뇌며.
아마도 늙어서 치매..등으로 인해
자식들 고생시킬게 또 걱정인가 봅니다.
그러면서 벌써 한 쟁반 가득 족발을 드시고
빈 쟁반을 가지고와 주방에서 한 쟁반 더 담아 가신다.
어..그런데 아까 까지만해도 기운이 없어 다 죽을것 같은 노인이
어디서 힘을 얻었는지 기운이 도는가 보다.
다행이다.
아마 우리 엄마의 감기는 자식들 손자들 며느리 보고파
외로워서 생긴 병 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
야야,,이제 힘이난다.
우리 냉이캐러 가자고 하신다
작년까지만 해도 일흔 나이에 혼자 참외농사를 틈틈히 하셔서
자식들과 함께 냉이캘 엄두도 못하셨는데.
냉이를 사이에 두고
할머니와 며느리는 냉이 뿌리에 흙을 털어 내면서 소근소근 뭐가
그리도 좋은지 그 순간이 요즈음 겪어보는 엄마의 행복이 아닐까
그래 우리 엄마 행복은 아주 가까이 있다는걸..
주름진 얼굴에서 묻어 나오는 외로움과 고단한 인생의 그늘을
냉이뿌리 흙처럼 오늘 하루만 이라도 훌훌 떨쳐 버리고 싶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검은 봉지 안에는 파릇파릇 겨우내 방 안에서 정성들여 가꾼
대파가 하얀 속살을 검은 비닐에 감추고 있고
손자들 올때마다 꼬깃꼬깃아껴둔 용돈을 억지로 손에 쥐어 줘야
맘이 편한 우리 할머니
아빠
할매가 준 돈 할매집에 살짝 갇다 놓고 올까 하는 아들이
어쩐지 대견해 보이고
검게 썬팅된 차량 유리창이 올라가고 우리엄마 얼굴도
점점 멀어지고 골목에서 연약한 엄마는 언제 올지 모르는 아들
차량을 보면서 하염없이 손을 흔들어 보이고 있습니다.
올해도 또 내년에도 또또 그 후 내년에도
우리 엄마는 아들과 며느리와 같이 냉이를 캐서 다듬어며
또 도란도란 이야기 꽃을 피우며 따뜻한 봄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내년 또 그 후 내년에도
엄 마 ~ 하며 방문을 열고 불렀을 때 그래 "우리 아들 왔나" 하며
반갑게 맞아줄 엄마가 살아 계실지.......
첫댓글 살아계실거닌까 걱정 하지 마세요 ㅎㅎㅎ
흑토끼님은 글을 참 잘쓰시네요. 마음이 따뜻해지고 한편으론 무겁기도 하네요
실력없는 글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 합니다. 칭찬을 들으니 왠지 부끄럽습니다. 즐건 밤 되세요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