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용중님과 이의동 관내에 있는 수원외국어고등학교 맞은편에 자리한 수원역사박물관을 방문하였습니다.
지난 봄에는 저 혼자 다녀오고 이번이 두 번째입니다.
처음 들른 곳은 서예전문 박물관으로 우리나라 서예사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곳입니다.
입구에는 반갑게도 광교신도시 개발로 사라진 이의동의 발자취가 있었습니다.
집 대문에 달았던 문패가 한쪽 벽을 장식하고 있었습니다.
문패의 주인공으로는 이미 고인이 되신 심경진, 심언목님의 이름이 보였습니다.
고 심언목 님은 83년 용인 수지면으로 있던 이의리가 수원시에 편입 되던 첫해에 이의동의 초대 동장을 지내셨던 분이지요.
동역은 청송 심씨 집성촌이었습니다. 거의가 집안간이며 친척들이셨습니다.
작은집, 큰집, 조카, 육촌, 당숙, 사돈들의 인척간 이었습니다.
고 심경진 님은 작은안골 우리집 뒷밭, 길 건너에 논이 있었습니다. 논에서 일하시는 것을 보면 저는 서둘러 커피를 타고
간식거리를 담아 작은 쟁반에 받쳐들고 논둑으로 나갔습니다. 커피를 즐겨하시던 심경진 님은 성격이 단호하셨습니다.
수지면으로 있을 때부터 통장일을 오랫동안 보셨는데 마을간의 단합 체육대회나 행사 때면 다른 동네에 지는 것을
싫어하셔서 어떻게 해서라도 이겨야 한다고 마을 분들의 협동과 단합을 이끌어내셨습니다.
그 당시에 용중 님도 마라톤 경기에서 3등을 하여 붓글씨로 직접 쓴 상장이 남아 있습니다.
마라톤이 등수에 드는 바람에 그 해에 종합우승을 하였다고 합니다.
시령골에 사셨던 심순진 님도 달리기를 잘하셔서 수상을 하셨다고 합니다.
풍덕천, 토월, 성복리, 망가리, 신봉리 등 수지 단합대회에서 이의리는 상을 많이 탔다고 합니다.
수지면 이의리로 시집을 온 저도 이의리가 수원시에 편입되기 전에 수지면 단합체육대회에
참석한 일이 있었습니다. 부녀회에서는 포크댄스를 준비하였는데 부녀회원들은 농사일을 끝내고 저녁에 동사무소 2층에서
춤 연습을 하였습니다. 쉬운 동작들의 반복이었지만 제법 수준급까지 익혔습니다.
두 팔을 어깨 높이로 엇갈려 얹고 짝꿍의 앞을 돌아나오며 서로에게 따뜻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오른발, 왼발을 교차로 돌며 휙 신선한 바람을 날렸습니다.
그 당시 부녀회장님이셨던 홍근이 어머니는 저한테 젊은 사람이라 벌써 도는 것부터 다르다고 칭찬을 해주셨습니다.
부녀회장 님은 연습 때마다 음료수를 들고 나오셔서 쨀 때 째더라도 무용복 흰색 불라우스와 까만치마는
새 것으로 사 입고 멋있게 춤을 추자고 회원들을 격려 하였습니다. 자식들 공부 가르치랴, 농사를 지으며 큰 살림을 꾸려 나가는
동네 아주머니들은 대부분 시장에 채소를 팔아 생활비를 쓰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부녀회장님의 말씀에 수긍을 하고 모두들 새로 나온 블라우스를 사 입고 체육대회 날 한 호흡이 되어 춤을 추었습니다.
각 마을별로 협동심을 발휘하며 줄다리기와 달리기, 축구, 배구도 하였습니다.
부녀회 줄다리기를 시작하기 전 심경진 통장님은 주먹을 불끈 쥐며 줄을 쥐고 있는 우리들에게 다가오셔서
더욱 힘을 내라고 박카스 음료를 돌렸습니다.
네 번째의 힘겨운 줄다리기에서 이의리 부녀회는 우승을 따 냈습니다.
기운을 온통 써서 어깨가 덜덜 떨릴 정도였지만 우리는 승리의 기쁨을 나누며 마을로 돌아왔습니다.
다음날 부녀회원들은 어깨부터 팔목, 넓적다리까지 근육통이 심하게 오는 바람에 동네 사람들을 만나면
통증의 아픔을 호소하며 일그러진 웃음을 지었습니다.
한 마음으로 이의리를 사랑하였던 동네분들은 이제 광교신도시개발로 각 곳으로 흩어져 쉽게 만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수원시 역사박물관에서 문패의 이름으로 만나게 되니 가슴이 뭉클하였습니다.
여수내 가락골 산 모퉁이에서 음식점을 하셨던 한인수님, 두릉리의 김대식님, 구시기 6통의 오석환님,
구시기 6통의 길마재줄다리기 동네의 장지완 님이 이의동 주민들을 대표하고 있었습니다.
누가 이 문패들을 역사의 장으로 떼어 왔는지요.
기증품으로는 두릉리 499-2 번지에 사셨던 김재영님 (두릉산인)의 오래된 카세트도 보입니다.
그 당시에 새로 나온 라디오 카세트를 살 수 있었으니 행운임에 틀림없습니다.
온 가족이 뉴스와 연속극, 흥겨운 노래에 귀를 기울이셨겠지요.
농사를 지었던 이의동 농가의 모습도 재현하였습니다.
동사무소 밑 여수내에 사셨던 '이도시사' 님이 기증하신 나무절구와 나무로 된 떡메가 있습니다.
옛날엔 집집마다 절구에 물을 부으며 보리방아를 찧고 밀도 빻아 체에 쳐서 누런 밀가루를 냈다고 합니다.
제사와 명절 때엔 찹쌀을 쪄서 구수한 팥 인절미도 만들어 먹었습니다
마당에 서 있는 지게와 장작, 경운기가 나오기 전엔 농작물을 지게에 져 날랐습니다.
나뭇광도 따로 있었지요. 처마 밑엔 도끼로 팬 장작들이 쌓여있었습니다.
벽에 걸려있는 굵고 가는 체, 대바구니, 키, 복조리도 보입니다.
대문간 옆에 세워 둔 도리깨, 싸리비, 이의동의 아침은 마당을 쓸고 있는 싸리비 소리를 들으며 잠을 깨었습니다.
부지런한 발자욱 소리는 누워 있는 가족들의 등을 소리없이 일으켜 세웠습니다.
방문 앞의 댓돌, 남여의 흰고무신도 놓여 있습니다.
우리의 부모님들은 방 안에서 아침밥을 먹으며 그날의 일들을 계획하고 논과 밭에서 구슬땀을 흘리며 살아왔습니다.
사각의 작은 창호지 창문, 문고리를 젖히면 나무들이 보이고 파란 하늘과 시원한 바람이 성큼 들어섰지요.
으슥한 곳엔 쥐덫도 있습니다. 덫에 걸린 쥐들은 사람이 가까이 가면 '찍찍'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겁 먹은 눈을 반짝였습니다.
농경생활이었던 이의동의 터전은 어느새 역사의 유리관에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안 쪽엔 시대마다 명필들의 한문체가 전시관을 빛내고 있습니다.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고유의 필체들은 비석이나 서첩, 작품집 등에 남겨져
옛사람들의 훌륭한 문화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두릉리의 입향조인 안동김씨, 효헌공 김찬의 문과 벼슬인 백패 진사의 교지도 걸려 있었습니다.
홍패 판서의 교지는 어디에 있는지 궁금하였지만 지나쳤는지 보지 못하였습니다.
흥미로운 곳은 수원역사박물관입니다.
수원의 역사와 문화를 과거, 현재, 미래의 시점과 주제별로 구성 되어 있는 전시관은 수원의 자연환경, 역사시대의 변천사를
다양한 모습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뜻이 있는 분들의 수많은 기증품을 보면서 감사의 마음을 금치 못하였습니다.
시대별로 기록물, 유품, 유물들, 화면과 사진 등 수집활동을 통하여 우리가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해설가의 설명은 갈 때마다 새로운 발견을 하여 줍니다.
수원 최초의 신풍초등학교, 밴드부로 유명하였던 세류초교의 북치는 작은 소년은 노인이 되어 박물관을 찾아와
자신의 사진을 가리키며 감회에 젖으셨다고 합니다. 옛지도의 화홍문, 지금은 없어진 남수문도 그려져 있습니다.
서둔동 농촌진흥청에서 개발하였던 통일벼, 수원의 유명한 갈비집의 원조인 화춘옥의 정경도 꾸며져 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찾으셨던 음식점이어서 더욱 입소문이 났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탁자 위엔 콸콸 막걸리를 쏟던 알루미늄 말 주전자가 이제는 엷은 그리움을 가득 담아내고 있었습니다.
영동시장 옛 수원을 빠져 나오니 비가 그쳤습니다.
사운 이종학사료관은 수원 출신의 서지학자이자 자료수집가인 이종학 선생님으로부터
일제강점기의 자료와 금강산, 독도 관련 자료들을 수집하여 전시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다음 일정이 있어 다시 오기로 하고 송덕비를 따라 언덕길을 내려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