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호변(元虎變)
[문과] 중종(中宗) 33년(1538) 무술(戊戌) 별시(別試) 3등(三等) 3위(09/15)
[인물요약]
UCI G002+AKS-KHF_13C6D0D638BCC0B1506X0
자(字) 병숙(炳叔)
생년 병인(丙寅) 1506년 (연산군 12)
합격연령 33세
본인본관 원주(原州)
거주지 한성([京])【補】(주1)
[관련정보]
[사전] 인물 생애 정보
생졸년 미상. 조선 중기 문신. 자는 문숙(文叔)이다. 본관은 원주(原州), 거주지는 서울이다.
증조부는 원중거(元仲秬)이며, 조부는 원순조(元順祖)이고, 부친은 승지(承旨)를 지낸 원계채(元繼蔡)이다. 숙부는 이조판서(吏曹判書)를 지낸 원계검(元繼儉)이다.
1531년(중종 26) 식년시 생원 2등 3위로 입격하고, 1538년(중종 33) 별시에 문과 급제하였다.
『중종실록』의 편찬에서 홍문관부교리지제교(弘文館副校理知製敎) 겸 경연시독관(兼經筵侍讀官)으로 참여하였다.
1546년(명종 1) 부친의 상사(喪事)에 품행을 바르게 하지 않고 근신하지도 않은 인물인데 육조낭관(六曹郞官)과 춘추관(春秋館)의 일을 겸하게 하여 역사를 편수하게 할 수 없다는 사간원의 탄핵을 받았다.
1547년(명종 2) 2월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 5월 홍문관수찬(弘文館修撰), 7월 홍문관교리(弘文館校理), 8월 병조정랑(兵曹正郞)에 제수되었다.
1549년(명종 4) 의정부사인(議政府舍人) 정유길(鄭惟吉)과 함께 승정원(承政院)에 나아가 봉서(封書)를 올리고 고변(告變)하였다. 양재역 벽서사건을 빌미로 정미사화(丁未士禍)를 일으켜 강원도 영월(寧越)에 유배된 이홍남(李洪男)이 석방될 가망이 없자 동생 이홍윤(李洪胤)이 반역한다고 조작하여 그의 처남인 원호변(元虎變)과 동서 정유길(鄭惟吉)에게 편지를 보내어 고변하게 한 것이다.
1551년(명종 6) 3월 황해도어사(黃海道御使)로 파견되어 흉년으로 굶주린 백성들을 구휼하였다. 같은 해 9월 청원부원군(淸原府院君) 한경록(韓景祿)을 상전처럼 모시며 아부한다며 그를 파직하라는 사헌부의 탄핵을 받았다.
이는 한경록이 조계상(曺繼商)의 외손(外孫)이고 이기의 질손(姪孫)인데, 공주(公主)에게 장가들어 왕의 총애가 당시 제일이었기 때문에 빚어진 일이다.
1561년(명종 16) 8월 양주목사(楊洲牧使)로서 천신(薦新)에 사용되는 풍양천(豊壤川)의 은구어(銀口魚)을 잡는 것을 엄금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추고되었다.
1562년(명종 17) 여러 차례 탄핵을 받아 사류(士類)에서 용납되지 못하는 인물인데 형조참의(刑曹參議)에 제수되었으니 체직시켜야 한다는 사헌부의 탄핵을 받았다.
[생원] 중종(中宗) 26년(1531) 신묘(辛卯) 식년시(式年試) [생원] 2등(二等) 3위(8/100)
[이력사항]
선발인원 15명 [一等1‧二等5‧三等9]
전력 생원(生員)
품계 통정대부(通政大夫)
관직 시정(寺正)
문과시제 표(表):의송사마광청이십과시사(擬宋司馬光請以十科試士)
타과 1531년(중종 26) 신묘(辛卯) 식년시(式年試) 생원(生員) 2등(二等) 3위
[가족사항]
[부(父)]
성명 : 원계채(元繼蔡)[文]
[조부(祖父)]
성명 : 원순조(元順祖)
[증조부(曾祖父)]
성명 : 원중거(元仲秬)
[외조부(外祖父)]
성명 : 이겸(李謙)
봉호 : 횡성수(橫城守)
본관 : 전주(全州)【補】
[처부(妻父)]
성명 : 강태수(姜台壽)[文]
본관 : 진주(晉州)【補】
[가족과거]
숙부(叔父) : 원계검(元繼儉)[文]
[주 1] 거주지 : 『가정10년신묘8월○일사마방목(嘉靖十年辛卯八月○日司馬榜目)』(국사편찬위원회[MF A지수208]) 내의 합격 기록을 참고하여 거주지를 추가.
[출전]
『국조문과방목(國朝文科榜目)』 卷之六(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원계채(元繼蔡)
[문과] 중종(中宗) 14년(1519) 기묘(己卯) 식년시(式年試) 갑과(甲科) 2[亞元]위(02/29)
[인물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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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 수보(壽甫)
생년 임자(壬子) 1492년 (성종 23)
졸년 기해(己亥)(주1)【補】 1539년 (중종 34)
향년 48세
합격연령 28세
본인본관 원주(原州)
거주지 한성([京])【補】(주2)
[관련정보]
[사전] 인물 생애 정보
조선전기 병조참의, 대사성, 황해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원주(原州). 자는 수보(壽甫).
원효이(元孝而)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원중거(元仲秬)이다. 아버지는 보공장군(保功將軍) 원순조(元順祖)이며, 어머니는 장옥견(張玉堅)의 딸이다.
1513년(중종 8) 사마시에 합격하여 생원·진사가 되었으며, 1519년(중종 14) 식년문과에 갑과로 급제한 뒤 같은해 사림파가 추진한 현량과(賢良科)에 천거되었다.
1521년 수찬(修撰), 1522년 정언(正言)·부수찬을 거쳐 1526년 이후 장령(掌令)을 거듭 역임하면서 언론활동을 하였고, 경연관을 겸하여 중종의 경연에 참여하였다.
1527년 집의(執義), 1528년 보덕(輔德)이 되었다. 그뒤 1534년 동지부사(冬至副使)로 명나라에 다녀오고 곧 이어 다시 관압사(管押使)로 명나라에 사행하였다.
이듬해 병조참의가 되고, 1536년에는 대사성과 황해도관찰사를 역임하였다.
1538년 부제학으로서 진하부사가 되어 황태자 책봉을 축하하러 명나라에 다녀오던 중 이듬해 통주에서 죽었다. 문장에 능하여 1527년에는 궁정의 이문(吏文) 시험에 입격하였으며, 외교문서 작성에 능하여 사신으로 많이 파견되었다.
[생원] 중종(中宗) 8년(1513) 계유(癸酉) 식년시(式年試) [생원] 3등(三等) 64위(94/100)
[진사] 중종(中宗) 8년(1513) 계유(癸酉) 식년시(式年試) [진사] 3등(三等) 51위(81/100)
[이력사항]
선발인원 29명 [甲3‧乙7‧丙19]
전력 진사(進士)
관직 참판(參判)
문과시제 책문(策問)
타과 1513년(중종 8) 계유(癸酉) 식년시(式年試) 생원(生員) 3등(三等) 64위
1513년(중종 8) 계유(癸酉) 식년시(式年試) 진사(進士) 3등(三等) 51위
[가족사항]
[부(父)]
성명 : 원순조(元順祖)
[조부(祖父)]
성명 : 원중거(元仲秬)
[증조부(曾祖父)]
성명 : 원효이(元孝而)
[외조부(外祖父)]
성명 : 장옥견(張玉堅)
본관 : 미상(未詳)
[처부(妻父)]
성명 : 이겸(李慊)
봉호 : 횡성수(橫城守)
본관 : 전주(全州)【補】
[안항(鴈行)]
제(弟) : 원계검(元繼儉)[文]
[가족과거]
자(子) : 원호변(元虎變)[文]
[주 1]졸년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8.)을 참고하여 졸년을 추가.
[주 2]거주지 : 『정덕8년[중묘8년]계유방목(正德八年[中廟八年]癸酉榜目)』(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B13LB-6]) 내의 합격 기록을 참고하여 거주지를 추가.
[출전]
『국조문과방목(國朝文科榜目)』 卷之六(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