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희 수필가의 세 번째 작품 『보랏빛 운무 속에』 독서토론회
전북문학관 아카데미 작가의 문장 팀이 두 번째 독서 토론회를 열었다. 중견 수필가 박순희 작가의 작품집으로 작가를 알아가며 소통하는 시간이었다. 이 의 수필가와 서운정 작가가 참여하여 기존과는 다른 센스 있는 진행을 선보였다.
-박순희 작가의 말
안녕하세요, 『보랏빛 운무 속에』를 쓴 박순희입니다. 많이 떨리고 흥분됩니다.
예술의 보편적 속성이 그렇듯 문학은 저에게 정서적으로 삶의 윤활유 역할과 인간과의 소통의 도구이며 힐링의 기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제 인생 후반기의 삶의 명제가 되었고 동반자가 되었습니다.
신변잡기에 문학의 옷을 입힌 게 수필이라지만 ‘그 사람의 글이 곧 그 사람이다. 글과 사람이 일치해야 한다.’라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고 공감합니다.
연보에도 실었듯 초등학교 5학년 때 친구 집에서 ≪소공녀≫를 읽고 감명받았으며 처음으로 두툼한 책 한 권을 읽었다는 뿌듯함으로 독서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이어서 명작을 읽을 기회라든가 문학에 대한 막연한 꿈을 꾸게 된 건 아무래도 환경적 영향이 컸다고 생각합니다. 후손에 대한 교육열이 크셨던 할아버지께서 자손들을 대도시로 유학을 보냈고 부산의대를 다녔던 삼촌과 오빠가 읽던 명작들을 손쉽게 접할 수가 있었습니다. 특히 문청으로 신춘문예에 응모하던 오빠의 영향이 컸다고 생각합니다.
방송대 국문학과를 졸업하던 해 전북대 평생교육원 수필창작반이 개설되어 2년 차에 수강을 시작했는데 바로 행촌수필문학회를 조직했습니다. 한 학기만 공부할까 했는데 김재희 선생이 함께 시작하자고 권유해서 창단 멤버가 되었습니다. 故 김학 교수님이 계속 등단을 종용했으나 습작이 부족하다고 생각되어 2004년 격월간 문예지 <한국문인>으로 등단해서 세종문화회관에서 등단 식을 했습니다. 시어머니를 모시는 동안 문학 활동을 활발하게 못 해서 자칭 후발 주라 생각합니다.
고백의 문학으로서 수필은 내 정서의 근원인 외로움에 혼자 사색하다가 사물을 관조하며 사유의 집을 지어가는 과정이어서 다른 장르보다 상대적으로 접근성이 좋아서 수필을 공부합니다.
특히 ‘작가의 문장’ 수업은 종래에 듣지 못한 특별한 수업이어서 창의적인 김영 회장님의 수업방식에 감탄합니다. 이른바 수필에서의 더하기 빼기 문장에서 형용사와 부사를 조심하라. 고백의 글 수필의 허구를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가, 가면을 쓰고 작품을 쓴다. 예를 들면 ‘욕을 해놓고 욕은 안 쓴다.’ 등 유익한 이론에 근거하여 글의 수준을 높이려고 합니다.
안톤 슈낙의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유진오<창랑정기>, 황순원의 <소나기> 등을 좋아합니다. 무엇을 갖추었거나 가진 것은 없지만 나와 사귀면 시종여일 변함없는 루어 주심을 체험했습니다. 억지로 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때가 있더라는 걸 절감했습니다.
신문에 수필을 게재하다 보니 다분히 시사적이고 건조체의 글을 쓰게 되고 주제의 일관성은 지켜진 것 같으나 너무 딱딱한 느낌입니다. 그러나 글 쓰는 재주보다 글 읽기를 즐깁니다. 앞으로는 서정 수필을 쓰려고 노력해서 맛깔스러운 글을 쓰고 싶습니다.
-이 의 수필가 감상 및 질문
박순희 작가의 생은 순탄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는 환경에 순응하지 않고 자기만의 길을 개척하며 살았다.
29쪽 <운 좋은 자 노력하는 자>에는 작가의 초년 인생이 드러나 있다. 남자 형제들은 서울 유학을 보내면서 자신은 중학교로 끝냈을 때 어린 마음이 어떠했을까?
당시의 흐름이 그러하였음으로 독자의 공감을 끌어냈을 것이다. 그런데도 작가는 자격증을 따서 직장을 다니고 서울에 진출했으니 대단하다. 그렇게 다난한 삶의 경력이 다져지고 성숙해지며 폭넓고 다양한 수필 소재의 자양분이 되었지 싶다.
45편 중 31편에 한문이 삽입되어 있습니다. 특히 <운 좋은 자 노력하는 자>에는 한문의 깊이를 짐작하게 합니다. 한문은 뜻글이기에 알면 편하지만 청소년들이 읽기에는 좀 부담스러울 수도 있을 듯싶으니, 더러는 한글로 풀어 써도 좋지 않을까 생각해 봤습니다. 질문드리겠습니다.
먼저 중학교를 마치고 집일을 돕고 있을 때 어떻게 보내셨는지 궁금합니다. 책에 모두 있지만 작가의 육성으로 듣고 싶습니다.
다음으로 한문 공부를 시작한 계기는 무엇이며 어디까지 공부했는지요? 앞으로도 수필에 한문을 많이 활용할 생각이신지요?
19쪽 <아는 것이 힘>
“아는 것이 힘이다. 배워야 산다.”를 몸으로 실천하며 인생을 설계하고 배움에 매진한 저자의 자세는 본받을만하다. 글 중에서 공자의 제자 유에게 설파한 앎이란 글은 나도 어려서부터 귀에 익숙하다. 초등 여름방학 비 오는 날 빨랫줄에 앉아 지저귀는 제비를 보고 있었는데, 할아버지께서 “제비들이 지금 뭐라고 하는 줄 아느냐”라고 하시며 아는 것은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하는 것이 아는 것이라고 하셨다. 난 회갑이 넘어서야 논어 맹자가 궁금해 들추어보다 비로소 공자의 말씀인지 알았다. 작가는 일찌감치 한문에 도전하고 방송통신대까지 마친 열정이 빛을 발하지 않았나 싶다. 고등학교에서 배운 한문이 다인 나는 책을 읽다 보니 내 단어 실력이 부끄러울 정도로 모르는 단어가 튀어나와 사전을 들추어보기 여러 번 이었다.
기행문은 가보고 싶던 곳의 궁금증을 풀어준다. <아, 청령포>, <순례길 섬티아고>의 기행문이 반가웠다. 청령포는 비운의 어린 왕 단종이 삼촌에게 쫓겨나 귀양살이하던 곳이다. 한번 가보고 싶었던 곳이다. 그런데 고맙게도 편히 앉아서 가본 듯이 곳곳을 세세하게 표현한 글맛까지 함께 청령포를 다녀온 듯했다.
섬티아고 순례길은 영상을 통해 접하고는 꿈을 꿀 정도로 가보고 싶었다. 이제는 걷는 데 자신이 없어 엄두도 못 내니 이글이 얼마나 반가웠던지 여러 번 읽으며 상상으로 여행 기분을 내기도 했다. 특히 사도들의 집 모양이며 풍광과 지세를 세밀하게 표현한 그 자리에 내가 있어 함께 한 듯 좋았다. 안 가보신 분들은 글에서 충분히 대리만족할 것이다.
84쪽 <천변의 아침> 편 끝맺음이 참 좋다.
“올가을엔 나, 천변에서 가을 색으로 함께 익으리니, 풍경 속 주인공이 되어 활기차게 아침을 열어간다.”
155쪽 <보랏빛 운무 속에>
전주에 온 지 15년이 되었어도 전북도민의 노래가 있는지 처음 알았다. 그리고 전라도라고 하는 것은 전주와 나주의 준말이라는 것도. 요즘 전주를 전라도의 수도라 하는 버스 광고문도 이해할 수 있었던 것도 글의 힘이다. 전주가 전남북도에 제주도까지 행정의 중심지였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수필은 특히 요즈음같이 줄달음치는 세상에서는 꼭 필요한 분야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 같은 외지인들은 책을 통해 알았으니 수필이라는 장르가 새삼 중요하다.
161쪽 <난 머리가 좋아>
읽으면 한바탕 웃게 만든다. 작가님, 당시를 재현해 보시죠.
유머가 있어 웃었으니 홍일 편이다. 좀 늦게 도착한 레크리에이션 자리에서 느닷없이 “머리 좋은 박순희 씨 오시네.” 소리에 놀라 부정했는데 두뇌가 아닌 머리카락 대결인 줄 알고 당황했던 장면, 독자는 웃음보가 터질 수밖에. 책 속에 백미다. 유머나 위트가 있는 글을 쓰고 싶지만, 마음뿐 어렵기만 하다. 앞으로도 그런 글 많이 쓰시기를 바랍니다.
195쪽 <마음을 다스리고>
놀랍다. 작가는 청학동 한문 선생이 되는 꿈을 꿨단다. 사서삼경까지 섭렵하신 듯싶으니 멋진 서당 선생님이 되시기를. 중 2학년 아들을 청학동 한문 서당엘 보냈다니 보통 어머니가 아니죠. 대치동 영어, 수학 학원이 아니라 예의범절과 한문을 익히게 했다니 현대판 한석봉 어머니를 넘어섰네요. 결과는 굿, 사람은 사람의 생각으로 만들어 짐을 말하고 있습니다.
작가는 덕유산 새벽 등산길에서 앞 사람의 발자국을 신의 한 수로 알고 찾듯이 수필의 길에서도 신의 한 수를 찾아 좋은 글 많이 빚을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 서운정 수필가 감상 및 질문
작가의 문장에서 선생님을 처음 뵈었습니다. 뚝배기에 된장찌개가 보글보글 끓고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선생님의 세 번째 수필집 『보랏빛 운무 속에』를 읽다 보니 만학으로 국문학을 공부하신 선배님이시더군요.
그래서 공부하시면서 어려웠던 점을 편한 마음으로 대화를 이어 나가고자 합니다. 그런데 <형식과 내용의 조화>를 읽어보니 선생님께서 내용과 형식을 중히 여기시는 분이라는 생각에서 선생님의 인생관에 관해 여쭙고 싶습니다.
선생님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깊이 성찰한 끝에 글쓰기를 하셨다고 했는데 문학에 입문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운 좋은 자 노력하는 자>에서 보면 "복이 많은 사람은 대체로 복을 받을 만큼 마음 씀씀이가 선하다. 부지런히 일하며 성실하게 지낸다. 그런 사람은 으레 복을 받아 마땅하지 않을까 싶다. 심보가 고약하고 게으르고 요행이나 바라고 꼼수나 부리는 양심 파탄자는 되는 일이 없어 마땅하거니 싶고"를 읽을 땐 선생님의 단호한 성격이 드러나 귀여웠습니다.
저도 만학으로 공부하면서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시험 기간만 되면 제사에 김장, 집안 행사가 겹쳐 애를 태웠는데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공부하셨나요?
국문학 선배님이시고 또 수필도 전북대 평생교육원에서 시작하신 것 등 여러 가지로 공통되는 점이 많아 선생님과 술 한잔하면서 대화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첫댓글 수고하십니다
저렇게 알차고 좋은 자리 함께 할 수 있었으면 마음으로만 발 동동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