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번째 조선왕릉 탐방 [남양주 광릉] 후기 <1>
<2023년 8월 12일>
518년 조선 왕조의 숨결을 찾아 떠나는 우리들의 여정!
여덟 번째 탐방은 세계문화유산이자, 유네스코 생물권 보전지역인
[남양주 광릉]과 광릉의 원찰이었던 [봉선사] 탐방.
[광릉]은 조선 최초의 동원이강릉 형식의 [세조와 정희왕후의 능]이다.
세조(1417~1468, 재위 1455~1468)는 세종과 소헌왕후의 둘째 아들로,
1453년(단종 1) 계유정난을 일으켜 정권을 잡고, 1455년 단종의 양위를 받아
왕위에 올랐으며 재위기간 동안 왕권을 강화하고 토지제도 개혁, 군사 조직 강화,
경국대전 편찬을 시작하는 등 괄목할 업적은 있으나, 어린 조카를 끌어내리고
왕위에 오른 비윤리적 업보로 인한 피할 수 없는 폐해 또한 만만치 않다.
상당 기간 이어진 단종 복위운동, 이로 인한 끔찍한 옥사와 혼란,
훈구파(공신 집단)의 형성과 이들의 권력독점 및 남용 등등.
정희왕후 윤씨(1418~1483)는 1428년에 대군이던 세조와 혼인,
1455년 세조가 왕위에 오르자 왕비가 되었으며, 1469년 예종 승하 후,
13살이던 손자를 왕위(성종)에 올리고 조선 최초로 수렴청정하였다.
광릉(光陵)은 1468년 세조 승하 후 현재의 자리에 조성 되었으며.
15년 뒤 1483년 정희왕후가 승하, 광릉의 동쪽 언덕에 능을 조성하여
'동광릉'으로 하려다 같은 능역이라 하여, 정자각을 두 능 사이에
옮겨 짓고, 조선 최초의 동원이강릉 형태의 능이 되었다.
세조의 유언에 따라 병풍석을 생략하고 석실 대신 회격을 사용,
왕릉공사에 드는 비용과 인력을 반으로 절약, 애민정신을 엿볼 수 있다.
광릉의 원찰(願刹)은 [봉선사]로, 고려 광종 20년(969년)에 창건한 운악사를
1469년(예종 1) 정희왕후가 89칸으로 크게 중창하고 [봉선사]로 개칭,
임진왜란과 625전쟁을 겪으면서 절집(寺宇)은 모두 소실되었으나,
정희왕후 때 심은 느티나무와 중창 당시 주조한 동종(銅鐘)은
전란의 피해를 모면, 보호수와 보물로 지정 관리되고 있다.
♣ 왕실의 사냥터로 세조가 대군 시절부터 이 숲에서 사냥을 즐기며 그때 이미 사후 안식처로 ~~~,
광릉이 조성되면서 사방 15리내에서 나무는 물론 풀 한 포기 손대지 못하게 능림으로 지정 관리.
♣ 조선왕릉은 200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광릉숲(광릉포함)은 2010년 유네스코 생물권 보전지역 등재
탐방코스는 [광릉]매표소 ~ 재실 ~ 연지 ~ 하마비 ~ 홍살문 ~ 정자각 ~ 비각 ~ ~
광릉 숲길(데크길 2.3km) ~ ~ [봉선사](느티나무 ~ 동종 ~ 연지) ~ ~
그리고 능안마을 음식문화테마거리 식당에서 점심으로 마무리.
연일 지속된 폭염과 초유의 한반도 관통 태풍 [카눈]이 빠져나간 다음날,
걷기에 적당한 날씨에 무한 감사, 즐거움 속에 무사히 탐방을 마무리할 수 있었음에
또한 감사드리며, 참가 회원님들의 적극적인 협조에 거듭거듭 감사드립니다.
참가자 (24명)
꽃게 동해 망아지 망우산 멍게 볼보차 사오정 송파 수현 아라다 아피오스 여행 여행동행
원님 유남 자넷 즐라아재 즐라아재부인 천마산 청계 청산 청파 해바라기 <존칭 생략>
*** 광릉숲길 걷기와 봉선사 관람 기록은 2편에 이어집니다.
10시반, 진접역 1번출구 밖. 인사 및 자기 소개
처음으로 참가하신 회원님도 계시고 ~~~,
'우수회원'으로 등업하신 회원님도 계시고 ~~~, 인사도 나누고 축하도 드리고 ~~~, 하여 기쁨 배가(倍加).
10시 58분, 광릉행 21번 버스 탑승.
광릉 매표소.
[광릉 안내도] 앞 집결. 오늘의 일정 설명 및 카페지기님 말씀
광릉역사문화관
재실.
기록에 의하면, 당시 잦은 호랑이 출몰로 능참봉 요청이 있어 재실 건물 대청에 튼튼한 문을 설치했다고 한다.
[벌개미취 꽃]이 만발
[연지] 통상적인 '천원방지' 즉 네모난 연못(땅)에 둥근 섬(하늘) 형태가 아니고, 네모난 연못에 창포가 심겨져 있다.(연지가 둘).
*** 심각한 종기나 피부병에 시달리며 고생했던 세조, 창포는 옹종(癰腫 - 종기)이나 개창(疥瘡 - 부스럼)에 치료 효과가 있다.
*** 세조의 형수인 현덕왕후(문종의 왕비)가 꿈에 나타나 침을 뱉은 자국마다 부스럼이 났다는 야설이 있을 정도로,
세조는 피부병으로 인해 전국 명산을 다니며 계곡에서 목욕 관련 많은 얘기를 남기기도 했다.
*** [상원사 문수동자상] 관련,세조의 계곡 목욕 시 누군가 등을 개운하게 밀어주어, '어디가서 왕의 등을 밀어 주었다고
얘기하지 말라' 당부하자, '어디가서 문수보살이 등을 밀어주었다고 얘기하지 말라'하고 동자가 사라졌다는 설,
*** [정이품송] 관련은 세조가 속리산으로 행차할 떄, 아래로 처진 소나무 가지에 세조의 연(輦 - 가마)이 걸릴 것 같았는데
소나무 스스로 가지를 쳐들어 세조의 연이 지나갈 수 있도록 했다. 이에 세조는 이 소나무에 정2품 벼슬을 내리고 ~~~.
♣ 지난 10일 오후, 태풍 카눈에 정이품송의 가지가 부러졌다는 안타까운 뉴스. <퍼온 사진>
상원사 문수동자상 <퍼온 사진>
[정이품송 후계목] 2002년 인공수분으로 2003년 씨앗을 받아 키운 나무를 2012년 광릉으로 옮겨 심었다.
'천년기념물'이란 표기가 언제쯤 '천연기념물'로 제대로 표기되려나?!
[신나무]
신나무 밑동, 얼마나 많은 세월, 이 자리를 지켰을까, 연륜이 묻어난다.
[대소인원개하마(大小人員皆下馬)] '인'은 일반인, '원'은 관리, 즉 '대소인원'은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모두 다'를 의미.
금천교
서어나무
양쪽에 원형으로 보이는 돌은 원래 있던 홍살문 받침돌로 추정하고 있으나, 언제 왜 홍살문을 옮겼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 이 지점에서 한참을 더 올라가야 홍살문이 나온다.
향로와 어로 및 판위는 유실되고 없다. 언제나 복원되려나.
*** 단체사진 잘 찍어주신 어느 관람객에게 다시 한번 감사!!!
세조대왕 능침, 왼쪽은 수라간.
멀어서 조금 당겨도 보고 ~~~.
정희왕후 능침, 오른쪽으로 비각과 수복방.
표석
정자각 월대에 올라 홍살문 방향 조망, 멀리 안산인 [수리봉]은 키큰 숲에 가리어 전혀 보이질 않네. 아마도 능침에선 보이겠지.
정자각 뒤편.
참빗살나무 열매. 아마도 10월이 되면 빨갛게 익으리라
태풍 곤파스(2010년)에 쓰러진 전나무와 잣나무, 완전히 흙으로 돌아가는데 몇 년이나 걸릴까?
*** 또 공연히 쓸데없는 생각을 한다 싶어 혼지 웃는다.
재실 옆 야생화, [벌개미취]는 국화과이지만 여름부터 가을까지 꾸준히 피며 한국 특산이기도 하다.
꽃말은 '청초' '너를 잊지 않으리'. 멀리서 보면 쑥부쟁이와 비슷하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다르다. 잎의 모양도 다르고 ~~~.
세조와 정희왕후의 능, [광릉] 탐방을 마치고, 이제 [광릉숲길]을 걸어 [봉선사]로 향한다.
*** 광릉숲길 걷기 및 봉선사 관람 기록은 2편에 이어집니다.
감사합니다.
첫댓글 오늘도 왕릉 탐방...
상세한 설명에 감사드립니다^^
우동길 가는곳마다 너무 재미있어요.
다음을 또 기대합니다^^
사소한 얘기에도 귀 기우려주심에 매번 감사드립니다.
함께라서 늘 즐겁습니다.
광릉은 세조와 왕비의 능만 있어 파란만장했던 세조 스토리를 다시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되었어요
수목원 데크길과 아주 큰 규모의 봉선사까지
리드하시느라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고맙습니다.
말씀대로, 여러 임금과 왕비의 능이 아니라서 집중할 수 있어 참 좋았습니다.
날씨까지 도와주고 ~~~, 덕분에 행복했답니다.
다음 걷기 때 뵙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