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내 장터에서
한마음으로 외친 대한독립 만세"
"천안 유관순 열사 유적지 탐방..,"
~~1919년 3월 1일~~
***대한독립만세(大韓獨立萬勢)***
(독립기념관 입구 만세운동 조형물)
(천안병천~4년만에 열린 아우내봉화재)~2023, 2, 28
(유관순 열사 유적지 입구 조형물)~사적 : 충남기념물
"유관순 열사 유적지 입구에 조성되어 있는 조형물이며,
3.1만세운동을 상징하는 햇불의 의미를 담은 조형물입니다."
(유관순 열사 유적지 안내판)
"매봉산이 품고 있는 유적지 조감도입니다.
매봉산 정상에는 3.1만세운동의 기폭제가 되었던 봉화대가 자리하고 있으며,
산 아래 넓은 터에 유적지가 잘 정돈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순국소녀 유관순 열사 초혼묘 봉안 기념비)
"유관순 열사 유적지에 들어서면 오른쪽에 유관순 열사에 관한 내력이 기록되어 있는
비석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아우내 독립만세 운동의 주역 유관순 애국소녀의 한 맺힌 원한을 풀어드리고
영혼을 위로하여 영구히 잠드실 *초혼묘(招魂墓)와 존영상(尊影像)* 을 봉안하는 뜻을 새긴
비(碑)입니다."
(유관순 열사 상 : 柳寬順 烈士 像)
"넓은 유적지 광장 오른쪽에는 유관순 열사 동상이
왼쪽에는 유관순 열사 기념관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유관순 열사 기념관 : 柳寬順 烈士 記念館)
"유관순 열사 기념관에는 일제 치하의 열사의 행적들과 1919년 4월 1일
아우내만세운동에서 이어지는 유관순 열사의 행적이 자세하게 전시되어 있어,
쉬엄쉬엄 둘러보면 우리들이 몰랐던 3.1운동에 대한 역사의 현장을 잘 알수 있었습니다."
(기념관에 설치된 각종 전시물)
(3.1운동에 대하여..,)
(아우내 독립만세운동에 대하여..,)
(독립만세운동에 사용한 태극기)
(서대문형무소 벽돌)
(유관순 열사의 존영 : 柳寬順 烈士의 尊影)
(기념관에서 바라본 유관순 열사 상)
(유관순 열사 유적지 광장)
(추모각 가는 계단길)
(추모각 삼문)
(삼문에서 바라본 추모각)
(추모각 : 追慕閣)~충남 기념물 제88호
"추모각(追慕閣)은 유관순 열사의 애국정신을 추모하고 아우내독립만세운동의 빛난 얼을
기리기 위해 1972년에 건립하였으며, 화강석 기단 위에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맛배지붕 목조건물로
주위에 담장을 두르고 정면에 삼문을 두었으며, 현판은 갈물 이철경 선생이 썼다고 합니다."
(유관순 열사 존영 : 尊影)~문화체육관광부 표준영정 제78호
"3.1운동 당시 만세운동 직전에 나라를 걱정하는 표정과 의기에 찬 모습으로
이화학당 교실에서 태극기 쥔 손을 무릎에 올려 놓은 모습으로...,"
"...,흰색 치마저고리 갖신 등 복식과 마루바닥 등은 철저한 고증을 거쳐 재현 했으며,
석천 윤여환 화백이 제작하여 2007년 2월 28일 봉안 하였다고 합니다."
(추모각에서 바라본 삼문과 병천시내)
(유관순 열사 추모각에서 순국자 추모각으로 가는 쪽문)
"유관순 열사 추모각 옆에는 순국자 추모각이 자리하고 있으며,
쪽문을 통하여 왕래가 되게 되어 있습니다. 또 한길은 정문에서 순국자 추모각으로 와서
추모하고 이 쪽문을 통해 유관순 열사 추모각으로 갈 수 있습니다."
(순국자 추모각 : 殉國者 追慕閣)
"이 순국자 추모각(殉國者 追慕閣)은 민족의 자주독립을 위한 호서지방 최대의
항일운동인 아우내 독립만세운동에서 순국하신 47분(11분은 신원 확인 불가)의
넋을 기리고자 위패를 모신 곳입니다."
"1919년 4월 1일 천안의 아우내 장터에서 유관순 열사를 비롯한 3000여 명의 군중과 함께
만세운동을 전개하시던 중 일본군의 무자비한 공격으로 유관순 열사의 부모님을 포함한 19분은
현장에서, 나머지분들은 옥고를 치루거나 부상을 당해 순국하셨다고 합니다."
(순국자 추모각에서 바라본 병천시내)
~~~(병천 : 竝川~아우내 란 ?)~~
"병천(竝川)이란 두 강이 나란히 흐른다고 해서 병천이라고 하며,
잣밭내(백전천 : 栢田川)와 치랏내(갈전천 : 葛田川)가 보인다고 해서 *아우내* 라고 했습니다."
두 강이 만나는 곳을 이르는 충청도 말입니다. 지금은 *병천 : 竝川)* 이라고 부릅니다."
(멀리서 바라본 유관순 열사 생가와 매봉교회 전경)
"유관순 열사 생가와 매봉교회는 열사의 유적지에서 가까운 곳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유관순 열사의 유적지의 매봉을 넘으면 생가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유관순 열사의 생가로 가는 길)
(유관순 열사 생가 :柳寬順 烈士 生家)
"1902년 12월 16일 아우내에서 동쪽으로 5리 떨어진
용두리에서 유관순이 태어 났습니다."
"아버지 유중근과 어머니 이소제는 선각자 였으며,
아버지는 조병옥 박사의 아버지인 조인원과 함께 교회를 세워 아이들을 가르쳤습니다.
교회 이름은 용두리교회였습니다."
"유관순이 열세 살 되던 1915년 유중근은
딸을 서울 이화학당으로 유학을 보냈습니다."
"유관순이 이화학당에 재학 중 3.1독립만세가 일어나자 고향으로 내려와
아우내만세운동을 일으켜 수감된 뒤 모진 고문 끝에 순국 하셨습니다."
"열사의 정신을 후세에 길이 전하기 위해
매년 순국일에 추모행사를 거행하고 있습니다."
(유관순 열사 생가 관리사)
(관리사와 매봉교회)
(매봉교회)
"일제에 의해 전소됐던 용두리교회는 훗날 유관순 기념 교회로 바뀌었으며,
바뀐 이름은 *매봉교회* 입니다. 바로 옆에 유관순 생가가 있으며, 생가는 일제가 불태워
사라졌고 지금 있는 초가집은 복원한 집입니다."
"교회 외벽에는 봉화를 올리는 소녀 청동조각이 걸려 있으며,
역사적 의미는 물론 건축학적으로도 의미 있는 교회라고 합니다."
(아우내 독립만세운동 기념공원 표지석)
(그날의 함성 조형물)
"1919년 4월 1일 충남 천안 아우내장터에 장이 섰다. 음력 3월 1일이었다.
이날 오후에 장터에 맞붙어 있는 헌병 주재소에 40여 명이 몰려갔다.
"맨 앞에 있던 유중무가 두루마기 허리끈을 풀어 일본인 헌병 목을 졸랐다.
제지하는 조선인 헌병 보조원 맹성호와 정수영에게 그가 일갈했다."
"*너희는 어찌 왜놈들과 함께 일을 하는가. 함께 만세를 부르라.*
몇 시간 전 장터에서 만세 부르던 3000여 명 가운데 많은 이가
일본 헌병대 총에 숨진 상황이었다."
"유중무의 형이며 유관순 열사의 아버지 유중근도 옆구리와 머리를 찔려 죽었다.
열사의 어머니 이소제도 함께 죽었다."
"열일곱살 먹은 유관순이 주재소로 달려와 주재소장 고야마(小山) 멱살을 흔들었다.
*나라를 되찾으려고 정당한 일을 했는데 어찌하여 내 민족을 죽이는가*"
"군중이 1000명으로 불어나자 헌병대는 이번에도 사격으로 응대했고
군중은 흩어지거나 죽거나 끌려갔다."
"그날 장터에서 일본 헌병 총검에 죽은 사람은 19명이었고 옥사(獄死)하거나
고문으로 훗날 순국한 사람은 29명이었다."
"무명씨(無名氏)는 셀 수 없다. 아우내 만세를 주도하고 주재소장 멱살을
잡았던 소녀도 감옥에서 죽었다. 이름은 *유관순(柳寬順)* 이다."
"1987년 8월 15일 아우내장터 서쪽 흑성산 아래에 한국인 30만명이 모였다.
시간은 68년이 흘렀고 공간은 아우내장터에서 7km 서쪽으로 이동한 그날 그 자리,
사람들 앞에서 *독립기념관(獨立記念館)* 이 문을 열었다."
(아우내 장터 거리)
"오늘날 아우내 장터는 유관순을 비롯한 많은 선각자들이 있었기에 전국 최고라는
병천순대거리로 변신해 미식가들이 많이 찾아오는 명소가 되었습니다."
" 청 풍 명 월~~천안, 유관순 열사 유적지 탐방..............................................................,끝"
~~~(충남 천안시 : 天安市) 이야기~~~
***(카페 전체 메뉴판)***(참고)
(가연님들의 이야기~산행과 여행정보)
*천안(1) : 독립기념관 (2016, 4, 28~카페 올린날)
*천안(2) : 유관순 열사 유적지 (생가, 아우내 장터 등 : 2023, 2, 28~카페 올린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